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의 마지막일정은 대구 도심에서의 여행이다. 
6.25때 대구가 낙동강 방어선이기도 했기 때문인지, 많은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대구

우리는 대구 동성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구 역사와 함께 흐르는 골목으로 여행을 떠난다. 
첫 방문지인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啓明大學校東山醫療院, Keimyung University Dongsan Medical Center)은 1899년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우드브리지 O. 존슨(Woodbridge O. Johnson) 선교사가 약전골목 구 제일교회 자리에 있던 초가에서 설립한 제중원(濟衆院)이란 이름의 조그만 서구식 진료소를 모태로 하여 대구·경북지역에서 최초로 서양의학을 도입, 시술한 의료기관으로 출발하였다

동산의료원은 1980년 진료·교육·선교·연구를 이념으로 의과대학을 설립, 계명대학교와 병합하고 1982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으로 거듭난 후 의과대학, 간호대학, 동산병원, 경주동산병원을 산하에 둔 의료원 체제로 성장했다. 의료선교박물관(醫療宣敎博物館)은 동산의료원 내에 있는 박물관이다. 100여 년에 걸친 대구지역 선교·의료·교육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선교, 의료, 교육역사박물관을 차례로 지나가니 갑자기 옛 생각이 났다. 바로 요코하마가 떠오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요코하마는 일본의 개항이 제일 먼저 일어난 곳으로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요코하마 주변에 자리를 잡으면서 서양식 건축의 토대를 닦아갔다. 이곳도 대구에 있어서는 서양식 건축을 처음으로 한 곳이니 만큼 요코하마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푸를 청, 담쟁이 라를 써서 푸른 담쟁이 덩굴이란 뜻을 가진 청라언덕은 당시 작곡가 박태준이 다니던 계성학교의 아담스관과 맥퍼슨관, 그리고 언덕에 위치한 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들이 
푸른 담쟁이 덩굴로 휘감겨 있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동무생각>은 박태준이 마산의 창신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만들어 진 곡으로 동료교사이던 이은상이 글을 붙인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곡이다. 박태준이 계성학교를 다닐 무렵, 신명 여학교에 다니던 한 여학생을 사모했는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끝내 고백하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 박태준의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를 들은 이은상이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동무생각이다. 



서울의 양화진 묘지와 같은 기독교 순교자 묘지인 '은혜정원 Garden of Mercy'는 기독교를 전파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가 묻혀있는 외로운 묘지.
 
은혜 정원 표지판엔 이렇게 써있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있다. 지금도 이 민족의 복음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리라"

<대구의 몽마르뜨>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청라언덕을 필두로 흐르는 이 골목.
대구의 근대 예술가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곳이라고 한다. 이 아래로 이어지는 3.1 운동길, 90계단, 상화고택, 약전골목, 신명학교,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아주 아름답다




청라언덕, 제일교회에서 계산성당으로 흐르는 이 90계단은 3,1 운동 당시 지나던 길이기도 하다.



90계단에 들어서면 만세 소리와 함께 이렇게 역사를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다양한 자료가 붙어있다. 90계단의 또 다른 특징은 계단과 비탈이 같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수레를 동산 위까지 운반하기 위해서라고,

 


제일교회와 독립유공자를 기리기 위한 곳



계산성당으로 나오면서 볼 수 있는 이상화, 서상돈의 타일과 태극기


 



계산성당(桂山聖堂)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본당의 주보 성인은 루르드의 성모이다. 본당이 처음 건축된 것은 1899년으로 이 당시에는 한옥 양식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진에 의해 이 성당은 1901년 전소되고 그 위치에 현재의 서양식 성당을 세워, 1902년 12월 3일 첫 미사를 드렸다.
 
현재의 서양식 성당 또한 경상도 전역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점이 인정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사적 제 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전주 전동성당과는 다르게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당시 초가집이 즐비할 100년전에 이 건물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여기에 있는 감나무는 천재화가 이인성을 기리기 위한 '이인성 나무'다




정말이지 골목골목마다 볼거리가 넘쳐난다 역사를 거슬러 가는 여행.


