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6/2014 (Day 6) Estella -> Torres del rio

 

에스테야에서 토레스 델 리오는 Los Lagos 라는 마을을 지나야 갈 수 있는 곳으로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는 구간이다.

 

아침, 사람들이 엄청 분주한걸 보니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다. 시간을 보니 새벽 6시 대충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빵과 차가 한가득 차려져 있다.

 

아니 무슨 도네이션 알베르게인데 이렇게 좋을수가 있지? 처음에는 기부제라길래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아 베드버그(침대에 사는 벌레)가 많고 서비스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호스피탈로도 너무 친절했고 고마워서 알베르게를 나설 때 기본 요금보다 두배나 되는 도네이션 비용을 지불했다.

 

알베르게를 나서면서 아저씨와 사진을 요청했다.

알베르게를 나서자마자 아저씨와 찍은 사진. 아저씨 무챠 그라시아스!

 

오늘은 6시 30분 쯤에 공립 알베르게에서 모이기로 했다. 모두 함께 이라체에 있는 와인 수도꼭지로 가기 위해서였다. 까미노에서는 꽤 유명한 와이너리로 순례자들에게 와인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문 앞에 모두 모여 친구들과 함께 출발했다. 에스테야에서 이라체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마침 주비리에서 물통을 하나 샀는데 전체를 채우는건 민폐고 딱 1/3 정도만 채워서 길을 걸으며 마셔야지 라는 욕심쟁이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도착한 와인 샘. 왼쪽은 와인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물이 나온다. 와 씐난다.

신이난 나는 수통에다 와인을 담아 다른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다음 사진). 정말 와인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정말 와인이 나온다. 다들 신기해하기도 하고.. 조금씩 취하니까 기분도 좋...아지는거 같은데.. !

 

이 와이너리는 꼭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슈퍼에서 와인을 발견하면 꼭 한 병 사먹어볼테다!

와인을 천천히 마시면서 걷는길 생각보다 즐거웠다. 예전에 여행길에서 만났던 한국분이 그러길 와인을 마시면서 걷는것도 꽤나 재밌다고하며 내게 1일 1와인을 실천했던 병사진을 보여줬었다.

(다들 취해서 무슨 군단처럼 이동하고 있다)

 

토레스 델 리오까지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답다. 끝이 없는 평원에 꽃과 들판이 펼쳐져 있고 맑은 날씨에 끝이 없는 길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사진에 멀리 앞서가고 있는 사람은 마르타, 바로 앞의 두 친구는 에밀리와 비올레타. 에밀리는 어제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난 친구로 미국에서 왔다.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애들 가르치는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농담을 던지는 유쾌한 친구다.

 

에밀리도 조근조근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주는 스타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의 저질 영어실력도 다 이해하고 받아준다.

걸으면서 나눴던 이야기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무엇을 하게 될까 였다. 당시에는 이유없이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취업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나는 내 20대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기에 취업도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았을까? 라고 얘기했던게 기억난다. 지금와서 이 글을 작성하니 왠지 나는 그때에 비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까미노에서 했던 다짐들을 일기속에서 훑어보는 중이다. 가끔은 내가 이런말도 했구나 싶기도 하고.

어차피 우리는 결국 길을 걷고 있다. 하루의 목표를 빨리 이룰때도 있고 늦게 이룰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고 도착하는게 중요한 것이니까.. 한 발 한 발에 힘을 담아 열심히 걸어본다.

그러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이 넓은 평원을 걷는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계속 홀짝대며 마시는 와인도 꽤나 힘이 됐고 말이다.

 

비올레타가 지나가면서 한마디 농담을 던지고 간다 "너 뒤에서 보니까 엄청 비틀거려!"

난 또 베시시 웃으며 "너도 마셔봐~"

라고 권한다. 아마 전체 순례객중에 가장 질 나쁜 순례객은 내가 아닐까 싶은데...ㅎㅎ

중간에는 예쁜 마을인 Los Lagos 라는 곳이 나온다.

잠시 쉴까 싶어 론과 기봉, 마르타와 비올레타 에밀리 모두 모여 까페콘레체를 마신다. 이제 뭐 오아시스처럼 되어버렸다. 쉬고 있을때 마시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설탕 한 두덩이를 넣고 저어 먹는 까페콘레체는 까미노의 터닝포인트이자 지친 순례객들을 위로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여기에 쇼콜라떼라고 불리우는 초코빵까지 먹으면 그 이상 행복할 수 없다.

 

Los Lagos 는 성당도 참 유명하다. 본당에 들어가면 경건함에 압도당한다. 본당에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의자에 계속 앉아있었다. 당연히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들 눈을 지그시감고 그냥 그대로 멈춰 분위기와 소리에 집중한다.

 

에밀리와 나는 유독 그 분위기가 좋아 다들 떠나고 나서 3분 더 본당에 머물렀다.

"정말 좋다 여기.. 그치 에밀리?"

"응.. 나 기독교인데 ....... 순간 개종의 심판이 왔어 ㅋㅋㅋㅋㅋ"

"아 나고 기독교인데... 마음이 조금 흔들렸어..."

 

서로 웃다가..

 

에밀리가 한마디 한다.

"특히 너는 취해서 더 그럴지도.."

"음? 왠지 일리있는데?ㅎㅎㅎ"

 

성당을 나서서 가던길을 계속간다. 유럽 여러나라를 돌아다녀봤지만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쪽이 난 더 좋다. 특히 시에스타 시간에는 사람도 없고 텅빈 마을을 돌아보는게 정말 좋더라. 햇빛도 따숩고 말이다.

시에스타에 돌입한 마을은 정말 조용하다.

늘 까미노를 걷다보면 순례객을 맞이하는듯한 이런 깨알 데코도 맘에 들고 말이다.

자.. 좀 더 힘내서 걷자. Torres del rio 가 얼마 남지 않았어. 저 포도밭을 배경으로 다시 와인을 홀짝거리며 걸어보자. (?)

날짜

2021. 5.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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