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수 해양엑스포 때문에 시끌벅쩍 했지만, 내가 다녀온 여수는 비교적 조용했었다. 여수 신항도 한창 만들고 있어서 공사중인것만 빼고 여수여행은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물론 로맨스도.


아침 일찍 광주를 떠나 정신없이 졸다보니 벌써 순천이다. 순천에서 바로 여수로 가는 새마을호가 있길래 잡아타고 여수로 향했다. 처음 여수에 도착했을때 살큼하게 나는 바다냄새가 인상깊었다. 바다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여수역을 나서자 마자 보이는 정류장에서 나는 2번버스를 타고(타기전에 진남관행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간혹 오동도로 가는 노선이 오는 경우도 있다) 여수여행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 진남관으로 향한다. 


진남관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건물이 있는 자리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여수의 정확히 중심에 위치해있다. 






진남관은 고도가 약간 높아서 이렇게 여수 시내를 조망할수도 있고 저 멀리 바다도 볼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진남관을 돌아보고 관내에 있는 박물관도 다녀온다면 대강 이곳을 알아보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진남관 앞에는 버스노선이 있는데 111번과 113번을 타면 바로 향일암으로 갈 수 있다. 오늘 루트를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는데 지도를 펼쳐서 결정한 루트는 진남관-향일암-오동도-게장골목-돌산대교 야경을 보는 순서대로 다녀오는게 가장 효율적이어 보였다. 일단 여행의 기본은 가장 먼데부터 가까운데까지 가는 것. 이렇게 가야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어레인지 할 수 있다. 


아침밥을 먹지 못해 인근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하나와 우유를 사서 한입 베어물고 향일암가는 버스를 타고 떠난다. 향일암 가는 버스 노선은 여수 중앙시장을 지나 돌산대교를 건너고 향일암으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다. 버스 간격은 두대가 동시에 다니기 때문에 얼추 30분 간격으로 있다고 보면 된다. 일출이 워낙 유명한 향일암인지라 새벽기차를 타고 여수역에서 도착할 경우 진남관에서 타지 않아도 여수역을 경유하는 버스가 있으니 참고하자.






로터리를 지나 시원한 풍경을 몇번만 마주하면 향일암에 닿을 수 있다. 절대 향일암을 가는 도중이라면 갈때는 왼쪽 창문, 다시 시내로 돌아올 때는 오른쪽 창문을 타면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

















버스에서 내리면 갓김치를 파는 골목이 보이는데 골목 급경사를 지나면 이내 향일암 매표소가 보인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약 한시간정도 오르면 되는 코스. 살짝 급경사이기도 하고 계단이 많아서 다소 힘든 코스지만 올라가면 그 노력을 다 보상받을 수 있는 경치를 자랑한다. 푸르른 바다위에 있는 향일암은 이름처럼 일출이나 일몰을 보기 위해서 많이 찾는다는데 오후에 가도 충분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딱봐도 한적한 시골느낌도 나지만 푸르른 바다를 보면 힘이 절로 나서 더 좋은 곳이다. 우리는 왜 여수에 왔는가, 바로 바다를 보기 위해서 온 거 아닌가? 이곳에 있는 만큼은 꼭 바다를. 그 푸르른 바다를 맘껏 느껴보자. 향일암을 다녀오는 시간은 넉넉잡아 2시간을 잡으면 된다. 먼저 버스가 섰던 정류장에 있는 시간표를 보고 다시 되돌아가는 버스시간표를 미리 핸드폰으로 찍어놓은 뒤 여유있게 시간을 완급조절해서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1시 30분 차를 타고 다시 향일암에서 빠져나왔다. 








향일암에서 시내로 오는 길은 정말 한적한 시골마을이 계속된다. 때론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집고 타시고 광주리에 말린고추며 나물들을 싣고 시내 시장으로 향하는 할머니들이 많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일도 많이 일어난다. 버스기사아저씨는 할머니가 저 멀리오는걸 보고 버스를 멈춰 할머니를 꼭 태우고 떠난다. 할머니는 아저씨에게 감사하단 말을 잊지 않고 아저씨는 함박웃으며 다시 버스를 운전하는 마음씨 넓은 이곳은 단연 여수에서 최고로 뽑고 싶은 동네다. 사실 지금에 와서 이 동네 이름을 기억하라면 기억 못하겠지만 일단 향일암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어떤 마을 중 하나로 정해놓는다. 






향일암을 벗어나 버스가 굽이굽이 도심으로 진입할 때 쯔음 다시 보이는 돌산대교. 왠지 이곳에서 내려 야경이 아닌 그냥 돌산대교를 보고 싶었다. 여름이고 햇볕이 강한 낮이라 그런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조용한 상태에서 굽어보는 바다는 정말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멀리서 배가 떠나는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건 어쩌면 여수에서만 즐길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가끔 울려퍼지는 mp3 노래에 풍경에 그냥 흠뻑 빠져들면 이곳이 지상낙원이구나 한다. 








다시 여수에서 진남관까지 가야하는데 이곳에서는 바로 여수역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 때문에 111번을 다시타야한다. 돌산대교의 풍경을 보는데에는 40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정류장에 내려가보니 또 111번버스를 볼 수 있다. 이 버스를 타고 다시 진남관으로 가서 오동도행 2번 버스를 타면 여수역을 거쳐서 가게 된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오동도, 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일몰 직전에 오동도를 방문해보기로 한다. 오동도로 향하는 입구는 벌써부터 여수엑스포를 위한 단지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혼란스러운 입구를 지나 쭉 직진하면 오동도 동백열차 타는 곳이 보인다. 가격은 편도 500원으로 재미로 타는셈 치고 한번 타본다. 사실 걸어서도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라 선택은 여행자에게 맡겨본다.













