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 영월)


이른 아침이다.
어제는 그렇게도 분주했던 정선 5일장의 무대는 다음을 기약하는 듯 조용했다.
여관 주인 아저씨는 아직 일어나지 않으신 듯 하다. 

아저씨께 간단히 한장의 편지를 써 내려갔다. 여행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많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 여행에서 처음으로 해 본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편지 한장을 전화기 사이에 끼워 넣고나서 나는 정선 하나로 마트 앞에서 차를 기다렸다.

아주머니 한분, 아저씨 한분.
그리고 나.

한 5분간을 조용히 말없이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언제올지 모르는 차를 과일을 깎아드시며 기다리고 계셨고, 아저씨는 동네 친구가 지나갈때 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차가 언제오지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차를 기다리는 이 세사람의 행동은 제각각 다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괜한 재촉인가를 깨닫고 나도 아줌마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하며 더이상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았다.
그 찰나의 여유덕분에 아저씨와 옛 이야기도 하고, 버스 노선에 관련된 일화도 듣고 폐광촌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이윽고, 정선 동면행 차가 오고 운전석 뒤편에 앉아서 조용히 창문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
아침일찍 땅을 일구는 사람들
굽이굽이 흐르는 고개와 그 옆 옥수수밭을 아침 태양이 비단결같이 고운 머리를 스윽 만지듯 빛나는 광채.

정선의 아침은 또다른 풍경으로, 또다른 색깔로 나를 맞이했다.

"학생은 여행중이야?"
안경을 쓰고 친근한 인상의 젊은 기사아저씨가 내 행색이 신기했는지 참지 못하고 물어보신다.
"예~ 전국여행 하고 있어요~!"
"오! 요즘 애들은 해외여행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데 학생은 특이하구먼!"
"네.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먼저 알고 해외를 나가는 편이 낫기도 하고, 그래야 외국인에게 한국의 여행지를 소개할 수 있을것 같아서요.."
"그래, 그럼 학생은 어디까지 여행할 생각이야?"

"기차타고 목포까지 가서 배를 타고 제주도 일주 한다음 지리산 능선을 타고 올 예정이에요"
"역시 목포는 유달산이지! 유달산을 꼭 가봐"
"어? 아저씨 목포에 사셨었나봐요?"
"응. 원래 속초사람인데 학창시절때 목포에 잠깐 살았었지, 결혼하고는 다시 정선으로 왔어. 정선이 너무 좋아서.. 정선 정말 좋지?"
"네! 정말 어제부터 감동의 연속이었어요! 풍경들이 끝내줘요!!!"

기사아저씨와 여행에 대한 얘기가 끊임이 없다.
"아저씨 앞 좀 보고 운전하세요!!!"(웃음)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선에서 한 20분을 달렸을까, 서서히 화암동굴 정류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학생 여기서 내려서 화암동굴을 갔다가 좀 걸어가면 약수가 나올꺼야 약수 먹고 나와서 조금 기다리면 또 이런 버스가 맞은편에 올거거든?
그걸 타. 그러면 학생이 가고 싶은 몰운대랑 동계곡을 갈 수 있을거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했어요!"라고 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에서 내렸다.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화암동굴에 가는 케이블카는 조용하고, 아직 식당은 열지도 않았다.
혼자서 노래를 들으며 화암동굴 까지 걸어가서 혼자 남겨진 상황을 즐겼다.

나를 찍고, 주변 풍경을 찍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도 찍고..
그렇게 올라갔다.

동굴 입구에 서니 아직 개장시간이 아닌 듯 했다. 하긴 지금이 8시 40분이니 너무 이르긴 이르다.
그래서 9시까지 음료를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화암동굴의 개장을 기다리며 혹, 동굴에서 소변이 마렵지는 않을까 하여 화장실에 가보기로 했다.
바로 입구 옆 화장실이다. 이게 왠걸! 기포식 화장실이란다.
물도 안내려가고, 소변은 비누 거품속으로 빨려 들어가버려 보이지 않는다. 자연 친화적인 화장실이라는데, 정말 신기했고 어색했다. 화장실의 묘미는 쏴~아~ 하는 청량감인데...

뭐... 계속 이용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다.(웃음)

드디어 정각 9시가 되자 이제 슬슬 화엄동굴이 개장을 하려나보다. 벤치에 앉아서 음료수를 열심히 마시고 있는데 직원이 부른다. “이제 입장하셔도 되요” 열심히 셀카를 찍고 있었는데 살짝 민망했다.

