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한쪽 끝에 묶어놓은 바람이를 풀었더니 몸체에 촘촘히 물방울이 맺혀있다.
 
간밤에 비가 좀 왔나보다. 신기한건 장마기간에 태풍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비를 맞은 적이 없다. 항상 윗지방을 여행하고 있으면 아랫지방에 장마고 태풍이고 온다하고 아랫지방에 있으니 이제 윗지방에 비오고 태풍오고 한단다. 참 태풍 잘도 피해 다닌다.

그런데 오늘 제주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간만에 여행전에 사 놓은 1회용 우의를 꺼내게 되었다. 우의를 꺼내서 입고 다시 비바람을 가르며 바람이를 몰았다. 그래도 이녀석 한번 고쳐주니 슁슁슁 잘도 간다. 어느새 한림에 닿아 슈퍼에서 자전거 타면서 먹을 빵을 한뭉탱이로 사고 대정으로 출발했다.
 
대정으로 가는 길에는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많다던데 정말 많이 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해녀 아주머니들은 비가 와도 물질을 떠난다.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 여러명이서 물질을 하기위해 스쿠터를 모는 모습이 귀엽다. 한쪽에는 물질을 위한 소쿠리를 한쪽에는 해녀복을 가지고 어느정도 물질을 할만한 위치에 도착하면 돌담에 타고온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일렬로 세워놓고 물질을 간다. 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오늘의 물질도 성공으로 끝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 밑 돌담에 앉아서 해녀아주머니들이 물질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봤다. 아 신기해라. 검은 물체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떠오르는걸 보며 그들의 생계유지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최근 산업화 때문에 물질하는 해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데 나중에는 정말 못보게 되는걸까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다시 그곳을 떠나 자전거를 몰고 대정 방향으로 향한다. 오른쪽에 차귀도로 보이는 섬이 어스름하게 보이면 이제 대정에 다 왔다는 것. 대정으로 가는 도중 아기자기한 초콜릿 공장이 있다길래 궁금해서 꼭 한번 들려봐야 할 것 같다. 안그래도 초콜렛 엄청 좋아하는데!
 

 해안도로를 벗어나 굽이굽이 힘들게 초콜릿 공장으로 거슬러 올라갔더니 10시에 문을 연단다. 10시? 그렇게 되면 오늘 목표인 서귀포까지 가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아쉽게 포기를 하고 대정 모슬포항을 향해서 떠났다. 

모슬포를 향해 가다가 큰 오르막길을 만났다. 오르고 또 오르고 그러다가 차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길래 그곳에서 열심히 셀카를 찍고 혼자서 생쇼를 해본다. 이게 바로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게다가 조금 더 가니 말들이 많이 있다. 상업용으로 기르는 말. 그러니까 돈을 주고 저 말을 탈수가 있는데 말이 너무 귀여워서 멀리서 몰래 말을 찍으며 자전거 일주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림에서 대정으로 오는길의 자전거 여행은 참 많은것을 볼 수 있고 경험해 볼 수 있는거 같다.
 
어느정도 거슬러 올라 내리막이 보이고 내리막 저편으로 차귀도가 보이고 잘 닦여진 도로가 나온다면 저 멀리 제주도에서 제법 큰 마을 바로 대정이 나타난다. 대정은 마라도로 갈 수 있는 잠수함과 배가 선착해 있어 많이 발달되어 있는 곳이었다. 곳곳에 마라도 잠수함 플랜카드가 걸려있고 해안도로 주변에 돌담이 아주 예쁘게 쌓여있는게 인상적이었다.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가끔 돌담길이 있는데 돌담마다 다 의미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돌담이 유적인 경우도 많다.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기도 하고 잠시 비를 피할겸 대정에서 해물칼국수를 시원하게 먹고 대정 들녘을 지나 화순해수욕장을 거쳐 산방산이 보이는 곳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천천히 바람이를 끌고 다니면서 어느새 제주도 자전거 여행에 익숙해짐을 느꼈다. 해안도로에 밀집해 있는 편의점이 주유소로 보이고 반대편에서 오는 여행자를 만날때도 “안녕하세요” 내지는 “수고하세요”라며 인사를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청량음료를 먹지 말아야 겠다는 것도 느꼈다. 제주에 왔으면 역시 삼다수를 먹는편이 낫다. 청량음료를 먹으니 괜히 입이 텁텁하고 금방 갈증을 느끼는 반면 삼다수를 먹으면 그렇지가 않다. 게다가 왠만한 편의점에는 얼려져 있는 삼다수를 팔기 때문에 2개정도 사먹으며 여행을 하면 갈증 걱정은 안해도 된다. 참 대단한 진리 하나 얻었다고 요렇게 읊어대나 하겠지만 한번 내 말 믿고 따라보길.
여튼 산방산을 향해 가다 보니 경사가 슬슬 높아지는걸 느낀다.


산방산 언덕에 있는 절을 바라보면서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서 그 위에서 사진을 한번 멋들어지게 찍고 앉아있으니 차를 타고온 사람들이 “와 자전거로 여행하네요 멋지다”하면서 힘내라며 응원해준다. 그 응원을 얻으니 왠지 더 힘이 난다. 분명 자전거 여행이 그렇게 대단한것은 아닌데 자신감 하나 충전하기엔 이만한 여행도 없는 것 같다. 이제 경사를 올랐으니 내리막길을 즐길 차례다. 장난 아닌 경사의 내리막길. 자전거 바퀴가 서서히 내리막길을 향해 점점 빨라지며 바람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이거 차보다 엄청 빠른데? 바람을 이렇게 제대로 즐기다니 올라온 공을 상쇄시킬 만한 내리막길의 짜릿함. 역시 이맛에 자전거를 타는거야! 하하.