계산성당을 나오면 이렇게 서상돈, 이상화 고택을 만날 수 있다.

서상돈(1851년 - 1913년)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 공무원이다. 대구에서 지물(紙物)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檢稅官)이 되어 정부의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1907년에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金光濟)와 함께 대구에서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회를 조직하고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이상화(1901년 5월 9일~1943년 4월 25일)는 한국의 시인이다. 열아홉 되던 1919년 대구에서 3·1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 주요 인물이 잡혀가자 서울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하였다. 1921년에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와 만나 〈백조〉 동인에 참여했고, 1922년 《백조》1~2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주요 작품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작자의 반일(反日) 민족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비탄과 허무, 저항과 애탄이 깔려 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겨 얼어붙어 있을 망정, 봄이 되면 민족혼이 담긴 국토, 즉 조국의 대자연은 우리를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국토는 일시적으로 빼앗겼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몸부림, 즉 피압박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 (위키피디아 발췌)

대구 근대역사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이 두 인물의 고택은 원래 길이 나기로 지정되었을 때 철거될 운명에 처해졌으나 대구 시민들의 서명운동을 통해서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이 우리는 근대 역사를 더 면밀히 바라볼 수 있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이 길을 지나가야만 했다고 한다



지금은 옮겨진 옛 제일교회의 모습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골목을 걷고 나자 (구)제일 교회 뒷편으로 보이는 약령시한의학문화관. 약탕기 모양의 분수대가 인상적이었던 현대식 건물입니다. 3층에는 한방역사실. 2층에는 한방체험실이 위치해 있는데,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교보재와 직접 한복을 입어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난 지친발을 쉬게 하려고 한방족욕기에 거의 30분간 앉아있었다. 

아아. 좋아라...


 

문학관을 나서서 조금만 걸으면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동성로가 나온다. 대구 동성로 군대에 있을 때 굉장히 자주 드나들었던 곳. 오랜만에 그때의 추억을 (군복 입고 걸었었지..) 더듬으며 여기 온 적있다며 주위사람들에게 괜히 잘난척 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대구 명물 야끼우동. 


이때 먹어본 야끼우동 맛은 달달하면서도 심하게 맵지 않았다. 식재료도 신선한 것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야끼우동이 이곳 말고 또 유명한 곳이 있었다. 대구 산업정보대학 앞에 위치한 수성구 '리안'도 추천. 골목 골목을 누비고 역사를 마주하고 정신없이 점심을 먹으니 이번 대구여행을 마무리 해야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어쩌면 좋지. 정 많이 들었는데 말야. 


대구에서 마지막날 가평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대구 문화홍보과의 신세나 선생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좋은 여행이 되기 위해서 애써주신 분이다. 난 혼자서 굉장히 잘난척을 했던 것 같다. 

2년동안 대구에서 복무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도를 다루는 작전병이기 때문에 나름 대구의 지리와 문화와 먹을 것 볼 것 전부 알고 있을거란 생각이 있었던거지. 그러나 이번에 만난 대구는 정말이지 내가 전-혀 모르는 신세계였다. 

아 이런곳도 있었구나. 난 지나치기만 했었구나. 
왜 대한민국 구석구석이라고 했었는가. 

이제야 알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많이 아쉽다. 분명 대구에는 내가 보지 못한 여러가지 여행지가 있었다. 지금 당장에 열거 할 순 없지만 다른 미션을 진행하던 조의 여행지. 우방타워랜드라던지 두류공원. 대구에 있으면서도 왜 한번도 가보지 못했을까. 특히 동화사-파계사로 이어지는 팔공산 루트는 내가 있던 부대에서 항상 행군으로 즐겨 찾았던 코스인데도 다시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다음에 대구를 또 한번 방문할 때는 꼭 들르겠다고 다짐한다. 
계속 그자리에 있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정든 제 2의 고향 대구를 떠난다. 

















날짜

2011. 7. 2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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