동굴에 들어선 순간 귀여운 도깨비 캐릭터와 함께 모험이 시작된다. 동굴이기 때문에 한기가 느껴지는데 사실 엄청 무서운건 이 기나긴 동굴에 사람은 나 혼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센서를 통해 인형이 움직이고 하다 보니까 센서를 건드릴때마다 자꾸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어 진짜 놀랐어 휴..”


아무튼 흥미로운 경험이다.
여름에는 저녁 9시까지 개장한다고 하는데 귀신체험이라고 해서 담력 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의 도입은 꼭 필요하긴 한 것 같다. 물론 그게 '파괴'를 동반하지 않은 '개선'이 된다는 전제하에.

동굴의 코스를 쭉 따라가다 보면 이곳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정선의 생활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기 쉽게 설명이 되어있다. 정선은 예전 탄광마을로 사금과 금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유용한 자원을 눈치챈 일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정선을 개발지역으로 삼았고 정선은 그떄문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다고 한다.
 
사실상 정선에 연결된 철도도 이를 위해 건설이 되었던 것이다(증산-여량간). 여량을 지나 연결되어 있는 구절리로 이어지는 레일바이크 또한 폐전차길을 되살려 만든 레져시설중 하나이다. 사금을 캐던 곳이어서인지  금을 세공하는 방법과 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여러 광석을 볼 수 있어서 참 유익했다. 다만 혼자여서 무서운 것 빼고 말이다.

입구로부터 출구로까지는 생각보다 꽤 길다. 약 한시간 반정도는 돌아봐야 갈 수 있으니, 춥기도 춥거니와 뼈쏙까지 공포감에 치를 떨면서 혼자서 동굴을 걷다가 동굴안에 있는 폭포와 오색빛깔이 넘치는 종유석들과 석순들을 보면서 참 자연의 신비는 대단하구나 하면서 이내 장엄함에 대한 찬사로 바뀐다.

동굴은 방문할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왠지 다른세상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언제나 추천하는 코스다.

1시간 반동안 동굴을 걷고나서야 다시 햇빛을 보고 눈을 찌푸리다가 꼬르륵소리에 뭔가를 좀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배낭끈을 조여매고 출발했다.
동면의 아래쪽으로 내려오다 발견한건 조그마한 슈퍼. 사실 돈이 많았다면 옆 식당을 갔겠지만, 그닥 땡기지 않아 슈퍼로 가서 바나나우유를 하나 들이키고 화엄동굴 옆에 있는 조그마한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화암동굴은 정선의 옛모습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었다면 이 화암동굴 박물관은 옛모습을 설명해주는 도서관 같은 존재였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 때문에 조용히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더 좋았다. 박물관을 나와 지압이 되는 길을 걷고나서 버스기사 아저씨가 말한 화엄8경을 보러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아저씨 왈 “화엄동굴에서 화엄약수터까지는 한 한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라고 하셨으니 지금 시각 약 10시를 넘기고 있으니 얼추 스케쥴에는 차질이 없겠다.


 근데 문제는 배가 고프다는 것. 역시 남자는 먹어야 힘을 내는데, 우유 한잔으로는 뭔가 부족했나 싶었다. 충격적인게 동면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예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음식점이 보인다 싶으면 다 휴일이라서 문을 닫아버려서 뭘 먹을수가 없다. 한 30분을 걸었더니 그제서야 동면에 도착했는데 동면 중심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포기하고 화암약수터로 배고플수록 힘내 걷자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배고픔, 일단은 참아보자.
 
장장 1시간을 걸었을까? 황량한 길이 계속되서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걷다가 여기가 어딘지 인지도 못한채 갑작스럽게 도착해버린 화암약수터.

다리를 하나 건너서 입장료를 내고 입구 오른쪽에 멀리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거북바위(화암8경중 하나)를 등지고 입구로 걸어들어갔다. 입구에서도 한 15분은 더 걸어들어가야 하는지라 약수터로 가는 길은 살짝 힘에 부쳤다. 계속해서 올라가니 이곳 저곳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는데 인상깊었던 관광객은 바로 중국인들. 이 산골짜기 까지 관광인프라가 잘 되있었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궁금증은 이내 어떤 운명적인 한 사람 덕에 말끔히 풀렸다. 계속 걷다 보니 객관적으로 보기엔 워낙 신기한 행색이기도 하고 혼자 심심해 보였는지 가이드가 말을 걸었다. 

