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5/2014 (Day 4) Pamplona -> Punta de leina
(바람의 언덕에서 파비오와 그의 친구)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은 정말 시원함 그 자체였다.
내 눈앞에 보이는 곳이 콤포스텔라일까?
마침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초원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 행복했다.
햇살도 적당했다. 여름이 되면 살짝 걷기 힘든 코스가 되겠지만, 5월 딱 이맘때의 까미노는 걷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걸어가면서 점심을 대신한다. 오래두어도 괜찮은 하몽 (물론 패키징을 잘 해놔야한다) 그리고 치즈하나를 넣어서 보카디요를 해먹는다.
얼마간 걸으니 만나게 된 자그마한 마을. 사람이 살고 있는게 맞나 싶을정도로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좋아지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벤치에 누워 잠시 쉬어가는 순례자도 있고, 잠시 목을 축이는 여행자도 있다. 운이 좋으면 마을에 식수대가 있다. 이곳에는 다행이 중앙에 식수대 하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을에서는 쉬지 않고 통과하기로 했다. 아직도 갈길이 멀고, 잠을 제대로 못자서 조금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듣고 또 신나게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뒤에서 나를 툭툭 건드렸다. 누구지 싶어서 돌아봤는데
예전 팜플로냐 가기 전 내가 정말 좋아했던 성당에서 만난 그 남자였다. 중국사람인 줄 알았더니만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 맞죠? (부산 사투리로)"
"네!"
부산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 청년은 국제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내 배낭에 한국 국기가 그려져 있어서 일찌감치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아봤다고 했다. 간만에 말동무가 생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모든걸 말해버리는 느낌이었다.
난 처음보는 사람과는 이야기를 곧잘하는 성격이지만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까미노에서 만난 이 친구는 뭔가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친구와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다보니 어느새 Punta de reina 에 도착해간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대화하니 속이 시원하네.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길은 더욱 좋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내가 객관적으로 누구인지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기 때문이다.
이름이 기봉이라는 이 친구는 이때부터 나와 함께 까미노를 같이 걷게 되었다. 그리고 중간에 한 여학생도 만났는데, 슬로바키아에서 온 렝카.
이 친구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부르고스까지만 갔다가 곧 돌아간다고 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구적인 스타일. 영어도 정말 잘해서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그냥 집에서 공부했어.." 라고 답하던데 비결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오디오북.
집과 학교가 기본적으로 한 시간은 가야하는 거리라 그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오디오북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책 읽기도 되고 듣기 공부도 되서 재미를 찾아 지속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3명이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며 작은 동네를 하나 더 마주치게 된다.
잠시 마을의 커피숍을 찾아 '카페 콘 레체' 한 사발(?)을 마시고.. 잠시 그늘을 찾기 위해서 들른 이 성당.내부의 분위기는 감히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엄숙했다. 아무말없이 그 고요함을 마음속에 새기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출발한다. 오늘은 일찍가서 쉬고 싶다.
Punta de Reina가 가까워져온다. 사비나와 내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이제 서서히 잊어야겠지? 언제나 만나고 헤어짐이 반복되는 까미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