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한창 한파가 채 가시지 않았을 그 때,
마지막 정기휴가를 나와 무작정 군산으로 향했다.
그냥 아무 이유는 없었다. 괜히 예전에 대관령을 무작정 찾았을 때 처럼 무한한 자유를 한번 느끼고 싶었다랄까.

그 흔한 맛집도, 유적도 그냥 발길이 닿는데로 다니기로 하고 군산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군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진기도 없이 무작정 가려했지만 의미 있게 벌써 5년이 넘어버린 내 디카 캐논 파워샷 S70을 꺼내들고 2005년의 그때처럼 무작정 걸어보는 거다.

소소한 기쁨을 누리면서.


군산으로 가는 도중 천안을 지나 홍성쯤으로 접어들며 차창밖에는 그렇게도 넘쳐나던 고층건물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오직 남은건 낮은 건물과 연세가 되신 노인 분들, 그리고 끝없이 삶을 일궈내고 있는 논밭과 드문드문 보이는 산 뿐이었다. 철로는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여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엔 군산이 있었다.

군산에 도착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금강 하구둑 위를 지나니 새로지은 역사인 군산역이 보였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제 군산도 많이 변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앞옆으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과 계획되어 잘 닦여진 도로는 물류항만도시인 군산의 도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옛 군산역인 군산 화물역


한동안은 많은 화물과 사람을 나르고, 만남과 만남을 대변했을 옛 군산역은 이제 한켠으로 조심히 웅크려 들어갔다. 이제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곳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시장분들을 보니 마음속 한켠의 추억을 묻어 날리는 담배연기 같았다.


화물역의 근처에는 종합시장이 위치해있다. 많은 고기들과 떡들, 간단한 주전부리를 팔고 있는 이곳 또한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게 된 것 같다. 군산역이 새로 짓기 전에는 분명 이곳에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보통 어른들은 하나의 길에서 여럿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역을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앞의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거나 주전부리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왠지 모르게 꼭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다.

그랬으니, 참새가 방앗간 그냥 스치지 못하듯 알수없는 이끌림에 시장으로 들었고 그 시장에서 복잡함 속에 오고가는 인심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웃음으로 행복으로 보냈으리라.

그렇게 시장을 나서서 한 5분만 걸어가면 군산에서 유명하다는 '복성루'라는 짬뽕집이 있다. 전국에서 온다는 짬뽕집. 사실 큰 계획을 세우고 와서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군산에 대한 이야기는 줄곧 들어온적이 있었다. 내 주위의 군산사람이 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항상 그네들의 인생 무용담을 들으면 등장했던 이 짬뽕집이 군산 사람들한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궁금해서였다.


그렇게 들어간 복성루는 이미 맛집의 대열에 올라있었다. 사람들은 많았고 나처럼 처음먹으러 온사람도 대부분이었으니 줄이 긴건 기본이었다. 혼자 온 나는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모르는 사람과 맞대어 앉아 가득담긴 짬뽕 한그릇을 먹었다.

사실 별다를 건 없었다. 다만 짬뽕그릇에 가득담긴 인심 그리고 쉴새 없이 나르는 쟁반들이 뭔가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을 보며 먹는 짜릿함! 분명 우리는 서로 말을 걸고 싶었겠지만 요즘 우리 삶은 지쳐있기 때문에 서로를 간섭하기 싫어하는 듯한 눈빛으로 오직 나에게만 집중한다.

왜, 이 짬뽕집은 장사가 이렇게 잘 되면서 점포를 늘리지 않고 그자리에서 그 좁은 공간에서 짬뽕을 만들어낼까. 게다가 재료가 다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앵간한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을 법도 했다. 무엇인지 정확한 해답은 얻지 못했지만 아마도 외지인을 많이 반기는 것 보다는 이곳을 추억해서 찾아오는 군산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짬뽕맛도 맛이지만 이곳의 추억을 맛보러 오는 경우도 분명 있을거다.

어쨌든 나에게는 여태 먹어본 짬뽕중에는 제일 맛이 있었다. 혼자 다 먹지 못할정도로 양도 많았고 빠른 회전율 덕에 오래 앉아서 여유를 즐기며 먹을 수는 없었던데다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위생적인 문제도 사실 좋지 않다. 엄지손가락이 풍덩 빠진채로 그릇을 옮겨오니까.
그러나, 왤까 이곳을 맛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것 조차도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기 때문일거다.

