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툭툭드라이버 따비는 워낙 잘 알려진 드라이버라 예약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사랑이라는 태국여행 커뮤니티에 접속하면 캄보디아에 관한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었는데 게시판에 압도적으로 따비를 추천하길래 따비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하지만 첫날은 가능하나 다음날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워낙 즉흥적으로 일정을 정하다보니 이모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나만의 재밌는 여행 방법이기도 하다. 반 계획적이고 반 무모한 그런 여행 말이다. 


빗속을 뚫고 씨엠립에 도착하니 날씨가 엄청나게 좋다. 분명 비가 주룩주룩 왔었는데 이곳은 비 온 흔적이 없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라면을 먹다가 주인 아저씨가 툭툭 기사는 이미 구했냐고 묻는다. 

"아 저 따비라고... "

라고 말하자마자 아~ 하면서 따비 구하셨구나 한다. 유명하긴 워낙 유명한가보다. 따비는 정확히 세시에 보기로 했다. 홀로 앉아 게스트하우스에서 파는 라면과 밥을 먹으며 따비와 첫 만남을 조우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게스트 하우스 아저씨가 안그래도 혼자 온 남자 손님이 있는데 이곳에 대해서 잘 몰라서 같이 다니면 어떠냐고 물어보신다. "아 그래요? 저는 괜찮은데, 같이 합석하면 좋죠 뭐" 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만난 명성이형은 혼자 머리식히러 동남아를 여행하고 있는 디자이너. 이 형도 무작정 여행을 온 상태라 정보가 없고 무엇보다 아직 툭툭 드라이버를 같이 구하지 못한 상태다. 어차피 툭툭은 2인승이니까 괜찮다. 따비의 경우는 11달러 쯤으로 하루 흥정을 마쳤는데 아마 두명이면 가격이 더 들까 싶었지만 서비스 차지만 받겠다고 한다. 


일단 오늘 일정 자체는 이미 정해져있어 톤레삽 호수는 혼자 가고 앙코르 와트를 동행하기로 한다. 어느덧 세시가 되어 밖에 나가보니 익숙한 얼굴. 사진에서 본 후덕한 얼굴 그대로의 따비. 첫인상이 좋아 재밌게 여행할 수 있을 듯 하다. 따비의 장점은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조금 수월하다는 점, 그리고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재미없어지는 캄보디아 여행을 더욱 재밌게 만들어 줄 귀중한 책이다. 





오늘은 톤레삽호수를 가기로 했다. 메콩강유역에 조성된 바다보다 크다는 호수 톤레삽 호수는 농업사회인 캄보디아의 젖줄기다. 보통 물이 빠질때는 볼 것이 없다고 하나, 우기에 찾아가서 그런지 원래 없던 톤레삽 일정을 급히 추가하기로 했다. 


확실히 태국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 곳이다. 공산주의의 느낌이 드는 건물들도 드문드문 있고, 영어 간판이 미국식이 아니라 영국식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따비에게 어떤 나라 영어를 배우냐고 물으니, 영국식 영어를 배운다고 한다. 따비는 한국어가 막 유창하지 못해서 드문드문 영어를 섞어 쓰는 편이 의사소통이 편했는데 간혹가다 내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이 안습.. (아 영어공부 좀 할껄 그랬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홍수에 근접할 만한 많은 비가 왔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도시가 그리 크지 않아 도회지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사는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막 끝난 초등학교 아이들.. (약간 영국식인건지 그래머 스쿨이라고 부르더라) 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사람들. 마치 내가 이곳에 살았던냥 대해주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지칠정도로 노곤해진 여행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것 같다. 


"따비는 결혼했어요?"

통성명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오지랖을 떨어본다. 애가 셋이라는 따비, 일을 한지는 꽤 되었다고. 한국어는 한국어 승객들이 많아 배우게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책도 기증받고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국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것이 내 앞이라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한국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에 참 자부심을 느낀다. 부디 그런 인상을 쭈욱 받으면 좋을텐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이라는 타이틀로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들 앞에서는 과연 떳떳하게 여행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을 툭툭을 타고 가자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톤레삽이 가까워 올 수록 한국 여행사의 간판들이 꽤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집짓기 봉사활동이나 마을의 재건과 자립을 도와주고 있는 듯 했다. 따비는 한국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인프라도 정비해주고 있고 도로도 개보수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어느덧 도착한 선착장. 10달러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선착장에서 지정한 보트에 승선하게 된다. 이곳에선 달러가 통용되기에 달러를 쓰는 경우가 더 많다. 타비와 함께 선착장으로 나와서 배를 타고 그들이 캄보디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어떻게든 알아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지. 나는 애써 웃으면서 알아듣고 있다는 시늉만 할 뿐이다. 


