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의 정동진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생각보다 조금은 참 빨리 온거 같다. 항상 평소와 같이 해는 5시쯤에 뜨겠지 싶었는데 겨울이라는걸 깜박한 것이다. 일출은 7시 35분 예정. 큰일났다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하지? 결국은 정동진역 안에서 커플들에게 파뭍혀 3시간을 눈을 붙였다. 여기저기 커플끼리 온 여행객이 많았지만 난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난 나를 찾으러 온 여행이니까.
7:35분쯤이 되었을까... 커플들이 서둘러 나가기 시작한다. 이제 해가 뜬다는 것이다. 태양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삼각대를 들고 바다의 증기를 빨아들이는 태양이 작열하면서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았다.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을거 같은.. 그런 일출이 펼쳐졌다. 친구들은 일출 보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참 운이 좋았던거 같다. 멋진 일출사진을 팡팡 찍고 허기가져서 든든한 아침을 먹으러 정동설렁탕을 먹으러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혼자서 밥을먹기 딱 좋을 때였다. 설렁탕의 가격은 5000원. 하지만 설렁탕을 먹어보면 더 큰 값을쳐도 부족하지 않을거라고 느낄 것이다. 담백한 설렁탕과 살짝 얼어 버린 정말 달콤한 깍두기와 김치가 추위를 달아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설렁탕을 먹고 나올 때는 괜한 포만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 꼬마야 아저씨가 모래시계 공원을 가려는데 어떻게 가야 되니?~" " 초등학교 지나서 쭉 가시다 보면 다리가 나오는데요~ 거기 건너가면 나와요~" 정동초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줄을 맞춰 학교를 가는데 너무 귀여워서 말을 걸어 봤다 길도 물을겸..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한10분쯤 걸었을까? 정말 아이들이 말한 대로 모래시계 공원이 나왔다. 소변이 너무 급해서 화장실을 들어갔는데..
소변을 보자... "우우우우~ 우우우우~" 모래시계 OST가 갑자기 나와서 깜짝 놀랐다. 어디서 센서가 작동하나보다. 그리고 나서 바루 뒤에 해변가가 있는데 혼자서 모래장난도 치고 자뻑사진도 여러컷 찍었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날 미친놈이라고 봤을지도..)
모래사장에서의 혼자만의 시간도 꽤 즐겁다
그렇게 혼자서 놀다보니 어느새 9시.
인터넷에서 알아본대로 강릉가는 버스를 타려고 1시간을 기다렸는데 이놈의 버스는 당췌 오질 않는다. 근처에 있는 훼미리마트 편의점 아저씨에게 물어봤더니 그런 버스는 번호가 바뀐지 오래고..버스는 11시쯤에 온단다.결국 11시까지 기다렸다가 정동초등학교 앞에서 101번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정동진에서 강릉까지는 900원의 요금을 받는다.(2005년 기준)
차를 타고 강릉으로 떠나면서 생각에 잠겨 창문밖을 바라본다. 근처에는 정동진을 발두로 한 테마파크, 그리고 북한 잠수정 공원이 보이더니 이내 강릉시가 멀리서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보고 있는 산들은 음 오대산이로구나, 아 저건 대관령인가? 신기한 풍경들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다행히 날씨가 너무 파랗고 화창해서 바람이 차가워 차갑게 얼어버린 유리에 볼을 비벼가면서 까지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해본다.
그러고 나니 처음에는 나홀로 여행이어서 외롭고 두렵다기 보다는 이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더불어 하나하나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을 해보고 적막함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보다 보니 혼자 오게 된걸 감사하게 여길 정도가 되버린 것이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풍경에 취해있다 보니까 벌써 버스는 강릉시내에 도착했다.
.
.
그냥 멍했다.
여긴 어디지? 하면서, 그냥 멍한느낌. 여태 혼자서 이렇게 먼데까지 온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체하지 말고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내 손에 쥐어진 정보는 거의 만무하고 단지 계획되어 있는거라곤 내가 어디에 가고 싶은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니까 떡볶이를 잘하는데가 있다는 상호명도,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생각나지 않아서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잘 모르고, 친구한테 검색해달라고 전화했는데도 잘 모른다는 대답뿐, 결국에 동사무소에 가서 물어봤는데도 모른다는 통보다.
“ 아 배고파 죽겠는데!” 근처엔 먹을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그냥 슈퍼에서 간단한 주전부리, 단지 바나나 우유랑 빵 몇 개를 사고 날씨가 꽤 화창하길래 무작정 대관령으로 출발했다.
날씨도 추운데 대관령을 오르는 이유? “그냥”.. 왠지 시원할거 같아서. 가슴이 뻥 뚫릴거 같아서.. 그리고 고등학교 지리선생님(그당시 나의 담임선생님, 신기하게도 3년동안 우리반 담임선생님이었다)이 날 좋으면 꼭 대관령을 가봐라 하셨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태서
왠지 사람도 없을 것 같고.. 그냥.. 우리나라 같지 않은 그런곳을 가고 싶었어라는 생각.
