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태국일정이 마무리 되는 날, 오늘은 반나절 여행이 아니라 거의 하루를 쏟아야 할 수 있는 여행이다. 콰이강을 갔다가 죽음의 열차를 타고 코끼리 농장을 갔다가 사이욕 폭포를 들르는 일정. 가장 기대가 되었던 것은 바로 콰이강의 다리다. 옛날 영화기는 하지만 예전에 한번 챙겨본 적이 있었는데 그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가본다는 것은 여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칸차나부리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아침 일찍 숙소 밖을 나서니 꽤 많은 사람들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눈에 띄는 빨간 잠바를 입은 조용한 학생을 만났는데, 알고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수염을 좀 길러서 다른 나라 사람인가 했었는데, 다행이도(?) 한국어를 하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아침에 봉고차가 오는지의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서 항상 일행이기를 바라며 물어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통성명도 하게 되고 알고보니 나이도 동갑이어서 말을 놓기로 했다. 용호라는 이 친구는 생각을 정리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를 돌다가 카오산 로드에 정착했다고. 오랜만에 말동무가 생겨서 재밌게 여행하겠다.
밴을 타기 위해 차 옆으로 다가가니 우리의 일행인 듯한 영국악센트를 쓰는 여자애들과 일본친구들이 눈에 띈다. 영국에 갈 예정이라 살며시 말을 걸어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벽은 있다. 당췌 뭐라고 하는지 원.. 미국영어만 배워오던 나는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첫번째 도착한 여행지는 칸챠나부리 유엔군 묘지다. 2차 세계대전이 이뤄지던 1942년에서 1945년까지 3천명쯤 되는 유엔군이 미얀마와 태국 간 철도와 콰이강의 다리 공사 중에 사망했는데 그들을 추모하는 공동묘지로 묘지마다 그들의 친구들이 남긴 메세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강제동원된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비극을 통해 이슬처럼 사라진 이 곳에서 조금이나마 오늘 여행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기로 한다. 이 후 도착한 곳은 철도 박물관이나 이곳은 철저히 커미션을 위해서 운영되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위트가 넘치고 영어를 잘하는 가이드는 참 좋았으나 영국에서 온 여학생들에 대한 질문만 받아주고 다른 사람들을 은근슬쩍 차별하는 것 같아 사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 여행루트는 사실 일본과 많은 관련이 되어있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때 이곳을 기지삼아 인도를 공격하기 위해서 버마(미얀마)까지 총 400km에 이르는 물자이동 철로를 만들게 되는데 콰이강의 다리를 통해 죽음의 철도가 이어지는 구간이 이에 해당한다.
지금은 이렇게 관광지로 사용되고 있다지만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비극적인 곳으로 이 다리의 건설을 통해 죽어간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포로가 정말 많다고 전해진다.
콰이강의 다리를 찾는 관광객은 많으나 그들이 과연 정말 역사를 알고 찾아오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긴 한다. 그냥 유명하니까 왔겠지 싶은 경우, 여기는 그냥 포토스팟일 뿐이다. 사진상으로 그냥 멋져보여서 왔다면 조금은 아쉽다. 미리 알고 오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콰이강 다리 앞에는 기차 정류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기차가 약 1시쯤에 출발한다. 관광객이 타는 기차가 아니라 현지인도 이용하는 기차다. 죽음의 기차길 구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일단 목이 말라 근처 슈퍼에 가서 콜라를 하나 사가지고 기차를 기다린다. 콜라를 사는데도 친절을 보여주신 아줌마덕에 안그래도 날씨도 너무 좋은데 기분까지 화사해진다. 콜라를 먹으면서 더듬더듬 잘하지 못하는 일본어로 일본친구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들이 이 열차 구간을 알고 있을까? 하지만 굳이 불쏘시개로 불을 지피고 싶지 않았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이 어린 일본친구들은 캄보디아에서 막 넘어왔다며 사진들을 보여준다. 아름답다. 이 친구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태국에 온 이후로 처음 맑은 하늘을 만끽한다. 아무래도 내가 우기에 온 것 같다. 시도때도 없이 스콜이 내려대니 피곤이 가중되는 느낌이었는데 오늘만큼은 그런게 없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기차안의 현지인들도 좋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좋다.
용호와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얘기는 일단 비밀로 하고, 우리는 나름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여행메이트가 되었다. 같이 더 여행을 했으면 참 좋겠는데 내가 다음날 육로로 캄보디아에 가게 되어서 참 아쉬운 순간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비전도 있는 친구라 참 배울 점이 많았다.
죽음의 열차길은 정말 가파르고 아슬아슬하게 지어졌다. 열차에서 내리면 바로 점심식사가 진행되는데 맛은 그럭저럭이었다. 뭐 그래도 저렴한 투어비에 가성비는 있다고 해야겠다.
이 식사를 마지막으로 일본친구들과 서로 작별을 고하고 헤어진다. 서로 대행한 에이전시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합쳐지는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 다음은 코끼리 농장에서 코끼리 체험을 하고 뗏목을 따라 강을 내려가는 것이었는데 사실 즐겁기는 즐거웠으나 코끼리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일이 코끼리에겐 생각보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며 꽤 힘든 노동이라고 한다.
일본친구들을 다시 만나 짝을 이뤄 이동한다. 용호는 미국 뉴욕에서 온 포토그래퍼 누나와 동승해서 더 즐거워 하는 눈치다(?) 아무튼 날씨가 너무 좋아 코끼리 트래킹하는 것은 사실 재밌었다.
이렇게 뗏목을 타고 내려오면 다시 벤이 대기하고 있다. 벤을 올라서면 마지막 여행지인 사이욕폭포로 떠난다. 폭포라고 해서 굉장히 클 것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간단하게 물장구 치기에는 적합한 곳이다. 의외로 많은 현지인들이 이곳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상상하던 열대우림의 그 폭포다. 왠지 어딘가에서 심바가 나타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폭포라고 할까, 주어진 시간은 굉장히 짧은 30분이었으나 나름 재밌게 즐기고 왔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나면 대충 4시정도 된다. 나름 이 투어는 알차게 짜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제한된 시간에 많이 봐야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투어를 택한 것이었는데 나름 좋은 친구도 사귈 수 있었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한다. 패키지로 여행하는 것과 아닌 것에는 장단점이 각각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정말 힘든 여행이 될 경우에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경우도 생겨난다. 정신없이 일정에 치이다보면 생기는 그런 문제점을 한 20프로 메꿔주는것이 패키지 여행이 아닐까. 그래도 난 아무래도 패키지보단 개별여행이 더 좋기는 하다. 뭔가 예상외로 일어나는 순간들을 즐기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이곳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꼭 그렇게 해보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