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코타키나발루, 그중에서도 키나발루산은 우리의 시장조사 여행의 '휴가' 개념으로 겸사겸사 다녀온 곳이였다. 일주일 내내 제품을 비교분석하고 가격과 현지인 반응 조사까지, 그만큼 힘들었으면 지칠만도 한데, 코타키나발루라는 휴양지까지 넘어와서 이제는 산을 타겠다니 대체 무슨생각인가 싶다가도 이게 우리다움이다! 라고 애써 정당화 시키려 하고 있다. 


보르네오 호텔에서 푹 쉬고 아침을 먹으러 나갔더니, 리셉션에서는 우리를 위해 미리 택시를 불러다 주었다. 아침에 일찍 나가서 공원 입구까지 9시 30분까지 오라고 메일을 받았기 때문에 아침을 거르고 택시를 타러 나가려는데 주인이 정 그렇다면 봉지에 테이크 아웃을 해주겠다고 해서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인 이나남으로 간다. 사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 2012년 가격으로 편도 40링깃 정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나남까지 도착을 하긴 했는데 우리는 공원에 지불할 입산 통행료와 여러가지 비상금을 1000 링깃정도 = 20만원을 현금화 시켜 규환형 아이패드 뒷쪽에 숨겨놓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패드를 형이 호텔에 깜빡하고 두고 온 것이다. 호텔에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짐을 모두 맡겨버려서 다시 돌아가려면 키나발루산에 9시 30분까지 도착할 수가 없다. 


순간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나는 여행 중 처음으로 형에 마구마구 짜증을 냈다. 카드에도 여분의 돈이 없어 우리는 한국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던 지원누나에게 긴급전화를 넣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좌로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너무 고맙게도 누나는 즉시 이것을 해결해주었고 중국계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날 너무나 짜증을 내고 궁시렁거리는데 규환형 입에서 진심어린 사과가 나오자 화가 누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러 가니 키나발루로 가는 봉고가 있었다. 역시나 사람들이 모두 탑승해야 가는 시스템으로 우리는 재차 공원 입구까지 9:30분안으로 도착해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봉고가 가득차기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차도르를 쓴 말레이시아 여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며 한류얘기도 간간히 이어나가본다. 이윽고 키나발루 등산을 가려는 19살이라는 독일 청소년 두명과 함께 합승하여 키나발루로 떠난다. 시내를 벗어나 울창한 밀림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정말 대자연속으로 차가 돌진한다. 중간중간 사람들을 내려주고 빠르게 차가 돌진하니 맨 뒷좌석에 탄 독일애들은 영 그것이 맘에 안들었는지 독일어 욕을 남발한다 "샤이셰~"






키나발루 공원까지 도착하는데는 약 1시간 30분정도 걸린것으로 기억한다. 생각보다 오래걸렸는데 4천미터 고도인 키나발루산의 중턱인 2천미터까지 올라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차비는 공원 입구까지 내 기억으로는 120 링깃정도를 지불했던 것으로 안다. 나쁘지 않은 가격. 키나발루 산을 오르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키나발루 수트라하버 리조트 측과 카드결재가 안되서 여러가지로 일이 꼬였고 문제는 이 산을 입산할 수 있는 하루당 쿼터가 있다. 딱 100명안에 들지 못하면 입산허가가 되지 않아 일정이 꼬일 수 밖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는데 입산하기 이틀전에 가까스로 결재가 되어서 이제 HQ에서 확인을 받는 것만이 남은 상태. 부랴부랴 사무소를 가서 내 이름을 대니, 아 그녀석! 내가 알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제스쳐를 한다. 하긴 내가 많이 괴롭히긴 했다. 꾸역꾸역 영어로 보낸 메일만 14개였으니까. 괴랄한 영어를 잘만 알아들어줘서 내심 고마웠다. 