바람에 대한 동경심 그런게 있었다.
“횡계, 2100원이에요” 생각보다 싼 가격. 표를 받아든 순간 왠지 다른 세계로 통하는 티켓같은 느낌이 들었다. 터미널에서 횡계로 가는 도중 눈발 쌓인 그곳으로 굽이굽이 계속 올라간다. 오르고 오른다. 하늘이 가까워진다.
그당시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강릉시청
무언가 또 새로운 것을 만날 것 같은 그런 예감. 횡계로 향하는 30분동안 새로운 세계를 만날 것 같은 설레임에 또 자유로운 느낌에 행복했다. 아주 작은 횡계 터미널에 도착하면서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에, 황태 덕장엔 겨울 맞은 황태가 따스한 햇빛에 말려지고 있는 풍경까지. 저 멀리는 파란하늘에 풍력발전기가 아기자기하게 돌아가고 있다. 라만차와 로시난테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꼬르륵” 점심에 밥을 먹지 못했기 때문일까. 배가 슬슬 고파온다. 두리번 두리번거리다가 터미널 앞에 칼국수 집이 있길래 들어갔다.
“어서와요” 할머니의 정감있는 환영인사. 그건 대관령에 온걸 환영한다. 라는 느낌이 담긴 인사같았다. 지붕위에는 어제 눈이 내렸는지 눈이 소복히 쌓여있는데 안은 따듯한 난로가 피워져 있고 동네아저씨와 아줌마는 소박히 잘린 김치와 함께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계신다.
소박하지만 잊을 수 없는 칼국수
“ 아주머니 저도 칼국수 하나 주세요” 하고 참지 못하고 주문했다. 그리고는 식당이 잠시 분주해졌다가 이내 큰 그릇에 큰 감자에 인심 넘치는 칼국수와 소박한 김치가 함께 나왔다. 너무 배고파서 말없이 쩝쩝대며 먹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혼자 온 여행객이 신기했는지 내게 말을 붙였다.
“ 학생 혼자 오셨네 이리 추운디..” “ 예, 그냥 혼자 와보고 싶었어요 생각 정리 할 겸”
“ 추울텐디, 먹고 부족하면 더 줄테니께 달라고 혀 배고프면..”
왠지 찡했다. 이런 따듯한 정 느껴본지 오래되었는데... 인심도 풍부했을 뿐더러 내오신 음식도 양이 많아 몸둘바를 몰랐다. 따듯함이 전해지는 칼국수를 한 그릇 먹고 할머니께 여쭸다.
“ 할머니 여기서 대관령을 가려고 하는데, 뭘 타고 가는 편이 좋아요?”
“ 음, 대관령 목장을 가는거 맞제? 목장이라카믄, 삼양목장이랑 양떼목장이 있는디 규모가 달러. 사진 찍으러 갈꺼면 보통 양떼목장으로 가고 진짜 대관령을 가는게 목적이라믄 삼양목장을 가는게 맞는 것이제. 여기선 따로 버스가 여름엔 다닌다든디 겨울에는 없을것이니께 요 앞에 택시 타고 가는게 낳을것이여 조금 비싸긴 하지만 말이제”
할머니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사람들이 규모를 따지면 삼양목장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진을 찍으러 양떼목장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칼국수를 먹고 나서 택시를 타러 갔다. 노란 택시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제법 예쁘다. 택시를 타자마자 아저씨에게 협상을 했다.
“아저씨, 저 혼자왔는데.. 좀 깎아주시면 안돼요?”
“어디까지 가게?”
“음.. 삼양목장 가려구요”
“삼양목장이면 기본 만 오천원은 줘야하는데..”
“아저씨 만 오천원은 좀 비싸요.. 저 돈도 별로 없는 학생인데 만원으로 해주시면 안돼나요?”
“학생 오늘은 춥고 그러니까 깎아주는거여~ 원래 택시 타고 삼양목장 가면 입장료도 할인이 된다구.”
“하하. 아저씨 감사합니다!!”
택시를 타고 다시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부릉부릉. 엔진소리가 들리자마자 이내 삼양목장 입구에 도착한다. 양들에게 줄 먹이가 이곳저곳에 널려있고 저 멀리에는 자그마한 호수를 개조해서 스케이트장도 운영하고 있는데 그 풍경이 너무 서정적이어서 보는 사람까지 즐거워지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입구에서 티켓팅을 하고 택시를 타고 오면 7000원에서 4000원으로 할인되기 때문에 할인을 받고 입구에서 내리니 안내직원 외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누구에게도 물어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벌써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어서 어서 올라야 했기 때문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동해전망대로 향했다.
파란 하늘.. 그리고 내리쬐는 따듯한 햇살, 차갑지만 왠지 시원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바람 아무도 없이 하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이 우리나라 같지가 않고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 뭉친 가슴을 풀어내기엔 여기 보다 더 낳은 곳은 없어 보였다. 그 뿐만이랴,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뭔가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 했을때는 바로 짐을 쌓아도 될 그런곳이다.
