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꽤나 쌀쌀할 줄 알았는데 아주 따듯한 날씨다.
 
그런데 너무 사우나에서 아침부터 밍기적 거려서 그런지 시간이 얼마 없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는데 시간표를 보니 순천으로 가는 기차가 텀이 적기도 하거니와 바로 20분 뒤여서 원래는 걸어서 부전역을 가야했지만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가 갑자기 밀리기 시작한다. ‘어떻게하지 어떻게하지’ 이러다가 기차를 놓쳐버리는건 아닐까 노심초사 했다.

부전역에 도착한건 딱 3분전. 내리자 마자 막 뛰어가니 기차가 거의 출발하려고 한다. 계단을 두 개씩 올라가고 내려갈때는 계단을 세 개씩 밟아 내려가 간신이 기차를 잡아탔다. 어휴 다행이다. 잘못했으면 그간의 여행계획이 다 틀어져버릴 뻔했다.

기차를 타고 밖을 보니 부산을 어느새 벗어나고 있다. 조그만 호수가 햇살에 비춰 반짝이기 시작하고 이내 산 사이를 지나니 아예 부산에서 벗어나버렸다.

부산은 2002년 일본 기타큐슈에 가기 위해 잠깐 들리는 것으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그 후 하나투어 투어챌린저 MT가 2006년에 있어서 부산의 이곳저곳 명소를 쭉 돌아볼 수 있었고 이번에 온게 세 번째 방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부산이 이런곳이구나 하며 놀랬고 두 번째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편안하게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태종대,영도부터 시작해서 송정해수욕장까지. 그리고 이번에는 여행중 쉼의 터전으로 잡았던 것이다. 간만에 온 부산에서 마음의 안정과 사람을 통한 에너지를 얻고 나니 여행하기 위한 체력은 충분히 보충된것 같다.

부산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정말 고마웠어요. 잊지 않을게요. 행복해야해요! 


“이번 정류장은 순천. 순천역입니다”
난생 처음오게 되는 남도의 땅. 눈을 감았다가 뜨니 순천에 도착했다. 이곳저곳 객차를 둘러보니 내 또래인것 같은 사람들 몇 명이 있다. 혹시 이 사람들도 내일로 기차여행을 통해서 온 사람들일까. 꽤 많은 사람들이 객차에서 내렸다.
 
사진찍기 좋은 여러 명승지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자연의 땅 순천. 순천은 예전 재수학원 시절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순천여고에 다녔던 지라 궁금했던 곳이기도 하고 근처에 보성도 인접해 있어 겸사겸사 들렀던 곳이다. 순천에 도착해 역 밖으로 나왔더니 따스한 햇살에 벌써부터 좋은 여행이 될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천역 앞 관광안내소 부스에서 팜플렛을 챙겨들고 어떻게 하면 순천여행을 잘 짤 수 있을까 해서 몇분간을 고민해서 루트를 짜고 버스시간을 대조하며 괜찮은 시간을 선택했다. 결론은. 순천은 볼게 많으니 일단 보성을 다녀와서 순천여행을 하자고 결정했다.
 
그런데 시간이 안맞는게 순천에서 보성으로 가는 열차가 텀이 엄청나게 큰 지라 시간상 보성을 들르려면 버스를 타야했다. 그래서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보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쭈욱 걸어 들어가서 자판기에서 버스표를 사고 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차가 오지않아 옆에 있는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아이구 학생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봐 곧 올꺼니깐”이라며 기다려 보란다. 그래 사실 너무 서둘렀다. 빨리 빨리 하면 되던 일도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래서 다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니 차가 오는게 보였다. 버스를 올라타고 한 30분을 들판을 보며 달렸을까 어느새 보성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처음 보성에 도착했을때의 느낌은? 엄청 시골이라는 것. 아주 옛 모습을 가진 터미널을 보니 괜히 뭉클하다. 간만에 보는 전원적인 풍경이라서 왠지 훈훈한 정이 느껴지는 그런 모양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녹차밭에 가려는 젊은 학생들과 여러 봇짐과 장을 본 소쿠리를 든 할머니 할아버지와 뒤엉켜 대한다원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엉키고 설키지만 이게 진짜 전원적인 풍경이 아닌가 싶다. 보성에는 굉장히 많은 다원(녹차밭)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보성하면 익숙해하는 CF촬영지는 대한다원이다. 대한다원까지는 터미널에서 약 40-50분거리로 중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면 그곳에서 내려야 한다는 증거.
 
원래는 자가용으로 가는 편이 좀 더 편하긴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것도 왠지 청춘에 걸맞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추천할만 하다. 거의 정오 쯤에 와서 그런지 대한다원 안에는 사람이 북적북적하다. 입장하자마자 녹차 음식점(녹차로 만든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다)들은 이미 꽉 들어차있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엉키고 엉켜있다.

