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 시대가 된 요즘. 한 광고에서의 할머니와의 전화 디지털? 돼지털? 하던 그때부터가 우리가 만나본 디지털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 우리의 편지는 E-mail이 되었고, 우리의 사진은 디지털 사진이 되었다. 그리고 책은 머지않아 E-BOOK이 되었다. 하지만 E-mail은 단지 활자와 편지지의 디자인의 차이가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오색깔의 배경 편지지를 제공했지만 우리가 직접 써서 정이 듬뿍담긴 편지를 대신할 수 없었고 디지털 사진은 매 사진 그 순간순간의 정성과 인화와 그 사진에 들어있는 커피향 같은 추억을 대신할 수 없었으며 E-BOOK은 최근 잉크를 흩뿌리는 식인 AMAZON의 E-BOOK리더 KINDLE, 요즘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IPAD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에도 책들은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을 쫒는 우리들

군대에 있었을때의 이야기다.
거의 군복무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어느덧 오지 않을것만 같았던 겨울이 왔고 전기히터가 따듯하게 데워지고 주전자에 물이 쉴새 없이 끓어오를 무렵 겨울이 되고나니 밖은 추웠고 안은 따듯해선지 아날로그 적 감성이 한껏 풍부해질 무렵이었다.
하도 훈련이 많고 처리해야할 업무가 비교적 많아서인지 우리는 조금의 여유와 따듯한 정이 필요했고 마침 부대에 있을때는 디지털의 단절로 인해 아날로그 적 감성을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했다. 전화를 할때는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고 평소에 쓰지 않던 편지를 쓰며 사소함에 크게 감동할 그런 시기였던 것이다. 그 따스함을 조금 더 느껴보고자 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싶었고 문득 보고 싶다고 생각할때쯤 친구에게 부탁해 러브레터 DVD를 소포로 받아서 중대원 모두와 같이 보게 되었다. 주말 저녁, 우린 러브레터를 보았고 러브레터가 보여주는 따스한 이야기들과 영상미에 취해 스토리적으로는 살짝 지루할지 몰라도 우리는 따스함을 지속하기 위해서 참 열심히도 봤다. 그리고 그 이후 러브레터와 비슷하면서도 음악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ONCE(원스)라는 영화를 봤다. 사실 러브레터로도 감성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영화를 또 찾아해맸는지 모른다.

극중 와타나베히로코는 후지이 이츠키와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 책의 흔적을 찾는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것도 책의 신기한 기능이다.


난 당신들을 멋지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말기로 책을 보는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매체가 모두 다르듯이 다양성의 일부분이라고 여기고 있으니까, 편리함이 더해서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테니까.
언제 한번은 친구가 아마존의 킨들을 구입하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해왔다. 해외책들은 워낙 배송이 느리고 원가가 비싸 우리나라에서 맘껏 책을 보려면 킨들로 '다운'을 해서 보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괜찮다고 정중히 사양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많은 책을 접할수도 있고 그만큼 양질의 정보를 선택적으로 잘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것도 아니고 난 손맛이 좋다. 책을 슥슥 넘기는 행위, 그리고 접어놓고 또 보고. 책 냄새에 이끌려 책의 서문을 읽어보고 살짝 감성에 젖어보는 행위. 그리고 책을 집어 드는 그 순간의 짜릿함!
다운을 받는거완 다르게 책을 집어 들고 나서면 마음이 한결 풍요로워지고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 종로에 있는 모서점에 들린적이 있다. 그 서점 밖에는 살짝 쉴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에 앉아 있으면서 서점입구를 지긋히 보았더니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속에서 책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 책을 읽는 사람들의 집중하는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멋지게 느껴졌다. 저런 사람들은 전부 집안 서재가 가득차있을까? 방안이 전부 책냄새가 진동하겠지? 하며 부러운 눈빛도 보내본다. 난 책을 직접 구입하는 사람들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응원해주고 싶다. 돈이 많아서 행복이겠는가, 난 좋은 책 많이 읽고 소장하고 있으면 그것도 행복해질 수 있는 하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예쁜 책꽃이로 책 중간중간 멈춰놓으며 탐독하는 즐거움. 왠만한 모델보다 멋져보이는 비결이다.

지금 난 책 냄새가 좋아요.


요즘은 집에서 책을 2주에 5권씩 읽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제일 큰 이유는 다독, 다상량을 통해 다작을 하고 싶어서다. 물론 양적인 다작이 아니라 질적인 다작을 하고 싶은 이유다. 어릴때부터 책이 너무 좋았고 책에 줄긋는 것, 책 보는것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고등학교때는 아예 교지편집부를 들어가 책을 발간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책과 친해졌고 책만 보면 왠지모를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책을 넘기는 손맛, 책들의 냄새를 맡으러 요즘도 도서관을 많이 찾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오래 기다려야 할 때면 멍하니 서있으면서 시간을 보내기 보단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가능한한 많은 책들을 스키밍해본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게 된 결과 이제는 글을 쓰고 생각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날로그로의 회귀가 점점 그 점유력을 높여가고 있다. 물론 3D TV다, 스마트 폰이다 하면서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사소한 즐거움과 여유를 느끼기 위해서 사람들은 회사 전체메일과 광고메일이 범람하는 이메일에서 편지를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여 따듯한 색감을 얻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많은 단말기가 출시했음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책을 찾고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급변하는 사회, 오밀조밀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책냄새를 통해 여유의 아로마를 느끼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난 책 냄새가 좋다. 앞으로도 계속 책냄새를 맡고 싶다.


날짜

2010. 6. 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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