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동하면 역시 양반의 도시이며 효와 충과 예의 도시가 아니던가? 안동의 첫날이 밝았다.
세상에나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아침부터 사람들은 바삐 움직인다. 나름 빨리 나온다고 찜질방을 나선것인데 벌써부터 시내는 부쩍부쩍 거린다. 오늘 안동에서 가야할 곳은 안동 3경이라고 하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그리고 봉정사 이렇게 세곳이다.
지도를 쭉 펼쳐놓고 보니 도저히 이 세 곳은 안동 시내에서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해 있어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여행하기 참 힘들겠다. 세군데를 하루만에 강행하려면 터미널에서 하회마을에 갔다가 다시 하회마을에서 터미널로, 그리고 다시 도산서원을 갔다가 다시 터미널로, 그리고 다시 봉정사로 갔다가 다시 터미널로 가야 하는 강행군을 거듭해야만 가능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그건 좀 힘들지 않느냐고 하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나 왠지 안되면 되게 하고 싶은 나름대로의 고집이 있었기 때문일까? 다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겠지만 강행하기로 했다. 안동 까지 와서 보고 싶은건 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하회마을을 가기로 했다.
하회마을은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점심때 다시 돌아오자는 것이 목적. 하회마을까지 터미널에서 약 50분정도 소요된다. 하회마을로 가는 동안 그 짧은 시간에도 차창밖 안동의 풍경이 서서히 변하는걸 느낀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그리고 허허벌판에서 다시 박물관으로 그러더니 어느새 하회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다는 박물관에서 버스가 서고 그 버스는 다시 병산서원 방면으로 떠난다.
하회마을의 첫 인상은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골목골목 생각하며 들어가면 옛 양반가이면서 짜임새 있고 말끔한 처마와 기와를 보자면 기품이 흘러 넘친다. 각 양반가마다 아름다운 나무를 심어놓았는데 나무한그루의 존재감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자그마한 잎새 하나가 처마에 떨어지노라면 그 품위와 느낌도 왠지 말끔한 느낌이 드는게, 아 역시 여기가 하회마을이지 하며 다시 깨닫게 된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나오는 북촌 남촌댁 유성룡가 등등 대표적인 양반가를 한번씩 한번씩 들러서 돌아다니다 보면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종류가 하도 많아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어제 비가 왔다가 날이 개서 그런지 날씨도 참 화창하고 사진찍기도 참 좋은 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에서 조금 외곽지역으로 나서면 전통 놀이기구들과 그중 대표적인 널뛰기, 그네를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가격은 물론 공짜.
그리고 각 주점에는 헛제사밥(제사밥이기는 하나 보여주기식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헛제사밥이라 한다)과 안동식해(처음에는 그냥 식혜를 말하는줄 알았는데 사진을 보니 빨개서 지나가는 분께 여쭤보니 김치의 일종이라고 한다)를 팔고 있으니 한번쯤 먹어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하회마을의 골목골목을 전부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그런데 저 멀리서 보니 왠 뱃사공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운영하는 배는 20분에 한번꼴로 운영되고 있다. 아들이 배를 정착하게 해주고 아버지는 그 배를 다시 돌려 몰아서 반대편에 있는 기암절벽에 있는 사찰까지 데려다 준다. 그 기암절벽은 휘돌아 나가는 강을 건너 다른 벌판으로 데려다 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회마을이라는 지명 자체가 물이 돌아 나가는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아저씨는 “사람이 많기는 많지만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는데 사람들과 말과 말로 하회마을 예찬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하회마을에 대한 자긍심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기암절벽에 올라 양반들의 정자로 이용되었다는 곳과 사찰을 휘휘 둘러보고 절벽 맨 위에 올랐더니 하회마을 전경이 쭉 펼쳐지기에 이른다.
아. 이래서 하회마을이구나!
물이 돌아나가는걸 보고 나니 궁금증이 확 가시는 기분이다.
다시 돌아나오는 배를 타고 하회마을을 빠져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마도 한시간 반대 꼴로 들어왔다가 나가는지라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까짓것 걸어서 병산서원까지 가볼까 해서 안내소에 물어봤더니 두가지 길이 있단다. 한가지 길은 다시 입구 밖으로 나가서 가는 6km 에 이르는 길 또 한 길은 하회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4km 정도의 길이 있단다. 그런데 여름이라 4km 길에는 하도 뱀이 많이 출몰해 안전이 걱정된다며 그 쪽으로는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길이 6km 의 길. 빙빙 돌아 나가야한다.
후덥지근한 아스팔트를 끊임없이 걸어야 한다는게 걸리긴 하지만 꾸준히 한번 걸어볼까 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 사람 국토종단 하는게 아니냐며 신기한 표정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문을 열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관심이 왠지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래서 더 힘을 내서 걸었다.
