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그럭저럭.
비는 오지 않지만 찌뿌둥한 날씨에 날은 좀 꾸리꾸리 하다. 그래도 마음은 산뜻하다.
아침부터 산뜻하게 잘 말려진 옷을 입고 떠나니까.

명승지가 지천인 서귀포에 왔으니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쉽지는 않다. 그나마 조금은 덜 알려지고 조용한 폭포를 찾을까해서 갔던 곳이 바로 정방폭포.
그리 먼 길도 아니고 굽이굽이 내려가지도 않아, 여유있게 출발할 수 있었다.
정방폭포는 닿는 길 하나하나 표지판을 잘 확인해야한다.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의 방향이 전혀 다르고, 세 갈래 길이 갑자기 나오는데 이곳에서 헤메지 않아야 제 갈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내려가는 곳이 아무래도 내리막이다보니, 갈래길 위로 다시 올라서려면 위로 다시 올라와야 하는 그런 번거로움.

정방폭포는 그렇게 선택의 길 끝, KAL 호텔방향에 위치해있다.  폭포에 도착하자마자 보니 자전거 여행자는 물론 차로 온 사람도 없다. 개장을 하지 않았나 의구심이 들어 매표소 주변을 배회하는데 매표소 아저씨가 아직 개장시간이 아니니 그냥 들어갔다 오란다.

아저씨 감사해요!!
 
혼자서 굽이굽이 정방폭포를 향해 들어가니 저 멀리서 웅장한 소리가 들려온다. 쿠구구궁 정방폭포와 바위가 내는 소리가 정말 시원하다. 혼자서 정방폭포를 바라보며 바위에 앉아 바다로 흘러가는 폭포수를 바라본다.
 


“에 헤라~ 디야 ~ 삼다수가 넘쳐 흐르는구나~ 에헤라 디야~ 삼다수가 넘쳐 흐르는구나” 어느 순간 흐르는 폭포물을 길어가면 삼다수 맛이 나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며 한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더운 여름이다보니 폭포가 그동안 그리웠나보다.



KAL호텔을 지나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는 난코스. 태양 빛은 없는데 왜이렇게 힘든지 오르막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건 정말 고역이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가는데 옆에 벨기에 국기를 자전거에 단 가족들이 슁하고 가버린다. 저 가족 참 대단하다. 이렇게 더운데!

일단 좀 쉬자 싶어 ICC JEJU 컨벤션 센터 앞 벤치에서 누워버렸다. 모자를 얼굴에다가 덮고.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날이 따듯하고 오르막의 노곤함이 그대로 몸에 전해져서인지 그런지 확 맛이 가버린거다. 아무도 깨우지를 않다니, 툴툴거리면서 일어나 다시 갈길을 가기 시작한다. 3일동안 땡볕에 있었더니 진짜 체력 소모가 크다는걸 느낀다. 하긴 또 제대로 된 밥이라도 먹기야 했나, 오늘은 꼭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 겠다.

자전거를 타고 또 쌩쌩 달리며 오늘의 목표인 성산을 향해서 달린다. 아 그 중간에 꼭 섭지코지도 들려야 한다.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면서 자전거를 타다가 마주오는 여행자들에게 서로 익숙해진 안부인사를 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달리고 그러다가 해안경계를 서는 군인을 보면 “수고많으십니다” 하며 인사를 하다보니 벌써 남원을 지나 표선에 진입하게 되었다. 표선까지 왔다는 말은 바로 성산일출봉이 멀지 않았다는 뜻?

