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6/2014 (Day 7) Torres del rio -> Logrono

 

(사진은 .. 살짝 망한 수제비...)

왼편 뒷 테이블부터 소개하면 (비올레타, 엘, 마르타)

오른편 (에밀리, 나, 기봉, 앤마리)

 

 

일단 스페인어가 가능한 비올레타와 함께 밀가루, 계란, 감자, 호박과 와인 샐러드용 채소를 장봤다. 숙소로 돌아와 기봉이에게 갔더니 어떤 아시아인 여자와 함께 있었다.

 

생김새가 한국 사람 같았다. Hello!라고 인사를 했더니 돌아오는 말, "안녕하세요!"

 

이름은 엘, 알고보니 한국인 아버지 이탈리아계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쿼터다. 그녀는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프라이드가 참 강해서 한국어를 꼭 배웠어야 했다며 그래서 한국어를 잘한다고 했다. 간만에 나름 한국인 세 명이 모였으니 우리는 함께 수제비부터 만들기로 했다. 그녀의 사연은 나중에 들어보기로.

 

까미노를 걸으며 모자가 없어 고생했던 기봉이는 라면스프를 제공하는 대신 모자를 사러 나가라고 자유시간을 주고.. 나는 엘과 함께 호박과 감자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손질한 감자를 깍뚝썰어서 끓이고, 양파는 나중에 넣는다. 그리고 열심히 부엌에서 밀가루 반죽을 한다. 반죽을 하니 모두가 신기해하며 쳐다본다. 심지어 인도음식 짜파티를 만드냐며 호기심 어린눈으로 반죽을 쳐다보며 묻는다.

 

야채로 우려낸 국물에 라면스프로 맛을 내니.. 제법 괜찮아졌다. 그냥 먹으면 약간 짜고 매울테니 여기에 계란도 풀었더니 제법 먹을만해진다.

 

솔직히 반죽이 살짝 덜 익었지만... 모두가 국물 한 숟갈을 떠먹더니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들어 행복했다.

 

그러나.. 분명 속으로는...

 

'헉... 밀가루가 익지 않았어'

라고 생각하겠지?

 

다들 꺄르르 웃으면서 어떻게 이런걸 만들 생각을 했냐.. 막 칭찬을 해준다. 광장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도 함께 합석했다. "저기 나도 함께해도 될까?"라는 말에 흔쾌히 Welcome 을 외치는 우리들. 그 독일 아주머니도 한 입을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칭찬한다. 이 아주머니의 이름은 앤마리. 뮌헨 근처의 시골마을에서 왔다고 한다.

위 후기는 론이 까미노를 다녀와서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 그날의 저녁의 분위기가 생생히 적혀있다. 이제 우리는 이때부터 Family로 우리를 지칭하기 시작했다.

"로그로뇨에서 패밀리의 대부분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앤마리(독일 아주머니)또한 함께했다. 준영과 기봉은 저녁을 만들었고, 준영은 한국음식을 우리에게 대접하기로 했다.(론...이 제안한거자나!!)

준영의 요리는 얼마나 맛있던지 정말 놀랐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 가고 싶었다. 정말 맛있었다.(등등)...... 후략

그리고 와인따개가 없을때 프란체스카의 스위스 맥가이버칼로 와인을 딸 수 있었고.. 서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저녁을 준비해서 정말 즐거운 식사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론은 설겆이를 했다. (론이 남긴 마지막 말.. 아마도 내 요리실력이면 아무도 미국에 오지 않을거야)

 

 

모두가 식사를 마친자리 프란체스카와 나, 기봉, 엘 이렇게 네 명이 남았다. 우리는 이 시간에 엘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엘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법을 전공하다보니 법 공부가 너무 재미없어 그냥 그만뒀어요.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별로였거든요. 부모님이 엄청 반대했는데도 내 삶이니까, 그냥 그 길로 네팔에 날아갔어요. 산에 가면 뭔가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죠.

 

여행을 그 전에도 자주 했었는데 쉬지않고 여정을 소화하다가 네팔 입국장에 갔을때는 그 앞에서 그냥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적도 있어요.. 체력이 특별하진 않았는데 무작정 떠난 여행이 결국 화를 부른거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병원이었어요. 눈 앞에는 독일 사람이 있었고.. 이 친구가 절 이 병원으로 데려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 보통 병원에 오면 다들 요양하고 쉬려고 하는데 전 왠지 모르게 여행을 가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근데 네팔은 호텔도 열악하고.. 하... 좀 좋은데서 자고 싶어서.. 싸고 호텔도 좋은 인도에나 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 독일 여행자와 함께 인도 비자를 신청했는데..

 

4주!?