 “ 여기서 화암약수까지 얼마나 걸려요?”
응? 나도 여기를 처음 와보는데 화암약수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떻게 아나, 난 그냥 여행자일뿐이고, 당신은 가이드인데? 속으로 요렇게 생각했지만 답변은 이렇게 했다.

 “ 음. 화암약수까지 지도 상으로는 약수터가 두군데가 있는데 진짜 약수터는 아마 여기서 10분만 더 걸어가시면 될꺼에요 ”

하고 아는체를 했다. 근데 정말 거짓말 같게 10분 뒤에 약수터가 등장했다. 약수터가 왜 두 개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것 같은데 그 이유는 약수터 하나만 존재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임시 약수터를 하나 더 만든거다. 그래도 ‘오리지널’을 좋아하는 한국인과 나의 특성상 진짜 약수터를 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은 지라, 속으로 10분이라고 아는체 했는데 좀 다행이다 싶었다.


약수터에서 물을 한번씩 먹어보더니 다들 퉤퉤하면서 속을 비워내는 시늉을 한다. 왜 저런가 물을 한번 먹어봤더니 쇳맛이 나는 광천수 같은 느낌이랄까? 물이 빨간것을 보니 철이 엄청나게 함유되어 있는거 같긴 하다.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고 떡하니 표지판에 써있으니 맛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으나, 왠지 더 욕심이 났다.

‘ 여행하면서 먹으면 어떨까? 왠지 힘날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물을 냅따 떴다. 표지판에 ‘물을 길어가지 마세요’라고 써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괜찮아 500ml 통 딱 하나인데 뭘’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펐다. 그리고 가방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흐흐. 참 이런거 하나는 낯이 뜨거워야 정상인데 너무 익숙하게 행동한다. 죄송합니다!
혼자서 왔으니 사진을 중국인에게 부탁할수도 없고 해서 그냥 약수터 사진을 찍고 찍다가 내 행색이 신기한지 아까 말을 걸었던 가이드가 내게 조용히 물어본다.

“대단하시네요 몇 살이신데 이렇게 여행을 하시는지..”
“저 87년생이에요~”
“와 저는 꿈도 못꿨는데 혼자 여행하는게 부럽네요. 그런 용기 나기가 힘든데 말이에요”
“저는 그쪽이 더 부러운데요? 중국어를 잘하시니 이렇게 중국인들이랑 가이드도 하고.. 많이 해보셨나봐요”
“아 아니에요, 그냥 아르바이트죠 픽업하고 내려드리고 태워드리고 저는 그것밖에 하는게 없어요. 하하 대신 해보실래요?”
“하하, 중국인들 지금 어디어디 가는거에요? 보통 영화 촬영지나 가지 여기까지 올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 정선카지노가 최종 목적지에요 그쪽으로 가면서 정선도 들리고 영월도 들리면서 이쪽을 지나 사천으로 가거든요, 그 다음 바로 카지노로 향하죠. 겨울이면 하이원 스키장으로 가는 관광객도 많아요”

아 역시 카지노가 마지막 목적지다. 내국인을 허가하는 카지노는 현재 정선카지노밖에 없는데 그 부대시설도 꽤나 훌륭해서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들었던것 같다. 그래서 인지 이렇게 연계관광지로 화엄8경을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군대 가기전에 오신거죠?”
“예 아직 군대는 늦게 갈거 같아서.. 생각정리 하러 가끔 이렇게 다닙니다”
“대단해요, 혹시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꼭 한번 연락하고 싶은데..”
“하하, 예 알겠습니다. 전화 안되면 저 어떻게 된거 아니니까 주기적으로 연락해보세요 조금 후에는 벌써 제주도에 가있겠네요”
“와 제주도!! 거기까지 가실꺼에요? ”
“예, 전국일주 중이라서요..”
“와 꼭 연락할께요!! 하하. 전 이제 다른데로 이동해야 해서 먼저 가볼께요 건강하세요!”
“예!!”

