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비가 아닌 Thung 이라는 툭툭기사와 함께 하기로 했다.. M형을 모시고(?) 앙코르툼 남쪽 성소를 통해서 입장. 시원한 물 두병을 받아들고 수호신들을 가로질러 앙코르툼으로 들어가면 바욘사원 중심으로 다양한 부조들을 마주할 수 있다. 앙코르와트는 사실 본당의 이름이고 앙코르 유적지는 이틀을 지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광활하다. 부조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고 역사가 있다보니, 배경지식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나름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긴 했지만 즐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압살라댄스를 추는 부조에서부터 중국 사신의 방문, 그리고 각국의 전쟁까지 다양하게 부조에 다뤄져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넉넉하다면 적어도 3일일정, 그리고 꼭 가이드를 대동하면 재밌는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남문으로 입장하자마자 쏟아지는 비, 우산이 없어 어쩌지 싶었는데 센스있는 M형이, 조금 찢어지긴 했으나 아직은 사용가능한 땡땡이(?) 우비를 건네주어 그래도 어느정도의 비는 피할 수 있었다. 열대지방이라 스콜이 너무 강하게 내릴 때면 건물안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바욘사원의 탑에는 이렇게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사면으로 조각되어있다. 세상을 향해서 고르게 보살의 기운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지었고, 희노애락을 담은 표정이 압권.
크메르 왕조시절 힌두교를 국교로 했다가, 나중에 불교가 들어와 국교로 지정되면서 이 사원에는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다. 또 많은 걸작들이 이 사원에 남겨져 있다. 흰두교 사원이 있는가 하면, 바욘의 경우에는 불교 사원이라고 하겠다. 부조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방대하고 역사서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그 규모를 어느정도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시간이 부족함을 한탄하고 있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린다. 우리는 Thung 을 정해진 시간에 코끼리 테라스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간단한 점심을 준비해주겠다고 해서 비를 피해 코끼리 테라스에 앉아있다가 정확한 시간에 만나기 위해 미팅 포인트로 갔더니 왠걸 따비가 그 자리에 있었다.
"따비 왜 거기 있어?" 하고 물으니 공항에 오기로 해서 픽업을 갔는데 보기 좋게 바람 맞았다고 툴툴댄다. 그래서 Thung과 교체하기 위해(?) 왔다고. 뭐 더 잘 된 일인가? 싶다. 안그래도 어제 따비에게 책을 빌렸었는데 돌려주기도 해야했고 이래저래 잘됐네 싶더라.
따비는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없냐고 물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쁘레야칸 한 30분만 돌다 오겠다고 했다. 그곳에 데려다주면서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와서 진흙탕을 조심하며 일러주길래 그냥 으레 하는 소리겠거니 하고 들어서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냥 젖을 생각을 하고 가는편이 심적으로 편하다. 부조가 예뻐서 꼭 들어야 하는 곳이라길래 고집을 부린 것인데 생고생을 하고 도착해서는 그래도 잘 다녀왔다 싶긴 했다.
30분간 간단하게만 쁘리아 칸을 돌고 식사 후 툼레이더의 주요 촬영장소였던 '따 프롬'으로 간다. 내가 생각하는 툼레이더의 장면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신전을 둘러쌓고 있는 거대한 나무였다. 식사를 간단히 하면서 물으니 오늘은 그래도 관광객이 별로 없는 편이라 따 프롬은 편히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넌지시 반띠아이 쓰레이나 프놈 바켕 일몰을 볼 수 있을까? 하고 던져보았는데 반띠아이 쓰레이의 경우에는 이곳에서 30km나 더 가야한다고 했고, 프놈바켕 일몰은 시간이 많이 늦을 것이라고 한다. 툭툭을 타고 입구까지만 갈 수 있고 산을 올라가는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앙코르와트 본당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이렇게 광활하고 할게 많은 곳이라곤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정말이지 너무 아쉬웠다.
일정을 짧게 한 내 잘못이라고 해야겠다.
따 프롬은 역시 명성 그대로, 내가 꿈꿔왔던 앙코르와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침내 날이 맑아져서 수증기가 데워지는 바람에 거울이나 액정에 뿌옇게 김이 서릴 정도로 습하긴 했지만, 숲의 그 색채를 그대로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어쨌든 이 사원 자체는 인간이 만든것이기에 거대한 나무, 즉 자연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사원이 프랑스 탐험가를 통해 발견 됐을 때 얼마나 심장을 울리게 했을까 가히 짐작되는 그런 곳이었다. 이건 그냥.. 걸작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마지막 방문지는 앙코르와트 사원이다. 3층으로 올라가서 내려오며 회랑을 감상할 수 있는데.. 앙코르와트 사원만 보는데도 분명 하루 족히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게 3층만 보는데도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인것이 프놈바켕에서 보는 일몰도 예쁠거 같은데, 앙코르와트에서도 보는 일몰도 꽤 예쁘다. 폐장시간이 다가와서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마지막을 지키다 내려올 때 그 정적이 대단한 에너지로 다가왔다.
특히 압권은 1층 회랑. 역대 왕들의 역사들, 전쟁의 부조들이 쭈욱 조각되어있다. 따로 설명이 되어있지 않으나,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역사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우리가 거의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면서 찍었던 사진. 사진상으로는 밝아보이지만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내리고 있던 도중이다. 달이 보이고, 고요함에 둘러쌓인 사원은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 느낌이 신비롭고도 오묘했다.
형과 나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며 따비와 함께 캄보디아는 정말 대단한 나라라며 치켜세워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이틀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M형과 숙소에서 짐만 간단하게 풀고 나와서 스타마트 뒤에 위치한 삼겹살 집에 들러 단돈 5달러에 삼겹살을 무제한을 먹는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나 사람들이 그립고 음식이 그리웠나보다.
서로 소주를 나눠 마시며 여행얘기도 하고, 캄보디아에서의 이틀이 안그래도 짧은데 더 짧게 느껴지고 참으로 아쉬웠다. 이번에 여행에서 느낀 점은, 정말 보고 싶은 유적이 있을 경우에는 적어도 일주일 이상을 배정하고 철저하게 공부해오겠다는 점이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오늘의 그 신비로움을 잊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뿌연 렌즈때문에 찍지 못했던 사진도 M형이 대신 찍어줘 숙소에서 파일을 옮기면서 또 이별 준비를 해야했다. 태국에서 그랬던 것 처럼 참 여행자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항상 연습해도 쉽지가 않다.
따비는 내일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다. 따비에게는 기존 11달러 외에도 많은 팁을 챙겨줬다. 남은 한국돈들도 조금 주었다. 대신 한마디만 했다. "따비 혹시 근처에 택시하는 친구 있어? 내가 캄보디아 국경에서 여기 오는 동안 너무 불편했었는데 혼자 25달러에 편하고 빠르게 가고 싶어서 그래" 했더니 마침 아는 친구가 있다며 같이 오겠다고 했다.
그날 밤은 워낙 일정이 스펙터클했고, 또 정신이 없었어서 노곤함에 일찍 잠들었다. 벌써 아쉽다. 숙소 사장님도 사모님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 모두 좋았는데 말이다. 이제 벌써 영국으로 가는건가? 조금 이따... 가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