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그렇게 찾아왔다.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와버린 새로운 1년.
뒤돌아보면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난 뒤돌아 볼 시간도 없이 앞을 향해 전력 질주했나보다. 가끔은 내 자신이 왜 이렇게 황폐해졌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왜 날 이렇게 옥죄고 있는걸까 하고 몇번을 생각했었다.

입대는 딱 3개월 뒤.
그 전의 2개월은 일본과 뉴욕을 여행하기 위해
그렇다면 내게 남은건 딱 1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던거다.

2개월동안의 여행을 위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만만한게 아니었고 때론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난 계속해서 황폐해져갔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고 갈피를 못잡고 있을 즈음
규환이형에게 연락이 왔다.

"지리산 화엄사로 템플스테이 가지 않을래?"

그말은 잠시 쉬러 가자라는 말로 들렸다. 난 고민할 틈도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난 모든게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내 모든것을 치유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자유안에서 황폐해졌다면
이번엔 고립안에서 행복해져보겠다. 싶은 치기어린 도전이기도 했다.

우리의 여행은 결국 보기 좋은 3명으로 구성되었다.
여러일로 심란했던 규환형
새로운 시작을 목전에 둔 세령누나
그리고 황폐해진 나

이렇게 세명은 잠시 쉬고 싶어 그렇게 템플스테이를 택했다.
난 여태까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규환형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던 거였다.

일단은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나와 규환형부터 먼저 구례구로 출발했다.
푸르른 하늘에 기차를 기다리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반복되어 비춰지는 건물 사이사이로 고립에 대한 동경은 계속해서 속도를 붙여나갔다.

그 풍경안에서 내가 사는 곳, 내가 한동안 머물렀던 충청도를 지나면서 풍부하지도 않은 옛날이야기를 새삼 꺼내본다.


출발하기 전, 수원의 하늘

생각해보면 난 참 멀리도 잘 다녔던 것 같다.
집은 평택쯤인데 초등학교, 중학교는 집근처가 아닌 오산으로 통학했고 고등학교는 수원까지 다녔다. 그러다가 대학교 간 이후로는 서울로, 수원으로, 청주로, 대전으로 꽤 많이 왔다갔다했다. 그래서 줄곧 사람들은 그 기점에서 우리집이 굉장히 가까운 걸로 인식을 했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왔으니까.



우리는 달리고 달린다. 흐르고 흐른다.


난 또 사람들이 좋아서 거리가 있음에도 그닥 멀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2시간을 지하철 타도, 무심코 몇시간을 걸어도 내 안에서 즐거움이 더해지면 그 시간들도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푸르른 하늘을 사이에 두고 건물이 흐르고 풀들이 흐르고 물들이 빠르게 헤엄쳐나가기를 반복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고즈넉한 섬진강의 풍경이 펼쳐진다.

항상 지리산 근처를 오면 느끼는 것은 이곳의 풍경은 뭔가 태고의 묵직함과 생각이 많아지는 산바람을 지녔다.

구례구역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둘은 그렇게 정류장으로 향했지만 화엄사로 향하는 버스는 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흐르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언젠간 올 그 버스를 내 자신을 옥죄면서 까지 닥달하고 싶지도 않았고,
때 마침 규환이형이 "버스가 언젠간 오겠지 그냥 천천히 구경하면서 걷는게 어때?"하고 제안을 했다.

너무나 좋은 제안이었다.
지금은 걷는것 마저, 그리고 노을지는 산자락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계속 걸었고 풍경을 담았고, 바람을 느끼며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곤 기약했다는 듯 저 멀리서 버스가 왔다.




버스를 잡아타고 성삼재가는 길에서 우리를 내려준 화엄사 입구 그 곳 음식점들 중 우리는 굳이 맛집까지 찾을 필요는 없었다. 손님은 딱 우리 둘 뿐인 것 같았고, 음식점들도 지금은 음식점보다는 가족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을거다.

그렇게 무작정 찾아간 한 음식점에서 우리는 정말 맛있는 밥을 먹었다. 난 비빔밥에 된장찌개를, 규환이형은 재첩국을 먹었다. 반찬들도 너무 정갈하고 맛있어서 행복한 밥상이 이런거구나 싶다.