이렇게 가이드와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는 각자 다시 제 갈길을 가게 되었다. 혼자서 여행하는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계속 걷다보니 끝이 없다. 길을 가다가 정류장이 덩그러니 있는 길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돌아 계속 걸었더니 이내 소금강(화엄8경)이 시작되는 표지판인듯한 돌부리를 보고 나니 장엄한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산과 산이 만나고 강과 강이만나고 끝없는 물줄기는 소금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 왜이렇게 신난거냐 ㅋㅋ


몰운리 가는 풍경


멀리 용마소(화엄8경)라는 곳에 다다랐을때는 이곳에 얽힌 설화도 읽어보고 그것을 곱씹어도 보며 걸었다. 몇분을 걸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은 어색한 폭포가 보였다.
화표주를 거치고 나니 보이는 폭포. 이제 막 흐르는 폭포였는데, 왜 이제 막 흐르는 폭포라고 표현했냐면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폭포라 무려 폭포 양 옆에 “축 개수”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금강에는 폭포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걷는 여행자 심심하지 말라는 이유에서인듯.

 소금강을 걷다 보니 내 행색을 신기해하는 사람이 많다. 지나가면서 환호성을 지르는가 하면 수고하세요 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한시간에 한 대 있을까 말까 한 버스를 두 번 지나치며 사람들이 날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감지한다. 근데 언제부턴가 그런 시선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 시선을 즐기다 보며 걸어보니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계속 소금강이다. 소금강에서 목적지인 동계곡까지는 약 6Km라고 표시되어있어서 아 한 한시간 반정도 걷자 했었는데 계속 걷다 보니깐 벌써 2시간을 바라보고 있으니 언제쯤 도착하는거야 싶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걸었는데 기분 좋은건 ‘이게 우리나라야?’ 싶을 정도로 광활환 산능성이와 벌판들이 너무나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고 너무 깨끗한 공기를 느낄 수 있어서 2시간이 지루하지만은 않았다는것. 왠지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면 좋을거라고 혼자 생각해봤다.

쭉 걷다보니 어느새 저 멀리로 보이는 표지판이 ‘몰운1리’를 가리키고 있다. 몰운1리에 들어서니 왠지 몰운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안할 수는 없었는데, 더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했겠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가다가 보이는 시골정류장에 털썩 앉아 쉬기로 했다. 푹 쉬면서 있는데 할머니 두분이서 마실을 다녀 오시다가 힘드셨는지 정류장으로 와서 할머니도 털썩 앉아 쉬신다. 그러더니 날 아래 위로 쭉 훑어보시더니 간만에 보는 외래인이라 슬쩍 호기심에 말을 거신다.

“혼자 여행다니는거라? 학샹인거 같은디”
“예 학생입니다.”
“혼자 이리 다니는거 안무서워? 대단하네”
“예 그냥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다니는거 거든요”
“하긴 젊었을 때 다니는게 좋은거지 흐흐”

할머니와 나는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왠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할머니는 다시 마실을 가시고 나는 배가 고파서 근처에 있는 작은 슈퍼에 가서 비스킷을 사려고 갔다. 근데 이 슈퍼 알고보니 무인 슈퍼다. 사람이 아무도 없고 물건을 사고 동전만 덩그러니 내려두는 방식의 슈퍼. 아무래도 동네사람들이 다 알고 지내다 보니 이렇게 서로 신뢰를 갖다보니 무인 슈퍼가 생긴거 같다. 조용히 비스킷을 사고 돈을 내려놓고 나와 열심히 쩝쩝대면서 몰운대(화엄8경)로 향한다. 언덕을 하나 지나니까 벌써 몰운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몰운대는 계속 사이에 삐죽 솟아나온 형상을 하고 있는 큰 바위다. 깎아지르는 절벽을 보며 소금강을 관람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들어서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이야!!!!!!!!! 멋지다”
근데 이 환호성을 지르자마자 왠 큼지막한 새가 날 덮쳤다. 뭐야 여행기가 갑자기 판타지나 무협지로 변하는가 싶겠지만 정말로!

어디에 둥지가 있는지 그 새가 내 머리맡까지 돌진했다가 다시 떠올랐다가 다시 머리맡까지 돌진했다가 다시 떠오른다. 아마 경고의 표시일 듯. 그 근처에 둥지가 있거나 알에서 새끼가 부화했거나 했을 것이다. 도저히 계속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다시 가방을 챙겨서 나가려고 하는순간. 왠일인가. 참 여기서 거짓말같은 일이 자꾸 벌어진다.
이놈의 다람쥐가 내 가방에 있는 비스킷 냄새를 맡았는지 비스킷을 쩝쩝거리고 먹고 있다.
“야 이놈의 다람쥐야아!“


몰운대에서 내 비스킷 훔쳐먹은 다람님


후다닥 가방쪽으로 뛰어가니 나무에 올라서 계속 눈치를 보고 있다. 하는짓이 너무 귀여워서 잡아볼까?(하하 농담이다) 했지만 비스킷 하나를 그냥 그 자리에 몇 개 놓아두고 왔다.

