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이었다. 전날 술에 잔뜩 취해서 새벽에 들어왔더니 집에서는 분주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어디로 떠날 것 처럼.
신발을 벗으려고 끈을 푸는데, 잊고 있었던 약속이 생각났다
“아 맞다! 오늘!!!! 가족여행을 하기로 했었지!!!!!!!!”
정말 오랜만에 하는 가족여행인데, 군 제대 이후로 매 여름마다 여행을 가자고 내가 먼저 말해놓고. 순간적으로 이런 큰 약속을 잊고 있었다니......
그날 우리가족이 선택한 여행지는 바로 ‘통영’
사실 통영으로 갈 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원래는 홍천으로 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통영이라니?
그런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우리가족은 곧장 통영으로 향했다.
집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멋진 경관이 병풍처럼 펼쳐져있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아서 탁 트인 도로가 청량감을 더해준다. 우리가족은 연신 우와 우와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리산 고개가 보이는 산청을 지나 진주에 닿으면 통영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증거, 통영과 거제가 나누어지는 곳에서 통영으로 빠져나오니 전형적인 어촌의 바다내음과 옹기종기 붙어있는 건물들, 멋진 야경이 펼쳐진다.
바로 이곳이 통영이구나!
통영대교를 지나 해저터널방향으로 방향을 돌리면 통영 회센타가 밀집한 곳으로 유명한 미수동이 나온다. 우리는 그곳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횟집에서 회를 먹었다. 횟집에 들어서니 사람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는 듯 솔직히 다른곳으로 갈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왕 멀리까지 왔고 먹을건 잘 먹어야하니 추천을 받아서 왔으니 한번 속는셈 치고 기다려보자 해서 횟집에 들어섰다. 여전히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서빙하기도 벅차보였던게 사실이었지만 왠만한 것은 정시에 서빙이 되었고 심지어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손질이 필요한 횟감은 직접 손질해주었으며, 처음보는 해산물들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분명 이렇게 유명하고 잘 되는 맛집이라면 으레 불친절한 곳이 대부분일거라 여겼건만, 이들의 친절한 서비스 때문인지 맛도 너무 좋았고 통영 전체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인근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 눈앞에 펼쳐질 통영의 풍경이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나!
다음날 아침일찍 밖에 나오니 통영항은 벌써부터 관광객을 실어나르는데 여념이 없다. 설레임과 로망을 가지고 그들은 어떤 섬으로 떠나는 것일까? 통영에 오면 꼭 해봐야 할 것으로 보통 해저터널, 동피랑 마을, 통영 케이블카를 꼽는다. 거기다 덧붙인다면 소매물도로 가는것도 포함되어있다.
SNS를 이용하여 통영에 왔다고 하니 다들 하는 말이
“오빠 소매물도는 꼭 가보셔야해요, 그곳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가보셔야 하는 곳이요”
“형! 거기서는 꼭 케이블카를 타야죠”
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일정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몇군데만 정하기로 했다. 일단 첫번째 여행지는 통영 케이블카를 타는 것과 내려오자 마자 소매물도로 향하는 루트가 괜찮아보였다. 통영항에 차를 세워두고 배를 타고 거제로 가서 시내버스를 타고 거제 여행을 한 다음 통영으로 다시 돌아와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그때만해도 정말 완벽한 루트라고 자화자찬 했다.
그때, 아버지가 어디에 전화를 걸었다. 친구네 가족도 이쪽으로 여행을 온다고 했다는게 갑자기 기억났다면서.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를 대충 판독해보니 벌써 통영에 와있다는 아버지 친구분 가족들.
“오. 마.이.갓!”
그렇게 일사천리로 케이블카를 같이 타기로 했다.
아침에 찜질방을 나설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른아침부터 밖으로 향해서 왜 이렇게 빨리 움직이나 했었는데, 다들 케이블카의 줄이 너무 길것 같아서 일찍이 움직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도 나름 빠르게 준비해서 케이블카로 갔는데 주차장 밖까지 일렬로 주차된 케이블카 승강장. 얼마나 사람이 많을지 간담이 서늘하다.
통영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으로 올라가면 정말 아름다운 한려수도해상공원을 조망할 수 있다고 했는데, 블로그에 올라온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서 기대에 폭 잠겼었다.
허나, 막상 가보니 구름이 똭! 산 중턱부터 걸려 있고 티켓을 끊을때 직원이
“올라가셔도 아무것도 못보신다는 건 생각하셔야 합니다”라고 경고를 했다.
에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케이블카를 안타는게 말이 되나 싶어서 왕복 9000원이나 하는 케이블카 왕복을 구입했다. 물론 아버지 친구분 가족이 도착하면 같이 타려고 2장을 더 구매했다. 이윽고 우리차례의 번호가 생각보다 빨리와서 아버지 친구분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셔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뒷편에서 스윽 등장한 아버지 친구분.
난 아버지 친구분이 한둘이 아니라서 어떤 분인가 궁금해했는데 한 4살때였나, 우리가족과 설악산 여행을 가셨던 그때 그분들이었다. 또 아름답게도 부부끼리 여행을 하고 계신다는데, 나도 꼭 저렇게 늙어야 겠다고 부러움의 눈빛을 보낸다.