이쯤 왔다면 저 멀리 보일만도 한데 아직 성산은 물론 성산일출봉도 한참 멀었다.
이래서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지금 배도 너무 고파 죽겠는데, 그래서 일단 삼각김밥을 사서 먹으면서 계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니 어느새 섭지코지 팻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맞은편에 섭지코지로 들어가는 곳이 보여 이 고개만 지나면 섭지코지로 갈 수 있겠구나 하며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섭지코지 입구로 들어갔다. 그런데 섭지코지 초입부터 자가용들이 어찌나 많은지 주차장 비스무리하게 되어버렸다. 근데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한건 해안에 걸쳐진 기름띠. 뭔가 싶어 봤더니 이곳에 리조트와 호텔을 건설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환경이 많이 파괴 되어 있고 기름이 어디선가 새는듯했다. 아쉽다. 동네 주민 몇몇은 그 기름띠를 보면서 말없이 멍해져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헉헉 거리며 섭지코지에 도착하니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 맨 윗 봉우리에 있는 등대까지 갔다오는데도 자전거를 따로 거치할 곳이 없어 조금은 애를 먹었다. 결국 자전거를 울타리에 매어두고 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푸르른 잔디 색과 건물색의 조화는 아름답다. 빨간 등대의 위엄 또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2시. 3시에 출발하는 우도행 배를 타기에 너무 빠듯한 시간이 아닌가 걱정이다. 일단 최대한 빨리 달려보자 해서 페달을 최대한 돌렸다. 그러다가 섭지코지 근처에서 말 세 마리가 있고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그야말로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사진 포인트가 한군데가 나왔다. 이게 참 욕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 바쁜와중에도 이곳 사진 한번 찍겠다고 후딱 사진을 여러장 찍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서 헉헉거리며 다시 페달을 밟는다. 대단하다 난 정말이지.



몇번을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을 내리니 성산일출봉이 더 가까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척이었던 만큼 힘이 나기 시작했다. 30분정도만 더 가면 성산에 닿을 수 있을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달려보다니 이러다가 펑크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하하. 쭉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벌판을 쭉 달려보니 로시난테가 된 기분이 들었다.

계속 달리다 보니 일출봉에 어느새 일몰이 찾아오고 빨간 태양이 일출봉에 서서히 가려지며 하늘이 빨갛게 물들고 있다. 붉게 물드는 성산에서 다시 돌아 올라가니 종달리 방향 근처에 하얀 성산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이 승선 10분전에 도착해서 우도에 갈 수 있었다. 바람을 가르고 성산항을 뒤로 하며 우도로 떠났다. 우도에 대한 설레임을 가지고 있는 모든 여행자들과 함께.



‘제주에 가게 되면 꼭 우도를 갔다 오거라’ 많은 여행자들이 블로거에 거의 꼭 들러야 하는 여행지로 추천할 때 쓰는 글이다. 예전에는 성산일출봉과 붙어있던 것이 지각활동을 통해 떨어져 나가면서 생겼다는 우도. 소를 닮은 섬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도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시간 40분뿐. 마지막으로 성산으로 출발하는 배를 타지 못하면 우도에서 묵어야 한다.
우도를 여행하는 포인트는 우도8경이라고 불리우는 곳을 하나하나 돌아보는 것이다.
주 간명월(우도봉 아래 있는 굴에 달이 만들어져 비쳐진다는 신비로운 현상), 야항어범(고기잡이 배들이 비추는 빛이 별빛처럼 빛나 장관을 이룬다는 것), 천진관산(우도에서 굽어보는 한라산이 아름답다는 것), 지두청사(우도봉에서 우도전경을 보았을때 그 광경), 전포망도(우도의 앞바다에서 보는 다른 섬들), 후해석벽(우도봉 부근의 기암절벽), 동안경근(검멀래 해안에 있는 굴), 서빈백사(하얀 모래사장) 이렇게 8가지를 하나하나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도를 돌다보면 서빈백사부터 볼 수 있다. 하얀 모래사장이 드리워진 경관을 보면 제주도와는 또 다른 풍경에 반하고 만다. 자전거를 뽈뽈 끌고 다니는 나같은 사람도 있지만, 차를 가지고 한바퀴를 도는 사람 그리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 스쿠터를 이용해서 다니는 사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우도를 찾는다.



