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험과 PPT발표가 모두 끝난 저녁.
간만에 침대에 드러누워 평소에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던 미드(미국드라마)와 웹서핑을 신나게 즐겼다. 그러면서 다음날 가게 될 진안에 대해서, 지리적 역사적 위치에 대해서 정리했다.

진안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이었다. 전주대학교에서 TEDx 강연할때도 서울에서 일이 있어 날 부르지 않았다면, 강연을 끝내고 바로 진안으로 가려고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진안에 대한 갈망이 예전부터 꽤 컷었던 듯 싶다. 초등학교때 지리를 배우면서 우리나라에 고원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개마고원이요 하나는 진안고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고 싶단 호기심이 생겼었고 숱한 내일로 여행에서 항상 잔안을 들르지 못해서 천추의 한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 

진안은 내게 아틀란티스를 마주하는 것과 같은 호기심을 일으켰다.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링
" 안녕하세요~ 장준영 선생님! 진안의 공정여행 풍덩입니다~ 참석 확인차 연락 드렸어요~" 전화주신분은 바로 공정여행 풍덩의 김춘희 대표님. 난생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이란 표현에 얼마나 화끈대던지. 나를 너무 높여주시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가서 스스럼없이 대표님과 친해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모여야 할 장소는 전주 전동성당.
서울에서 내려오는거기도 하고, 약속에 늦으면 초대해주시는 분들 보기 부끄러울 것 같아서 꽤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전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풍덩에 대한 기업자료도 살펴보고, 진안에 대한 이야기도 연구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전주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전주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벌써 열번 정도는 전주에 온 것인가.

한번은 미지의 세계 전주였고,
몇번 오다보니 맛의 고장 전주였고, 전통의 고장 전주였으며
이제는 사색할 때, 즐거운 사람 만날 때 오는 곳이 항상 전주가 되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게 전동성당으로 가는 5-1번을 타고 전동성당에 예상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게 전동성당은 십자가 아래 예쁘고 노란 별을 품고 있다. 난 천천히 성당 주위를 돌면서 한옥마을 초입으로 들어섰다.

약간 피곤하기도 하고, 달달한게 먹고 싶어 파리바게뜨에 눌러앉아 지나가는 관광객을 보며 와플과 카페모카를 먹었다. 사실 커피를 일부러 택한 이유가 머리가 지끈지끈 두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전날에 너무 시험 스트레스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찐득찐득 아프다.

그럼에도 이 좋은 여행 피곤한 티 내지 않으려고 눈음 감고 자기암시를 엄청 해본다. 그래도 두통이 깔끔하게 가시진 않는다.

경기전 근처에는 오늘따라 여고생들이 많다 했더니만 한옥마을 근처에는 여고가 위치하고 있었다. 아아, 오전인데 벌써 학교 끝날시간이구나. 그러고 보니 오늘은 토요일이다. 아차 내정신. 대학생이 되니 이렇게 무뎌진다. 

요즘은 부쩍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져서 까페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다가, 시계를 보니 딱 집합시간 10분전. 괜시리 군시절이 생각나면서 정시에 딱 도착하기 위해 주섬주섬 까페를 나선다.

이미 전동성당에는 멀리서도 눈에 띌만큼 군집을 이룬 사람들 분명 공정여행 풍덩 분들이 분명했다. 
원래는 딱 15명정도의 규모일 줄 알았더니만,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모이셨다. 전주시청 사회적기업 담당자분부터 시작해서 내장산, 변산반도, 덕유산 국립공원 관계자분들. 순례길문화연구소, 트래블러스맵, 하코, 성미산학교, 출판사 현암사 직원, 작가님, 창업 준비중인 학생까지 아주 다양하다. 일단. 시간은 11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근처 정식집에서 비빔밥 정식을 먹었다. 





비슷한 나이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끼리 금방 친해진다고, 트래블러스맵의 김학실 누님과 하코의 이은정 누님, 그리고 동네방네 트래블이라는 춘천 기반 창업을 준비중인 조한솔씨까지 금방 친해졌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정확한 나이는 조한솔씨가 나랑 동갑이라는 것 말고는 누나들은 나이 이야기를 전혀 안해주셨다. 그냥 비슷한 나이 또래로만 짐작했었는데 나중에 이분들의 자기소개에서 반전이 일어날 줄이야.

아무튼, 그렇게 이곳에 오게 된 계기도 공유하고 옆자리 성미산 학생들이 참 유쾌해서 하하호호 웃느라 여행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즐겁다.

오늘 일정은 경기전 안에 있는 전주사고를 들렀다가 인근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정읍 내장산 용굴을 거쳐 진안소재의 한 마을에서 숙박하는 것이다. 이 루트는 조선왕조실록이 이동했던 발자취를 밟아보는 것으로, 팸투어에 참가해주신 이향인 작가님의 작품 <채채의 그림자정원>에 나오는 배경을 따른 것이다. 