오동도에 도착하면 음악과 함께 시원한 물줄기가 인상적인 음악분수가 보인다. 이곳부터가 오동도의 시작점으로 보통 급수대에서 물을 충전하고 오동도를 오르는데, 나는 오동도 왼편 끝에 있는 조그마한 등대를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고 왠지 한적한 것이 좋을 것 같아서다. 들어서는 순간 정말 좋았다. 내 양쪽엔 바다가 있고 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와 시원하기까지. 














10분동안 천천히 걸어 등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30분동안 한숨 잤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와 갈매기 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너무 시원하게 불고 있어서 나만의 아지트인냥 팔벌려 잠을 잤다. 아침부터 일정을 빡빡하게 돌아야 했기 때문에 심신이 피곤해져있었던 이유도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여행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치유의 목적이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여행을 자주 했던 것 같다. 학교생활하면서는 여행은 꿈도 못 꿀 정도로 학교에 시간을 전부 투자하고 목표를 이루고 나서야 그 노곤함 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핸드폰 연락은 거의 받지도 않은 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여행을 갔다오면 항상 뭔가를 얻고 돌아왔고 배웠다. 내게 여행은 힐링이다. 




오동도에 들른 사람들은 한번쯤은 맨발로 이 코스를 걷곤 한다. 피톤치드는 말할 것도 없고 시원한 바람속에 치유를 목적으로 온 가족단위 여행객들. 시끄러울 법도 한데 다들 조용히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총 1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다. 오동도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까지는 시간이 상당하게 소요가 되는데 중간중간 테마길도 많고 해안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하는 길도 많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포스팅하겠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울산에 있는 대왕암 바위와 많이 닮아있다. 





전망대에 올라 멋진 풍경을 바라보니 서서히 일몰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이 몇시인가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지나고 있다. 조금 분발해서 걷기로 한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게장골목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오동도에서 출발하는 2번버스를 타면 아주 간단하게 게장거리로 갈 수 있다. 여수하면 게장이 참으로 유명한데 집집마다 맛이 다르고 특색이 있으므로 호불호가 갈리는 면도 없지 않다. 이곳에는 황소식당이나 두꺼비식당처럼 유명한 집도 많지만 잘 찾아보면 작은 게장집도 맛으로는 평타다. 나는 혼자 온 여행객이기 때문에 1인분이 되는 게장집을 찾아야 했는데 유명한 게장집은 전부다 1인분은 안된다고 거절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타이밍을 잘 맞춰 어떤 사람과 같이 먹어야 하는데 당췌 혼자 온사람을 볼 수가 없다. 내일로 여행자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린건지!!! 

그래서 인근에 있는 피씨방을 가서 1인분이 되는 게장집을 찾아보기도, 동네 놀이터 가서 의미없이 앉아서 저녁 피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7~8시쯤 게장거리를 다시 찾았다. 알다시피 봉산 게장거리의 운영시간은 상당히 일찍 끝난다. 저녁 9시만 되도 예약을 받지 않고 폐장준비를 하는데 내가 게장거리를 다시 간 시간은 벌써 8시. 이러다가 게장을 못먹는건가 하고 걱정하던 찰나 한줄기 희망이 생겨났다. 






이 등가게장집을 찾아갔는데 아저씨가 1:1 매치를 시켜주는게 아닌가. 혼자서 먹으려고 그냥 들어간건데 아저씨께 1인분 되냐고 물었을때 마침 여기 혼자 드시러 온 분이 있다며 같이 합석해서 먹으라며 주선해주셨다. 또 하필 여자 내일러. 선하게 생긴 인상이 일단 경계를 풀게했다. 그리고 조금 웃겼다. 처음 보는 남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보고 게장을 뜯다니 말이다. 조용히 먹기는 좀 그래서 이것저것 여행이야기도 하고 썰을 풀어나가다보니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88년생 부산여자(이름은 밝히지 않는다)와 함께 그렇게 게장을 먹고 나섰다. 주인 아저씨는 이것도 인연이라며 같이 여행하라고 부추겼지만 그녀는 곡성으로 가야하는 스케쥴이었고 나는 부산으로 가야하는 스케쥴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라며 돌산대교 야경이나 보러 가자고 했다. 택시를 타고 돌산대교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는데 야경이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반대편에 눈을 돌리면 여수 시내의 야경도 함께 볼 수 있는데 참으로 로맨틱 했다. 


여행지에서 누굴 만나서 이성끼리 얘기하는 거 참으로 오랜만이었는데, 살짝 맘이 가는 처자였지만 딱 추억으로 남겨두리라 생각했다. 서로 집에서 일어났던 재미난 일들도 공유하고 같이 차가 끊겨 돌산대교를 걸어 시내 중심까지 걷기도 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돌산대교 끄트머리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막차를 타고 찜질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택시를 타고 여수역으로 간다. 

택시 아저씨는 물었다 


"여수에 혼자 여행왔나봐요?"

"네, 아저씨. 근데 여수 생각보다 너무 볼게 많았던 여행이었어요. 여수에서 로맨스도 느껴보고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저도 여수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도시인 것 같아요. 바람도 시원하고"


아저씨는 다음에 또 여수에 놀러오라는 말을 잊지 않으시곤 날 여수역에 바래다주고 떠나신다. 












그로부터 1년후.

버스커버스커가 여수밤바다라는 노래를 들고 나왔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왠지 그때의 그 감정들이 살아난다. 

곡성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 카톡을 하지만 

그래도 한번 보고는 싶네. 



날짜

2012. 9.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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