할머님은 밥을 준비하면서 밥이 괜찮은지 연신 물어보셨다.
"할머니 정말 맛있어요!" 하며 게눈 감추듯 밥을 비워낸다.
아직까지도 그때 먹었던 버섯조림하며 나물들의 맛이 기억날 정도니 얼마나 맛있게 먹었을까.

규환이형이 먹었던 재첩국에는 하늘하늘한 도라지 같은 나물에 쑥이 들어있는데 한번 맛을 보니 칼칼하고 굉장히 맛있었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우고 화엄사를 향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15분을 걸었더니 나오는 화엄사의 웅장한 자태.

5시쯤 느즈막히 도착해서인지 이미 공양은 끝나있었다. 사실 그럴 줄 알고 미리 식사를 해결하고 갔지만 말이다.

종무소에서 우리를 반겨준건 무연이라는 법명을 사용하는 여자 스님,

"어? 세분이시라던데 한분은 나중에 오시나요?"
라며 포개놓은 템플스테이 체험 옷을 주섬주섬 챙기신다. 우리는 그렇게 방을 소개받고 씻을 곳이 어디인지 위치라던지 파악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참 편안하다.
시원한 산바람을 옷 안에 감출 수도 있었고 고무신은 땅과 맞닿아 모래알 하나하나까지 모두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아.

그렇게 우리는 옷을 입고 느끼며 경내를 돌아다니며 숭고한 마음을 머리에 한번씩 휘담아본다. 우리가 묵는 숙소 앞에 조용히 샘물이 흐르고 있어 물 소리도 너무나 청명하고 고요하다. 이 곳에 온 사람이 우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워낙 대규모다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마음을 정화하러 왔다는 3명의 여자분들과 장성한 자식들을 사회에 보내고 사찰여행을 즐기고 계시는 부부 이렇게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잘 알지 못해 눈 인사만 나누며 경내를 돌아다녔다.
이윽고 저녁예불이 되자 북을 치는 스님은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예불이 시작됨을 알렸다.
그 풍경이 우리가 평소에 절을 방문하면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동작 하나하나는 숭고미가 절로 느껴졌고, 그 북소리는 어느 북소리보다 장단이 깊고 강했다.
게다가 노을이지는 주변 풍경은 고요한 하루의 주기가 현 시간부로 변화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절은 황토색으로 물들어가더니 이윽고 반짝이는 푸른빛으로 둘러쌓이게 되었다. 모두는 그 북소리가 울리자 움직임을 멈추고 태양빛에 빛나는 스님의 몸짓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 템플스테이의 특징은 무조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법칙이 있는데 아침 예불과 저녁 예불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며 공양 시간은 새벽 5시 오전 11시 오후 3시이고 기상은 새벽 3시에, 취침은 9시에 들게 되어있다. 경내에서는 떠들지 않으며, 스님들을 뵙게 되면 반배로 인사를 하고 공양은 스님들이 모두 드신후 실시하되 그릇은 직접 손으로 닦는다.

규환이형과 나는 저녁예불에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종교라는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어차피 오늘 모이는 세명의 멤버는 불교,기독교,천주교 다 제각각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예불을 드리면 되는거였다. 나는 무연스님이 주신 팜플렛을 보고 그것에 따라서 예불을 드렸다.

조용한 가운데서 강한 목소리로 드리는 예불은 불교의 숭고미가 또 한번 보여지는 순간이다.
마음이 정화되는 강한 목소리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천주교와 기독교의 예배라면 가는 목소리로 환경을 정화시키는 것에 반해
불교는 강하고 자연적인 목소리로 환경을 정화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15분가량 예불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보니 생전 볼 수 없던 별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로 그리고 경내를 둘러보니 고요함과 적막함 속에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그렇게 감탄을 하고 있자니 시간이 참 빨리 흘러 벌써 9시가 되어 우리는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P.S 샤워장은 스님들도 같이 이용하는데, 새삼 스님들도 샤워기, 비누로 샤워하시는 구나 하고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다음 뷰 베스트 등극 ^^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 Qhwan™ (http://qhw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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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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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 9. 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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