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정하고 싶다면 산으로 떠나라(준비편) - 2번째 지리산 종주

2007년 전국일주, 그 당시 계획했던 루트의 마지막 행선지로 전국일주를 마무리 짓기 위해 지리산으로 가서 큰 자신감을 찾았었다.
2008년 지리산에 위치했던 화엄사 템플스테이. 그곳에서 입대하기전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었고,
2010년 지금. 전역후 다시 그때의 자신감 넘쳤던 나를 찾기 위해 떠났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약 2년. 정확히는 1년 11개월의 군생활이 끝났다. 끝났다라고 귀결하기 보단 끝나버렸다고 표현하는게 맞으려나?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제일 치열하기도 했고 제일 슬퍼하기도 했던 미련 넘쳤던 군생활이 끝나고 거의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했다. 어쩌면 그 많은 시간동안
나와 사회는 심하게 분리되어 있었고 내 눈앞에서 보이는 것은 국방색이 난무하는 군복 뿐이었을 뿐 지금의 사회처럼 총천연색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역을 하면 "사회 적응"이라는 명목으로 따로 적응기를 두나보다.

그렇게 칩거를 하고 있던 나를 끄집어 낸건 순전히 친구의 몫. 예전부터 지리산 종주를 하자고 부단히도 약속에 재약속을 거듭했던 친구가 전역한 4월에도
"언제가냐?" 5월이 되서도 "우리 지리산 가긴 가는거냐?" 하고 인사대신 이런 말을 자연스레 주고 받게 되었고 한창 칩거하고 있던 도중 삘이 받아버린 나는
친구에게 갑작스레 통보해버린다.


"그래 가자 이놈아! 5월 둘째주다."

5월 둘째주의 산행의 결정은 갑작스레 1주전에 이루어지게 되었고 산행을 준비하는 우리에겐 크나큰 과제를 안겨줬다.
큰 과제는 바로 "예약". 우리가 잡으려던 날짜는 너무나 성수기였고 그 많은 대피소는 모두 만석이었다.
그래도 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야, 잘 봐둬 내가 예약에 있어서는 얼마나 끈질긴지 보여줄테니까!"
하고 호언장담했다.

그 담날부터 5일간의 예약을 향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친구는 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휴학중에다가 안식년제(라고 주장하지만 백수상태)를 시행하고 있던 나의 몫은 자연스레 예약이 되었고 하루에 한번 아침 10시, 그리고 12시
2시 계속해서 예약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렸고 자기 전에도 확인할 수 있게 아이폰에 즐겨찾기를, 구글링을 통해서 그날 예약자들을 검색해봤다. 그러던 중 한 산악회
홈페이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어떤 아저씨 한분이 1명이서 4명분을 예약하고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하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려 리플을 보았더니 동행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 찰나 내 머리속에 스쳐갔던 생각.
'그래 예약이 안되면 이 아저씨를 접촉해봐야 겠구나, 그리고 혹여나 이 아저씨가 취소를 하게 되면 적어도 세자리는 나오겠구나, 4일전에 이 아저씨가 취소를 하면 100프로 환불이니까 그때 쯤 자리가 나겠구나'
하는 논리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이것만 봐도 참.. 난 정말 징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이 여행을 책임져야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노력은 필수불가결이었다. 해외여행에서도 난 악착같이 여행했으니까, 남들이 안된다고 했으면 꼭 해버렸으니까.
그래도 저런 생각 저편에는 '비박을 감행할 수도 있을꺼야'라는 생각도 있어 인터넷에서 비박에 대한 글을 검색하고 관련사진을 보자마자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못혀! 난 때려죽어도 이짓은 못혀!
출처 : 한겨레 블로그 ' 지리산 새벽별 '



"말이 안돼 이건 ...... 이것까진......전역한지 얼마 안됐는데 저런 쌩혹한기 훈련 같은건 하고 싶지 않아!!! 안돼!!! 반드시 예약하고 말테다!!!!!!!!"
오히려 그 저편의 생각이 예약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인 집착을 가능케 만들었다.

