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5/2014 (3일차) Roncesvalles > Zubiri
이제 콤포스텔라까지는 790km가 남았다.
아침에 데이빗과 약속이 있었다. 데이빗이 머무는 숙소로 모두 아침 6시 30분까지 모여 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데이빗이 보이지 않는다.
알베르게 근처에는 까페 사비나라는 곳이 있다. 마침 사비나의 이름과 같은 까페라서 그런지 우리는 호기심에 그곳에서 만나 아침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 해서 다음 마을에서 식사를 해결하고자 했다.
데이빗이 혹시나 짐을 챙기고 있을까봐 다시 알베르게를 들렀다. 저 멀리서 딱 보이는 데이빗의 얼굴. 우리는 신나게 손을 흔들어 반겼다.
마침 데이빗도 배가 고플테니 그래도 이 마을에서 식사를 좀 해결해볼까 했는데, 모든 까페가 가득차있다.
에라 모르겠다. 다음 마을까지 한 시간이면 갈 것 같으니 그곳에서 커피를 한잔 하기로 한다.
맑은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니 아 이게 내가 정말 걷고 싶은 까미노다 라는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어제는 정말 잊고 싶을정도로 힘들었던 하나의 ‘행군’같은 것이었는데 오늘은 좀 즐기면서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음 마을은 예상 외로 정말 금방이었다. 한 10분정도를 걸으니 다음 마을이었다. 간단한 과일을 사들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마을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8시 30분, 사람들은 한껏 여유가 넘쳐보였다.
아직 시에스타 시간(낮잠)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보고 있자니 아 이게 진짜 사람답게 사는 삶의 모습인가 싶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된 요즘 우리는 너무도 불필요한 경쟁을 하며 여유를 잃어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하지만 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마을을 쏘다니다가 작은 광장에 있는 바를 찾았다. 그 바에서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부어 먹는 까페 콘 레체는 까미노의 킬링 아이템이다. 정신을 깨워주는 약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런데 상당히 맛있어 우리는 입을 모아 그 맛에 감탄했다.
잠깐의 까페 콘 레체 타임이었지만 그때의 순간이 참 행복했다. 또르띠야라고 부르는 토스트 한 조각을 입에 베어물고. 커피 한 잔
그리고.. 아침 9시. 좋은 궁합이구나.
너무 간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낀 나머지, 그곳을 떠나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까미노 걸은지도 얼마 안됐는데.. 움직이가 싫다. 왜지.
그래도 우리는 계속 가야하기에 데이빗이 “자 가자!”라고 강하게 외친 후에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작은 오솔길을 지나 조금 걷다보니 넓은 목장들을 계속 지나치게 된다.
즐겁게 갈 수 있을거라고 장담했는데.. 다시 조금씩 비가 내리며 모두들 우의를 꺼내 입기 시작한다. (제길..) 이상하게 비만 내리면 코스가 힘들어진다.
높은 언덕길과 내리막길의 연속. 우리는 심심함을 잊기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사비나가 먼저 운을 띄운다. 그 귀여운 얼굴로 조근조근히..
“사실 남자친구가 마약 딜러였어!”
“으…응????”
“남자친구가 마약 딜러였는데 밀수를 도와주다가 모로코 감옥에서 36시간 갇혀있었다?”
“헐…”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싶다가도.. 그런 얘기를 표정하나 안 변하고 하는게 더 웃겼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야!..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해봤었어.. 근데 다시는 못할 것 같아…. 심장떨리더라”
그 이후로 우리는 누군가 “WEED”라는 말만 나와도 웃었다.
(까미노의 길은.. 이렇게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되는 곳이지만 날씨만 괜찮으면 걷기 좋은 길이다. )
좌 ( 키 큰 독일인 : 다니엘), 좌 여자 (사비나), 중간 (벨기에 달리아), 오른쪽 (쩌리 나)
어느새 오르막을 쭉 올라가니 펜스가 설치된 곳에서 모두가 지쳐 쉬었다. 그 광경이 귀여워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난리가 났다.
일렬로 쭉 누워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는 그 광경이 너무 귀엽다며 우리 사진을 찍어갔다.
(좌 : 달리아, 왼쪽에서 두번째 영국인 엘리스, 중간 나, 사비나, 데이비드, 누워있는 다니엘)
아.. 이제 약 3km만 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주비리에 도착한다. 그 쪽으로 가는 길목에 돌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누군가 돌 위에 파란 펜으로 하쿠나 마타타라고 써놓았는데 그게 너무 이 길의 여정과 딱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거진 30일을 더 걸어야 하지만 힘이 나는 글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