몰운대를 지나서 30분가량만 더 걸으면 다시 광대곡이다. 광대곡까지만 정복하면 화엄 8경을 다 볼 수 있는데, 30분 걷다가 광대곡을 들어서는 초입에서 한번 좌절을 겪고야 만다. 날씨가 어둑어둑 해지더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는데, 광대곡은 어느새부턴가 산행금지가 되어있고 광대곡까지 가는 길이 너무 질퍽거려 닿는데까지만 해도 족히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이다. 여관 아저씨가 어제 줬던 지도에 광대곡이 너무 멋져서 꼭 가고 싶었는데, 초입을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다시 광대곡 초입을 빠져나와서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서 터벅터벅 걸어 아까 그 정류장으로 다시 갔다. 근데 참 운이 좋은게 정류장에 닿자마자 버스가 왔다. 정선에는 버스가 거의 없기 때문에 버스를 타기가 쉽지 않다. 생각없이 버스를 올랐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학생! 여기까지 어떻게 왔네? 신기도 해라” 아까 화엄동굴까지 데려다 주셨던 그 버스기사 아저씨다.
“어 아저씨!!! 안녕하세요!”
“응 그래!!! 차비는 굳이 내지 않아도 되니까 얼릉타 앞자리에 앉아라”
“우와 감사합니다!”
“참 대단한거 같아 여기까지 걸어오는것도 장난이 아닌데 말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그냥 걷다보니까 한 3시간 걸렸던거 같아요 생각없이 걸었더니 여기까지 왔어요”
아저씨는 계속해서 여행에 대해서 물어봤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전국일주중에 꼭 목포도 들러달라고 하면서. 산과 산을 넘고 넘어 한 30분쯤 달렸을까? 저 멀리 정선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2시 30분에 있는 증산행 꼬마열차를 타고 영월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아저씨께 내려달라고 했다.
“ 아저씨 아무쪼록 건강하세요!!”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시간이 부족해 계속해서 뛰었다. 뛰다가 길을 잘못들어 빙 둘러서 정선역에 도착했는데 아직 기차가 오지 않는다. 기차를 계속 기다리다가 보니 기차가 조금 연착되어 늦는단다.
어휴 다행이다. 2분전에 역에 도착해서 큰일났다 싶어 다시 버스를 타야 하나 싶었는데 말이다.




뿌뿌. 기차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꼬마열차를 타는 순간 참 귀여운 구조구나 싶다.
좌석도 창가쪽 테이블 형식이라 정선과 증산간의 풍경을 체험하기에 최적이었다. 풍경을 쭉 보면서 버스로 정선에 오는 것과 기차로 정선에 오는것의 풍경이 정말 다르다는걸 느꼈다. 굽이굽이 산을 통과하면서 보여지는 옥수수밭 풍경과 햇빛에 반사 되어 반짝이는 강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다만 아쉬운건 이곳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었는지 아름다운 풍광에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아직 정선은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다.

다시 증산역으로 도착해서 영월로 갈아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한 40분정도의 시간이 있어 증산역 밖으로 나와 단 하나 보이는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시켜먹었다. 가정집을 개조한듯한 중국집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방바닥을 푹 벗삼아 먹는 자장면도 왠지 여기서는 호사스러운듯 싶다. 그래도 그 덕택에 피로가 쭉 풀리는것 같아서 좋았다. 다시 증산역으로가서 혼자서 벤치에 누워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노래를 듣고 하다가 영월로 가는 기차를 타고 영월로 향했다. 정선과 영월은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한 40분이면 금방 닿을 수 있다. 영월로 가는 동안의 풍광또한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구름과 들판이 기차속도에 맞춰서 움직이고 있는데 그 빛깔이 오색빛이 나니 가슴이 터져버릴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언제 영월에 도착했는지 영월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온다.
 

영월역에 도착했더니 기와를 기초로 한 역사 모습에 웅장함을 느끼며 이곳이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도시임을 직감했다. 그도 그럴것이 영월에는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단종의 릉인 장릉, 그리고 선돌, 어라연 등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이면서 레포츠와 별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4시가 되어서 시간이 부족해 혹여나 청령포가 문을 닫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택시를 무작정 불러 청령포로 가달라고 했다. 청령포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해서 한 3천원정도 기본요금이 나오겠지 했는데 웬걸, 청령포가 영월과 떨어진 지역에 포함되서 시외요금으로 나온다고 어느새 미터기는 7000원을 가르킨다.
 

