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분명 전과 다른 수면 패턴인데도 신기하게 저절로 일어나졌다.

옆에 규환형을 보니 형도 반쯤 깬 것 같다. 예불은 기상을 하고 난 30분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도 이는 닦자 싶어 주섬주섬 칫솔을 들고 샤워장으로 향하려 하니 분명 밤인데 조금 밝다는 느낌이 들어 하늘을 바라봤더니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어제 본 저녁의 그것과는 다른 너무나도 초롱초롱한 별들
우리는 동시에 목에서 이런 감탄사를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우와~~~~!!!!!!! 믿을 수가 없어"

그것은 분명, 규환이형이 군대에서 봤던 것보다, 내가 전국일주를 하며 우연히 마주친 것 보다 더 의미있고 엄청난 별빛이었다.

우리의 끝없는 감탄을 멈추게 한건 예불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북소리에 이끌려 예불을 하러 가면서도 우리는 앞을 보고 걷는게 아닌 하늘을 보고 걷고 있었다.

숭고한 2번째 예불을 드리고 밝아오는 경내를 바라보며 첫 공양을 했다.
스님부터 드시고 나서 공양을 받는데 밥을 한 웅큼 먹어보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분명 나물이나 채소위주의 식단이지만 콩조림은 자꾸만 손이 가고 맛있는 제철나물은 입맛을 확 돌게 했다. 역시 절밥이 정말 맛있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




공양을 마치고 나니 무연스님이 제안을 하나 하셨다.
"우리 운동이나 할 겸 깊은 공기 마실겸 암자나 한번 갔다 올까요? 아직 새벽이라 공기도 좋은데요"

우리는 흔쾌히 무연스님을 따라나섰다.
경내에 비밀통로를 지나 물가를 지나면서 바지부분이 살짝 젖는다.



우리는 이곳에 징검다리를 만든다..


"여기에 징검다리가 있으면 참 좋겠는데요"
그 말을 듣고 시간이 나면 내일 시간나면 큰 돌을 이다가 만들어 보겠노라고 했다.

우리가 갈 암자는 연기암.
가는 길은 사실 오래걸리지만 스님이 아는 지름길로 가면 1시간 안에 갈 수 있다.

근데 무연스님의 산행속도가 우리보다는 한참 빠르다.
"와 스님 진짜 빠르세요"

스님은 그에 대한 대답은 짧게 하셨다 "힘드시죠?"

첫인상은 그저 호탕하신 분일거다 했는데 왠만한 체력도 남자에 비등해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올라 연기암에 다다랐다.

금정암에 오니 운무가 서서히 휩싸이며 금정암에 바라보는 골짜기를 구름호수로 만들어버렸다. 그 또한 장관이었다. 우리 주위에 들리는 소리라곤 나무가 스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풀벌레 소리 이게 다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난 암자 끝으로 가서 그 느낌을 머리에 넣기 위해 힘썼다.




시원했고
맑았고
고즈넉했고
새로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물고기모양 종소리는 청명했다.
왠일인지 아무런 말도 감탄사도 내뱉고 싶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지고 싶었다.
규환이형도 처음엔 의아했겠지만 내 의중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을거다.

너무 말 없이 그래버려 너무 미안하긴 했지만 내겐 너무나 소중한 풍경과 시간이었으니까.

연기암에서 시간을 보내고 내려와 대나무 밭을 지나 우리는 경내를 돌아봤다.
워낙 넓기 때문에 적멸보궁부터 시작해 여러군데를 돌아보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규환이형은 사진으로 경내를 그렸고 난 카메라가 없었기 떄문에 마음으로 그려냈다.





















화엄사에 이따금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우리의 행색을 보곤 어떤 프로그램인지 물어보기에 바빴다. 사실 우리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끌려 오길 바랬지만 그냥 묻는 말에 대답만 해주고 부가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적멸보궁이 있는 몇 안되는 우리나라 사찰인
화엄사는 조용히 찾아 온 우리를 반갑게 반겨주었다.




안녕? 하고 시원한 바람 인사를 건넨다


이 곳에서 널 적당히 비워내.



