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에서 하루밤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좋은 사람을 만났고, 진안의 정도 느꼈고. 조용한 가운데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진안으로 오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사실 막상 오게되면 우리가 잊고살던 추억의 면면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여행지다.
사람들과의 정을 만날 수 있고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며 맛있는 반찬까지. 따듯함이 가득한 노란빛 물감이 마을 전체에 뿌려진 듯 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시내와 맞닿아 있는 시장의 분주한 모습과 햐얗게 서리 낀 모습이 아름답다.
시장의 뒷편에는 나무데크를 이어 개천 옆에 길을 터놓았는데 그곳을 음악을 걸으며 걷고,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진안 시장에서 나와 근처를 살펴보면 으레 볼 수 있는곳이 산 위에있는 정자다. 성묘산 자락에 위치한 정자는 멀리서도 육안으로 쉽게 찾을 수 있어 길을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산을 빙 둘러 나무데크로 지어진 길은 걷기에 안성맞춤. 산을 올라 적당히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천천히 데크를 오르고 오르면 금방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정자에 앉아서 굽어보는 진안의 시내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조금만 더 가면 공설운동장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가지 않고 반쯤 되는 지점에 또 다른 정자가 있어 누워서 음악을 듣는다.
비교적 일찍 일어나서 진안 시내를 돌아다니며 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부지런해야 하는가봐.
뚜루루~♬
기다리던, 벨소리가 울렸다. 박종석 선생님이다.
"네! 선생님 그.. 성묘산 쪽 있잖아요 그쪽 아래에 정자가 하나 있던데 지금 거기에 누워있어요!"
그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곧 도착하신 선생님과 함께 전에 놓고왔던 그 식당에 아침 일찍 찾아가기로 했다.
그 멋진 용담호를 다시 볼 수 있다니, 벌써부터 두근대는 순간.
용담호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차도 별로 없어 시원하게 뻥 뚫렸다. 하늘은 파랗고 용담호는 이제 막 봄으로 넘어가려는 채비를 끝마친듯 몇개의 꽃봉오리가 색을 더하고 있다. 게다가 하얗게 드리우는 운무까지 감동의 연속!
용담호에는 예전에 영화를 촬영지로 유명한데, 바로 <오직 그대만>이라는 영화에서 엔딩을 찍었던 곳이라고.
그 음식점을 들어가니 내 텀블러와 수저, 저분은 그대로 검은색 비닐봉지에 쌓여 잘 준비되어 있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어쩌다보니 얘들이 진안에서 몇달간 살게 되었네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이걸 찾으러 온다는 말에 원래는 늦게 여는 식당을 일찍 여신듯했다. 죄송합니다!
"아이구, 아직 음식들이 준비가 되질 않아서 먹을 수 있는거라곤 누룽지탕밖에 없을 것 같은데 괜찮을라나?"
"네 물론 괜찮습니다!"
먹을 수 있는거라곤 누룽지탕밖에 없다고 하시더니만 내오신 음식들은 한없이 많은 찬들과 누룽지탕이다. 김치도 고소하고 누룽지탕은 아침에 먹으니 정말이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백퍼센~트 엑셀런트!
기분좋아지는 아침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다시 용담호를 드라이브하며 진안시내로 돌아와서는 하신다는 말씀이, "준영아 아침에 선생님이 볼 일이 있어서 박동철 선생님과 같이 마이산을 다녀오렴" 이라 하신다.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혼자 여행을 오긴 했어도 여기 계시는 관계자 분들께는 누를 끼치지 않고 혼자 다니려고 했지만, 이거 너무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얼떨결에 박동철 선생님과 함께 1:1 설명을 들으며 마이산까지 가게 되었다.
박동철 선생님은 공정여행 풍덩의 식구긴 하지만, 마이산 문화해설사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진안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것들을 정리하고 진안에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자 풍덩에 합류하게 되신 것. 정말 말그대로 여행에 '풍덩'하셨다.
어쩌다보니 선생님과 1:1 동행이다. 이런기회가 있을까? 풍덩의 노오란 붕붕이(차)를 타고 마이산으로 향하는길. 꽤 오래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먼거리는 아니다. 마이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홍삼스파랜드가 위치해있는데, 들어가보는것까지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리셉션 데스크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오늘 처음 만들어 본 아메리카노인데 한번 드셔보실래요?"
리셉션 데스크 근처에 있는 커피향 진한 까페에서 직원분이 희고 커다란 머그 두개를 가지고 오셨다.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커피를 먹었더니 담백하고 맛있는 커피! 숟가락 찾으러 온 여행에서 마음의 안정까지 찾아가는 느낌이다.
이런 나긋함이, 이런 나른함이 정말 좋더라.
진안의 인기 관광코스인 홍삼스파랜드는 지역민에게도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좋은 곳이다. 지역민은 거의 찜질방값으로 이용할 수 있어 좋고 관광객들에게는 홍삼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기회여서 좋다. 시설도 매우 깔끔한데다가 스파를하며 마이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도 있어 추천할만하다.
아미노산이 풍부하다는 샘물 한잔!
커피를 마시고 나서 붕붕이는 마이산 북부 주차장에 닿았다. 전날에 눈이 내렸던 탓인지 마이산 탑사로 가는 나무데크가 촉촉히 젖어있다.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산행을 하니 마치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
마이산은 말의 귀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유래되어진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이산의 특이한 점을 더 들어보면, 바람이 암마이산 숫마이산 사이로 세차게부는데 이때 풍화현상이 발생하여 이른바 '타포닌'현상이 나타나 암벽 사이사이 구멍이 나거나 기포 모양이 보이기도 한다.
