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다리에 알배겼어!” 
다들 아우성이다. 여기저기서 알배긴 사람들이 천지. 나도 피할 수는 없었다. 새벽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한 산행이라서 그런지 몸이 굉장히 찌뿌둥하고 허벅지에 알까지 배겨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새벽 5시에 약속한 곳으로 나와보니 누나도 알배긴거 같다고 난리다. 그래도 어떻게 하나, 일단 칼은 뽑았으니 나무라도 베어야지.
저 멀리 산봉우리를 보면서 다들 “어우 우리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가냐”하며 한숨을 짓는다. 여하튼 일출은 봐야 하니까 일찍 출발하긴 해야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행을 시작한다.

“근데 아저씨랑 꼬마는?” 누나가 물어본다.
“어제 잘 때 얘기했는데 아저씨랑 꼬마는 천천히 올라간다고 저희 먼저 가랬어요”
“어이구 아쉽네, 그래도 어디서 또 만나겠지 뭐”
나는 다시 비닐봉지를 쟁여들고 누나는 배낭을, 형들은 신발끈을 고쳐매고 다시 저 멀리 보이는 촛대봉을 향해서 오른다.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에서 일출을 보기에 제일 적합한 곳으로 촛대봉 일출과 천왕봉 일출을 추천하는데, 촛대봉 일출은 보기가 쉬운반면 천왕봉 일출은 시간과 날씨 때문에 거의 보기가 힘들어 선택받은 사람만 볼 수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날씨를 보아하니 오늘 일출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올라가는 내내 서서히 비가 내리니 정말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일출은 포기해야 한다.
경사진 곳을 헉헉대고 올라가니 저 멀리 촛대봉(1703m)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 저게 정말 촛대봉이야?” 다들 정말 촛대봉인지 궁금해서 난리다. 그래서 봉우리 근처로 올라갔더니 촛대봉을 알리는 표지판이 떡하니 서있다.

“아우 다리 알배겨 잠깐 쉬자” 누나의 제안에 한 40분만에 한번 쉬었다. 구름이 지나가다 보니 이슬비가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와중에도 우리는 이 광경이 마치 무릉도원 같다며 좋다고 사진을 찍어댄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리산 너무 잘 온거 같아 이렇게 멋지다니” 누나가 감탄한다. 그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몇 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 산이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는데, 지리산을 매번 볼때마다 이렇게 다른 풍경을 보여주니 언제와도 친구같은 산이 바로 지리산이 아닐까 한다.

1703m라니, 이제 천왕봉(1905m)까지는 해발로 따지자면 200미터 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 쉬다가 다들 어디 한번 누가 이기는지 보자며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조금만 더라구 조금만 더어~!!” 다들 낑낑거리면서 오르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올라가다 황량한 벌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가 다 타서 죽은건지 말라 죽은건지 사막에 온것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어 여기 나무가 왜 다 이렇지?” 누나가 물었다.
“제 생각엔 여기 아마도 화재 사고가 있었지 않을까요? 보아하니 나무가 그냥 말라 죽은게 아니라 화재로 인해서 타 죽은거 같아요”
“아 진짜 안타깝다. 이거 다시 복구되려면 몇십 몇백년은 있어야 하는데 그치?”
“예, 정말 그런거 같아요”

그렇게 안타까움을 뒤로하며 다시 걷는다. 한 30분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저 멀리에 마지막 베이스 캠프라는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산장 앞에는 커다란 헬기장이 있고 산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거 같다. 이곳 벤치에 앉아 쉬고 있으니 사람들이 다들 분주해진다. 지금쯤 출발해야지 중산리에 도착할 수 있다면서.
“여기서 30분만 가면 바로 천왕봉이에요” 라며 우리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아저씨. 이제 정말 고지가 멀지 않았다.


“얘들아 다시 힘내자!” 누나의 구령에 우리는 다시 열심히 올랐다.
얼마 안있어 제석봉을 넘자마자 아주 커다란 바위가 떡하니 서있다. ‘通天門(통천문)’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제 여기만 넘어서면 바로 천왕봉인가?
사람들이 바람에 맞서 일렬로 조심조심히 올라가며 통천문을 지난다. 우리도 서로 사진을 찍어가며 통천문을 지나는 기념사진을 찍고 통천문을 지나니 저 멀리 나무도 보이지 않는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우와!!! 드디어 천왕봉이다!!!!”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거의 눈도 못 뜰 정도에 비도 내리고 있어서 온 몸이 이내 축축해지긴 했고 원하던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감격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드디어 성삼재에서 여기까지 33.4km나 걸어온거야!!! 우와아!” 다들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저멀리 함께 ‘야호~!!!’를 외쳤다. 나는 혼자서 앞으로 있는 모든 일이 다 잘되고 부모님이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혼자서 빌었다.