출발하기 4일전. 오전 10시 눈을 뜨자마자 무한 새로고침을 하던 도중 드디어 첫번째 목표 산장이었던 벽소령 대피소가 예약 공석이 났다. 핸드폰에서 재빨리 확인 후 컴퓨터에 앉아서 주저없이 결재를 눌렀다.
그리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벽소령 정복했다. 이제 장터목만이 남았다 두고봐라 내가 해낸다. 반드시"
이랬더니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무서운 놈 ㅋㅋ"
출발 4일전이라 왠만하면 공석이 제법 나올줄 알았는데 역시 주말이라서 쉽게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쥐어짰지만 공석은 나오지 않았다.(아마 내가 밥먹을때 나왔을런지도?)
그리고 다음날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습관처럼 다시 핸드폰을 켰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왔싸!(아싸!~의 묵직한 표현) 자리났다!"
무려 5개의 자리가 났다. 바로 예약하고 결제하니 바로 대기도 꽉 들어차버린 장터목 대피소. 대단했다!
결국 미션은 이렇게 성공했고 이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산에서 무엇을 먹으냐 하는 것이였다. 친구와 나 둘중 하나는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인데 산에서 먹든 어디서 먹든 먹는거 하나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배낭이 무겁지 않게 친구와 만나서 적정한 장을 보고 간소한 코펠, 버너를 구비했다.


애썼다 증말~

 

우리가 2박 3일 동안 여행할 코스는 다음과 같다.(친구의 처녀산행으로 기존 1박 2일을 2박 3일로 조정했다)
구례 화엄사(새벽 4:30분 출발) - 성삼재 - 노고단(아침식사) - 연하천(점심식사) - 벽소령(저녁식사,아침식사 1박) - 세석(점심식사) - 장터목(저녁식사,2박) - 새벽산행 - 천왕봉 - 중산리로 하산


그리고 식단표는 다음과 같다.
아침 : 빵, 소고기 스프, 잼(모닝빵을 소고기 스프에 찍어먹고 잼발라 먹는 프랑스식 허세)
       친구의 반응 - "우리 ㅋㅋㅋㅋㅋ 몽블랑 온것도 아니고 이게 뭔 허세드립이야!!! ㅋㅋ"
점심 : 가쓰오 우동 (햇빛을 받으며 먹는 일본식 허세)
       친구의 반응 - "요고 좀 맘에 든다!"
저녁 : 김치참치부대찌게, 밥, 막걸리
       친구의 반응 - "이날이 젤 맛있겠네"

그리고 2일차
아침 : 빵 소고기 스프, 잼(...... 첫날과 같다)
점심 : 신라면, 밥
저녁 : 침치참치부대찌게, 밥, 소주 1병

다음날 하산할때 까지는 굶기!

이런식의 식단표다. 이 식단표는 후에 아주 철저히 바뀌어 버린다. 우리는 산을 타면 탈수록 굶주린 하이에나가 되버렸다.(하하)

이렇게 정하고 우리는 수원에서 구례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때의 우리 복장, 두둥!
친구는 제법 산악인의 면모를 갖추려는 듯 등산복을 말끔히 입고왔는 반면, 나는 마치 장터목에서 물건팔러 나온 사람같은 동네 뒷산 마실 나온 차림이다.
나에게 대한 저런 찬사는 이미 2007년 지리산을 등산할 당시 나와 같이 산행한 아저씨가 했던 말이다. "학생은 무슨 장터목에 물건팔러 온것 같어"
그때의 복장을 해명하자면 어렸을때부터 우리 가족의 산을 향한 집념이 아들을 철저한 산꾼으로 만들어버렸고 이제 뭐 등산은 거의 생활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복장으로 산타고 싶을 뿐이다. 발 디딜때는 다 아니깐(우리 부모님께서는 거의 1주일에 한번 등산을 가신다. 토요일은 치악산 일요일은 관악산 이런식이다)
그 복장 덕택에 기차를 타는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분이었는데 대부분의 객차를 산꾼들이 점유해버려 우리를 초보 산행자라고 여긴것 같았다. 속으로 '분명 산을 가는 애들인건 같은데 쟤는 왜 복장이 저러지 고생 꽤나 하겠군' 라고 생각했을거다.
물론 산행의 복장에는 한창 잘못 된게 맞지만! 그날따라 편하게 산을 마주하고 싶었을 뿐이다.

초보이거나, 그래도 산을 탄사람이라도 절대 따라하지 말기!
정말 산을 좋아한다면 산행에 필요한 복장은 기본으로 해야한다!
갑작스런 출발에 복장이 서툴렀다고 변명해두자.

여튼 맥주를 한캔씩 따고 우리는 성공적인 종주를 위해 건배를 했다.
2박 3일 종주 그래 해보자구!!~

날짜

2010. 8. 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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