짬뽕을 먹고 다시 군산의 중심이라는 중앙로쪽으로 발을 옮기며 조금더 골목 구석구석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일단 아까 화물역에서 짬뽕집으로 건너오던 중 마주했던 골목들이 인상에 깊어 다시 그곳을 찾아 골목 골목을 누볐다.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만 골목의 사소한 부분까지 통찰있게 바라보면 옛 숨결이 조금씩 느껴지는 건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골목에 위치한 목욕탕들은 줄지어 일렬로 헤쳐 모여있었다. 타일도 분위기도 딱 80년대의 느낌이 나는 곳, 굳이 들어가보지 않아도 그 느낌은 짐작이 간다. 87년생 주제에 뭘 알겠나 싶지만 어렸을때 줄곳 부모님이 데려갔던 목욕탕도 이런 느낌이었다. 타일이 무성한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부모님들은 평상에 아빠다리로 걸터앉아 서로의 인생사를 풀어내는데 여념이 없었고 나는 보조의자 위에 올라앉아 이발을 했다.

아저씨는 이발하면서 어린놈이 찡얼대지도 않네 착하다며 칭찬을 했고 나는 어린마음에 더 찡얼대지 않기 위해서 괜한 자존심을 발동했다. 그리고 노란 백열구 밑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맥콜을 마시는 청량감은 지금의 찜질방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추억의 무언가였다. 항상 새벽에 목욕을 다녔기 때문에 목욕을 하고 나와 젖은 머리로 골목을 누비는 시원함은 아직도 생각이 날 정도로 그렇게 골목과 목욕탕을 좋아했나보다.

목욕탕 골목을 지나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군산의 번화가인 중앙로가 나온다. 이 쯤되니 어디서 전화가 오는데 전화상에 들려오는 목소리 하며 찍힌 번호를 보니 분명 부대에서 전화가 온게 확실했다. 바로 내 차기 후임 분대장이자 부대에서 날 제일 잘 따랐던 정호. 하도 내가 휴가나가기 전 혼자서 군산으로 향한다고 해둔 탓인지 군산은 어떠냐며 안부전화를 해왔다.

그리고는 부산 사람인 정호에게 말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옛 모습을 간직한 너의 부산 같은 느낌일꺼야"

이 말 이상으로는 더 풀어낼 수 없었다. 부산은 부산이지만 너의 어렸을 적 추억이 남아있는 부산이라는 말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이 됬을런지 궁금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발을 옮기니 더 골목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어느정도 걸었더니 닿았던 곳은 군산 해망동.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있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일본식 가옥이 군데군데 있다.


계획 없이 지도 한장 들고 오지 않고 왔던 터라 골목 사이사이를 헤메이다시피 누빈다. 그렇게 누비다 보면 빨래를 너는 아주머니 개와 산책을 하는 꼬마, 태권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학생 많은 사람들이 골목 골목에 존재감을 불어넣는다.



월명공원에는 흥천사를 비롯해 애국지사 동상과 해병대의 이리지구 전적비가 있다.


일단 길을 아려면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동네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주위분들에게 물어보니 딱 좋은 곳이 있는데 월명공원이라는 곳이었다. 일제가 중앙로와 해망동을 잇기 위해 만들었고  한국전쟁 당시엔 북한군이 연합군의 공군폭격을 피하기 위해 있었던 해망굴의 바로 위에 위치한 월명공원은 군산민들이 즐겨찾는 산책 코스요 넓은 군산을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중간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조금 쉬고 있다가 이곳에는 어떤걸 보면 좋을까 해서 내 뒤에서 쉬고 있는 노부부에게 여쭤봤다.

"죄송한데요 이곳 근처에 일본식 가옥도 많고 볼게 많다고 하는데 어디를 가면 잘갔다 왔다고 소문날까요?"


월명공원에서 바라 본 풍경. 저 멀리엔 장항제련소와 한솔제지 공장이 위치해있다.



그렇게 물었을때 사실 노부부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럼 잠깐만 이리와봐요"

예상치 못한 대답. 노부부는 제일 높은 곳으로 날 데리고 올랐다. 월명공원의 전망대 같은 흰색 건물 위. 그리고는 해망동 부근을 손으로 짚어주시면서 가면 괜찮은 곳과 동선까지 세세히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덤으로 군산에 대한 역사까지. 게다가 알고 보니 그분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것.

