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창동 (2010 / 한국)
출연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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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오는 토요일 문득 영화 한편이 보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영화를 간절히 보고 싶다 생각했던것도 오랜만인거 같다. 그것도 혼자서 조용히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영화관에 있는 영화정보를 기웃대다가 발견한 포스터 한장. 60년대 대여배우였던, 한시대를 풍미했던 윤정희가 메인인 포스터. 그 포스터에서 난 윤정희의 강물처럼 곱게 물결치는 눈가 주름을 더 주목했다. 왠지 영화가 강물처럼 아름다울 것 같다는 확신이 섰다. 
 그리고 바로 영화 시 공식홈페이지를 찾아 예고편을 봤다. 예고편과 평점, 그리고 관람객들의 반응을 보니 여운이 짙은 영화, 가슴에 먹먹함이 강한 영화란다.
그래. 내가 생각하던 분위기다. 비오는 날에도 왠지 어울릴것 같고.
그렇게 해서 선택하게 된 영화 한편. 바로 시다.  

깐느에서 주목받아 다시 훈풍 불까?
그렇게 영화를 결정하고 인터넷 기사를 보니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올해 깐느영화제 경쟁부문작에 초청이 되었고 여차하면 황금종려상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해외에서 이렇게 큰 호평을 얻는데 국내에서는 인기는 사실 덜할까? 예매하는데도 좀처럼 개봉관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하녀나 아이언맨2이 개봉관 점유율이 높았다. 그럼 깐느에서 이 영화가 호평을 받으면 이전 "밀양"때처럼 다시 개봉관이 늘어나진 않을까?
글쎄, 분명 개봉관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입장으로는 그래도 관객들의 반응은 많이 엇갈릴것이다. 이 영화의 타겟층은 따로 있으니까.

이 영화를 감히 표현하자면 커피로 따지면 아메리카노 같은? 그리고 수채화 같은 그런 영화다. 최근 아바타나 아이언맨 액션대작이 줄을 이르면서 20,30대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보고 즐길 수 있는 일명 '바리에이션'영화를 찾아 떠났다. 그 때문에 시는 마음이 먹먹함을 느끼고 싶고 서정적인 수채화를 만나고 싶은, 각박한 세상에 한모금 물을 들이키고 싶은 갈증난 사람들이 찾는 영화임이 틀림없었다. 영화관 관객도 나를 빼고는 전부 4~50대였으니.

한가지 바라는건 깐느에서 주목을 받아 그때서야 재조명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기보다 영화 시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미 영화를 봤던 관객들이 다시 시를 느끼러 극장에 찾아와 아로마를 풍겼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그만큼 매력적인 영화이니까.

시를 느끼다.

영화를 시작하자 맑은 강물이 졸졸졸 흐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신나게 강변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있고 한 아이가 강물을 바라보는데 맑은 강물 저멀리 여학생의 시체가 떠내려 온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시작이다.
영화의 시작은 강으로 시작되고 강으로 끝나며 영화 전반적으로 BGM이 전혀 들어가있지 않다. 오로지 자연의 소리가 주를 이룬다. 영상에서도 햇살과 나무들 시골풍경들이 여과없이 나올 뿐 조금의 보정도 없다고 느낄 정도로 담백하다.

이 담백함을 그대로 살려주는 미자할머니


극중 미자할머니는 동네에서 파출부로 일하는 멋쟁이 할머니다. 슈퍼집 윗층 회장님의 파출부로 시중을 들어가며 생활보호자로 근근히 살고 있고 손자를 이혼한 딸 대신 맡아 키우고 있는 미자 할머니는 영화의 담백한 맛을 제일 잘 살려주는 캐릭터로 17살 소녀처럼 가녀린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조용함에서 드러나는 표정으로 가끔은 세상에 대한 저항을 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세상을 사랑하기로 한다. 결국 그런것들이 시로 표현되고 있다.
미자할머니는 아마 이러한 가녀린 감성과 치유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시를 시작하진 않았을까? 할머니는 동네에서 여는 강연을 들으며 시상을 찾기 위해 끈임없이 노력한다


