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어라~ 태국"하고 깔끔하게 인사하고 끝냈으면 참 좋겠는데, 무리한 일정에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10시 30분. 2시간전에 도착했으니까 선방했네라고 생각하고 게이트로 향했다.
캐리어를 풀러 다시 한번 빠진 물건이 없는지 체크하고, 카운터에 여권과 전자항공권을 내밀며 웃으며 표를 달라고 손을 내민다.
승무원도 웃으며 전산조회를 해보는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난 뭐가 잘못됐나? 그럴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애써 태연한 척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
"이미 떠난 비행기 입니다"
나는 무슨소린가 영문을 몰라 따져물었다. 아니 제대로 된 시간에 그것도 2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비행기가 떠날 수 있냐고 물었는데 전산상으로는 더 이상 리딤을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기들도 이유를 모르겠으니 한국에 있는 구매처로 연락을 해보랜다. 인X파크에서 구입을 했었는데 이상하게 (아니면 항상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전화는 되지 않았다. 급히 H군에게 전화했다. 새벽이라 미안하긴 해도 항상 새벽에 깨어있는 놈이기에 철판을 깔고 전화를 걸어, 지금 비행기가 갔다는데 대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분명 24시간 열려있는 고객센터라고 했는데 왜 연락이 되지 않는지. 이상하다.
나중에 친구가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다시 연락을 해주길, 내 비행기는 어제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백지수표가 된 것이라 자신들은 해줄 수 있는 방법들이 없다고 했다더라.
그때 알았다. 26일 00시 20분 비행기면 사실 25일 10시 30분에 도착해서 대기했어야 했었던 것인데, 나는 정신이 없이 여행을 해서 26일 10시 30분에 도착해서 어제 떠난 비행기를 탓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항공사에서는 구매처에 문의해라.. 구매처에서는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미 부모님도 이 상황을 알아버렸고. 친구에게 항공권 90만원은 날아갔다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부모님께 돌아가는 항공권을 부탁하려던 찰나였다. 아찔함을 가지고 전전긍긍한 것이 딱해보였는지 항공사 직원이 손짓하며 빨리 와보라고 한다.
항공사 직원이 말하길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조치를 최대한 취하려고 하는데 입장 마감 30분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오늘 만약 너가 어제 그랬던 것 처럼 한명이 오지 않아 NO-SHOW가 발생하면 항공권을 살려주겠다(DIE-CHANGE)"고 했다. 꼭 그렇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하겠다고 했다.
다행이(?)
한명이 오지 않았는지 오케이 사인을 보내온다. 항공권 DIE CHANGE는 7만원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말 그대로 항공권을 취소하고 재발권하는 수수료 정도라고 보면 된다. 저가항공사는 규정상 당연히 안되지만, 이 항공사는 그나마 메이저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빠르게 DIE CHANGE 된 항공을 받아서 게이트에 입장을 했다. 그리곤 다시 날 도와준 친구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며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모님께 대신 전화좀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급박한 순간이다. 마치 예전 뉴욕을 갔을때, 내가 마주했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소름이 끼칠정도였다. 그래도 그건 비행기를 놓치지는 않았는데.. 비행기를 놓칠뻔한게 한두번이 아니라(자랑이냐!) 이제는 무덤덤해질 것 같기도 하다.
신발도 젖고 온몸이 아직도 젖어있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는게 너무나 미안하다. 다행이도 내가 배정받은 자리는 아무도 없었고 창가쪽에 영국 여학생 한명밖에 없어 옷가지가 젖은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앉았다.
그 시간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이 됐다. 비행기가 뜰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비행기는 출발했고 비를 뿌리는 구름 위로 올라갔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스펙타클함을 선사했던 태국과 캄보디아에 작별인사를 한다. 하지만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비행은 12시간동안 계속되었다. 심심하지 않게 옆자리 여학생이 나에게 대해 굉장히 궁금해해서 뭐하며 돈을 벌 것인지부터 잠잘 곳까지 물어본다. 이 학생은 캔터베리 쪽에 산다고 했다. 그래도 돈을 벌기에는 역시 런던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더라.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런던에 도착했고 옷은 이미 다 말라있었다. 공항에서 나와 현금으로 오이스터를 사기 위해 창구로 가니 카드 지갑까지 준다. 카드를 찍고 지하철에 들어서는데, 아직 시가지를 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지하철을 타보고는 적잖아 실망했다.그것이이 런던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전혀 영국에 대해서 모르고 로망조차 없었기 때문일까? 예전에 뉴욕에 갔을때는 나름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지하철을 탔고 카우치 서핑으로 컨텍한 영국인 아저씨의 집을 향해 찾아간다.
다른 나라와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지하철의 대부분은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었다. 아, 시간을 보니 출근시간이네.
내가 머무는 곳은 런던의 할렘이라고 불리우는 엘리펀트 캐슬에서도 더 남쪽 캠버웰이다. 지도상으로는 걸어서 한 20분 정도 걸린다기에 지리도 익힐겸 캐리어를 돌돌돌 끌고 엘리펀트 캐슬역에서 캠버웰 방향으로 걸어간다. 나의 두번째 인상은 바로 엘리펀트 캐슬의 광경이었다. 지금에서야 그 광경이 진짜 런던과 영국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적어도 그때는 내가 여행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이제 정말 살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보니 긴장을 하게 만드는 그런 광경이었다. 지도를 보며 걸어가니 치근대는 사람들, 전혀 낮선 환경의 사람들이다.
골목을 해매다가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집에 노크를 했다.
사진에서 봤던 그 아저씨다.
그의 첫마디는
"누구세요?"
..
적잖이 당황하다가 "저 로이인데요? 그.. 사이트에서 메세지 보냈던.."
이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아니 근데 원래 어제 도착했어야 했던거 아니에요? 스카이프로 메세지를 몇번이나 보냈는데 확인해봤나 모르겠네요. 난 당신이 오지 않을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이미 호스트하고 있는데 어쩌죠?"
"아 그래요? 그러면 어쩔 수 없는데.."
라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그분은 내일 나갈거라고 하니까 내 서재에서 머물면 되겠네요"
그의 친절함에 감사했다. 식탁에 가니 다른 서퍼들이 인사를 한다. 솔직히 피곤하지만 꾸역꾸역 인사를 한다. 그때 처음 알았다. 영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를 쓰는 일인지를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영국 생활이 시작되는 듯 하다.
끝
오랜기간에 걸쳐 연재하게 됨을 너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찍 끝내고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생각보다 스톱오버에서 했던 여행들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다룰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네요. 이제부터 고대하던 (^^) 워킹홀리데이 이야기와 더불어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