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5/2014 (3일차) Zubiri > Pamplona

 

일찍 일어나 우린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영국에서 가져온 트와이닝 홍차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홍차로 밀크티를 해서 먹고 계란을 가지고 맛난 오믈렛을 해먹었다.

 

이보다 풍족한 아침을 먹어 본 적이 있나 싶을정도로 포지게(?) 먹었다. 생장에서 첫날에 5유로짜리 정말 욕나오는 저질 아침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퀄리티. 나는 그대로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단체 미국인 순례자들의 눈찌푸려지는 행동만 아니었으면 기분이 쭉 좋았을텐데 아쉽다.

한 번은 공동샤워실 문을 걸고 아무도 못들어오게 해서 자기들만 사용하는가 하면 남들이 사용하는 와중에도 문을 활짝 열어놓거나 하는 등 영 아니올시다 싶은 행동을 했다. 그래서 똥 씹은 표정으로 씻고 알베르게를 나와야만 했다.

이제 걸으며 틈틈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마련해야 한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객들은 대부분 보카디요라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다니는데, 이게 정말 유용하다. 간단하게 바게트 빵을 산다. 이틀이면 거뜬하게 먹을 수 있다. 여기에 저렴한 하몽, 그리고 치즈를 끼워먹는다. 만약에 중간에 마을이 있으면 잘 익은 토마토를 하나 사서 썰어먹어도 좋다.

 

오늘 아침에는 다니엘이 만들어 준 맛있는 보카디요를 넣고 알베르게를 나섰는데 그 다음 갈림길에서 그 미국인 무리들이 길을 막아대는 바람에 군중속에 데이빗을 잃어버렸다.

아마도 사비나, 다니엘, 데이빗은 카페 콘 레체를 마시기 위해 다음 알베르게로 떠난 것 같은데 일정이 비교적 빡빡했던 나는 뒤쳐지면 안되었다. 카메라를 빨리 복구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결국 혼자가 되었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너네 가족들(?)은 어디로 갔냐고 물어봤다

 

"I lost them.."

 

 

혼자가 되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날씨도 적당히 좋다. 중간에 커피숍에 들러 카페 콘레체를 한 잔 시키고 부슬비 (곧 그칠 것 같은)를 맞으며 한잔을 했다. 사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원래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을텐데.. 아까 혼자가 되는게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말은 취소!

 

 

그렇게 혼자 걷는 까미노.. 자동차가 오른편에 슝슝 다니는 길을 지나면 Zabaldika 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 길이 있는데 강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언덕을 넘어 교회를 지나는 길이 있다.

 

정말 괜찮다면, 아직 걸을만 하다면 교회를 들리는 걸 추천한다. 사실 그 교회를 방문할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교회를 지나치려하니 문 앞에 계시는 분들이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교회는..

 

정말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눠준 '펠레그리노(순례자)의 마음가짐'이 적힌 종이.

 

 

 

누군가가 한글로도 번역해 놓았다. 전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행복하여라, '로 시작되는 그 글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교회에는 파란 바람막이를 입은 동양인이 있었는데 아마도 중국분이신 것 같다. 그 분도 뭔가 깊이 느끼는게 있는 것인지 그 종이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다.

교회를 나와 마을 하나를 지나면 사진처럼 큰 다리가 나온다. 아, 여기는 꼭 쉬어가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다리였다.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보카디요를 먹으며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올라 Hola (안녕하세요)'를 말해보기도 하고 '부엔 까미노~(좋은 길!, 의역하면 즐거운 까미노 되세요! 같은...)' 하고 인사해보기도 한다.

 

워낙 오래 쉬고 있다보니 한국 여행자도 많이 만났다. 초등학교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발령대기 상태인 한 순례자는 지금 인생의 첫 여행을 까미노로 왔다고 했다. 그 뒤에 또 하나의 한국인은 예전부터 계속 만나고 마주치던 분이었는데 이야기를 깊게 나눠 본 적 없는 분이었다.

 

기회가 되어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진과 영상을 찍는 분이라고 했다. 네팔만 3번 이상 다녀왔다는 그는 말하는 어조도 차분한것이..이미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팁을 드리자면 와인을 조금 담아 병에 들고 다니며 마셔보세요. 정말.. 걸을 힘이 확 납니다. 부스터 같다랄까.."

 

음..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조그마한 마을이 보이고..

성벽을 통과하면 곧 팜플로냐 구 시가지가 시작된다. 내 카메라.. 살릴 수 있을까?

날짜

2021. 5. 1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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