‘ 아 이곳이 바로 그곳이었어, 어머니가 화장대에다가 붙여놓은 기념사진 찍었던 곳이. 분명 어머니도 이곳에서 우리가족의 건강을 나처럼 빌었겠지?’ 하며 생각해본다.
서로 신나서 셀카를 찍느라 정신 없을때 저 멀리서도 익숙한 목소리의 두 남자가 등장한다.
“우와 아빠 드디어 도착했어!!”
천천히 올라온다던 아저씨와 꼬마다.
“벌써 도착했군요, 새벽에 간다더니만 하하”
“예! 근데 너무 온몸이 쑤셔서 생각만큼 빨리 움직이지 못했네요 하하”
그렇게 아저씨와 천왕봉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시간이 촉박해 먼저 하산하기로 했다.



근데 하산이 이렇게 쉽지 않을 줄이야 매우 위험한 하산코스가 될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경사가 너무 높아!!” 다들 소리쳤다.


거의 슬라이딩식으로 신발을 질질 끌면서 내려가는 코스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서로 “어떻게해 어떻게해”를 연발하며 내려갔다. 반대로 생각하니 이쪽으로 역행해서 종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생각해봤다. 그렇게 하산을 하며 법계사를 지나니 어느새 조금 코스가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천왕봉에서 내려온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우리는 산 중턱에 와있는 기분이다. 아까처럼 세차게 부는 바람은 온데간데 없고 이내 맑은 날씨와 쨍쨍한 햇살만이 있다.

“아 진짜 내려갈때마다 발목 아파서 죽겠어” 누나가 갑자기 발목이 아프다고 한다.
“중간에 쉴까요?”
“아니야 일단 로타리 산장까지는 가보자 얼마 안남았으니”


그렇게 계속 누나는 발목에 통증을 호소하며 하산하고 나머지 예비군 형들은 체력과 알배김 때문에 자꾸만 뒤쳐진다. 나는 그냥 퐁퐁 뛰어서 하산한다.
“쟤는 힘들지도 않네~” 하며 형들이 얘기하길래 “형들도 한번 해보세요 이게 더 덜 힘들어요”라고 해서
한번 해보니까 정말 그게 충격이 덜 온다면서 퐁퐁 뛰면서 하산한다. 아무래도 계단 계단이다 보니 발목에 무리를 주기전에 다시 다른 땅을 디뎌서 그런지 무리가 덜 오는 듯 했다.
1시간 10분쯤 지났을까 로타리 산장에 도착해서 발목을 좀 돌려보라고 하며 우리는 걱정을 하다가 누나가

“까짓것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하며 애써 씩씩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은 빨리 하산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 일찍 내려가기로 한다.
어느새 후다닥 내려가니 망바위에 도착했다. 그쯤 되니 저 멀리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콸콸콸콸..
“얘들아 저기 밑에 계곡이 있나봐 거기서 좀 쉬고 가면 안될까?”
누나가 찬물로 찜질하고 싶다고 하면서 계곡에 가잖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계곡가로 갔다. 계곡가에 보니 사람들 몇 명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아 역시 계곡가에 발을 집어넣으니까 찬물 찜질이 제대로 되는구만!” 하하하
우리는 몇분간을 양말까지 벗어가며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기 뱀있어요!!!”
다급한 목소리에 우리도 물속에 넣고 있던 발을 빼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 말로는 저 위에서 뱀이 발견되서 물을 따라 헤엄쳐서 밑으로 내려가고 있단다. 어휴 계속 물놀이 했으면 골로 갈 뻔했다. 제대로 정신이 바짝들었다.
“뭐 이곳 자연이 깨끗하단 증거겠지” 누나는 낙천적으로 생각한다. 하긴 우리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지 않았는데 뭐.
“아 이제 한결 나아졌다. 한시간만 가면 매표소 도착이다. 조금 더 힘내자” 누나의 말에 우리는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바로 앞에있는 칼바위를 지나니 저 밑에 조금씩 매표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와 드디어! 매표소다!!! 하하하”

