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시, 알람이 필요없이 깰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때 맞춰 이동하니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게 된다. 처음 겪어보는 고산증에 몸도 마음도 힘들다. 특히 두통은 가시질 않는다. 약을 복용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그냥 자연스런 신체현상이기에 굳이 약을 먹지 않았다. 모두가 헤드랜턴을 끼고 산장을 나선다. 헤드랜턴이라고 해봐야 모바일폰에 부착된 플래쉬가 전부. 그것에 의지해서 사람들을 따라나서는 수 밖에 없다. 산 아래부터 산장까지도 꽤나 가파랐는데 지금은 더욱 가파러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계속 질문하게 된다.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하하. 


그래도 다행이 우리 빼고는 모두가 제대로 된 산행장비와 랜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랄까? 산행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속도가 있고 패턴도 있는데, 그 랜턴행렬을 잃어버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쫄래쫄래 따라간다. 가이드 마이킨도 무슨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우리를 뒤따른다.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여 새벽 야간산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미끄러지는 사람도 속출하거니와 고도가 높아질 수록 점점 추워져서 체력이 두배로 드는 것 같다. 그리고 헐떡임이 조금 더 늘어난 것 같다. 숨을 쉬기 힘든거야 산장에서 잘때부터 느꼈지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패턴이 빨라져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산소가 부족하기에 잠이 온다는 것이다. 자꾸만 잠이 몰려왔고 줄에 의지해서 올라가는 구간을 비몽사몽하며 올라간다. 1박 2일로 해결할 수 있는 코스라고 굉장히 만만하게 봤는데,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숲이 사라지고 바위만이 남는데 그 지점에서 너무 피곤이 몰려와 잠깐 굴같은 곳을 찾아 쉬기로 했다. 규환형은 저 멀리 오는 것 같고 형을 기다려야겠다 싶어 굴속에 들어가서 쉬는데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이곳에서 잠이 들어버리면 호흡곤란과 더불어 체온이 급격하게 하락해서 생명에 위협이 올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행이 잠이 들고 나서 마이킨이 나를 어떻게 찾아내서 깨워서 망정이지 키나발루산에서 영영 세상과 작별을 고할뻔 했다. 


우리는 이렇게 큰 산을 산행한다는 것 자체를 그저 젊은이의 '도전'쯤으로 생각하고 굉장히 쉽게 왔는데, 100명의 무리에서 어느순간 제일 뒤쳐진 2인으로 기억될 것 같다. 서서히 밝아지는 것 보니 태양이 뜨려 하고 있다. 앞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며 끙끙대며 올라가고 있던 내 시야를 통해 어떻게든 올라가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준다. 

















모두가 점으로 보이는 순간, 그 중에는 정상에 이미 다녀온 사람도 있다. 하산 하는 사람들마다 정상에 구름이 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난리다. 구름이 정상에서 걷히지를 않는다. 정상에서 보는 일출과 그 풍경을 보고 싶었던 우리로써는 아쉽기 그지 없다. 그래도 처음 밟아보는 4천미터의 대지와 처음 맡아보는 바람내음은 역시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아픈 머리를 깨워주고 힘들지만 뿌듯함을 가져오는 힘이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하산을 하고 있다. 점이 되버린 사람들은 더 작은 점이 되어가며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쉬움을 가지고 돌아간다. 정상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는 비교적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한 시각은 약 8시 30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규환형, 마이킨 이렇게 세명이서 이 화성과도 같은 광활한 정상에서 점을 만들어 일사분란하게 더 높은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정말 거짓말같이 구름이 걷히려 하고 있었다. 







조금씩 파란 대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조금만 더 기다리고 하산하자고 생떼를 썼다. 그리고 이윽고 따스한 햇빝이 강렬하게 내려오자, 구름은 깨끗히 걷혔고 우리에게 그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이킨이 그랬다. 정말 행운이라고. 



