 

4주가 걸린다고.. 하더군요. 비자 발급까지요.. 그럼 어떻게 하지.. 시간을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고.. 그러다가 히말라야를 오르게 되었어요. "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엘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보다시피 전 저질체력이라.. 히말라야에서도 몇번이나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리면 또 여행 스피릿이 발동해 아무렇지 않게 트래킹하고.. 저 혼자 여행하면 좋은데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 여행자네요.. ㅎㅎ"

 

4주 뒤 인도에 입국해서도 친구들을 잘 만나 오토바이를 빌려 여행을 해보기도 하면서 맘껏 놀아봤다고 했다.

 

"그냥 사람들이랑 맘이 너무 잘 맞아서.. 같이 오토바이를 빌려 인도를 누볐어요. 그 여행을 하다가 한 여행자로부터 까미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오오.. 정말 신성하고 좋다. 단지 이 맘을 가지고 까미노를 가봐야지! 그때부터 마음을 먹었어요"

 

엘은 법학을 때려치고..농사가 자신에게 잘 맞는거 같다면서.. 독일 마인츠 대학 농경학과에 지원했다고 했다.

 

"어쩌다가 농경학과에 지원해서 합격을 했죠. 입학하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그 길로 까미노를 가기로 결정했어요. 저는 프랑스 남부부터 시작했는데.. 여기는 워낙 유명하지 않은 루트라.. 여기처럼 콤포스텔라(목적지)를 가르키는 화살표도 없고 알베르게도 없어요.. "

 

프랑스 남부부터 까미노를 시작한 엘은 (보통은 생장에서 시작하지만 가끔 독일, 스위스, 프랑스 남부, 자기 집 앞부터 시작하는 순례자들도 있다)

 

"진짜 길바닥에 앉아서 펑펑 운적도 있어요. 나 왜 여기왔지? 이런 생각도 막 들고 짜증도 나고.. 괜히 왔구나.. 후회도 정말 많이 했어요... 근데 그럴때마다 트랙터를 몰고 지나가던 농부 아저씨나 마을 사람들이 다들 와서 자고 가라고.. 재워주기도 하고.. 순례자라고 잠자리도 봐주고 그랬는데... 이게 너무 감동이었어요"

 

솔직히 전혀 모르는 외국인을 재워주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을텐데 엘은 이에 엄청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분은 까미노 걸은 횟수만 10번이 넘는다고 해서 자기가 만든 개인 가이드북을 제게 보여주기도 했죠. 저는 그 분들때문에 지금도 힘을 내서 걷고 있는거에요. 지금도 늘 그분들의 주소로 엽서를 보내고 있답니다. 나 잘 걷고 있다고.. 이 길에서 얻은 모든 축복을 계속 그 아름다운 분들에게 보내고 있는거에요"

 

그러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시작하는 생장에 다다랐을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생장에 도착하니.. 아~ 이제 시작이구나 했어요. 생장은 뭔가 유명해져서 관광지같은 기분도 들고 확실히 이전 까미노랑은 느낌이 달라요.. 원래 생장에 있는 알베르게도 다 도네이션(기부) 알베르게였대요. 저는.. 생장까지 오는 와중에 길에서 배운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바로.. 길에서 '기대하지 않는 법'이에요.

 

"생장에 와보니..이 길이 너무 신성해서... 다들 뭔가 얻어간다고 하니까.. 큰 기대를 하고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처음에 프랑스길을 걸으며 그랬듯... 저는 그래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아요. 그냥 걸을뿐이죠. 그러다가 우연히 깨달아가고 있는거에요. 인생을..그리고 나 자신을요.. 그래서 여기선 친구도 만들지 않아요. 친구가 아니라 다들 스쳐가는 선생님이고.. 아니면 제가 배운 것을 공유하는 동료인거죠.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가볍고 그래요."

 

그러면서 그녀의 네팔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

"아참! 네팔에 갔을 때 은하수를 본 적이 있어요. 난생 그렇게 진한 은하수는 처음 봤던 것 같아요. 정말 감동이 진하게 다가왔었죠.. 은하수를 검색을 하다가 까미노 포럼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포럼에서 까미노 루트 마지막에 위치한 피니스테레에도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가슴이 두근댔고.. 그 은하수를 보려고 까미노에 오게 되었어요. 전 정말 그걸 보기 위해서 걷든 달리는 .. 꼭 그곳에 가고 말겠어요"

 

와인을 한 잔 걸치고 이야기를 들으니 감정이입이 되면서..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알베르게가 소등을 한다고 해서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녀의 길을 정말 응원하고 싶어졌다.

 

"저는 내일 정말 일찍 출발할거에요. 내일은 40km나 걸을거거든요. 아마 우리는 만나지 못할거에요. 하지만 건강히 까미노를 걷길 바래요"

 

그녀가 준 교훈과 이야기는 이 알베르게에서 얻었던 최고의 수확이었다. 어디서도 절대 들을 수 없는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가 마음을 울려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 날 이후.. 마지막 까미노까지 우린 그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피니스테레에 도착해서 찬란하게 흐르는 은하수를 봤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에 계속 - 이번 이야기는 사진이 별로 없답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듣느라 사진을 찍을 분위기가 아니었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날짜

2021. 5.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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