암마이산 숫마이산 중 암마이산은 등산로가 따로 있는데, 가파르기 때문에 겨울에는 통제가 된다고 하며 숫마이산은 아직 오를 수 없다.
나무데크를 따라가기만 하면,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은수사와 탑사를 둘러볼 수 있다.
"저기 저 커다란 나무는 청실배나무인데, 봄이 되면 꽃이 참 예뻐" 선생님이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며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를 말씀해주신다. 이곳 은수사에 와서 태조가 기도를 올리고 그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 씨앗이 자라서 이 나무가 되었다고.
그리고 그 나무 밑에는 금색의 그릇이 있었는데, 아주 추운 겨울에 오면 그릇에서 신기한 역고드름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보통 고드름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생기는 것인데 어떻게 아래서 위로 고드름이 생기는지 신기할 따름.
은수사를 지나 더 내려오면 탑사가 보인다. 탑사를 굽어보다 금색의 물체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자세히 보니 풍화작용으로 생겨난 구멍 사이사이 어떻게 올려놨는진 모르겠지만 불상이 있다. 몇몇 구멍에는 새들도 살고 있다고.
더 대단한건 이 탑사의 돌들이 개인이 쌓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탑사는 약 100년 전에 처사 이갑용(李甲用)이 작은 바윗돌과 자갈 등으로 석탑을 쌓아올렸는데 돌은 전국 명산의 돌을 몇 개씩 날라다 이곳의 돌과 함께 쌓은 것이라 한다. 탑사를 둘러보면 그 위용이 정말 대단하다. 이갑용 선생의 과거 풍채를 보면 하얗게 기른 수염이 예사롭지 않다.
탑사 중간에는 섬진강 발원지라 하는 용궁도 있다.
탑사를 쭉 둘러보고 점심즈음이 되어 마이산을 나오는 길, 선생님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좋은 진안에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인생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사람이란 항상 교훈을 주는 법이다.
진안에서 나와 김춘희 선생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시내에 있는 구내식당이라고 한다. 할머님 여럿이 백반을 준비해주시는, 특이하게도 점심에만 운영하며 정해진 반찬이 없으면 그냥 없는대로 나오거나 다른걸로 주시는 그런 곳이다. 집밥을 먹는 느낌. 간판조차 앤티크하다. 그냥 가정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정해진 테이블이란 없고 방안 어딘가 자리잡아 먹는 곳인데 이런곳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외지인인 나에겐 아주 인상이 깊은 곳이었다.
약간 점심이라기엔 시간이 흘렀긴 한데 남도의 밥상이 한가득 차려지고 깻잎도 맛있고 뭐 하나 맛없는게 없다. 밥을 먹고 우리 뒤에 기다리는 손님은 없기에 따닷한 온기를 느끼며 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만났던 팸투어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사이가 좋으신 두분 여러가지 언쟁을 하는것도 그저 악의없이 재밌게 하신다. 그 투닥투닥함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한장 남겨놨다. 하하
두분의 고민은 역시 진안에 많은 관광객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여름이 되면 진안여행을 가족단위로 받을 생각인데 내가 생각했던 솔루션도 몇개 말씀드려봤다. 진안에 벌써 두번째 방문인데 정,맛,분위기가 이곳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서 이걸 잘 끌어나간다면 정말 좋을 거라고, 진안여행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이제 박종석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집에 갈 요량으로 나왔는데 식당 뒤에 위치한 진안문화원의 전임 원장님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들어와서 커피나 한잔 하고 가시지요"
딱 보아도 60세는 넘어보이실 것 같은 원장님은 아주 신세대셨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팟캐스트도 청취하며 다양한 의견을 듣는것을 좋아하시고 신세대 용어는 전부다 알고계시는 신세대 원장님. 원장님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도 듣고 세상에 대한 여러가지 곱씹어 주시는 걸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얘기하지만 역시 사람이란 항상 교훈을 주는 법이다. 그리고 언제나 헤어짐은 아쉽다.
문화원에서 간단히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두 선생님과도 헤어져야 할 시간 두 분 덕에 정말 좋은 이야기 좋은 진안을 보고 갈 수 있었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그냥 헤어질 수 없어 함께 사진을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무겁다.
인사를 드리고 진안시장에 들러 박종석 선생님을 만나뵈러 사무실에 들렀더니 집에가면서 출출할거라고 몇가지 주전부리를 챙겨주셨다. 이러지 않으셔도 되고, 또 받은게 너무 많아 죄송하기만 한데 이렇게 또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주신다.
언젠간 꼭 값을날이 올거라고 믿으며 박종석 선생님과 포옹하고 터미널로 향한다.
좋은 사람들, 좋은 풍경, 넘치는 정을 받고 터미널에서 전주행 버스를 기다린다.
원체 휴대폰을 잘 확인하지 않는 성격인데 시간이 몇시인지 궁금하여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근데 부재중 전화가 떠있다. 박종석 선생님의 전화다.
다이얼을 누른다.
부재중이다.
"준영아! 이거 하나 주려고 했는데 잊고 있었다?"
하며 터미널 뒤에서 나타난 선생님 손에는 진안시장과 풍덩이 함께 만든 재활용 노트가 들려있었다.
정이 듬뿍 담긴 그 노트를 들고, 바쁘실텐데 거기서 터미널까지 달려오셨다.
난 숟가락 하나를 찾으러 왔을 뿐인데,
그 숟가락은 진안에 있으면서 정을 함뿍 담아 그렇게 있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