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춘천에는 무슨일이 있었는지 엠뷸런스 몇대가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아침에 창밖을 나가보니 호반의 도시답게 안개와 구름에 휩싸여있어 운치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일어나서 핸드폰을 체크해보니 왠 문자가 많이 와있다. 이렇게 문자가 많이 올리가 없는데 이게 무슨일이 싶었다.

<형 살아있지요?>
<걱정되니 빨리 집으로 돌아와요>
<오빠 걱정되서 전화하는데 전화를 안받네>

등등..
잠에서 덜 깼는지 사태파악이 하나도 안되고 있었다.
일단 티비를 틀었는데
간밤에 엄청난 물난리가 난 것 같았다. 우면산은 산사태가 나있고 춘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제 느즈막한 밤에는 비가 좀 그치는거 같았는데 소양강댐쪽은 아주 심각했던 것이었다.
인하대학생들의 사고... 봉사활동을 하러 왔던 꽃다운 청춘들이 한순간에.... 그렇게 되버렸다. 

밤새 들었던 앰뷸런스 소리가 바로 그 소리였다. 큰 병원으로 가려면 무조건 이 소양 2교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나 울려댔던것.
잠시 묵념하고 기도했다. 그리곤 정신을 좀 차린다음에 걱정해준 사람들에게 답장을 보낸다.

마음이 복잡했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혹시나 비가 내릴지 몰라 우산을 들고 소양강 처녀 동상쪽으로 간다. 아파트에서 카메라를 매고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서니 옆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유심히 쳐다보신다.

"학생 이거 얼마짜리 카메라야?"
"아마 50만원 후반대 아닐까요, 렌즈값도 꽤 나가거든요"
"아.. 내가 사진을 좀 찍으려고 하는데 말야".. 라고 하는 동시에 옆에서 아주머니가 핀잔을 준다.

"영감, 다 지는 나이에 무슨 사진을 찍는다고 비싼 돈을 들여서 사진을 찍나"
할아버지는 기왕 즐겁게 살아야 하는 인생인데 사진 하나 취미로 가지고 살다 가면되지 뭐 이래 핀잔을 주냐며 옥신각신이다. 
그런 모습 자체도 난 생동감 있어 보여서 참 좋았다. 

버스 안에서도 카메라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춘천에 왔다는 것에 대해 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며 카메라 무겁지 않냐며 들어주신다. 가끔은 이런 호의가 그리워질때가 있다. 

어렸을 때 김포공항에서 살때만 하더라도 지하철은 딱 4호선까지 개통된 상태로 대부분 버스를 타고 갔었다. 그러면 아주머니들이 말도 걸어주고 덕담도 건네주셨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이런것 조차 로망이 되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그리워서 그런지 너무 반가운 경험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조금만 걸어가면 소양강 처녀 동상이 보인다. 소양강을 배경으로, 스피커에서는 소양강 처녀 노래가 같이 흐르며 꽤 그럴싸한 풍경을 보여준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살짝 구슬피 들려오는 노래라 그런지 이 날씨, 이 분위기에 딱 맞는다.


비올 때 이곳을 찾은건 확실히 잘한 일이었다. 
분위기가 여행의 절반을 만들어주는데,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풍경이 가슴에 확 와닿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론 즐거운 그림보다는 약간 센티멘털한 그림.

 
소양강처녀 동상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춘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소양강댐과 청평사를 향해서 간다. 버스는 11번과 12-1번을 이용하면 갈 수 있다. 12-1번이 자주 오는 버스이기에 그걸 타고 카드를 찍으려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이거 소양강댐까지는 안올라가요~"

난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간에서 11번으로 환승하지 뭐 하며 끄덕이며 창밖자리를 골라 앉았다.
창가에는 빗방울이 하나둘씩 맺힌다.  



그리고선 도시를 좀 벗어나 산이 굽이굽이 보일 때 쯤 내려서 11번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오기 시작했다. 인적드문 길에서 비오는걸 말 없이 지켜보다가 11번 버스가 보이고 다시 소양강 댐으로 향한다. 

그런데 왠일인지 많은 차들이 되돌아 나오는 듯 했다.
왜 다시 되돌아 나오지 싶었다. 

"자, 이 버스는 소양강 댐까지 운행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운행해요 내리세요"

어라, 이 버스도 소양강 댐까지 가지 않는다니 무슨일이지? 일단 내려서 걸어갈 순 있으니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고 비가 많이와서 여기도 수해를 입었나 싶었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산사태에 처참히 부서진 건물들이, 그리고 그 잔해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공사중인줄 알았건만 연신 토사를 퍼내고 있었고 각 방송사는 중계소를 설치해 방송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춘천 산사태의 현장이었던것이다. 그게 이곳이라곤 생각을 못하고 왔는데... 괜히 와서 안타까움만 더하게...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하필이면 대학생 시신 1구를 찾지 못해서 밤새 수색했다는데 딱 내가 갔을때 마지막 시신까지 수습하고 있던 차였다.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마음을 덜어내려 왔는데 왜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와 시내를 가는 버스를 타고 내달렸다. 



시내에 와서 이 골목 저 골목 마음을 좀 가라앉히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래도 그렇게 쉽게 맘이 좋아지진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막국수를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 싶어 인성병원 뒷편에 위치한 실비막국수 집으로 향했다. 

시내보다 약간 변두리니 괜찮을 것 같아서 선택했던 곳인데, 다행이도 탁 트인 언덕에 있었고 손님도 날 제외하고 한분밖에 안계셔서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차라리 먹으니까 조금 낫다. 
가슴이 먹먹했는데, 이제 이곳을 다시 찾기로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싶더라.
일단 지하철을 타면 좀 나아질 듯 했다.

하루밤 신세지게 해준 인사과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춘천행 지하철을 탔다. 
 



비오는 춘천을 찾았다. 
지하철을 타고
춘천에 와서 먹고 싶은것도 먹고 하고 싶었던것도 했지.

비는 멈추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있던 도중 하나의 사건을 만났다.
마음은 다시 무거워졌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양강댐도 청평사도 가지 못했지만 그곳을 가지 못해서 후회스럽지는 않은데
부디 그 대학생들이 좋은 곳으로 가서 맘편히 지내고 있기를 기도해 볼 뿐이다.

그저 나는 할 수 있는게 단지 이것뿐이다.
앞으로의 삶이 내게 허락되는 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다음에는 한결 가벼운 맘으로 춘천을 찾아와서 춘천의 낭만을 다시 느낄 그날을 기약하며...

그래서 춘천으로 갔다 下편 관련 포스트 : http://monotraveler.com/228 (춘천맛집 실비막국수)


 

날짜

2011. 9. 2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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