참 사람운도 이렇게 좋을 수는 없었다. 마치 동네 어르신에게 흥미로운 동네 전설을 듣는 것 처럼 일제시대때는 이곳이 어땠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다다미 방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장 30분간의 주옥같은 강의와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났던 군산민들은 모두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자기가 사는 곳에 자부심이 있고 잊지 않고 있다는 건 그만큼의 매력이 이곳에 있기 때문 아닐까.

"너네 동네 뭐 볼 거 있어?"
"아니 전혀 없어"

라고 말한다면, 자기가 사는 터전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이거나 눈씻고 찾아봐도 정말 갈데가 없거나 둘중에 하나지만, 요즘 그 자부심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은 한창 세계2차대전이 발발할 일제치하 당시 군량미를 수탈하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었던 곳이고, 그만큼 일본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당시의 은행들이라던지 부두라던지 일제시대 건물이 많이 남아있음은 물론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 일제시대 건물을 개조해서 살고 있다. 6.25 전후로 피난민이 이곳에 많이 모여들었던 이유도 있다. 노부부의 말을 인용하자면 부두쪽으로 나갈수록 다다미 방이 많은데, 그 다다미 방이 하나의 방이 아니라 집 하나에 가구가 나눠 쓰는 장옥 양식(일명 나가야집)이라 한쪽에서 뒤척이면 다른쪽에서 알 수 있을정도로 일체형 구조의 집들이 많으며, 그런 양식의 건물들은 해망동에 많이 몰려있으니 유심히 보면 일본식 가옥을 많이 볼 수 있을거라고 했다.

노부부가 짚어준 동선은 월명공원 우측으로 내려가 히로쓰가옥을 지나 동국사를 보고 다시 다른편 골목을 지나 뜬다리 부두 쪽을 보면 얼추 시간이 맞을거라고 해서 일단은 동국사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이 되었고 맘 속 깊이 군산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골목 골목에는 약간은 이질적인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띈다. 그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히로쓰 가옥이다. 내가 알고 있는 군산 출신 형의 친구가 여기에 살았다던데,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있다. 일본 가옥이 필요한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복원 공사중에 있다.


히로쓰 가옥을 등지고 조금만 나오면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가 나온다. 일제시대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국사.


이전에는 금강선사로 불렸던 일본식 사찰, 1877년 메이지천황, 그리고 정한론이 대두될 당시 일본의 요청에 의해 들어와서 일본인 스님에 의해 창건, 운영까지 되었던 곳이라 일본식 정원이라던지 일본 사찰의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일제시대의 잔재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곳 해망동, 월명동, 금광동 일대에는 일제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굳이 비교를 하자치면 예전에 갔던 일본여행의 요코하마가 떠오른다. 요코하마도 개항이 이루어졌던 동네라 외국인 묘지라던지 가옥이 많았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생활 깊숙히 있지만 관광지로 이용하지 않았고 요코하마는 철저히 관광지화를 시켰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에겐 일제시대가 뼈아픈 역사이기 때문일까, 이곳은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되지는 않았다 다만 흔적만 남아있을 뿐. 아마도 이곳 주민들의 입장으로 봤을때 개발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이곳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살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도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군산내항쪽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장기(나가사키) 18은행, 최근엔 대한통운이 사용했다던데, 이곳 또한 일제가 수탈의 목적으로 설립한 곳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구 조선은행 건물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 유흥업소 건물로 쓰였던 데다가 여러차례의 화재로 훼손이 심해져있다. 지금은 복원을 하고 있다는데, 복원중이라기엔 너무나 허술하다.


구 조선은행 건물 뒤로는 군산 내항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쭉 늘어선 철로는 아마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과 우리의 아픈 연결고리였을거다.


내항 곳곳에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쉽사리 끊지 못하는 여러 건물들이 보인다. 그 중에도 바로 군산 세관이 있었는데 1993년까지 사용이 되어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고 서울역 건물과 더불어 서양고전양식 3대 건축물로 손꼽힌다고 한다.


