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 정선 아우라지 - 안동)




찜질방에서 코고는 아저씨들 때문에 잠을 설친 하루.

아침이 밝았다. 4시간 밖에 못자서 아직 몽롱한 느낌은 가시질 않고..
좀 불편하게 잠을 자서 그런지 머리는 잠이 오는데 몸은 팔팔한 그런 기분이다. 멍한 상태로 아침을 맞아서 기분이 꾸리꾸리 하다가 밥을 먹으러 나왔는데 모텔 겸 찜질방이 장릉 바로 옆에 붙어있어 다행이다. 조금만 걸어 나오니  바로 장릉이 보였다. 그 옆에서 된장찌개나 먹자 하고 음식점에 들어가서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정말 너무 푸짐하게 나오는거였다.

멍한가운데 훈훈한 된장찌개 김을 쐬고 나니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왠지 모를 밥심.
반찬은 거의 12첩이 나오고 된장찌개에 밥도 언제든 더 줄 수 있다며 말하는데 말만 들어도 속이 든든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밥을 먹고나니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어제 그 고생을 해놓고도 어떻게 힘이 또 생겨서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밥을 든든하게 먹고 음식점 바로 앞에있는 장릉으로 향했다. 그러나 너무 이르게 갔던지라 문이 굳게 닫혀있다.
 
개방은 오전 10시.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다가 장릉에서 떨어진 선돌에 갔다 돌아오면 얼추 시간이 맞겠구나 싶어 무작정 표지판을 보고 걸었다. 꽃이 활짝 핀 장릉을 벗삼아 따라 오르다보면  아래가 탁 트인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저 멀리 다른 도시로 통하는 길 사이로 버스와 차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니 꽤 높은곳으로 올라 왔나보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모퉁이를 돌았더니 보이는 간판 ‘선돌’

30분도 온거같지 않은데 벌써 선돌에 도착했다. 선돌은 어제 정선을 여행하면서 들렀던 몰운대와 비슷한 곳인데 몰운대는 병풍같았다 하면 선돌은 대한민국 전도를 보는것 같았다. 침식과 퇴적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그런지 굽이치는 강 사이로 퇴적지가 형성되어있는데 그 모양이 대한민국 전도와 많이 닮아있다. Korea, Sparkling이라는 한국관광 홍보영상에도 이곳이 꼭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곳에 도착해서 멍하니 앉아서 그 풍경을 감상하다가 보니 조용히 있다가도 자꾸만 감탄사가 나오고 감탄사를 내뱉으면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바람이 불어서일까 모든 고민거리가 날아가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선돌은 영월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빠뜨리지 말고 가봐야 할 곳이다.

선돌을 가만히 내려보다 보니 강 너머 끝에 장난감처럼 보이는 차들이 다 선돌을 향해서 엉금엉금 오고 있다. 왠지 선돌을 지나갈 것 같은 느낌상 버스가 저 멀리서 보일때 그때를 맞춰 입구로 나가면 왠지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 버스같이 생긴게 나타나면 슬슬 걸어나갔는데 역시 예상이 맞아서 정확히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역시 여행에는 통찰력이 있으면 좀 더 편해지는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다시 장릉으로 돌아왔더니 장릉이 어느새 북적북적해져 있다. 일단 입장을 하자마자 장릉 박물관에 들어가서 이곳에 얽힌 역사를 천천히 알아보고 나서 장릉 안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에 편안한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걸었다.
 
쉬쉬하는 소리에 마음까지 청량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를 거닐었던 옛 사람들은 어땠을까 하며 그 길을 걷고 나니 어느새 깊숙이까지 들어갔다. 장릉안에 도착하고 나니 왠지 엄숙한 분위기다. 돌을 밟아도 조심히 밟아야 할 것 같고 걸음걸이도 더 엄숙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조용히 장릉에 들어서서 참배를 하고 밖으로 나와서 단종이 잠든곳을 한번 더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그곳을 떠났다.



버스를 타고 장릉을 떠나 시내에 있는 터미널로 가서 이번에는 고씨동굴을 갈 요량으로 계획을 해놓았기 때문에 오전, 오후중으로 꼭 고씨동굴을 갔다 와야 했다. 사실은 고씨동굴을 넘어 김삿갓 유적지도 가볼까 했지만 너무 멀기 때문에 포기를 하고 고씨동굴을 가기로 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면 고씨동굴 버스가 터미널에 있다고 들었는데 터미널에서는 밖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란다.

“ 농협 옆에 있으니까 거기서 타시면 되요 고씨동굴 가는 버스가 거기에 따로 있어요 ”
그말을 듣고 다시 터미널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다시한번 확인하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곳으로 가버릴것 같아서 정류장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고씨동굴 가는 버스가 여기에 오나요?”
아주머니는 무표정이다가 활짝 웃으면서
“예 여기에 와요 안그래도 그리로 가는 버스 기다리고 있었는데 곧 올꺼에요”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아주머니와 난 이런저런 얘기를 할 정도로 금새 화기애애 해졌다. 차가 오기전까지 어디 사느냐 왜 혼자 여행다니느냐 무섭지 않냐하며 여러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버스가 오자 아주머니와 올라타서 버스 안에서도 수다를 떨었다.
 



이 버스의 종점은 김삿갓 유적지. 고씨동굴은 영월시내에서 약 40분 정도를 가면 도착한다. 영월과는 또 다른 도시인것 마냥 또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파노라마처럼 눈에 산이 듬성듬성 들어오더니 레프팅 하기 좋은 강이 굽이굽이 흐른다.