 “마치 저기에 보물이 있으니 일제히 흩어져!“라고 누가 말한 것 처럼 우도 8경을 찾으러 모든이가 뿔뿔이 흩어진다. 서빈백사 광경을 보고 나서 계속해서 이동하다 보면 그렇게 우도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금만 가면 저 멀리 우도여행의 반환점 우도봉(132m)가 보이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한 돌담길을 굽이굽이 지나다 보면 비양도라는 조그맣고 귀여운 섬 하나가 또 있는데 그곳에서 우도쪽을 굽어보는것도 아름다운 광경이다. 나머지 8경들은 거의 우도봉 근처에 있기 때문에 천천히 우도를 구경하다가 우도봉 근처에서 보물찾기 하듯 8경을 찾아보면 된다. 다만 저녁에 볼 수 있거나 자연적인 현상의 경우 날씨와 밀물과 썰물 여부에 따라 볼 수 있고 없고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에 몇가지는 포기해야 하지만 굳이 이것들을 찾아보지 않아도 발만 딛어도 최고의 여행이 될거라고 자부한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이곳에서 머물고 싶다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다금바리가 많이 잡힌다고 하는데 다금바리 하면 또 횟감의 최고봉 아니던가 나중에 시간이되면 또 와야지 하며 다짐 또 다짐한다. 다금바리도 먹고 그새 또 변한 우도를 바라보러.



우도봉을 가다가 검멀래 해안에서 동굴을 굽어보기 위해서 밑으로 내려갔더니 우와 신기한 광경을 또 보게 된다. 해녀 아주머니 두분이서 전복을 따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숨쉬는 방법이 제법 특이했다. 휘이휘이 휘리르르르륵. 휘이휘이 휘리르르르륵. 하면서 신기한 소리를 내며 전복을 따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인상 깊어서 사진으로도 찍고 동영상으로도 찍고 얼마나 잠수를 하실까 궁금해서 시간도 재본다. 와 어떻게 저렇게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을까 참 제주도의 해녀들은 대단한 것 같다. 검멀래 해안에서 만났던 해녀 아주머니들도 대정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들처럼 날씨에 맞서며 그렇게 물질을 감행하고 있었다.



검멀래 해안에서 다시 올라와서 우도봉 중간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우도봉을 올라갈까 살짝 고민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바로 우도항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렀다. 이런 이제 30분밖에 남지 않았군. 아쉽지만 이곳은 나중에 들리기로 하고 물론! 여자친구와 함께. 하하. 아무튼 다시 바람이를 이끌고 고개를 하나 넘어 우도항으로 향했다.
“이제 우도항에서 성산으로 가는 마지막 배입니다!!”
하며 저 멀리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재빨리 차들과 스쿠터 사이에 끼어 배에 승선했다. 그리고 배가 떠난다. 다들 우도에서 보물을 찾아 온 모양이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더니 아까 봤던 사람들 그대로다.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성산에 도착할 수 있지만 그동안 우도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또 다시 한번 찾아와야지 마음먹어본다. 그리고 성산에서 다시 우도로 가는 마지막 배가 맞은편에 지나가길래
‘좋은 여행 되세요!’ 하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의 저녁은, 오분작 뚝배기다!




다시 우도를 거쳐 성산으로 왔다. 성산 일출봉에 일몰이 거의 진행되어 숙소를 찾으려는데 섭지코지에서 성산으로 미친듯이 달리다가 ‘성산에도 새로운 찜질방이!’라는 플랜카드를 본 듯 하다. 분명 경찰서 근처라고 했는데 그 기억을 되살려 성산에 살고 있을 듯한 주민에게 물어보니 정말 찜질방이 생겼단다.
“ 유레카!!! ”
찜질방이 있다니 이번에 여기서 묵게 되면 제주도에 있는 내내 찜질방에만 머무르게 되는거네, 분명 자전거 빌려주는 아저씨는 적어도 한번은 여관이나 펜션에서 자야할 것 같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무모함이 곳곳의 보물을 찾게 해주는구나. 

찜질방이 있다는 그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20분정도 해메이다가 찜질방을 찾아내었다. 연립주택 지하에 있는 것처럼 생겼지만 꽤 구색을 갖춘 찜질방. 수면실도 따로있고 정말 안성맞춤이다. 자전거를 세우려고 밖에 다시 나갔더니 나 말고도 다른사람이 이곳에 온 듯 싶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흔적 이제 그 흔적을 볼때마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찾아온다. 다행이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그런 느낌일까?
오늘 하루도 식혜를 먹으면서 푹 쉬어야 겠다.

내일은 일출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게, 날씨가 좋았으면 한다.



(본 글은 2007년 여행했던 기록으로, 숙박시설의 현황은 많이 변했을겁니다. 참고해주세요)


날짜

2010. 8. 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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