그렇게 경내를 훑어보다가 세령누나가 화엄사에 도착해간다는 소식을 알려와 입구까지 마중을 나갔다. 살짝 지쳐보이긴 했지만 누나에게 이것저것 경험담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그렇게 경내에서는 경건하고 조용해지더니 기껏 입구라고 말이 확 터지다니 나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애다.



누나도 우리처럼 편한 옷을 갈아입고 경내를 살짝 돌아본 다음 점심공양을 하고 아까 암자로 갈때 바지가 살짝 젖었던 계곡 언저리로 갔다. 돌을 나르고 몇번 힘을 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만의 돌 징검다리가 만들어졌다. 무연스님은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며 앞으로 이 징검다리를 스님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될 거라며 뿌듯하게 생각하라고 하신다.

우리 세명은 그 곳에서 징검다리를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고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만, 내가 그때 좀 생각이 많아져서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물가를 지긋이 바라봤다.

처음엔 형과 누나도 좀 이상하다 싶어 상태를 물었지만
난 괜찮다고 말했다.



그냥 지긋이 바라보니,
거울 같기도 하고...
그냥 느낌이 새로웠다.
아무 생각이 없는 그 상태가 난 너무 좋았다.
걱정도 즐거움도 아무 감정도 시간도 멈춰버린 그 상태가 좋아서 그러고 있었던거다.

이런 느낌을 가져본건 처음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는게 아니라
생각이 비워지는 느낌이라....



눈 깜짝할사이 점심공양과 저녁공양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언제먹어도 맛있는 반찬.
무연스님은 저 위에 다도실에서 스님과 환담을 나누는 자리가 있다고 해서 7시가 되면 살짝 찾아오라고 했다.

다도실에 들어서자 우리와 함게 수련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부부와 여자세분은 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마음을 열었다.



지금까지 무얼했냐는 질문에 여자세분은 구례 산수유축제에 갔다 왔다는 말, 그리고 부부는 경내를 돌아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화엄사에도 태동하기 시작하는 벚꽃이 참 기대되는데 일전에 갔었던 쌍계사의 벚꽃이 너무 예뻐 이번 체험을 끝내면 쌍계사에 갈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제각각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었다.
결국 스님은 오시지 못했고 우리는 우리만의 다도를 즐겼지만 나름 의미있고 서로를 향해 한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무심코 찾아온 깊은 밤
우리는 또 다시 별에 취해, 수련원 앞에 있는 물소리에 취해 그렇게 잠이 들었다.

....


다음날 규환형과 세령누나는 경내를 더 돌아보기로 하고 나는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경내 외부를 좀 돌아보기로 했다.

혼자서 흙을 느끼면서 화엄사의 둘레를 따라 도는데 그 곳에도 숨겨진 절이 많았다. 그곳에는 스님들이 직접 밭을 갈고 싱싱한 채소를 재배하며 나름의 삶을 일구어 나가고 있엇다. 절이라는 느낌보다는 사람이 사는 그냥 마을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약간은 중함을 덜어낸 화엄사의 외곽은 담백한 걷기였다. 게다가 꽤 길기도 해서 운동도 하고 왔다.



경내를 나서면서 우리 셋은 조용히 무연스님께 합장을 하고 떠났다. __()__ ...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무연스님은 그 건강한 웃음이 평생 기억에 남을것 같다. 뭘 하든 호탕하게 잘 하실 것 같고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서의 구례구역.
우리 셋은 어느정도 삶의 무게를 덜어낸 이번 여행에 아주 만족하며 들때보다 날때의 표정이 훨씬 밝아진 모습이었다.

나도 어지러운 세간살이를 좀 덜어낸 것 같아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게 이런 기회를 준 규환이형, 그리고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던 세령누나 모두 내겐 보물같은 존재. 그리고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갚아가야 하는 평생 소중한 사람들이다.



아름다웠던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보름이 있은 후 나는 뉴욕으로 떠나기 위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사진출처 : Qhwan™ (http://qhwan.tistory.com)



 

날짜

2010. 9. 1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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