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6/2014 (Day 5) Puenta de Reina -> Estella

 

이렇게 잠을 편하게 그리고 따듯하게 자본게 참 오랜만이다. 아침이 보는 Puenta de Reina 는 그 어떤 풍경보다도 조화로웠다. 오늘은 어제 만난 기봉이와 함께 걸었다.

 

(아름다웠던 Puenta de Reina 앞에서 한 컷, 배낭위에 왠 봉지같은건 보카디요를 위한 바게트빵)

 

"오늘 걷다가 혼자 걷고 싶음 말씀하셔도 되요" 혹시나 누가 될까 먼저 말해주는 기봉이. 억지로 권하는 배려가 아닌, 정말 우러나와서 하는 배려는 정말 듣기 좋다. 항상 남이 까미노에 오게 된 계기를 듣기만 했지 내 이야기를 해 볼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간만에 내 여행이야기를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한다. 훨씬 마음 속 감정을 전달하기 좋은 우리말..

 

이야기는 뭐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상 했던 얘기다. 사람들을 만나는게 좋아서 여행을 시작했고, 까미노를 여행하는 이유는 정작 나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함을 느껴 오게 되었다는 것..

덕분에 까미노에서 내 여행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첫 날을 제외하곤 계속 날씨가 좋다. 스페인이라 그런지 정오가 되면 따끔할때도 있지만 이내 따듯하게 감싸안아주는 그런 햇살이다.

Puente de Reina 부터 다음 목적지인 에스테야까지 가는 길은 힘들지 않은 길. 적당히 그늘이 있고, 적당히 멋진 경치도 있다. 이런 경치를 즐기면서 기봉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까미노 온 거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왜?" 나는 되물었다.

 

"사실.. 원래는 까미노를 올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유럽여행을 숙제처럼 하다보니 너무 지치는거죠. 그래서 까미노를 알아보다가 3일만에 오게 되었어요. 저도 모르게 갑자기 결정해서 온거라 뭐 기대도 안했지요"

 

이야기를 듣고보니 기봉이는 원래 친구랑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파리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다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따로 여행을 하게 되었고, 카미노를 가기로 결정해 생장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생장에서 순례자 등록을 하려다가 친구와 자신의 여권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친구한테 페북 메세지를 넣었지요. 친구는 스위스에 있으니까 프랑스 남부쯤에서 만나자고 했고 저는 여권없이 국경을 넘는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파리에서 다시 보자고 했어요. 결국 파리에서 보기로 하고 그날 바로 100유로나 써서 생장에서 다시 파리로 올라갔지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페북 메세지를 열었는데 친구가 우편으로 보내겠다는거에요. 완전 그때 분노를 했죠. 친구는 아마도 제가 이기적이고 독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하는구나 했을거에요... 그 맘이 이해안되는건 아니지만...결국 저도 열이 받아 다시 생장으로 돌아왔어요"

 

전화상으로 심하게 다투고 난 후 기봉이는 분노가 가득한 마음으로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다 운명이었나라는 생각이 근래에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까미노에 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나도 만나고 뭔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까미노를 걷다보니 왠만한 유럽여행보다 더 좋다고 했다. 아무 기대도 없이 왔고, 아무 계획도 없이 왔다보니 가방은 무지하게 가볍고 마음이 점점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혼자 여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재미를 얻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가방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운 기봉이가 내심 부러웠다. 그에 비해 나는 용기가 없다. 가방은 아직 10kg가 넘고 어느것도 버리기가 싫다.

 

이 짐을 모두지고 러시아를 거쳐 한국까지 가야한다는 하나의 '사명'(?)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지만, 짐은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난 완벽히 까미노를 걸었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까미노 중간에 만난 귀여운 마을 Cirauqui)

 

풍경과 이야기를 벗삼아 계속 걷는다. 기봉이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조금씩 교환하고.. 어쩌다 우리는 같은 학교임을 그리고 우리과 건물 뒤에 있는 건물에서 공부한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우연이 있나. 우스갯소리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긴 아직 멀었으니 네가 내 수강신청까지 해줘라 라는 농담도 던졌다..(그런데.. 시...실제로 기봉이가 대신 수강신청까지 해주었습니다....)

 

 

 

기봉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혼자서 길을 걷고 싶어졌다. 이어폰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넣고 길을 걷고 있으면 세상 모두가 내가 만들어 놓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기분들이 참 좋다.

 

기봉이와 걷다가 조금 속도를 내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까미노 중간에 Cirauqui라는 마을을 만났다. 마을을 돌면서 아이들이 '올라(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면 나도 반갑게 인사도 해본다.

항상 만나면 유쾌하게 대해주는 비올레타를 만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눠보고 한다. 비올레따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파리로 이민와서 디자이너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재였다. 잠시 휴식을 갖고자 스페인 북부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San sebastian 에 들렀다가 버스를 타고 까미노에 오게 되었단다.

 

이렇게 까미노를 걷는 사람 하나하나마다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다.

오늘은 까미노를 걸은 지 5일째 되는 날. 이쯤 되니 항상 만났던 사람들을 계속 마주치게 된다. 이름은 서로 잘 모르지만 옆집 사는 이웃보다 더 밝게 반겨주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이 길을 걷게 만드는 에너지가 아닌가 싶다.

(까미노 위에 있는 마을들은 대부분 아기자기한 마을들이다. 적당히 그늘이 있고, 적당히 골목안에 웃음소리가 들리는.. 기분 좋은 마을이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데코레이션을 볼 때마다 웃음이 지어지는 마을이다)

온전히 나를 위해 걸어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Buen Camino!'라고 인사하며 여유도 부려본다.

세계지도가 그려진 평원.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참 의미있는 예술(?) 작품이다. 까미노에는 이렇게 작은 선물들이 있다. 첫날에는 하쿠나마타타가 적혀진 돌이 그랬고... 의미있는 세계지도. .앞으로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하시모토 상을 만났다 "하시모토 상 잘 걷고 있네요?" 그런데 어딘가 불편한 분위기다. 다리가 불편해보이는 하시모토 상. 어디서 다친거에요?

 

"내리막에서 조금 발을 접질렀는데..."

 

그래도 그녀는 이내 괜찮다며 당당히 걸어간다. 정말 괜찮을까 걱정되면서.. 에스테야에 가시면 꼭 병원을 가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뒷모습은 어쩐지 그날따라 더 당당해보였다. 그녀는 뭔가 이곳에서 해야하는 일이 있는걸까?

날짜

2021. 5.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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