청령포엔 왠지 모를 고독함이 있었다.


평소에 여행할 때 절대 택시를 타지 않고 이동했는데 청령포 폐장시간 때문에 택시를 이용한게 이렇게 큰 화근이 될 줄이야. 택시를 타고 도착한 청령포는 이미 마지막 배가 저 멀리 사라지는것을 눈앞에 두고 폐장을 맞았다.

그래서 청령포까지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저 멀리서 청령포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리고 배가 왔다 갔다 하는걸 바라보면서 대리만족해야했다. 그냥 멍하니 배가 오고가는 것을 보면서 그냥 그 옆에 있는 청령포에 얽힌 이야기를 보았다. ‘단종이 유배했던 유배지로 이곳에서 살다가 고향을 바라보며 병사하였다. 그 이후 단종은 장릉에 뭍히게 되었다’  왠지 그 구절이 노을지는 청령포를 바라보는데 오버랩 되어 짠한 느낌이 구성지게 전해온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계속 그렇게 오고 가는 배를 보다가 오늘 날씨도 왠지 좋고 별도 잘 보일거 같아 영월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사립천문대로 유명한 별마로 천문대로 향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별마로 천문대의 정보는 갈 수 있는 방법이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아예 산을 오르거나 하는 방법밖에, 버스는 닿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 어떻게 할까 약간 고민했다.

청령포를 나오면서 시계를 봤더니 어느새 6시를 가르키고 있고 어떻게 해야할지 빨리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시내로 다시 가보기로 했다. 아까 택시를 타고 10분채 걸리지 않고 청령포에 도착했기 때문에 한번 걸어가볼까 하고 걸어갔는데 걸어서 1시간 남짓 걸으니 시내가 보였다. 배가 너무 고파 삼각김밥과 음료수 셋트를 사고(이렇게 사면 비교적 싸게 먹을 수 있다. 삼각김밥 2개에 1200원이다)먹으면서 허기를 일단 해결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어떻게 하면 별마로 천문대에 갈 수 있나 물었는데 다들 거기는 택시를 타는 방법밖에는 없단다.

택시를 불러 세워 얼마에 협상을 볼 수 있나 해도 다들 산이 높아 기름이 많이 든다며 15000원 이상을 요구했다. 그것도 편도로만, 그래서 너무 비싸서 결정했다.

“그래! 산을 오르자 까짓것 900m 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뭘.”

그래서 영월시민의 제보에 의하면 산을 올라가는 초입은 저 산 능성이 오른편 정자가 보이는 곳으로 어떻게든 가면 된다는데, 사실 방향감각은 꽤 좋은 편이라 일단 시내 중심까지는 이동해야겠다 싶어 산 근처로 가는 버스를 감으로 무조건 잡아탔다. 신기하게도 버스는 그 근처까지 갔고 재빨리 벨을 눌러 하차했다. 하차하고 나서 다시 그 산을 올려다보니 참 ... 답이 나오지 않는다.


늦은 밤인데도 결국 올라갔다.



지금 시각 7시인데. 과연 폐장시간 10시 전까지는 갈 수 있을까? 얼마나 올라야 갈 수 있을까 걱정부터 되기 시작한다. 길가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까 “응 이쪽으로 가면 천문대까지 갈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거 보니 이쪽 방향이 맞는건 확실하다. 그래서 무작정 가방끈을 조이고 열심히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고 또 오르니 왠 포도밭이 나오는게 이상하다. 그래서 길가는 여학생에게 물어봤더니 이쪽 길로 가는게 맞긴 하단다. 그래서 또 계속 올랐는데, 웬걸 두갈래의 길이 나왔다. 어느길로 가야할지 감을 못잡는 상황. 그래서 아예 114로 천문대 연락처를 알아내서 전화했더니 체력단련하는 쪽으로 올라오면 된다는데 또 체력단련하는곳이 어딘지 감을 잡을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공식적으로 뚫어놓은 산행로가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뒷산을 오르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산책로와 비슷했다. 그래서 그냥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올랐는데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상한 계곡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냥 동네 산길이니 풀이 무성하게 나있는것도 생각하지 못한채 계속해서 굽이굽이 들어갔는데 점점 빛이 들어오지 않고 풀이 거의 목까지 오는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발이 움푹 파이면서 데구르르 밑으로 굴렀다

“으악!!!”