고개를 몇 개 넘었을까 이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안동이고 오른쪽으로 3km만 더 걸으면 병산서원. 그런데 도저히 더워서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삼거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물고 다시 걷는데 시간상 이렇게 되면 오늘 하루 안에 도산서원과 봉정사를 가보지 못할 것 같아서 병산서원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가봐야지 하면서 돌아서는 순간 다시 한번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견주어 봤는데 그래도 계획했던데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 삼거리로 향했다.
삼거리에서 안동으로 나가는 버스를 한참 기다렸을까 한 40분정도가 지나고나서야 안동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그 버스를 타는 순간 아까 아이스크림을 샀던 구멍가게에서 아저씨가 나와서 “ 즐거운 여행되세요~”라고 외치는데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안동으로 가는 내내 잠을 청하다가 안동 시내에 도착해서 김밥 한줄을 사고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왠지 무언가 비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방을 다시금 확인해보니 이런, 디지털카메라를 버스에다 놓고 와버렸네!
생각해보니 내리면서 뭔가 흘러 내려갔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이러다가 내가 여태까지 여행했던 사진들이 다 사라지는건 아닌가 하며 노심초사하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버스앞에서 그러고 있으니 갑자기 식당주인이 나와서 혹시 기사아저씨를 찾냐고 그러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바로 옆 식당에서 밥 먹고 있을거라고 일러준다. 그 말을 듣는순간 바로 식당으로 갔더니 아저씨가 식사를 하고 계신다. 후다닥 달려가서
“아저씨 혹시 차 안을 한번 살펴볼 수 있을까요? 제가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그럼 열쇠 줄테니까 확인해봐요”
열쇠를 가지고 바로 버스로 가서 문을 열고 그 좌석으로 가니 떡하니 날 왜 두고 갔다는 듯 디지털 카메라가 모셔져 있다. 다행이다 누가 들고가지 않아서, 카메라를 소중히 챙겨나와 아저씨께 다시 열쇠를 드리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그제서야 나왔다. 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또 아찔한 순간이기도 했다. 사진이 없어지면 어떻게 블로그에 올리나 하며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렇게 한번의 위기가 지나고 도산서원을 향해서 출발했다.
도산서원이나 봉정사나 하회마을의 경우 갈 수 있는 차편이 그렇게 자주 있는 편이 아니다. 때문에 가기 전에 안동의 교통편에 대해서 미리 파악하고 짜임새 있게 버스 시간을 배치하지 않으면 하루만에 세군데를 다 갔다 오는게 불가능하다. 다소 빡빡한 일정이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던 경우라 시간표 맞추는 것에도 심기일전 해야했다.
버스는 어느새 안동시내를 지나 안동호 방면으로 가기 시작한다. 언덕 골짜기 사이사이에 보이는 안동호수를 보면 참 자연은 대단하다는걸 느낄 수 있다. 푸르른 안동호에 보이는 뱃사공 그리고 햇빛에 비친 산능성이를 바라보면 여태 일정 때문에 피곤한 몸도 스르르 녹아내린다.
“학생 여기가 도산서원이에요”
버스를 타기 전 아저씨에게 도산서원에 도착하면 알려달라고 그랬는데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잠시 풍경에 취해 멍해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정류장에 내렸다. 그런데 정류장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단 하나 도산서원 2km 라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원래 버스가 도산서원까지 들어가는 배차가 있고 그렇지 않은 배차가 있는데 난 그렇지 않은 배차를 선택해서 중간 지점에 내리게 된 것이었다
굽이굽이 표지판을 따라서 30분정도를 내려가니 드디어 도산서원 초입이 보였다. 초입에 있는 멋진 정자들 그리고 안동호 중간에 있는 열정(처음에는 열정이 호수 중간에 떡하니 있어서 어떻게 저기에 닿을지 궁금했는데 물이 빠지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가 도산서원을 지키고 있다.
도산서원 하면 퇴계이황을 떠올릴테고 1000원짜리 지폐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도산서원에 들어서니 정말 지폐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도산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때로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때로는 따듯한 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여기서 공부했다는 걸 떠올려봤다. 서원 뒤에는 병풍처럼 아름다운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고 서원 앞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공부할 수 있는 호숫가가 있다. 그리고 서원 입구에는 언제든지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우물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공부환경이 어디있을까? 유생들의 뜨거운 공부열기가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이곳에 들린 사람들도 모두 들어올때는 시끌벅적 하다가 유생들이 공부했던 방을 하나하나 들어가 보고는 이내 숙연해지고 조용해진다. 주위환경과 자연에서 오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왠지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다 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으니 분위기라는게 얼마나 큰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도산서원을 둘러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있다. 아직 봉정사를 들리지 못했는데, 일단 재빨리 정류장까지 가는게 중요했다.
