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목포는 아침부터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상당히 쌀쌀한 날씨에다가 안개때문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개를 손으로 휘휘저어가며 버스를 타고 목포항에 도착했다 목포 여객터미널은 두 곳이 있는데 홍도,외달도로 가는 근방 도서로 가는 터미널과 제주도나 인천, 중국으로 가는 원거리 터미널이 있다.  

제주로 출발하는 여객선은 09:20분에 출발한다. 그 때문에 비교적 일찍 터미널로 출발하기로 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주변에는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학생 와서 아구찜 먹고가”라며 잡아끄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다. 하긴 목포에 아구찜이 맛있다던데, 그래도 수중에 돈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아 아구찜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사람 몇 명을 제외하곤 거의 볼 수 없다.
“아 추워죽겠다”
날씨가 쌀쌀한 나머지 자꾸만 춥다고 짧게 읊조리게 된다. 터미널 안인데도 왜 이렇게 추운지, 비가 슬슬 내리고 있어서 인지 배가 뜰지 안뜰지도 걱정된다. 오늘안에 제주도에 갈 수 있긴 한건지. 의자에 가로로 누워있기도 하고 그냥 앉아있기도 해보는데도 추워서 잠도 안오고 이러다가 몸살나시겠다.
그러다 배가 출발하기 40분전쯤 되었을까 어디선가 사람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들 어디있었는지 제주도로 가져가기 위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든채 이곳저곳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배가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나서야 정말 제주도에 가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제주도, 사실 처음에는 전혀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왕 시작한 전국일주를 제대로 끝내야 하지 않겠나 싶어 무작정 맨 마지막 계획에 ‘제주도’를 추가했다. 분명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곳이지만 그때 다같이 갔던 여행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루트를 짰다. 이제 제주도로 출발이다.

배안의 로비

거대한 배가 서서히 움직이자 사람들은 하나둘 자기 자리를 찾아 털썩털썩 주저 앉는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단체로 여행가시는듯 선박 로비에 모여 신나게 노래자랑을 하시고 나는 바람을 한번 쐬볼까 해서 도크로 가서 바닷바람을 맞다가 이내 피곤함을 느끼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누워버렸다. 3등급 석이지만 그래도 눕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뭐 굳이 침대가 있을 필요가 있을까. 아 피곤하다. 역시 전날에 PC방에서 밤을 새는건 내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이다.
스르르 잠이 든지 한 3시간 반쯤 지났을 무렵.

“이제 우리 선박은 제주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라는 방송이 들리자 눈이 스르르 풀렸다. 누워서 아주 푹 자버려서 그런지 아침보다는 꽤 상쾌하다. 다시 도크로 나가보니 저 멀리 희뿌옇게 제주도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제주도에 왔다. 그것도 혼자서.
신난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아직 날씨가 덜 개어서 그런지 맑지는 않은 날씨다. 그래도 언제 내가 날씨에 구애 받았나? 하며 낙천적인 표정으로 배에서 내렸다. 내려서 보니 배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예전 일본에 갔을때 탔던 배와 거의 비슷한 크기. 이렇게 큰 배를 타고 왔구나 하고 감탄한다. 왜 탈때는 몰랐지?

배에서 내려서 출발은 제주항 근처에 있는 하이킹 베이스 캠프에서 시작한다.
업체 아저씨에게 연락했다. “아저씨 제주항에 도착했어요!”“어 학생 벌써 도착했군요. 데리러 갈께요”

이 말이 끝나자 마자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회색 봉고 차량이 온다. 이렇게 공항이든 항구든 하이킹 업체에 연락을 하면 픽업을 하러 온다. 그 다음 업체로 가서 자전거를 고르고 장비를 고르고 자전거를 타고 돌면 끝이다. 나는 이곳에서 타발로 하이킹을 이용했다. 그냥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고른곳이다. 저렴한걸 우선순위로 했다. 꼭 좋은 자전거를 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내 원칙은 이렇다.
제주항에서 하이킹 베이스 캠프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작은 규모지만 꽤 괜찮아 보였다. 뭐 자전거만 구비되어 있으면 되지 않는가? 자전거 몇 개중에 선더볼트라는 종류가 맘에 들어 선택을 하고 다른 부수 장비는 추가하지 않았다. 오직 자전거 한 대 그리고 자물쇠 요렇게만 해서 저렴한 가격에 렌탈했다. 아저씨는 지도를 하나 주면서 자세히 코치해주셨다. 지도를 펼쳐들면서