그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은 오케이? 굿? 뿐. 배가 서서히 출발하고 그나마 말이 통하는 타비 옆에 꼭 붙어서 일상얘기를 조잘조잘 댄다. 








나처럼 이렇게 혼자서 렌트해서 타는 배가 있는가 하면 패키지 여행객들은 단체로 배를 빌려 호수의 중심으로 나간다. 그렇게 나가다 보면 쪽배가 하나 와서 음료수를 팔기도 하고 과자를 팔기도 한다. 지나가는 쪽배나 관광객 배가 있으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한다. 


의외의 수확이다. 꽤나 재밌다. 이 호수를 그냥 유람하는 줄 알았는데 즐길 요소가 꽤 있다. 이런 소소한 것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배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배의 선상에서 쭈구리고 앉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바람을 맞고 앞으로 나아가는게 참 좋다. 이렇게 쭉 나가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의미 없이 부유하는 것 같지만 이따금 나타나는 선상마을들을 보면 다시 문명을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이 선상가옥들 중 베트남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걸려있는 깃발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본토에서 쫒겨난 베트남 인들이 거주하기도 하다며,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의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기 때문에 이해는 간다. 


이미 태국에서 시암니라밋쇼를 통해 태국의 입장에서 본 역사의 개요를 나름 훑고 왔기 때문에 더욱이 이해가 간다. 그 쇼에서는 태국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문명을 정복한 것으로 나온다. 캄보디아의 입장에서는 침략자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배를 조정하는 꼬마는 계속해서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카메라를 보고 자기를 찍어달라고 할 뿐이다. 그냥 너털웃음을 지어내니 한번 배를 조종해보겠냐고 내게 컨트롤 타워를 맡겼다. 음.. 이거 쉽지 않군. 1분만 더 조종하면 배가 가라앉겠다 싶어서 얼른 튀어나왔다. 



"나 이거 못하겠어 미안해"








<이 막대의 위에 까지 물이 찬다고 한다>


한 40분 이상을 달렸을까? 정말 바다처럼 지평선이 펼쳐진 호수의 중간까지 왔다. 따비의 말로는 건기에는 여기가 다 말라서 오지도 못한다고 한다. 수심이 딱 보기에도 그리 깊지는 않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이정표에 물이 들고 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표시되어 있으니 우기와 건기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그것만 보고도 금방 파악할 수가 있다. 


더 나아가는 것을 그만하고 엔진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자 찾아오는 평화로움이 좋다. 이따금 들리는 새소리와 첨벙첨벙 하는 소리만 들릴 뿐 평화가 갑자기 찾아오니 갑자기 행복해졌다. 캄보디아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기를 다룬 책들이 하도 카오산 로드를 극찬하기에 갔더만, 내 맘에는 그닥 들지 않는 곳이었다. 한 때 나는 그곳을 로망으로 두곤 했었는데.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나의 두번째 로망. 툼레이더 게임을 하면서 와보고 싶은 앙코르와트의 나라 캄보디아. 기대한만큼 좋았다. 더 오버하면 톤레삽 호수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계속 10분만 더 있자를 외치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 아까의 수상가옥을 들른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따비 커미션을 원하는 거라면 난 거기서 뭘 살일은 없을 거야. 차라리 어디가서 맛있는거 사줄테니까 다른데 가면 안될까?" 했으나 따비는 "아무것도 안사도 괜찮아. 근데 저기 악어들이 있으니까 그냥 보여줄려구 그러는거야"하길래 따라 나섰다. 


악어를 양식해서 가죽공예를 하며 먹고 산다고 한다. 가죽의 질이 참 좋다고 가게 직원은 말한다. 악어도 불쌍하고 사람도 불쌍하고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제 돌아가자. 하고 다시 선착장으로 나오려는데 컨트롤 타워에 있던 사람들이 아까 수상마을에서 주전부리를 샀다며 권한다. 훅. 하고 들어오는 맥주 캔에 뿌리칠 수도 있겠지만 서도 맥주 덕후인 나는 앙코르 맥주를 한번 자셔(?)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다시 들이미는 건새우볶음. 내가 이런거 좋아하는 건 어찌알고? 하고 한입 먹어보는데 꽤 풍미가 깊고 맛있다. 