16:30분경. 2km 를 다시 가지 않아도 바로 입구에서 안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길래 미리 가서 기다렸더니 저 멀리서 버스가 보인다.
우와. 다행이다. 다시 올라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버스를 타고 다시 감동했던 안동호를 지나쳐 시내로 진입한다. 시내로 돌아와 다시 마주 보고 있는 길로 건너 봉정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바로 10분후에 탈 수있어서 다행이었다)
봉정사는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 사찰로 안동에서 목조 건물로 유명한 사찰이다. 봉정사로 가는 길은 시내를 거쳐 산을 굽이굽이 넘어 가는데 거의 마지막 정류장이기도 하고 그 시간대에 사찰로 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버스 안도 굉장히 조용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도착했더니 해는 거의 뉘엿뉘엿 져가고 봉정사 입구는 바리케이트로 닫혀 있다. 그러나 옆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어서 편법으로나마 구경할 수 있었다.
봉정사로 들어갔는데 목조사찰이라 그런지 대웅전은 보수중이었고 다른 곳을 천천히 둘러 볼 수 있었다. 봉정사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 뿐이라서 그런지 조금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향 냄새도 맡아보고 어스름진 저녁놀에 물드는 봉정사를 보면서 잠시 숙연해졌다. 조금 더 올라가면 봉정사에서 키우는 연꽃밭이 있는데 정말 광활하다. 저 먼데까지 다 연꽃밭이라니 주지 스님 말을 들어보니 곧 연꽃을 딸거란다. 거의 어둑어둑해질 무렵 봉정사를 나와서 버스 정류장에 섰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음식점도 거의 문을 닫으려고 하고 정적이 스쳐가는 순간에 아스팔트에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거리고 저 멀리 개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을 뿐 고요한 봉정사의 입구다.
저 멀리서 바람에 처마가 나부끼는 종소리가 살짝 들려오고 왠지 그 소리를 들으니 청아해져 앉아 있는 사이에도 그 소리에 살짝 취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살짝 쌀쌀할 무렵 버스 기사아저씨가 마지막 버스를 몰기 위해 문을 연다. 그리고 버스를 탄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버스는 시내로 출발하고 머리를 잠시 창문에 기대본다.
네온사인이 서서히 눈에 들어올 무렵 이제서 시내에 도착했구나 하고 직감한다.
“태영아 나 지금 안동에 왔는데 괜찮은 떡볶이 집 없나?”
“형 안동 재밌죠? 나 고등학교때 거기 시내 안으로 들어가면 자주 가던 떡볶이 집이 있는데 거기서 먹어요”
대학교 동기인 태영이는 안동고를 나와서 안동에서 학업을 했기 때문에 왠지 안동을 잘 아는듯 싶어 문자를 보냈다. 열심히 다니느라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사실은 안동 간고등어를 먹으려고 했지만, 너무 비싸서 간단하게 해결하고 싶은 맘에서 보낸 문자였다.
시내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7시를 알리고 있었다. 새벽 1시가 되면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나야 한다. 일단 배를 채우자 싶어 시내로 가서 그 떡볶이 집을 찾아내서 떡볶이와 순대를 시켜서 먹었다. 3000원치를 시켰는데 아주머니는 그 큰손으로 많이 퍼주셔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여행다니면 많이 먹어야지”하시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바쁜 아주머니의 손길에서 왠지 정을 맛볼 수 있었다. 떡볶이를 먹고 다시 터미널 근처로 와서 월영교라고 야경이 예쁜 안동의 랜드마크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벌써 9시를 가르키는 지라 버스가 거의 오지를 않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도 버스가 안오길래 왜 안오나 하고 근처에 있는 과일가게 아주머니에게 여쭤봤다.
아주머니가 담배를 피시며 “학생 원래 거기 가는 버스는 좀 일찍 끊겨” 하신다.
그래도 꼭 가고 싶어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물었더니 걸어서 가는 방법 밖에 없는데 걸어가더래도 족히 1시간은 걸린다는 것이다. 근데 걸어가기에는 날씨가 별로 좋지 않다. 슬슬 빗방울도 내리고 날도 쌀쌀해진다. 그래서 월영교는 포기하고 그냥 근처 PC방으로 가서 여행하고 있는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하고 PC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새벽 1시.
이제 안동을 떠난다. 역장님이 직접 표를 걷길래 가지고 있던 내일로 티켓을 보내주었다.
“ 학생 즐거운 시간 되었나요? 청춘은 참 멋진거랍니다 ”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톤이다. 싶었는데 안동역에 도착했을때도 “학생 내일로 티켓으로 왔네요? 멋있다~” 했던 그 역장님이었다.
역장님의 묵묵한 코트를 뒤로 하고 기차에 올랐다.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방울방울 맻혀있다. 그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있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이 열차는 부전역으로 가는 열차입니다”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안동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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