다들 드디어 환호성을 지른다. 다리는 질질 끌면서 하하. 매표소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간의 이야기들 그간의 풍경들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참 내 자신이 생각해도 자랑스럽다. 중산리 쪽에서 성삼재로 역행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도움을 줬는데 간혹가다 힘들어서 풀썩 주저 앉으면 “아이고 여기서 지치지 마요 이제 어디까지 몇 분밖에 안 남았으니까 힘내요 파이팅!” 하며 용기를 주곤 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일전에 제주도 일주때도 시계방향으로 일주하던 사람들이 “어디어디까지 이제 1시간만 가면 되요 힘내요!” 하며 인사를 해주곤 했었다. 이곳 중산리 매표소에도 사람들이 우리가 하산을 끝낸 하이커들인걸 알아보았는지 우리에게 물어본다.
“천왕봉까지 내려오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힘내세요! 여기서 천왕봉까지 3시간 남짓 걸렸으니까 금방 갈 수 있을꺼에요”하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들도 나중에 천왕봉에 올라 "야~호~“를 외치고 다른 하이커들에게 얼마남지 않았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겠지?

중산리에 도착해서 다들 김밥 한줄을 사려고 기다리다가 보니 저 멀리서 아저씨와 꼬마도 내려오고 있다.
“어이구 아직 안가고 있었네요?” 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아저씨.
그런데 아저씨가 시계를 보니 곧 여기서 진주․사천 방향으로 나가는 버스가 이제 곧 간단다. 여기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간다 해도 못탄다는데, 우리는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 경우는 집에 가는 버스가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6:30분에 딱 한 대 있어 그걸 타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찾기가 힘든데,
그래서 어짜피 아저씨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청주방면 차를 타야했고 나도 그 터미널을 이용하면 되어서 아저씨와 꼬마와 나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협상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진주로 나가기로 했고 누나와 예비군 형들은 여기서 김밥을 사먹고 나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알아서 타고 갈 계획이란다.

“아이구 아쉬워서 어떻게 하지 동생, 김밥이라도 줘서 보내야 하는데” 누나가 아쉬운 모양이다 나두 아쉬운데
“씩씩하던데 군생활도 잘 하겠어! 조심히 가!” 그간 정들었던 예비군 형들하고도 작별 인사를 해야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인연이지만 서로 그 인연을 지속하기 위해 메일주소와 미니홈페이지 주소를 주고 받았다. 다들 건강하게 있으라고 인사한 후 나는 택시를 타고 진주로 향했다.

“학생은 참 좋은 사람들 많이 얻었네, 왠만한 성격 아니면 이렇게 동행자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말야” 택시안에서 아저씨가 말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내가 여행하는 모든곳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거 같다. 축복받은 여행자라는 말을 이럴때 하는건가. 정말 여행을 하면 마음이 풍족해지는 이런 느낌 때문에 내가 여행을 지속하는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주역에 도착하니 청주행 버스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저씨와 나는 거의 작별인사도 못한채 헤어질수밖에 없었다.
“자 학생 여기 우유 한잔 먹어 내가 사는거야. 우리 아들이랑 나한테 많은 자극이 되었거든. 앞으로 더 여행한다고 그랬나? 힘내자구!” 하며 우유를 하나 쥐어줬다.
너무 감사해서 아저씨와 꼬마를 폭 껴안고 보내드렸다.
"아저씨 건강하세요! 꼬마야 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해!!!“
그렇게 아저씨와 꼬마 마저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보니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 하다. 여행 처음 혼자였는데,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영월에서 들었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들었다.
 


마치 그간의 영화가 음악 하나로 영화처럼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많은 깨닳음 그리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있어 큰 에너지 얻었다. 창문에 얼굴을 기대고 잠시 이번 여행을 추억해본다.

모든 일이 마치 한단지몽 마냥 꿈같은 느낌. 아 정말 그리울 거야 그간의 모든 일들.

여느때 처럼 버스에서 내리고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반가히 맞아준다. 그래 내가 돌아올 곳은 바로 여기지. 내가 어디에 있든 말이지.

집에서 사진을 정리하며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어 준영아 잘 도착했어? 누나는 잘 있다. 건강하지?”
"어 잘 계셨어요? 아직 몸이 쑤시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그때 제주도에서 연락드렸었는데 거기서도 살아 돌아 오셨네요? 하하”

올해는 정말 가슴이 따듯해질것만 같다.
 

날짜

2010. 8. 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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