역시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전망대는 하얀 백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자세히 봐도 섬은 보이지 않고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구름 안에 있는 수분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도 이걸 알고 케이블카를 탔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다음에 또 통영에 오면 되는거니까, 올라가서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달달한 꿀빵을 사서 먹었다. (아이신나!!! 왕 신나!!) - 추신 : 통영꿀빵은 크기가 커서 꼭 쪼개드셔야 합니다. 아메리카노와 먹으면 참 맛있어요.. 그러나... 그냥 먹으면 좀 단맛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건 생각보다 경사가 있어 땀이 꽤 나는 정도다. 그곳을 다녀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부모님이 조금더 나중에 오면 그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한마디 건네신다.
“엄마, 걱정마세요 제 경험에 의하면 아마 오늘 하루종일 저 구름 없어지지 않을겁니다” 정말 나중에도 다시 이곳을 지나칠일이 있었는데 이 산에 걸린 구름 한번 걸렸다 하면 잘 안사라진다.
내려와서 이제 소매물도를 가기위해서 여객선 터미널로 이동해야 한다. 아버지 친구분 내외와 헤어질시간이 되어 작별의 인사를 하려고 음료수를 마시며 루트를 공유하는데, 차라리 그럴바엔 거제도로 자차를 타고 넘어가서 저구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게 시간도 적게 걸리고 섬에 들어갔다 나와서 여행지도 가까이 있으니 접근성이 편리하다고 하시며 거제도로 가는 루트를 제안하셨다. 마침 그 내외분들도 거제도를 가려던 참이었는데 소매물도에 가면 함께 하겠노라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좋아! 그래 그럼 거제도로 가서 소매물도로 가는 편이 좋겠다!”
이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바로 부릉부릉 차를 끌고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충무깁밥집에서 맛있는 충무김밥을 먹고 바로 거제도로 향하기로 했다.
3대째 운영중이라는 충무김밥집, 여객터미널 근방에는 정말 많은 곳이 밀집되어 있었다. 이중에서도 할머니 충무김밥집을 찾았는데, 난생 처음 먹어보는 충무김밥의 아담함과 같이 나오는 김치종류가 눈에 띄었다. 충무김밥에는 속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걸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이고 맛이 아주 특이한 편은 아닌데 자꾸만 끌린다. 심지어는 소매물도가는 사람들도 포장해서 오곤 하더라.
충무김밥을 먹고 시내를 빠져나와 신거제대교를 지나면 금방 거제도에 진입하게 된다. 중간에 보이는 거제도 관광안내소에 들려 각종 안내서를 받아 저구항으로 향한다. 구비구비 시원한 풍경과 어우러진 커브길들 자칫 너무 구불구불하면 어지러울법도 한데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쐬며 거제도를 만끽한다. 학교 수업때 배운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도 이곳에 위치해있다. 아아. 이곳이 유명한 쇄빙선인 바실리 딘코프가 만들어진 곳이구나. 또 감탄한다.
거제도의 관광자원은 대부분 제일 남쪽에 몰려있다. 청춘들이 많이 찾는 학동몽돌해변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풍차와 잘 조화된 바람의 언덕,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볼 수 있는 해금강등이다. 그래서 인지 저구항까지 약 6키로정도 밀리기 시작한다. 가끔 밀리는 구간이다 보니 곳곳에 옥수수를 팔거나 뻥튀기를 파는 노점상이 보인다. 옥수수를 하나 사서 가족끼리 한입씩 베어먹으니 밀리는 것도 감성넘치는 낭만으로 바뀐다.
저구항으로 가는 길은 정말 헉소리나게 아름답다. 다대리부터 시작하여 마을 마을마다 푸른 산에 둘러쌓여있고 바다와 너무 아름답게 조화되어 이게 우리나라가 맞나 싶을정도. 저구항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정말 자그마한 항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것 보다 자연과 너무 잘 조화되어 작은 미항처럼 보인다. 소매물도에 들어가는 배삯은 1만2천원. 왕복 2만원정도 한다. 줄이 길게 늘어선 매표소에서 1시 30분 표를 끊고 나오는 배편은 5:30분으로 정했다. 보통 이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천천히 걷다 오기로 했다.
배를 타러 가는 길, 길게 뻗은 둑에는 할머니들이 각종 해산물을 팔고 계신다.
“할머니~ 소매물도 어때요?”
“내가 여기에 살고 있지만 항상 가도 너~어무 아름다운 곳이지!”
기대된다!
날씨도 좋다.
배는 서서히 떠난다.
설렘을 가득 싣고 난생 처음 자그마한 섬으로 배를 타고 떠난다.
소매물도로 가시는 분들은 유람선 터미널이 아니라, 통영항에 있는 여객터미널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http://tongyeong.go.kr/01about/05_01_06.asp
통영관련 맛집 링크
http://monotraveler.com/229 (미수동 궁전횟집)
http://monotraveler.com/230 (통영 밀물식당 - 여객터미널 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