산 정상에서 우리는 한 삼십분을 멍하니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 풍경을 보고 "우와" "이야~" "진짜~" 라는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었다.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그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만 할까 싶어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4095m 인 키나발루 정상까지 찍을 수 있었다. 규환형에게 나중에 물어보니 고산이라 나처럼 잠도 오고 머리도 아팠다고. 다시 하산하면 괜찮아 지겠지!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한다. 하산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한다. 바닥에 물기가 있어 미끄러지기 쉽고, 그래서 더 부상의 위험이 높다. 우리가 하산할때도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산 중턱에 이렇게 가이드들이 포터역할도 하고 있다 Copyright by Gringo




하산하면서 본 신기한 식물 Copyright by Gringo








천천히 하산하여 라반라타 산장에 도착했다. 잠시 쉬기 위해 마일로 한잔과 커피 한잔을 시켜 몸을 녹인다. 라반라타 산장 쯤오니 아파오던 머리가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 같다. 


다시 자갈과 흙길이 시작되니 하산하는것이 점점 수월해진다. 하산하며 연신 꽃과 나무 사진을 찍고, 가끔 내리는 스콜을 견뎌가면서 다시 팀폰게이트 근처까지 도달했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필리핀 친구들과 산악회 아주머니 아저씨들. 그래도 잘 다녀왔네 하며? 격려를 해주신다. 


"아주머니 아저씨, 저희는 내일부터 그냥 리조트에서 푹 쉴꺼에요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게 그냥 쭈욱!" 


산악회에서 오신 분들은 내일부터 호핑투어를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오셨다. 한편으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께 죄송해졌다. 우리 부모님도 이곳에 모셔오면 참 좋을텐데 하는 것. 그 바람이 곧 이뤄졌으면 좋겠다. 









하산하고 나면 마지막 식사를 할 수 있다. HQ에서 얼마 걸리지 않은 곳에 부페가 준비되어 있고 마음껏 식사할 수 있었다. 두끼 분량을 모두 해치우고 나니 힘이 쭉 빠지면서 이제 쉬어야 할 타이밍이라고 몸이 먼저 알려온다. 리는 이날 최대한 많이 먹고 남은 돈으로 또 한번의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하산하여 오피스에서 키나발루 완주 증명서를 받는다.(유료) 이름을 직접 검정색으로 써주는 증명서를 받고 나니 내심 굉장히 뿌듯해진다. 이제 마지막으로 어떻게 시내를 다시 가느냐에 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식사때 같이 동행했던 유쾌한 필리핀 친구들을 만나 함께 시내로 가자고 약속해뒀다. 그 무리중에 인도네시아 사바섬 로컬친구까지 있었으니 흥정도 어렵지 않았다. 같이 동행했던 필리핀 친구들, 알고보니 한명은 독일계 은행 근무 한명은 아티스트였다. 고프로가 붐이 아닐때에 그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곤 했었는데 역시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가이드는 카우치 서핑 호스트라고. 그때 카우치 서핑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내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 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나중에 공개!)


그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고 나와 다시 코타키나발루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연구했다. 시간대마다 얼마 없는 버스들이 있거나 아니면 택시를 쉐어해서 가야 했는데 우리 5명이서 모여 승합차를 부르고 140링깃으로 합의를 보고 키나발루 시내로 떠난다. 


2시간 남짓하는 이동시간 동안 모두가 골아떨어졌다. 1박 2일의 고단함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듯 하다. 친구들은 가장 중심에 있는 센터포인트에서 내리고 우리는 가벼운 인사를 고하고 다시 택시를 40링깃에 흥정하고 보르네오 호텔로 떠난다. 사실 35링깃에 탔었다고 끝까지 우겼는데 원래 40링깃이었다고 하는 택시기사. 그날은 힘들어서 더이상 흥정할 힘이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모든게 꿈만 같다. 당일날 아침만 해도 우리가 정상에 있었다니 하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이제 해변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다음회에 계속!



날짜

2015. 1. 3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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