알고보니 그곳은 깊은 계곡에 작은 폭포가 있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그런길이었다. 잘못했으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천문대에 전화했더니 그쪽길이 아니라 다른쪽 길로 오셨어야 한단다. (무심한 사람...)

다시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다른쪽 길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시간은 벌써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저 멀리서 부스럭 부스럭 사람하나가 내려오는거 같아서 보니 하산하는 등산객이었다. “아저씨 여기 위에 정자가 하나 있는거 같은데 거기까지 얼마나 걸려요?”
그랬더니 아저씨 왈 “아 거기 정자까지 한 40분 걸릴꺼야 조금만 가면 돼 근데 날이 어둑해서 조심해서 산행해~” 그 말을 듣고 그래도 이길이 맞구나 하고 확신하며 계속해서 올랐더니 드디어 산 중턱에 있던 정자에 도착하게 되었다. 정자에서 영월 시내를 바라보며 그냥 멍했다. 이정도를 더 올라가야 한다니, 게다가 해는 지고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오고 랜턴도 없이 산행을 한다는게 사실 많이 위험한 일이긴 했다. 단 하나 믿는 구석이라곤 핸드폰 플래쉬로 비춰서 가는 법 하나 말고는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면 억울할거 같아서 악착같이 오르기로 했다. 길은 더 가파러 지고 더 좁아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한 1시간을 더 갔을까? 길 조차도 안보이는 암흑이 되어버렸다. 나무에 빛이 가려지기도 하거니와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서 어디를 봐도 달빛을 볼수가 없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싶어서 이렇게 천문대 못가고 산에서 고아가 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풀벌레 소리도 어느샌가 공포로 들려오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짐승이 트름하는 소리마냥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근데 그 순간 갑자기 말도 안돼는 일이 벌어졌다.


빤짝.빤짝.빤짝. 길을 중심으로 하나씩 하나씩 밝은 빛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 우와!! 반딧불이다!! ”
반딧불이를 보면서 탄성을 내뱉었다. 여태 살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에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했다. 반딧불이가 갈길을 비춰주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반딧불이는 신기하게도 바람에 실려가며 갈길을 비춰줘서 다행히 9시20분쯤이 되었을까 멀리 천문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 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폐장이 거의 10시라서 후다닥 뛰어가서 천문대에 들어갔다.

“ 아까 전화주신분 맞죠? 진짜 대단하시네요 7시에 올라오시다니 진짜 위험 감수하시고 오셨어요”
“ 하하하. 저도 참 끈질기다고 생각해요 흐흐 ”

안내원의 멘트를 받으니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인다. 이제 별만 보면 되면 되니까 그래서 입장하려고 하는데 단체로 온 학생들이 있어서 그 학생들 먼저 입장해야 한다길래 목을 좀 축일겸 음료수를 2개나 뽑아먹었다. 올라오는데 꽤나 고생했기 때문에 진정할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서 3층으로 가서 목성도 보고 토성도 보고 여름철 별자리도 봤다. 그런데 때가 장마때라 그런지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 화성을 비롯한 다른 별들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꽤 좋다는 천체망원경을 볼 수 있다는것과 멋진 영월시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물론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관람을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내려갈때가 되어 내려가기전에 영월시내를 보기 위해서 구석진 관람 포인트로 갔다. 이 포인트는 사진가들 사이에 정평이 난 곳으로 천문대에 영월 시내 야경 하나를 찍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나도 삼각대를 가지고 열심히 야경을 찍었다. 그리고 귀에 이어폰을 끼고 초속 5cm라는 만화에 등장하는 노래인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들으니 왠지 좀 찡해졌다. 멍하니 야경을 바라보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한동안 숨죽이고 멋진 야경을 계속 바라봤다. 나중에 향수처럼 이 노래를 들으면 또 영월이 생각나겠지 하면서, 노래와 여행지를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매치' 시키고 있다.

다시 하산하기 위해 나갈 채비를 하며 하산할 길을 찾고 있는데 원래 올라왔던 길은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아 차들이 다니는 찻길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속으로는 아마 누가 태워주겠지 하면서. 그러나 그 생각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내려가는 내내 아무도 태워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그것도 11시나 되는 이 밤에 누가 날 태워주려 하겠나 모르는 사람을 태웠다간 무슨 사단이 나려고, 그래서 애써 이해하며 계속 산을 내려가는데 이놈의 산이 얼마나 높은지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다.