쭉 내려오니 족히 몇 킬로미터는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간만에 시원함을 느껴서 얼마나 짜릿한 경험이었는지. 산방산에서 내려와 쭉 달리다 보니 이제 중문단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중문단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은 곧 서귀포시가 눈 앞에 펼쳐지는것도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도로를 달리고 달리다 보니 뭔가가 빤짝 빤짝거리는데 처음에는 모래인가 싶었는데 쉬는동안 자세히 보니. 으악 유리 조각이다. 마치 일부러 뿌려놓은거 마냥 이렇게 유리조각이 많이 퍼져있다니 그것도 자전거도로 주변에 유독 많이. 왠지 눈살이 찌푸려졌다. 잘못했다가는 펑크날것 같아 조심조심 지나갔다. 대정에서 서귀포로 향하는 길목에는 왠지 감귤 직판장이 많이 보인다. 사실 제주에서 꼭 사야할것으로 한라봉을 선택해놨었다. 근데 이렇게 길가에서 파는 한라봉이 가격이 장난이 아닐거 같아서 직판 포장마차에서 사지 말자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가격은 거기서 거기더라. 아 이야기가 새버렸는데 아무튼 길가를 조심조심 달려 늦은 오후쯤 되었을까 굽이굽이 돌로만 이루어진 하천을 지나 어느새 중문관광단지에 도착했다.
 

중문관광단지에 이렇게 빨리 도착하다니 아마도 아침 일찍 출발해서 그런듯 싶다. 중문관광단지에서 일단 목이 너무 말라 음료수를 살까 하고 편의점에 들렸다.

“어서오세요”
여느때와 다를것 없는 인사말이다. 그런데
“자전거 여행하시나봐요?”
“네”
그러더니 이 아주머니 주섬주섬 어딘가에서 뭘 챙기더니 이내 샌드위치와 음료수와 계란을 꺼내서 가져오신다
“여기서 잠깐 쉬다가요 갈길도 멀어보이는데!”
“아 아주머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렇게 손사래를 치는데도 아주머니의 정성이 너무 감사해서 일단 먹기로 했다. 안그래도 사실 정말 배가 고팠는데 잘됐다. 아주머니는 이 근처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을 온다며 가끔 들러주면 다들 아들 딸 같아서 이렇게 하나하나 챙겨준다고 한다.
“우리 아들도 대학생이 되면 이렇게 여행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고3이라서 바쁘긴 하지만”
“분명 아드님도 대학생이 되면 자기만을 위한 여행을 떠날 날이 올꺼에요” 하며 답해드렸더니 말이라도 고맙다고 하신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엄마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긴 부모님들이 다 똑같지 지금도 걱정하고 계실꺼야 하면서 오늘 저녁에는 꼭 전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거의 1시간정도를 쉬었다.

아주머니께 근처의 찜질방을 여쭤봤는데 이 근처는 너무 대단위 관광지라서 서귀포시 근처에 있는 찜질방 좋은 곳이 많으니 그곳에 가서 찾아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계속 여쭤보고 있는데 멀리서 하이킹을 하는 또 다른 하이킹족이 나타났더니 그 하이킹 족에게도 샌드위치를 권한다. 그냥 그 모습이 왠지 찡하고 감사했다. 제주도 사람의 정을 처음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순간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줌마 고마워요” 이한마디를 나도 모르게 뱉어버렸다.

그래서 아주머니도 내 여행추억의 일부분으로 사진을 담아보고 싶었지만 화장도 안하고 그랬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참. 겸손도 하시지. 그리고 곧 가게를 그만두고 그냥 일상 여느 주부처럼 돌아갈거라고 말씀하신다. “난 그냥 바라는거 없어요. 여기 지나가는 사람이 그냥 오늘 하루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서..” 그 한마디를 들으니 더 찡해진다. 시간이 많이 지나 가게를 나서려고 했을 즈음 아주머니가 당부의 한마디를 해주셨다.
“서귀포까지는 오르락 내리락 많이 해야될테니까 발목 조심해요”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아주머니를 추억에 간직하고 가게를 떠났다.


아주머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시죠? ^^


정말로 서귀포까지 가는 길은 오르락 내리락하는 구간이 많았다. 자전거로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왜이렇게 옆에 가는 차들과 스쿠터가 부럽던지.. 그래도 자전거로 여기까지 온게 어디야 하며 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리고 한 30분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서귀포에 도착했다.
서귀포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7시쯤이 되어버렸다. 일단 찜질방을 찾으러 가자해서 이리저리 헤메고 헤메다 전에 인터넷에 찾아놨던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이 찜질방 겉으로 보기에 시설이 너무 좋다. 밖에 자전거 여행자를 위해 자전거를 시건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자전거를 시건하려고 봤더니 다른 자전거도 옹기종기 모여있는것을 보니 다른 여행자가 꽤 있나보다. 하하.


서귀포에 도착했다!



오늘은 좀 일찍 쉬어야 겠다 내일은 무려 우도도 갔다가 성산으로 갔다가 정신 없을테니 말이다.
“어서오세요 OOO랜드입니다 자전거 여행하시는 분 같은데 오늘 저희에게 빨래를 주시면 내일 체크아웃하실 때 빨래를 말려서 다시 드리겠습니다”

아 여기 서비스도 끝내준다!!




날짜

2010. 8. 1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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