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거진 4년만에 다시 만나뵙게 된건, 어떻게 보면 내 마음속 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이것저것 이유때문에 뵙지를 못했다.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다. 그 치기 어린 마음의 실체는, 선생님에 대해 마음이 많이 상했던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대입 실패의 고비를 맛보고 나서 난 재수를 했고, 여행기에서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여행을 떠났고 그로 인해 내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열심히 1년을 보냈고 그에 대한 칭찬을 받을 심정으로 고등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성적표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건 다 좋은데 영어 성적이 많이 떨어지는구나"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점수는 학과 전액장학금을 받을 점수였고 학과탑을 했던지라 단 하나의 A를 질책하는 선생님을 난 그때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난 그 이후로 선생님과 연락 단절, 그리고 금희환향하기 전까지는 만나뵙지 않겠다라고 공언하였고 그 기간은 4년으로 잡았었다.
참 바보 같았지, 여태까지 그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정말 4년을 만나뵙지 못했다. 군 입대 문제도 그렇고 이런저런 활동때문이기도 했지만 막상 만나 뵐 시간이 있어도 그때의 공언이 생각나 끝까지 고집을 부렸었다.
그러다가, 오늘 딱 4년째가 되는 날이기도 하고 선생님을 만나뵈야 겠다는 맘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을 만나뵈야 겠다는 계기를 제공해준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내가 군대에 복무하고 있을 동안 반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준영인 어디있냐? 뭐 하지? 정말 보고 싶구나"라는 말을 했다는걸 친구들에게 들었던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최소한 정말 제자라면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편히 만나 뵈는 것이 도리이건만 난 왜 20대 중반이 넘어가려 하면서도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 걸까. 참 한심하다.
그렇게 난 전역을 했고, 담임선생님을 만나뵈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 시기가 문제였지, 사실은 참 망설였던거 같다. 그러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만나 뵈러 가지 않을래?"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선생님께 지금까지 뭘 해놨다 라고 보여드려야 하는 거지? 4년간 대체?' 하며 큰 부담감이 들었다. 그래도 선생님도 그립고 해서 만나러 가는 것을 승낙했다.
오랜만에 학교로 찾아가 근 5년만에 만나뵈는 선생님은 예전과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의 슬리퍼, 그 옷차림 그대로였다. 다만 세밀하게 바뀐 부분은 머리가 많이 히끗해졌다는 것? 그것 말고는 내 기억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주셔서 오히려 내가 죄송하고 죄인같은 기분이 들더라.
선생님과 함께 술자리를 하고,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우리 담임선생님을 내가 죽어도 잊을 수 없는게,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줄곧 담임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쩌면 선생님도 나를 참 잘 알고 나도 선생님을 참 잘아는 그런 위치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술자리를 지속하는 동안, 이러저러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선생님 당신은 술에 취해서 내가 참 말이 많지 하면서 스스로 낮추시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제자들이 잘 되기를 바래서 하시는 말씀이라 많은 생각을 하면서 들었다.
인생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 행복감.
그래 어떻게 보면 우리는 물건을 사고 나오면 정말 행복하다.
다시 되돌아 보자.
우리는 너무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 않은가?
선생님은 자신을 아무리 낮추려 해도 당신은 얼떨결에 자신을 포장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하셨다. 내 위치는 그렇게 뛰어난 위치가 아니고 잘하고 있지 않는데 많은 사람 안에서 나를 조금더 낫게 보이려, 조금 더 우월해 보이려고 자신을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벽을 하나 만들어 주고 있지 않은가 인생 살면서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포장한 나를 사람들에게 보이면 결국은 행복하냐는 이야기였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철퇴로 머리를 쎄게 얻어맞은 듯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을 들어가고 근 4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을 열심히 포장하려 했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노력했는지 하고 생각하니 왠지 그러고 있는건 아닌가, 너무 내가 겸손에서 멀어지고 있진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니 선생님이 나에대해 너무 잘 알아서 내게 해주신 밀알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마 술잔을 계속 부딪치지 못하고 그렇게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여태까지 대학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을 포장하고 무조건 남들보다 나은 스펙을 쌓으려 하고 인간적인 면은 전혀 배제한 채 사람들 사이에 서면 다른사람보다 내가 정말 멋진일을 하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내가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재평가하게 되는 큰 계기를 생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렇게 패키징 된 물건을 들고 나오면 행복하냐는 것이다. 그것도 간혹 좋은 물건을 사가지고 나와야 만족과 행복을 얻지 그렇지 못한 쭉정이 같은 물건을 가지고 나와 포장을 열어보면 결국은 필요없는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왠지 담임선생님의 말을 들을때, 내가 그 상황에 놓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해지면서 겸손해질 수 있는 방법을, 그 결과 최고의 방법은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겸손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하는 것이 보잘 것 없지만 당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라는 식의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에 대한 질문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은 그것 또한 세월을 버텨내면서 터득하는 자연스러운 능력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나면서 좋은 말씀을 듣고 희망을 많이 얻고 칭찬도 얻었지만 정작 당신은 "내가 술에 취해서 참 말이 많지? " 라고 하시면서도 제자들을 격려해주고 조금이나마 좋은 말을 해주려는 것을 보면서 역시 우리의 스승이구나, 우리를 정말 끔찍이도 생각하시는구나 라는 걸 더할나위 없이 느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다른 길이나 어긋나는 길을 가더라도 걱정해주시고 조언해주실 분이라는 걸 더 확신하게 되었던 계기 이기도 하고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잘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전화가 울렸다. 집에가던 도중에
띠리리리
"여보세요"
"준영아 집에 잘 들어갔니?"
"네 잘 들어가고 있어요!"
"내가 생각하기엔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아까 말했던 것 처럼 많이 인정받을거야"
"아이구 제가 뭐가 잘나서요~ 무조건 열심히 해야죠~ 담에 뵐때는 잘 되서 뵐께요"
"뭘 잘 되서 만나~ 지금 처럼 그냥 최선을 다하고 너무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 가지지 말고 천천히 길을 찾아"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조금 멍해졌다. 집에가는 길에 전화를 받아 일단은 선생님께 열심히 할께요 라고 얼버무렸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고 내가 너무 강박관념 속에 성공을 쫓아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걷든 달리든 목표에 도달하는 건 매 한가지일텐데.
술잔을 기울이면서 인생을 마셨고, 내 자신을 술잔에 투영하면서 많은 반성을 해본다.
그래, 난 아직 어려. 차를 조금씩 우려 마시듯 내 인생도 조금 더 진하게 우려 마실 수 있도록
내 자신을 좀 더 단단하고 파릇파릇하게 해야겠다는 새로운 과제를 얻은 날이었다.
선생님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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