이내 멀리서 고씨동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버스 벨을 눌러 정류장에 내렸다. 꼬르륵 소리가 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역시나 삼각김밥으로 밥을 때운다음 고씨동굴 초입에 있는 다리를 건너 입장료를 내고 고씨동굴에 들어갔다.

고씨동굴은 자연동굴이 아닌 전쟁 대피용 동굴이라 한다. 6․25때 고씨일가가 전쟁을 피해서 동굴에 숨어든것이 계기로 발전한 동굴인데. 동굴 높낮이와 공간이 너무 협소해 행여 머리 다칠까 헬멧을 쓰고 동굴에 입장한다. 굴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이 살았던 흔적, 화로가 있었던 흔적 등등 당시의 생활상을 모두 볼수가 있다. 50년이 이제 막 지난 곳이지만 왠지 선사시대 유적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까지가 고씨동굴이지만 그 뒤에 더 큰 동굴을 발견해서 큰 관광형 동굴이 된것이 지금의 고씨동굴이다. 고씨동굴을 굽이굽이 들어가 이곳저곳을 보다가 공간이 너무 협소해 이곳저곳 옷이 젖고 더러워져 밖으로 나오니 행색이 더 초라해지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옷에 흙탕물이 튀기고 행색이 조금 초라해졌지만 하긴 뭐 더 여행자스러워졌네.

고씨동굴을 나와 다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영월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기다린다. 이제 영월을 떠나서 다시 정선으로 들어가야한다. 왜 영월을 갔다가 다시 정선으로 가냐고 궁금해할텐데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저번 정선여행에서 가보지 못한 여량(아우라지)을 가보지 않으면 왠지 후회할 것 같아서 였다. 그래서 주저없이 다시 증산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영월역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피곤에 지쳐 화장실 칸 앞쪽에서 주저앉아 잠을 청하다가 증산에 도착했다는 방송을 듣고 화들짝 깨서 내리니 저 멀리 여량까지 가는 꼬마열차가 있다.
 
여량으로 가는 꼬마열차를 기다렸다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다시 정선으로 향한다. 꼬마열차가 하루에 한 대밖에 없기 때문에 역시나 사람은 북적북적하다. 오늘은 유치원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예전보다 사람이 더 많다. 북적북적한 가운데 갑자기 어디선가 이국적인 언어가 들려와 그쪽을 바라보니 일본사람들이다.

한국 가이드 없이 순전히 이 먼데까지 오다니 어떤 이유 때문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가만히 있다가 그들이 얘기하는걸 얼핏 들었는데 여량에 원빈이 태어난 생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것. 역시 문화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기차가 정선에 거의 다 왔을즈음 차장이 승객들의 표를 하나하나 검사하고 수거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일로 패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통과가 되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나름 애로사항이 좀 있었다. 차장이 표를 검사하고 그대로 가져가 버리니 당황해 하면서 “선물로 가지고 싶었는데..”라는 말이 순간 들려왔다. 그래서 여행자는 돕고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차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 저기요 차장님 실례지만 일본인 관광객분들이 표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는데요?”
“ 아 그래요? 그럼 다시 돌려드려야죠~”
하면서 표를 받아서 다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연신 아리가또 아리가또(감사합니다)를 하며 어느정도 안면이 텄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그렇게 난 얼떨결에 일일 가이드가 되었다.

중간중간 내리게 되는 역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정선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원빈이 살았던 여량이 아우라지라고 불리게 된 이유와 아리랑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 얘기에 일본인 관광객도 굉장히 신기해 했고 이런 얘기를 처음 들어본다며 좋아했다. 마지막에 여량에 도착했을때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 북을 주고 어딘가에 있을 원빈 생가가 보이는 강 앞편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 이 먼데까지 와서 큰일날뻔 했어요 당신이 아니었으면요. 정말 거듭 감사드립니다.” 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나도 왠지 우리나라 관광에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해서 뿌듯했다.

그들이 가고 나서 여량을 조금 구경하다가 다시 꼬마열차를 타고 증산으로 되돌아 왔다. 나중일인데 전국일주를 끝내고 그들에게 편지가 왔다

“한국을 여행했던 아줌마로부터 - 잘 지내십니까? 그때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여러모로 너무 감사했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사진찍었던 것을 보냅니다. 나중에 도쿄에 올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쿠라가 피는 날에.” 라는 메일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하고 뿌듯했다. 그저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간직하길..

여량에서 다시 증산에 도착하자마자 제천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때라 하늘빛이 물드는걸 보면서 제천에 도착했는데, 제천에서 반대편 플랫폼으로 가니 바로 안동으로 가는 기차가 있어서 환승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객차에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사색하는데 딱 좋은 분위기였다.

조용히 발을 뻗고 제천의 하늘빛이 물드는것을 보면서 창문에 머리를 대고 음악을 들으면서 고독을 즐겼다. 기차에는 안동으로 가는것 처럼 보이는 한복입은 할아버지와 나 둘 뿐. 할아버지는 보따리를 나는 여행가방을 들고 가고 있지만 안동으로 가는 설레는 마음은 아마 똑같지 않았을까 싶다. 안동으로 가면서 멋진 산들과 단양을 지나가면서 멋진 단양의 풍경도 지나가고 이내 밤으로 물든 밖을 바라보며 서서히 잠에 들었다.

그리고 밤 11시 30분. 안동에 도착했다. 추적추적 비가 서서히 내리는 안동에서, 역 앞에 있는 찜질방에서 식혜를 먹으며 그렇게 하루가 갔다.


 제천에서 안동으로 가는 풍경

날짜

2010. 8. 14. 06:46

최근 게시글

최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