다리가 후들후들 거릴정도까지 이르자 불빛도 거의 보이지 않고 다시 암흑속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 큰일이다. 저 밑에 마을이 보이기는 하는데 전혀 불빛이 없다 단지 불빛이라곤 저 멀리 차 지나가는 불빛 아니면 교회 십자가 불빛밖에, 소리는 고요하고 혼자서 걷는길이 살짝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알수 없는 마을 입구에 닿자 마자 왠지 시내와 굉장히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어떻게 하지 하면서 이사람 저사람 아는사람에게 전화해서 “형 나 어떻게해요 누나 나 어떻게 해요 이상한데 와버렸어요” 하면서 농담하듯이 하하 거리면서 웃었지만 살짝 걱정이 되는건 사실이었다. 이대로 이상한 사람한테 헛짓거리 당하는건 아닌가 하면서. 그래도 나름 안심인건 내가 남자라서 인것도 있거니와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나 알수없는 도로에 진입하니까 드디어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 내. 까. 지. 12km>

응?
응?
내가 뭘 잘못본건 아니겠지? 거짓말이라고 해줘 제발!!!!!!!!
이제보니 아예 산을 훌쩍 넘어버린것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믿을 수가 없다. 아예 산을 넘어서 동강 레프팅 하는곳까지 와버린것이다.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 역시나 이시간에 히치하이킹을 하는건 정말 불가능하다. 바람은 계속 세게 불고 있고 그나마 보이는 불빛에 의지하면서 버티고 있다. 반딧불이가 가끔 보이면서 그 반딧불이 보면서 힘내서 걷고 있는데 어느새 꽤 밝은 불빛이 저 멀리 보여서 다행이다 싶어 냅다 뛰어갔더니 노래소리가 여기 저기서 흘러 나온다. 아마 레프팅촌인거 같은데 다들 음주가무에 정신이 없다. 그곳에서 딱히 할게 없어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걸 들으며 처량하게 지나갔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한 2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거의 지쳐가고 발이 서서히 아파오고 있는데 저 멀리 기차가 지나가고 터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마.
설마 시내에 도착한건가? 계속 해서 가다 보니 표지판을 보니 이제 거의 4km밖에 남지 않았다.

드.드디어 도착한건가? 새벽 3시쯤이 되자 그제서야 영월역으로 다시 올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총 12km나 되는 행군을 해버렸다. 참 어떻게 걸었을까 했지만 약 3시간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깊이있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둠속에서 부모님도 생각해보고 친구들도 생각해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생각해봤다.

영월역에 도착하자마자 이제 잠이 몰려왔다. 아니 이제 제발 잠 좀 자야겠다 싶어서 택시를 잡아탔다. 사실 장릉에 있는 찜질방까지 걸어가기가 쉽지 않았기도 했고 가는 지리도 몰랐다. 그래서 택시를 잡았는데 아저씨의 인상이 왠지 엄청 무서워 보였다. 사람을 인상으로 판단해선 안되지만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믿고 타보자 싶어서

“ 아저씨 영월에 찜질방 딱 하나 있다고 하는데 그쪽으로 가주세요”라고 했더니 말없이 갑자기 100km 의 속도로 씽씽씽 시내를 질러 어디론가 향했다. 어딘지 모르는 그곳으로 계속 가는데 갑자기 공터로 가는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좀 이상한데?” 싶기도 하고 이러다가 잘못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차 문을 열고 그냥 뛰어내릴까 했다. 진짜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차가 갑자기 여관촌으로 들어가더니 여관앞에 떡 하고 서는게 아닌가?

‘ 헉 정말 큰일났다. 왜 여관 앞에서 서지?’

불현듯 위기감을 느꼈다. 근데 아저씨는 당연히 택시비를 요구했고 날 내려주고 그냥 붕 가버렸다.
그냥 멍해서 계속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여관 근처로 갔는데 찜질방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이시간에 어떻게 하지 하며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여관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
“아주머니 여기 근처에 혹시 찜질방이 있나요? 영월에 딱 하나있다는데..”
“여기가 찜질방이에요!”
“......................”
알고보니 여관 지하를 찜질방으로 개조해서 운영하고 있었던것. 찜질방에는 영월에 있는 산을 등산하려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래도 나홀로 찜질방에 있는건 왠지 두려워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씻자마자 잠이 들었다. 참으로 스펙터클하군.


날짜

2010. 8. 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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