“자 이제 시작할께요. 제주도는 시계방향보다는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게 좋아요. 왜냐면 제주도의 왼쪽편이 경사가 높고 오른쪽 편이 경사가 낮아서 시계방향으로 돌 경우에는 체력소모가 크죠. 그래서 자주 여행한 사람들만 그쪽으로 돌고 그렇지 않으면 보통 이렇게 반시계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서 여행하게 됩니다.”
“그럼 아저씨 이 해안도로만 쭉 따라다니면 되는건가요?”
“예 그렇죠. 중간에 공사 때문에 좀 위험한 도로도 있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을거에요. 중간에 펑크나거나 하면 전화하면 바로 달려오고요. 짐의 경우는 안장뒤에다가 결속해서 다니면 큰 문제 없을거에요”
“아 그럼 잠은 어디서 자요 보통?”
“잠같은 경우는 펜션이나 이런데 가는데 찜질방을 원한다면 제주시랑 서귀포시만 있으니까 유의하세요”
“그럼 3박 4일동안 4등분해서 간다고 해도 찜질방이 제주시랑 서귀포시만 있으면 두 번 밖에 이용 못하는거네요? 아쉽다. 그냥 여관도 있겠죠?”
“음 아마 있겠죠?”
“아 그럼 그냥 일단 떠나볼께요. 뭐 여름이라 노숙해도 그다지 문제되지 않을거니까요”
“좀 위험할텐데. 왠만하면 여관 이런데서 자요. 행운을 빌어요”
아저씨의 코칭을 듣고 살짝 자전거를 내 몸에 맞춘 다음 배낭을 결속했다. 자 이제 떠나는거다. 바닷바람 맞으며 제주도를 돌아보는거다. 달려라 청춘아.
.

나를 이끌어줄 자전거

골목 골목을 지나보니 갑자기 시원한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햇살이 이내 쨍쨍해지는 거 보니 날씨가 제법 좋아질것 같다. 내 머리 위로 아주 가까이 비행기가 하나 둘 뜨고 내리고 바람과 함께 자전거로 여행을 하니 배경음악까지 깔린다면 이거 완전 뮤직비디오 찍는 것 같다.

시작은 무리없이 그리고 주저없이 했다.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가족도 분명 자전거 여행을 하는거 같은데? 어 저 사람도 자전거 여행하나보다. 점점 여행을 하면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근데 다들 더워 죽겠는데 마스크와 두건을 쓰고 눈만 달랑 내놓은 채 답답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응? 왜 그런거지 혼자 생각해보다가. 에이 무슨 상관이야 나는 그냥 더울만한 것들은 다 짐에 넣어버리고 타자 하고 마음 먹어버렸다.

선크림 하나 없이 그냥 제주도를 횡단 하기로 했다. (이게 나중에는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흐흐) 왼쪽에는 한라산이 오른쪽에는 바다를 끼고 도는 자전거 여행. 꽤나 매력적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차로 드라이브를 하는 것 보다 이렇게 자전거 여행을 하는것이 제주도를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인 듯 싶다. 물론 한단계 더 나아가 걸어서 200km 정도되는 제주도 일주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나에겐 이게 최선의 방법이니까 말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한림까지. 제주도를 4등분 해보니 하루는 한림까지 하루는 서귀포시에 하루는 성산 하루는 제주시까지 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 듯 하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야지. 자전거야 이제 니 이름은 바람이다. 혼자서 바람이를 끌고 제주도를 일주 할 수 있을까? 왜 못해.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계속 하며 한림으로 떠난다.

한림을 향해서 조금만 가면 바로 용두암을 만날 수 있다. 용두암 입구에서 자전거를 잠궈놓고 걸어서 용두암에 갔더니 예전에 왔던 곳이라 그런지 아주 익숙하다. 고등학교때 왔었는데 그때랑 그렇게 많이 달라지진 않았구나. 아직도 멍게를 파는 아줌마는 여전히 용두암에 있다. 용두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나와 자전거를 끌고 유유히 도로로 빠져나왔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여행하다 보면 정말 욕심이 많이 생긴다. 먹을 욕심 차를 타고 싶은 욕망 이런것이 아니라 조금만 페달을 밟고 나가봐도 사진을 찍기 위한 포인트가 너무 많다보니 중간 중간에 서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아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런곳이 있었나? 가슴이 확 트이는 풍경에 말을 잃어 버렸다. 젠장!! 날씨도 너무 좋아!!!!
 