친구들은 내가 굉장히 궁금한 듯 이것저것 물어본다. 한류가 여기까지 퍼졌는지 빅뱅을 정말 좋아한다고. 빅뱅을 아냐고 물어본다 

"그럼 빅뱅 엄~청 유명해" 

했더니, 


"나 태양 닮지 않았어?"


어.. 어. 그렇다.. 음... 그렇네 자세히 보니까. 

또 그렇네. 



너 말이 다 맞다. 그래. 


했다. 





사진의 왼쪽이 태양이다. 중간에 있는 친구는 지드래곤이라고.. 그럼 나는 뭐 없나 싶었는데 블로그 털리기 싫으면 드립을 치지 않는게 옳을 듯 싶다. 아무튼 얼큰하게 취해서일까 바람도 시원하고 그냥 그 자체가 너무 좋아서 이야기에 열중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조금 불편한 감도 없쟎아 있었다. 


이걸 정말 호의로 주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팁을 내야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뭐 어때 하고 팁을 준다 생각하고 열심히 집어먹는다. 

"따비 팁 얼마나 주면 좋을까?"

따비는 고민고민. 머뭇머뭇 한다. 


"글쎄.."

하긴 난감한 질문이겠다. 


그냥 5달러를 쥐어주고 나왔다. 선상에서 파티를 한다고 치고, 부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나왔다. 선착장에서 나오면서 따비에게 고맙다고 했다. 너무 재밌게 즐기고 나와서 호의로 주는 팁이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선착장을 뛰쳐나오자마자 한 소녀가 달려든다. 뭐지 싶어 보니 내 사진이 담긴 그릇이다. 사진은 대체 언제 인쇄하고 언제 내가 저기에 찍힌거지. 

아.. 알고보니 티켓팅을 할 때 부스에서 찍어간 것이다. 이미 완성품이 나와버려 안살수도 없고. 게다가 우는 척까지 한다. 


"알았어 살께, 근데 나랑 사진 찍어야 돼" 하고 그것마저 덮썩 샀다. 









아 뭔가 굉장히 지출이 커진 느낌이지만, 어쩌랴 그들의 주 수입원은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나 1차산업인 농경밖에는 없을텐데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 나눠 페이할 것이라면 한꺼번에 페이하고 마음편히 즐기는 것이 참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슬슬 허기가 져온다. 오늘 그래도 나를 위해 고생해 준 툭툭기사 따비에게 맛난 저녁을 쏜다고 했다. 원래는 압살라 댄스를 보러 가려고 했으나, 안젤리나 졸리가 들렀다는 레드 피아노로 가기로 한다. 캄보디아까지 와서 서양식이라니 좀 맘에 걸리기는 하나, 따비를 위해 가는 거니까. 




예상외로 음식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격도 7에서 10불정도로 비교적 저렴하다고 할 수 있고, 따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본다. 내가 영국에 가게 된다는 말. 따비의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내일 일정에 대해서. 


따비는 내게 준영 너는 참 인상이 깊다고 얘기해줬다. 첫날부터 이렇게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는 사람이 없다라고. 내일도 함께 하면 좋을텐데 하면서 서로 아쉬워한다. 그래도 자기의 아주 가까운 친구 '통'이라는 아인데 신신당부해 놓았으며 얼린 물도 가득 준비하게 하겠다며 최고의 서비스를 약속했다. 


밤을 더 재밌게 보내고 싶었지만, 일정이 녹록치 않다. 당장에 내일 새벽에 다시 일어나서 꿈에 그리던 앙코르와트를 간다. 아침에 떠오르는 일출이 앙코르와트 본당의 해자에 반영될 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나? 아침까지 같이 가 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무료로 봉사하겠다며. 새벽 네시 오십분쯤에 보기로 하며 숙소로 돌아와 헤어졌다. 


스톱오버로 치면 짧지 않은 일정이다. 일주일 남짓되는 시간 동안 태국만 다녀오기로 하고 비행기를 끊었건만, 욕심을 내서 택시타고 이 곳 캄보디아까지 국경을 넘었다. 욕심도 이런 욕심이 없다. 그래도 근처까지 왔으니 겸사겸사 들르는거지 싶다. 내가 그리 돈이 많은 여행자도 아니고.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눈에 하나 더 담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다. 


난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끔은 지극히 이상적인 아주 아이러니컬한 여행자인 것 같다. 








날짜

2015. 5. 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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