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출발은 오전 08:45분. 우리는 06:30분쯤에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불과 이틀전에 이곳에 있었는데 다시 어디론가 가려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마치 회사를 가서 헐레벌떡 성과보고를 하고 다시 출장가는 기분이 든다. 필리핀 다녀온 짐정리는 다 하지도 못한채 떠나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여행은 말 그대로 즉흥적인 일정이다. 물론 어떻게 시장조사를 하겠다는 '포맷'은 만들어 놓은 상태였지만, 숙소나 어딜가겠다는 목적이 없어 고생하는 것, 하아 이것또한 내 업보요 내 탓이외다.
일찍이 도착한 규환형과 나는 H열에서 만났다. 근데 눈에 딱 들어오는 큰 하드 캐리어. 허걱, 형님 그안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있음메?
알고보니 대학원 시험을 위해 전공책 그 두꺼운게 똭 방한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행 9박 10일 내내 그 책을 보았는가 하는 질문은 마지막에 공개하기로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두시간 반이라는 시간 안에 열심히 인천공항의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가격조사를 하고, 이것저것 어메니티를 비교해보도록 한다.
우리가 보고서에 쓴 목적은 아래와 같다.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국인 관광객들의 구매의욕도가 높아지고, 특히 중국 남성의 럭셔리 제품 구매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위치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중국 내 국제공항 면세점과 공항자체의 허브화를 위한 노력이 분명히 가속화되고 있지만. 중국 북경 수도공항은 주위에 관광인프라와 쇼핑인프라가 아직 미완성인 상태이고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유럽으로 향하는 노선을 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행 노선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경유지로 택하고 있다. 중국인의 국제적 의식이나 서비스는 아무래도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메가인프라와 다인종이 모인 쿠알라룸푸르를 당해내기엔 보완점이 많아보인다.
그에 비해 동남아의 허브라고 불리우는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은 탁월한 편의성과 쇼핑 어메니티를 구비하여 인천공항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차로 4시간, 비행기로 40분채 걸리지 않은 말레이시아 또한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싱가포르 항공을 이용하여 목적지를 쿠알라룸푸르로 하고,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그리고 쿠알라룸푸르의 KLIA의 면세점을 탐방하고 그 주위에 집중된 메가몰의 인프라를 통해 인천공항과 비교분석한다.
아.. 참 거창하지 않나? 근데 중요한건 조사는 한다치고, 우리에겐 우리를 먹고 재워 줄 잠자리가 없다는 것은 큰 함정이다.
그것도 현지에서 다음 일정을 계속 짜나가야 하는 본격 서바이벌 게임. 두둥.
일단 우리가 지표로 삼을 여러가지 제품들을 선정한 다음, 직접 구매도 해보고 이것저것 공항에서 즐길거리도 찾아본다.
이렇게 선글라스 가격도 비교해보고 (출국 2시간전 이라는 것이 함정)
짐 수속이 끝나자마자 면세장으로 들어가 에어스타 애비뉴에서 직접 물건 구입을 체험했다. 신라면세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여권만 있어도 멤버십 가입에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5%할인이 기본적으로 되고, 쿠폰까지 있으면 중복할인이 됩니다”(호텔신라, 허수정 님) 물건을 직접 구입해보니 온라인과 비교해도 비슷한 가격 혹은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가장 눈에 띄는 편의시설이자 어메니티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문화 체험관의 현재 통계를 실무자에게 직접 들어보니 성수기에는 하루 500명 방문, 비수기에는 하루 300명정도 방문한다고 한다. 굳이 평균을 내자면 400명꼴이 방문하는 셈이고 이중 100명이 문화체험관의 즐길거리를 구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제 곧 탑승동 부근에도 또 하나의 한국문화 체험관이 지어질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탑승동에서의 전통문화 퍼포먼스도 기대해 볼 만 하다
이것저것 정신없이 면세점을 탐방하고 있다가 곧 북경으로 떠나는 다른 팀, 보윤이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팀과 유독 친했던 보윤이와 종욱이는 중국으로 선택하고 각자 상해/홍콩으로 떠나기로 했다는 것. 그래서 30분이면 케세이퍼시픽을 타고 떠나야하는 보윤이를 만나고 우리는 보딩을 위해 게이트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면세점에서 구입한 지갑을 픽업하러 제2 탑승동 언저리를 헤메고, 정확히 20분전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언제나 떠나는 것은 설렌다.
"야 형이 아는 친구가 싱가포르에서 근무하고 있어, 만나기로 했는데 좋지?"
"누군데요? 여자에요?"
"응, 여자."
"아싸."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내식 메뉴지!
이것이 싱가폴 슬링!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는 결국에 그 별별 고초를 다 겪고 첫번째 목적지인 싱가포르로 떠난다.
싱가포르 항공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메뉴에도 없어서 특별히 주문해야 한다는 칵테일인 싱가폴 슬링(Singapore Sling) 한잔에 걱정도 쫙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