키나발루 입산 허가와 그 뒤에있는 사무실에서 가이드를 배정받고 가이드가 점심을 챙겨 나오면 이렇게 카드를 준다. 이 카드는 앞으로 산장에 우리의 정보를 등록하기 위한 것으로 혹여나 사상자가 났을 경우에 관리하는 측면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의 가이드는 마이킨으로 딴딴한 체격에 1박 2일동안 우리를 책임져 줄 가이드다. 물론 가이드 비용도 따로 청구된다. 









HQ에서 팀폰게이트까지는 차로 다시 한번 이동해야한다. 이 팀폰게이트에서 산행이 시작되는데 추적추적 비가 오기 시작해서 많이 걱정스러웠다. 열대우림기후를 가지고 있는 이 지역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영국처럼 샤워 수준이 아니라 정말 폭우수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월의 말레이시아는 우기다. 그렇기 때문에 2월에 가는 것은 꽤나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자 지도를 보면 우리는 팀폰게이트에 있다. 오늘 우리는 라반라타 산장까지 가야한다. 그 다음 새벽 2시에 일어나 라반라타에서 정상으로 가는 1박 2일 엑기스 코스로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2박 3일을 추천해줬지만 예산과 일정상 2박 3일까지 하루 더 늘리는 것은 불필요해 보였다. 이미 비행 스케쥴은 고정된 상황이라 우리는 좋든 싫든 1박 2일을 산행해야 했다. 





저어기 보이는 표지판에 산행 마라톤 기록이 있다. 이렇게 높은 산을 무려 하루만에 뛰어서 다녀왔다고? 정말 대책없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스페인에서 온 사람들이 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런 지구력을 요하는 스포츠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꽤 강인한 체력을 뽐내곤 한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고산구간이나 자전거를 타고 극한 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스페인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팀폰게이트에서 등산 시작을 알리는 종이에 이름과 번호를 쓰고 등산을 시작한다. 나는 생각보다 등산에 꽤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비까지 오는 고산 등반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니.. 






등산퍼밋으로 10링깃과 5링깃을 추가로 더 내고 입산을 한다. 꽤 자주 입산료를 부과한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모두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는데 쓰여진다고 믿고 흔쾌히 지불한다. 팀폰게이트를 나설 때 까지만해도 의기양양한 저 표정은 나중에 되서야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초반부터 5백미터 정도는 완만한 구간이기 때문에 즐기면서 갈 수 있다. 이때는 그래도 말수가 좀 많았었는데 우리형은 이제 1키로가 지나자 마자 땀이 차는지 자켓을 벗어버렸다. 






한 1.5키로 쯤 가다보니 비가 엄청나게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각자 준비한 우비를 꺼내서 입기 시작한다. 우리도 우리가 준비한 우의를 꺼내서 입는다. 근데 이 우의가 참 괜찮아 보이겠지만 우림지역에서는 굉장히 걸리적 거리는 것 중에 하나다. 땀은 땀대로 차고 찝찝함은 그대로 남으며 그나마도 비를 그렇게 효과적으로 막아주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1회용 우비의 단점이다. 더 큰 문제가 뭐냐면 나뭇가지에 잘못 긁히기라도 하면 쉽게 찢어지고 만다. 








갑자기 가파라지는 산행에 지친 우리둘은 마이킨에게 여기서 좀 쉬자고 제안을 했다. 쉬는시간에 마이킨은 지나다니는 청설모에게 먹이를 주거나 꾀어내는데 정신이 없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중에 나쁜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마이킨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사실 포터, 그러니까 가이드와 함께 산행을 해본건 처음이었다. 마이킨은 우리를 앞뒤에서 보살펴주며 여러가지 질문에 곧잘 대답해줬고 점심을 자신의 배낭에 이고다니며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줬다. 우비를 사용할 때도 사실 혼자서 착용하기엔 굉장히 힘든데 마이킨은 항상 이부분을 신경써 도와주었다. 