어쩐일인가 세관은 문이 닫혀있다. 오히려 반대편에 군산시립박물관 공사는 분주하고,



조금 걸어 군산 세관까지 갔건만 시간이 늦어서인지 아님, 관람 예약을 하지 않아서인지 문이 굳게 닫혀있는 세관건물. 하는 수 없이 다시 내항으로 돌아와 뜬다리 부두를 가봤다. 이 또한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군산 개항의 역사는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불운이겠지.


뜬다리 부두를 지나면 진포해양공원이 눈에 들어오는데, 전투기, 함정등 재밌는 볼거리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데다 문화해설을 해주는 여행안내소가 있어 여행을 온다면 이곳에서 부터 시작하면 편한 동선으로 여행 할 수 있을 듯 하다.



늦은 오후 다시 해망동으로 걷는 길은 약간 스산했다. 중간중간 보이는 수산시장은 새벽이 아니라 그런지 또한 스산했다. 언제부턴가 이 스산함을 벗삼아 걷기 시작했다.
새만금이 보이는 비응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해망동 언저리 어느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배차시간이 30분이나 되는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던 도중 내 옆에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시는 듯한 할머니 한분이 앉으셨다.

할머니는 조용히 있는 내게 넌지시 물어보셨다.
"학생은 여행왔는가벼?"

아무래도 신기했는 듯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할머니도 손녀가 캐나다에 갔는데 혼자 여행하는거 요즘 학생들은 참 안무서워한다며 대단하다 하신다. 당신은 심장이 떨려 못하겠다며,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내시며 내가 가는 비응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무슨 버스를 타면 되는지 세세하게 일러주신다. 그리곤 홀연히 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시고.

또 난 그 적막함을 느끼며 마주오는 버스를 잡아타고 비응항으로 간다.


비응항으로 향하는 길은 계속 이런식의 풍경을 보여준다. 끝이 없는 평야는 분명 갯벌이었을 터, 항구가 가까워지면 멀리 보이는 대규모 공장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날의 비응항은 안개가 자욱했다.
원래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서도 비응항의 시계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비응항에서 마주한 소소한 기억들은 잊지 못한다. 안개에 가려 어디까지 이어질까 알지 못하는 새만금 도로, 푸른 안개속에서도 조업을 하는 배들. 그리고 스산함이 감도는 항구의 풍경. 분명 항구는 새로 개발되어 깔끔한 모습을 갖고 있지만 이곳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그 많은 배들인 듯 싶다.

비응항의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나, 그리고 잠시 여행 온듯한 부부 한쌍은 그렇게 비응항을 기억하고 있겠지.

난 다시 고개를 돌려 군산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다.
그렇게 잠이 들고 눈을 뜨니 어느새 터미널을 지나고 있다.

무계획으로 군산에 와서 참 여러가지를 보고 간다. 그 유명한 빵집이라는 이성당도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고 철길마을은 알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생업과 삶을 조망해보고 싶진 않았다. 그건 왠지 훔쳐보는 것 같아서다. 게다가 군산엔 은파 관광지나 이영춘 가옥, 그리고 여러 코스로 이루어진 군산 구불길 등 볼 것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덜 했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아까의 복성루 맞은편에 위치한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난 다시 내 할일을 위해서 군산역으로 돌아간다.

군산역으로 돌아가 막상 기차를 타려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군산역에서 연결되는 구불길의 존재감때문일까, 마지막으로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구불길. 이 구불길의 코스는 군산을 올 때 장항과 연결해줬던 하구둑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논밭을 거닐다 보면 만나게 되는 금강.
금강에 걸터 앉아서 군산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생각 또 생각, 깨닳음 까진 아니지만 군산을 앉아서 정리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다시 군산역으로 돌아오며 지나게 되는 아까의 논과 밭.
군산의 끝과 시작을 길로써 시작하고 길로써 맺게 되는구나.

그렇게 군산의 무계획적인 방문은 어쩌면 여러가지를 본다는 여행의 측면에서는 미완성일수도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꽉 찬 여행이 되었다. 군산에서 본 여러사람들과 그들의 생각을 들어본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노력 자체도 쉽사리 드는 생각도 아니다. 다만 내가 혼자 여행을 했고 혼자 걷다보니 난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봤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외로움을 달랬던 것 같기도 하다.

군산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꽉 찬 여행으로 기억되는 걸로 봐서는
적어도 내겐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자부한다.

날짜

2010. 9. 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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