밥을 먹고 경기전으로 향하니 계량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문화해설사님이 계셨다. 스피커를 활용하여 문화해설을 해주시는데 어찌나 해박하신지 역사를 눈에서 동영상이 재생되듯 술술 설명해주신다. 말을 참 재밌게 해주셔서 이보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 방법이 있을까 싶다. 경기전에서는 전주사고에 어떻게 조선왕조실록이 위치하게 되었는지, 이것이 어떻게 용굴로 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한옥마을로 들어서면서 초기의 한옥마을의 평판과 지금의 한옥마을. 그리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정자에 얽힌 이야기, 담이 높이 않아 현대생활과는 다르게 이웃과 소통이 가능했던 옛 이야기들을 재밌게 전해주신다. 





한옥마을에서 들른 곳은 계영배가 있는 계영원, 이씨 황손이 살고 있는 승광재를 들른다. 승광재에서는 황족이 살아 온 발자취와 현재를 듣고 술박물관인 계영원에서는 술잔을 끝까지 채우지 않는 선비의 얼이 담긴 구멍난 계영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술잔을 채우는 것과 살짝 비우는 것에 대한 미학, 올 연말 넘실대는 술잔에 대한 통찰력이다. 




확실히 이런생각이 들었다. 혼자 하는 여행과 이렇게 문화해설사님과 하는 여행은 다르긴 다르다는 것. 머리가 꽉 찬 느낌이 든다. 혼자 여행하면서 이런 가이드를 받을 순 없는걸까 생각해본다.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전주 한옥마을을 떠나 향한곳은 정읍의 내장산. 전주사고에 보관되어있던 조선왕조실록이 내장산 용굴까지 옮겨졌던 길을 그대로 답사한다. 공정여행 풍덩의 김동철 선생님께서 즐겁게 설명해주신다. 역시 역사를 전공하셔서 그런지 너무 해박하시고 말에 조리가 있으셔서 듣는내내 즐거웠다. 청중을 사로잡는 언변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그만큼 많이 노력했다는 증거일터


드디어 내장산에 도착했다. 다들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씩 한다 
"와 역시 산이라 그런지 엄청 춥구만!"

제대로 춥긴 했다.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굉장히 찼다. 하지만 굴하지 않을테다. 용굴까지 등산화가 아닌 이 뉴발란스 신발로도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


내장산 용굴을 가기전에 탐방안내소에 들러 내장산의 아름다운 4계절 모습과 곤충이 많은 내장산의 특징 등 많은 이야기를 듣고 공정여행에 동행한 내장산 관계자분들이 앞장서서 용굴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내장산은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 
큰일이다. 벌써부터 엄청 미끄러운데... 



옛 생각이 났다. 눈이 소복히 쌓인 내장산을 보니 일본여행할 때 닛코 유모토온센에서 봤던 비슷한 풍경. 사람은 얼마 없고 조용하며 사색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 정말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사실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극심한 두통을 앓았었다. 커피와 단것을 좀 먹으면 괜찮아질까 했었는데 머리는 더 아파오기만 했다. 차안에서 눈을 붙인다고 해도 오히려 두통이 잠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장산에 오니 그런것들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맑은 공기 때문일까? 콧속에 스쳐가는 산바람이 두통을 한순간에 멎게해줬다. 


산 초입에 위치한 자그마한 식당에는 맛있는 도토리묵과 동동주를 팔고 있다. 이 식당의 주인은 다름아닌 유도 왕기춘 선수의 할아버지되신다. 손자만큼이나 정정하시고 유쾌하신 할아버지. 날이 추운데에 불구하고 이곳을 꿋꿋히 지켜내고 계신다. 이제 내장산은 이곳을 마지막으로 산장이나 식당 매점이 없다. 구비해야할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미리 구비해야 할 것이다 


사실 예상은 했었지만 눈이 너무 많이 온 관계로 넘어지고 산에서 쇼를 하는건 나뿐인 듯 싶다. 민망하게도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초콜릿을 먹다가 넘어지거나 아유 내참, 어쩌다 이렇게 준비 하나도 없이 공정여행을 오다니 참 "개념없이"도 왔다. 
이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니 그러려니 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펼쳐진 멋진 산은 마음속에 들어와 꽉 차는 느낌. 학기를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와보는 산이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여행을 자유롭게 못 다녔는지 아쉬운 부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시험이 딱 끝나자마자 이렇게라도 내장산을 찾게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한 40분쯤 걸려서 올라가니 용굴암에 닿을 수 있었다. 사실 용굴은 일반 등산객은 출입할 수 없고 내장산 측에 허가를 받은 뒤에야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겨울에는 이쪽으로 향하는 루트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해서 접근할 수가 없었는데 우리는 내장산 관계자분들이 동행하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용굴로 향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놨더니만 후배 한놈이 리플을 달기를 "형 마치 피난가는 사람들 같아요"란다. 