처음 강물에 떠내려온 시체는 결국 자살을 한 소녀의 시체였고 그 시체는 곧 10대 성폭력 문제가 얽혀있었으며 자신의 손자가 연관되어 있다. 그 사건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미자할머니 는 자꾸만 단어를 까먹는 일명 치매(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러나 치매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시를 계속 쓴다. 계속 메모하고 시를 어떻게 하면 잘 쓸지 고민한다. 머리속엔 자꾸만 단어가 햐얗게 지워져가는데 시상은 자꾸만 끈임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살을 한 소녀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계속해서 떠오르지 않던 시상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전부 시를 통해서 미자할머니가 말해주고 있는 일종의 '저항' 혹은 '치유'였을 것이다.
 

시를 통해 나를 치유하고 노래를 통해서 그것을 옭아둔다. 관객들은 결국 그 모든 과정을 시를 통해서 음미하고 느끼게 된다.

시에 녹아드는 많은 것들

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대배우 윤정희의 연기, 그리고 그를 더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다. 60년대의 트로이카였던 윤정희의 연기는 어떻게 보면 60년대식의 연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현대에 비춰보았을때 살짝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 자체가 굉장히 담백하게 녹아들고 있고 그를 뒷받침해주는 김희라(60-70년대의 원로배우로 윤정희와 호흡을 맞춘지 꽤 되었다고 한다), 안내상, 이다윗의 연기 또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영화에 그대로 녹아들게 했다.
어떻게 보면 10대 성폭력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무겁게 느껴질수 있던 것을 상당히 잘 풀어내었고 그 사건의 과정들을 조연들이 잘 비추어줬다. 영화에서의 제일 큰 사건은 이 영화에서 10대 성폭력이지만 큰 틀안에 사람들의 이기심, 현대 가정의 문제점,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을 잔잔한 영화속에서도 따박따박 말하고 있어 잘 풀어냈다는 표현이 가볍다는 표현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시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함축적인 문장으로 미자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과 사건의 과정들을 인물의 섬세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자연풍경과 소리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여백은 관객들이 해석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 다만, 시 본래의 의미는 해치지 말았으면.."하고 감독님이 은근히 말하는 것 같다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에서 미자할머니가 읊어주는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가 가슴에 큰 먹먹함을 가져왔을까? 크레딧부분 마지막에 흘러가는 강물소리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결국 시의 커피향은 진하게 관객의 몸속에 베게 되었고 모두를 살짝 멍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서게 했다.

이 영화가 정말 좋았던 점은 밖으로 나와서 집으로 향하는 그 시간까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DVD가 나와서 소장하고 보고 또 보더라도 아마 그 느낌은 해소되지 않을것이고 엔딩의 뉘앙스를 봤을때 마무리를 관객들에게 맡긴셈이 되었지만 그 여백의 느낌이 참 좋았다.

내게 영화는 그냥 즐기는 것 말고 아무 의미가 없었는데 영화에 대한 시각을 달리해주는 좋은 영화였다. 혼자서 이렇게 영화본건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음미하면서 영화를 봤던것도 고등학교때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친구를 졸졸 따라 독립영화관에서 몇가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거 빼곤 오랜만인거 같다. 그만큼 이 영화는 분명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다 보지 못했지만 이감독의 영화중 최고의 월메이드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내 주위의 상황이 너무 각박하고 내 안의 서정적인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다면 꼭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같이도 좋고 혼자서도 좋다.


P.S 극중 김용택 시인이 미자할머니의 마지막 시를 보고 하던 말.
      미자할머니의 대사 중 단어가 생각이 안나다가 옆에서 누군가 말해주면 "제가 이래요~"  
      미자할머니가 침대에 잊는 손자에게 "왜 그랬어~ 왜 그랬어!!" 하고 야단칠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미자할머니는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을까? 같이 흘러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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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얼마나 적막할가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좋아하는 음악 들려올까요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

한 번도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해야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 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이제 어둠이 오면

촛불이 켜지고 누군가 기도해줄까요

 

하지만 아무도 눈믈은 흘리지 않기를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당신을 축복하리

 

마음 깊이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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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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