원래 여기 온 이유는 다원 특유의 조용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워낙 유명한 명승지이다 보니까 사람이 발디딜 틈조차 없다. 음식점마다 메뉴판을 보니 또 가격도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녹차 아이스크림 하나 간단히 사다가 먹으면서 다원을 쭉 돌아봤다. 근데 살짝 기분이 요상하다. 여기 왜 이렇게 연인이 많은거지. 솔로부대 소속인데 왠지 가슴이 시려온다. 이곳저곳에서 사진 좀 찍어주세요 하는데 거절할수도 없고, 어느새 연인들 사진찍어주는 사진사가 되어버렸다. 아 가슴아파. 다음에 이곳에 올때는 최대한 새벽에 사람이 적을때 오는게 나을 듯 했다. 다원 자체는 좋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다. 다시 다원을 빠져나와 입구에서 거의 1시간 텀으로 있는 정겨운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안오니 몇몇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그 동네에 사는 아저씨와 함께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하고 택시를 타기도 한다. 나도 그래볼까 하다가 아까 순천역 앞에서 만난 아주머니 말처럼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니 어느새 저 멀리서 버스가 온다. 역시 어른들의 말은 틀리는 법이 없어.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로 와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보성역이 보인다. 거의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보성역. 많아야 하루에 열차가 4번 온다. 대합실에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기차역 앞 분수대에서 햇빛을 벗삼아 점심겸 주전부리를 먹다가 어느새 열차가 도착했다는 방송을 듣고 열차에 올랐다. 다시 순천으로 간다.

순천역에서 나오니 햇살이 반짝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오늘은 순천만까지만 가기로 한다. 아까 보성행 버스를 탔던 곳으로 가서 버스에 타고 순천만으로 향했다. 시간이 얼추 맞는다면 순천만에서 멋진 노을과 일몰을 볼 수 있을것 같다. 순천만 입구에서 정확히 내리기 위해 창밖을 잘 보고 있자. 아저씨께 미리 순천만까지 간다고 일러놓는것도 좋은 방법이다. 창밖을 바라보면서 어디까지 왔는지 잘 파악해야 입구를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순천만의 갈대밭도 살살 오렌지 빛을 내고 있을게 분명하다. 입구에 도착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표지판을 보니 입구 근처까지 온 것 같다. 몇몇 학생들이 순천만이다 하면서 내리길래 따라 내렸더니 맞게 내리긴 한 듯, 입구에서 시작되는 아스팔트길을 걷다 보니 저멀리 갈대밭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순천만은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곳으로 연인들이 사진찍으러 많이 오는 출사지로 유명하기도 하고 사진가들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만에 들어서니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인 갈대와 뻘 그리고 나무 다리가 길게 뻗어있다. 나무 다리를 지나가면서 갈대 사이로 보이는 자그마한 게들을 손으로 잡아보기도 하고 뻘이다 보니 뻘사이로 난 물길로 다니는 통배와 유람용 보트도 구경했다. 역시 예상대로 갈대는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있고 저 멀리 순천만의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전망대의 나무들도 서서히 오렌지 빛이 내려 앉고 있다.
 
일몰이 완전히 진행되기 전에 어서 풍경을 사진기에 담아보자 해서 전망대로 향했는데 전망대가 생각보다 낮지 앉다 한 10분정도 경사진 곳을 굽이굽이 올라가니 이곳저곳 사진을 찍을 만한 포인트가 많다. 수풀 사이 헤쳐 들어가면 보이는 포인트도 있고 맨 정상 혹은 정상에서 한단계 아래에 있는 곳에도 순천만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가 넘쳐난다. 내가 발견한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전망대에 오르니 사진가들 여럿이 순천만을 찍고 있어서 그 포인트에서도 한번 찍어본다. 일몰이 되는 순간에 S자로 흐르는 물길을 찍으니 아 이곳이 정말 순천만이 맞구나 하며 감탄한다.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광고에서 빠짐 없이 등장하는 이곳. 물길 사이로 다니는 보트와 순천만이 제법 잘 어울린다. 예전에는 저 물길을 통통배로 다녔겠지. 아주 조금 아쉬운건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 희뿌옇긴 했지만 순천만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사진을 찍고 찍다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아까 순천으로 올때 내일로 티켓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인듯 싶었다. 티켓 목걸이를 걸고 있는것을 보아하니 말이다.

속으로 내심 반가웠을꺼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서로의 시간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암묵적으로 말을 걸지 않았다.

순천만에 매료되어 사진을 생각 없이 계속 찍다 메모리를 다 써버렸을즈음 다시 순천시내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버스안에서는 계속 순천만에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생태계가 숨쉬고 자연이 빛을 발하는 그곳 순천만은 순천여행의 백미인 셈이다. 그날 밤 순천역에서 가까운 찜질방에서 하루를 자고 다시 순천여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일찍 들어가 쉬었다. 

날짜

2010. 8. 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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