어느새 풀밭에 앉아 셀카를 찍고 돌부리에 앉아서 셀카를 찍고 그러다 보니 애월에 도착하게 되었다. 애월읍은 한림으로 가기 전에 만나는 곳인데 아기자기 한 마을이 참 예쁘다. 해안 끝에 어스름하게 보이는 비양도를 보러 잠시 해변으로 나가는데 앗 갑자기 바람이 뒤에 체인이 빠지는 소리가 윙윙윙 들린다. 어떻게 된거지? 해서 보니 체인이 이탈되어있다. 아 제길. 여기까지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저씨를 불러야 하는건가? 하다가 혼자서 수리보자 하고 바람이를 뉘여놓고 체인을 뺐다 꼈다 했다. 손에 이리저리 기름이 묻고 하다가 체인을 다시 정비해보니 그제서야 체인이 슁슁 잘 돌아간다.

아 다행이다. 정말이지 아찔한 순간이었다. 너무 체력을 많이 소진해버려 잠시 애월읍 어딘가에 있는 정류장에서 걸터 앉아 쉬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하자마자 바로 정류장 앞에 보인다. 이런 우연이!

그래서 바람이를 벤치에 뉘여놓고 그곳에 앉아 편의점에 들어가 주전부리를 사가지고 나왔다. 너무 덥다보니 여태 양 많은 음료수를 사야겠다 하고 환타 600ml 짜리 큰거 두 개를 사먹으면서 여행했는데 아 이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었는지. 나중에 뼈저리게 깨닳았다.
“어머 아까 봤던 사람이네 파이팅이에요~” 정류장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쉬고 있으니 아까 봤던 가족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한마디 흘리고 지나간다. 나도 “안 더우세요? 쉬엄쉬엄 여행하세요!” 이렇게 반갑게 답해주었다. 이제 좀 자전거 여행의 묘미를 알아가고 있다. 지나가면서 흘리는 말이지만 저게 얼마나 반가운 인사말인지.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답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정도 쉬고 나서 다시 애월읍을 떠나 해수욕장을 등지고 한림으로 출발한다. 벌써 시간은 5시쯤을 가르키고 있다. 한림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 빨리 움직여 한림에 도착해서 여관을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얇게 피어난 잔디를 지나 저 멀리 만을 보고 그곳을 중심삼아 돌고 굽이굽이 만나는 마을을 지나고 배가 정착해 있는 곳에서 바다를 보면서 다시 숨을 다시 가다듬고 바람을 맞아가면서 그렇게 여행하다 보니 어느새 협재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도저히 한림까지 갈 엄두가 안난다. 협재 근처까지 오긴 했는데 한림까지 가게 되면 분명 저녁 8시 9시가 될텐데.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협재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일단 눈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역시나 양이 많은 환타를 사고 넌지시 이렇게 물어봤다.

“저기 죄송한데요 숙박 좀 할려고 하는데 여기 근처에 숙박할 곳 없나요?”
“아 그래요? 여기 윗층이 찜질방이에요!”
“네~에?????”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분명 하이킹 코치해주는 아저씨는 찜질방이 없다고 했는데 협재에 찜질방이 있다니 속는셈 치고 한번 가볼까 해서 갔더니만 정말로 자그마한 찜질방이 있다. 바람이를 세워두고 들어가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서울에서 찜질하는 것이랑 더 저렴하면 저렴했지 비싸지는 않은 가격. 아싸 땡잡았다 하고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받고 들어갔더니 예전 영월에서 찜질방 갔던게 생각났다.
 
샤워시설은 그에 비견될 만큼 작고 아담했지만 찜질방에 들어가니 그래도 그나마 구색을 갖추고 있다. 소금방도 있고 온돌방도 있고 왠만한건 있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씻다보니까 자꾸 얼굴이 까끌까끌해서 뭘까 했더니 얼굴 사이사이로 모래가 껴있다. 응? 왜 이렇게 많은 모래가 껴있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바다 바람에 날아온 모래인듯 싶었다.
아아! 사람들이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자전거를 탄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이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몸을 다 씻고나와 지도를 쫙 펼쳐 드니 참 갈곳도 많다. 이곳저곳 표시하고 보니 아직도 멀었다. 제주도를 한바퀴 다 돌려면 말이다. 힘내자!
그날밤 전화를 했다. 집에 오랜만에.
“부모님 전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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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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