뭘까 여태까지 고민되었던 것들이 단 한 순간에 쏴아하고 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람에 실어보내는 고민들 뒤로 나에게 다가온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크나큰 에너지가 될 여러 가지 결심들이었다. 앞으로는 뭘 해야겠다 하는 막연한 계획보다 아, 나에게는 어떤것들이 어울리고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이런식으로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 사실 이런 표현들도 구차하다. 여름에 대관령을 가면, 사람이 많으니 한 겨울 엄청 추울 때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이 없으니까, 게다가 양들조차 없으니까. 그 적막감을 한번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없으니까 CDP에 있는 패닉 4집을 틀고 크게 따라불렀다. ‘로시난테’ 랄랄라라라라~ 라랄라라라~ 랄라라라라라 랄라라라~ 휘날리는 말발굽소리가 나도록... 그렇게 계속 혼자임을 느끼고 즐거워 하며 혼자 준비해간 삼각대로 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해전망대에 도착하니 더 강한 바람이 불어 전망대 매점은 운영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파란 하늘 앞에 보이는 건 강릉시내의 전경이었다. 저녁에 왔으면 멋진야경을 보게 되었겠지. 눈이 오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햇살에 이미 눈은 녹아있고 소복히 쌓인 눈 보다는 내일을 기약하는 푸석해진 잔디들을 보면서 나도 새로움을 또다시 기약해본다. 그리고 이때 내가 가야할 진로와 앞으로의 계획을 정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려오는길. 오후 4시쯤이 돼서 그런지 서서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산 능성 사이로 파란색이 옅어지는 하늘을 보면서 혼자 터벅터벅 노래를 들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입구에 다다랐을때에는 꽤 어두워져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보이는 사람의 형체
“ 저기요~ 아까 올라가셨던 분 맞지요? 저 아까 입구에서 표 나눠드렸었는데 !! 빨리 내려오세요 ”
아까 만났던 아주머니의 메아리였다.
“ 예!!!~~~”하고 크게 대답하고 뛰어서 내려갔다.
“ 아유, 아까 올라갔는데 왜 안내려오나 하고 걱정 많이했어요. 분명 사람 하나가 올라갔는데 혹시 잘못되었을까봐... 지금이 폐장시간이거든요”
“ 아 죄송합니다. 그냥 갑자기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오느라 폐장이 언젠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날씨도 추운데 고생하셨어요. 어디까지 가세요? 어차피 저도 이제 퇴근이고 횡계 밑에 살고 있어서 횡계까지 태워드릴 수 있어요 ”
“ 어?! 정말이세요? 저 안그래도 횡계로 내려가서 시외버스를 타야하거든요.”
“ 잘됐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
아주머니는 이내 차를 끌고 와서 태워주신다. 안그래도 횡계로 가려면 택시를 또 불러야 했고 또 돈이 들어야 할텐데 다행이다. 아주머니는 내려오면서 혼자오는 사람들을 거의 못봤다며 왜 왔는지 물어보셨다.
“ 생각도 정리할 겸 수능시험 마치고 혼자 와봤어요”
“ 대단한 학생이네, 이렇게 추운데 이럴 때 오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 다시 여기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년에 또 올 생각이 있어요”
“ 그럼 내년엔 나 못보겠네요. 다음달이 되면 저도 여기를 그만두고 원주로 이사를 가거든요. 요즘 강릉사람들 원주로 많이 이사가고 있어서.. 그렇지만 다음에 와도 이곳은 여전히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를 반겨줄겁니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기나긴 대화를 끝내고 내년엔 그래도 여자친구와 오라는 농담반 진담반 작별인사를 나누며 횡계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이제 아예 터미널 주변은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고 저녁이 찾아왔다. 터미널에는 7시 20분차라고 되어있고 지금 시각은 6시.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제풀에 지쳐 난로가 의자에 앉았다. 곧이어 내 주위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내 옆에 앉았다.
“아 오늘도 뽀글이 먹었는데 또 먹습니까?”
“아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말투가 들린다. 말 끝이 다.나.까로 끝나는 일명 군인 말투인데 이곳 근처에도 부대가 있는지 다들 강릉으로 출타하는 장병들이었나보다. 군대를 간다는걸 생각해보지 못했던 때여서 그런지 그 모습이 신기했고 재밌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7시 20분차를 타고 다시 강릉으로 내려왔다. 그리고선 신영극장 주위 시내로 내려가 돈까스를 먹고 다시 떡볶이 집을 찾으러 다녔다. 이사람 저사람 다 잡아가며 물어물었지만 그런데는 들어본적이 없단다. 그래서 계속 돌아다니다가 어느 골목에 있는 먹거리 상가를 들렀는데, 웬걸 이곳에 있는게 아닌가? 근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쉬운 걸음을 뒤로하고 옥천오거리 근처에 있는 찜질방에서 머물었다. 발바닥이 너무 추워 꽁꽁 얼었지만 찜질방에 들어가니 이내 괜찮아졌다. 그리고 하루를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잘 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