파카 수필공모전 '어항을 떠나다' 


 


많은 사람은 투명한 삶의 어항을 끼고 산다.

너무 투명해서 부딪히기 전까진 넓이를 알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정형화된 모습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되면 어항에서 뿜어 나오는 일률적인 공기보다 더 많은 공기에 대한 갈망과 나를 짓누르는 수압을 벗어나고자 어항 밖을 동경한다. 하지만 어항을 떠난다는 것은 항상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것저것 계산하려 들면 늘 투명한 벽에 항상 부딪혔으니까.

 

2005년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난 시험을 마주하기만 하면 항상 좌절을 맛봤다. 그래서인지 항상 조급했고 흘러가는 시간에 시선을 둘 여유조차 없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방안에 틀어박혀 앉아 누웠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뺨 아래로 흘렀고 왜 난 안 되는 걸까? 몇 번을 자책하다 자꾸만 부딪히는 어항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태로는 무언가 계산하고 싶지도, 떠나면 숨이 막혀 죽을 거란 우려는 안중에도 없었다. 눈이 세차게 내리는 겨울, 뉴스 헤드라인에서 짚어주는 몇 년 만의 폭설이란 말과 바람이 부는 대관령이 멋있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이끌려 홀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대관령으로 떠났다. 떠나는 밤기차의 유리창에는 검은 도화지에 하얀 눈발이 자신을 서서히 녹여가고 있었고, 길거리 노란빛들은 저마다 시간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축축한 물고기(魚)는 기차 안에서 '가로'로 그려지는 시간을 따라 폐가 달린 나그네(旅)가 되었고 항아리(缸)를 벗어나기 위한 요동은 내 앞에 '세로'로 길쭉이 걷기(行) 좋은 길이 되었다. 결국, 모음의 가로세로 한 획 차이. 비로소 '어항'에서 '여행'을 떠났구나! 실감이 났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일출을 보다 사람들에게 몇 장의 사진을 부탁했다. 어항을 떠나온 인증이자, 길 위에서 행복한 내 모습을 추억하고 싶어서였다. 사람들은 홀로 온 나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여겼고 응원을 해줬다. 그건 자신도 어항을 뛰쳐나오겠다는 의지의 피력이자 대리만족을 향한 응원이었을까? 이미 어항을 벗어나 본 경험자들의 응원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버스에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창밖에 고정했다. 그간 살아온 깊이 속에 하루를 갈무리하는 것 같은 그 삶의 깊이를 배우고자 내 시선도 멀어지는 풍경에 고정해봤더니.

“그렇구나….”

온 힘을 기울이지 못한 하루의 삶이었다면 창밖을 향한 내 시선은 흔들렸을 것이고 이내 흐려졌을 텐데 그들의 갈무리 속엔 오늘의 뿌듯함과 내일을 향한 기대가 있었다. 갑자기 눈이 시큰했다. 고도가 올라가는 기압만큼 눈앞에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 대관령. 황토색의 건초들과 갈무리를 반복하는 하얀 풍력발전기가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에 폭 잠긴 모습이 마치 수조가 꽉 찬 또 다른 어항 같았다.

 

“그랬구나….”

사람들은 저마다의 어항에서 행복을 보고 있었다.

매표소 직원의 우려를 뒤로하고 그들의 어항을 바람과 맞서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은 정말 차가웠다. 하지만, 힘든 것을 모두 상쇄할 만큼의 감동이 거기에 있었다. 이곳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길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다 내 삶 속 은연중에 정해둔 기준을 두고 빠른 삶과 느린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너무 빠르면 지나쳤고 느리면 머릿속이 꽉 차 복잡했다. 이리저리 치이며 평소 후회 섞인 말을 뱉어냈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이 길 위에서 느낀 속도가 가장 편하다는 걸 알았다. 길에선 모든 시간이 적당한 속도로 내게 흘렀다. 이제 다시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더는 좌절하지 않기로 대관령 위에 인생의 목표와 자세를 포개었다.

 

"그래, 때론 장애물을 돌아갈 일도 생기고 고난과 역경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다 추억일 뿐이야." 순간 길 위에서 시야를 꽉 매운 광원들이 꼭 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이유 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주체할 수 없는 자유는 결국 뜨거운 눈물을 가져다주었다. 왜 내가 갑자기 이렇게 뜨거운 걸까? 지금까지 살아온 날에 대한 후회도 아니었고 매서운 바람에 대한 격한 반응도 아니었다. 그냥 감동 그 이상의 것과 지금까지 살아온 나에 대한 위로 그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하얀 풍력발전기는 내내 쉼 없이 돌며 나를 다독였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일출 때 찍은 내 사진을 찾아보았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뜨거워져….” 하며 모든 시간이 내게 흘렀던 그때를 기억한다.

이제는 내 어항에서 유영할 줄도 알고 충분히 행복하지만 요즘도 공허한 유리가 가끔 메마른 피부에 닿을 때면 또 홀로 어항을 벗고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를 짓누르던 수압도 다시 괜찮아졌다.

 



위에 쓴 글은 저번에 제가 파커만년필 공모전에 출품해서 수상한 글입니다 :) 책도 나왔어요 하하 

모노트레블러가 본격시작된게 작년 이맘때입니다. 딱 오늘이 1년째 되는 날이네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고 많은 생각이 오고 갔으며 많은 사람들과 부대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다보니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이 블로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새 방문자는 100,000명이 되었고 제법 다양한 여행 키워드로 들어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다시 포스팅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컨텐츠는 앞으로 늘려나갈 생각이에요 ! 앞으로 꾸준히 지켜봐주셨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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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5.0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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