산 중턱까지 와서 형은 금새 녹초가 되었다. " 아 진짜 힘들다 도저히 못가겠다 " 라고 우리는 결론내렸다. 급속히 몰려오는 허기를 먼저 해결하기로 하고 공원에서 준 계란과 바나나, 샌드위치가 든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사실 그렇게 맛있는 점심은 아니지만 산을 오르다 먹게 되는 음식들은 왠지 모르게 꿀맛이다. 우리가 점심을 먹으면서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오는 다른 등산객들과도 얘기하며 즐겁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온 부부와 영국 아저씨, 그리고 필리핀에서 온 2명의 여행자 믹코이, 링고와 사바주에서 태어난 로컬 가이드겸 카우치서핑 호스트 친구까지 그룹지어서 산행을 왔다. 유창한 영어와 알아들을 만한 발음을 구사해줘서 우리가 많이 의지하고 친하게 인사하며 함께 산행을 한 친구다. 











난 나름 산행을 꽤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진짜 비까지 동반한 이 산행은 왠지 모르게 힘들었다. 저 표정이 보이는가? 정말 맘같아서는 다시 내려가고 싶었다. 만만하게 보고 올라갈 산은 아니다. 가파르기 때문에 짧은 일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만큼 난이도가 높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이 보여주는 열대우림의 모습은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는 식물들도 볼 수 있고 다양한 곤충까지, 새로운 체험을 맘껏할 수 있는 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힘내서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비가 내려서 엄청나게 찝찝하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신선한 공기와 피톤치드는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다. 





라반라타 산장이 어드메요 하며 계속 표지판을 보고 걷는다. 7키로가 가까워올 때 쯤 이제 산장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를 직감하게 된다. 그때 마침 엄청나게 비가 내렸다. 폭우가 내리면서 마이킨은 과연 내일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라반라타 산장 근처에는 굉장히 큰 규모의 폭포가 있다. 멀리서 그 폭포가 보이는데 폭포의 수량이 많다. 그말인 즉슨 정상에서 꽤 많이 비가 왔다는 뜻이라는데 걱정이다. 


서서히 눈에 보이는 대규모의 산장 단지. 바로 라반라타 산장이다. 이 산장은 규모가 꽤 크다. 나는 이 산장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 밑에서 다시 한번 주저 앉았다. 한 10분은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잡아 3분만 더 오르면 될 것 같았는데 뒤에서 오는 독일 아저씨가 여기가 산장인데 왜 머뭇거리냐는 말로 내 등을 밀어주었고 조금 더 힘내서 산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산장에 도착한 뒤였다. 우리는 뒤늦게 도착한 우리는 일단 가방을 벗어놓고 털썩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피곤하고 간만에 무리를 해서일까 몸이 많이 쑤셔왔다. 그래도 곧 나오는 밥을 먹고 힘을 내야하니까 체크인을 서둘러 한다음 자리를 배정받고 다시 부페식 밥을 먹으러 나온다 반찬을 가지러 가는 그 작은 움직임도 이렇게 힘든데 내일은 어쩔까 참 걱정이 된다. 


다행이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우리와 함께 온 필리핀 친구들도 있어 함께 합석하며 얘기도 나누고 연속셀카도 찍고, 하하호호 잠에 들 줄 모른다. 그곳에는 산악회에서 오신 한국분들도 있다. 어떻게 알고 오게 되었냐는 질문에 즉흥적으로 오게 되었고 패키지가 아니라 직접 컨텍해서 왔다고 했더니 정말 대단하단다. 알고보니 총 비용도 우리가 한 40만원이나 절약해서 왔던 것이다. 이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우리 부모님같이 정말 잘 챙겨주셨다. 


내일 기상은 새벽 2시다. 방을 배정받고 오니 정말 추웠다.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도 계속나오고 머리에 두통이 가시질 않는다. 아마도 고산증이 오려나보다. 현재 라반라타의 고도는 3600m. 당연히 그럴만도 하다. 

샤워를 해야하는데 따듯한 물은 커녕 찬물로 샤워해야한다. 그래도 우리는 정상을 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발 내일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상의 날씨도 화창했으면 좋겠다. 











2부에 이어서.

날짜

2015. 1. 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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