뭐, 그렇게 봐준다면야 이 사진을 올린 의도가 성공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면 전주사고부터 용굴에 이르기까지 왕조실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것 자체가 피난이 아닌가? 우린 정말 그때의 그 상황을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단을 쭉 오르면 용굴에 닿을 수 있다. 마침 용굴에 닿자마자 꺼져버린 카메라 밧데리.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과정을 기록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에고. 



용굴에 올라서는 용굴로 향하는 루트가 이곳 뿐이 아니라 다른 루트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향안 작가님의 책인 <채채의 그림자 정원>에서 나오는 배경인 용굴에 관해서, 극의 의도에 대해서, 작화의 분위기에 관하여 저자와의 간담회가 이뤄졌다. 공정여행의 이번 테마가 저자와 함께하는 Book Traveling 이기 때문에 유명한 저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한다는게 서로 소통하고 호흡한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좋은 기획과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다만,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면 더 즐거웠을테지만. 저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책을 읽어도 상관 없을 듯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책 한권을 쓰게 되면 다양한 시각에서 극을 풀어나가고 역사적인 내용을 싣게 되면 그만한 역사적 고증에 대한 노력도 더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용굴에서 저자와의 시간을 보낸 우리는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하산하면서 또 몇번을 넘어지길 반복. 급기야 제대로 넘어져서 엉덩이가 욱신욱신 아프다. 다시 산 초입에 있는 식당에 들어섰는데, 미리 준비된 약재동동주와 도토리묵을 왕기춘의 할아버지가 손수 준비해두고 기다리신다. 도토리묵을 한점먹어보니 탱글탱글하니 너무나 맛있고 동동주도 특색있고 맛있어서 금새 비워낸다. 군불에 손을 쬐면서 산행을 마무리하니 실컷 넘어졌던 엉덩이도 서서히 회복되는 듯 하다. 아이고야 내 엉덩이! 

산을 내려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러 내장산 근처 식당으로 들어섰다. 맛있는 김치찌게와 된장찌게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세상에나 얼마나 반찬 가짓수가 많은지 전라도 음식의 위엄을 제대로 느낀 순간이었다. 아삭한 깍두기 하며 맛있는 전과 김치찌게를 곁들여먹으니 묵은 체증과 고생이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듯 했고, 시험기간에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한상차림이었다. 



이 식당에서도 공정여행이기 때문에 미리 수저가 셋팅되어있더라도 나는 집에서 준비해간 수저와 물컵을 썼다. 이러한 자그마한 실천이 중요한 것을 여행에서 많이 느낀다. 실천이 캠페인이 되는 법이고 나아가 문화가 되는 법이다 .

우리의 숙소는 진안 원연장마을에 있는 숙소였다. 들어서니 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싶을 정도로 따스했다. 밖에는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다행이 내일 날씨는 어느정도 풀린다고 하니 맑은날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숙소에서 진행되었던 게임이 아닌가 싶다. 일명 <마쌤>이 진행하는 레크리에이션 게임. 본래 하시는 일이 레크리에이션이었을 줄이야. 나름 레크리에이션 2급 자격증이 있는 나도 도저히 엄두낼 수 없는 다양한 게임으로 우리 모두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셨다. 장장 2시간동안 마쌤의 노력이 없었다면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을거다. 

이날 했던 게임은 공정여행 풍덩에서 마련한 다이어리를 상품으로 두고 하는 빙고게임. 서로 악수하고 상대방이 자필로 이름을 적은다음 빙고에 맞춰서 선물을 증정한다. 워낙 다양한 나이대가 공존하는 이번 여행. 이 게임에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실까 걱정했었는데 역시나 여행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들이기에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다들 최고 열성적으로 게임에 임해주셨다. 아 신난다!

빙고의 칸을 다 채우면 호명되는 사람마다 자기소개를 한다. 특히 나와 같이 있었던 누님들의 나이가 꽤 있다는 것에 충격. 엄청 동안이었다는 거에 충격을 받았다. 이번 게임을 통해 서로를 알고 이야기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다. 


게임이 끝나고 뒷풀이가 있을 시간, 진안의 한 초등학교에서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찾아주신 혁신교육 선생님. 그리고 오늘 참여했던 모든 분들과 함께 신나는 뒷풀이가 진행되었다. 여행업계 종사자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공정여행 풍덩이 만들어진 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날의 주요 토론주제는 바로 산에 케이블카가 필요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워낙 국립공원 관계자 분들도 많았고 여행사나 국가정책에 대한 것들을 다루시는 분들이 계셔서 심층적인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포스팅하고 싶지만 그날 공정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내용이기 때문에 비밀로 해두겠다. 헤헤. 확실한 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공유되었다는 사실. 어디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잊지 못할 여행이다.


정말로. 정말정말 아쉬운 밤이다!!

날짜

2011. 12. 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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