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어느새 난 3학년이 되었고 전역 후 첫학기를 맞았다. 폭풍같은 과제와 본의 아니게 다른사람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했던 조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던 한학기. 주말이 되면 분명 떠나야 하는 타이밍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시간은 허락해주지 않았고 그만큼 풀리지 않을 고민만 쌓여갔다. 

2010년 블로그를 시작할 때 까지만 해도 청춘, 열정, 여행 등등 허세 가득한 단어를 끄적이며 글을 써내려가고 희망을 전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삶을 대했건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고민만 증폭되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고대하던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동안 방치하다 시피한 블로그를 마주하자 오랜만에 쓰는 글이 제대로 써질리가 없다. 
글은 써야겠는데, 대체 뭘 써내려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간 보지 못한 사람들을 다 만난다는 욕심에 술/잠/술/잠 이렇게 반복하다보니 더이상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선 안되겠다는 각오도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한 뒤에야 여행을 떠나지 않아서 쓸 글이 없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지리산에 올랐던 때를 기억한다. 제대를 하자마자 넘어야 할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올랐던 산에서 난 다짐을 했고 마음을 가다듬은 결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때 동행했던 친구와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설악산>에 가자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는데, 그렇게 계획만 해놓고 시험공부를 친구는 세무사 시험을 위해 먼 길을 떠났었다. 솔직히 흐지부지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레이스가 마무리 될 때 쯔음 정신을 차려보니 그 때 이후로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더라. 
아이고 그렇게 잡고 싶어하던 내 청춘이 이리도 빠르게 흐를 줄이야, 매번 체감하면서도 약간의 안타까움만 더해지더라 

친구는 데드라인을 7월 첫째주로 잡고 우리는 떠날 준비를 매일같이 하고 있었다. 날씨는 왜 그리도 도와주지 않는지, 장마 전선은 매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비를 뿌려대고 우리는 기상청 홈페이지를 몇번이나 새로고침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산장 또한 기약없이 계속 클릭했다. 자리는 한자리 간신히 잡았다가 취소했다가를 몇번 왠지 7월 1일에 떠나는 일정을 잡고 산장을 다시 예약하여 한 자리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http://www.kma.go.kr/weather/forecast/mountain_02.jsp?areaCode=11D001P0
기상청의 산악기상예보를 보면 편리하다

"신이시여.... 산악회 여러분..... 제발 한자리만 취소해주소서"
마지막 한자리를 남기고 우리는 하루종일 산장 홈페이지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리고 6월 29일 늦은 저녁이 되서야 우리는 티켓팅에 성공하고 7월 1일에 떠나기로 잠정 합의했다. 

떠나기 전날, 그때 출발하리란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난 지인의 부탁 때문에 동영상을 편집하고 있었고, 날씨가 6월 30일날 부터 단 이틀간 풀린다는 정보 때문에 이 기간 중 언젠간 가겠지 하는 마음을 방목하며........... 계속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충 작업이 마무리 될 즈음 친구 페이스북에 계산기를 집에 놓고와 공부를 헛탕쳤다는 글이 올라오자마자 번뜩였다. 

"야! 지금 당장 출발하자" 
"무슨 소리야 내일 가기로 했잖아"
"아냐 지금 당장 짐 싸, 수원 터미널에 속초행 18시 30분 버스 타고 가자"

나는 마지막 작업 동영상을 인코딩하며 닥치는대로 계획없이 배낭을 싸고 등산 장비는 없어 그냥 어머니꺼 무턱대고 들고 나왔다. 
설악산은 지리산과 다르게 '악'이 붙은 산이라 분명 기암괴석이 많고 비가 온 뒤기 때문에 바위들이 축축 할거라는 계산을 그 바쁜 와중에 했었다. 

라면을 쑤셔넣고, 빨간 부모님 등산양말을 대충 넣고 런닝 하나에 등산 잠바 하나 입으니 대충 구색은 맞춘듯 하다. 
마침 인코딩도 끝나서 의뢰인에게 영상을 전송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출발했다.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친구에게 표를 미리 예약해놓았다는 전갈이 왔다. 
혹시 표가 없어 출발 못할까봐 수원 사는 친구가 1시간 반 먼저 도착해 표를 끊어 놓은 것이었다. (착한놈..)

그러나, 항상 계획은 틀어져야 제맛.
내가 출발한 시각은 속초행 버스 출발 40분전이었는데, (먹을거 챙기느라 그랬다고 변명 한번 치자..) 원래는 20분 걸리는 거리가 오늘따라 공사중인 도로가 많고 할머니께서 버스에 오르셨다가 다시 내리시고, 승객이 물을 엎지르고... 등등의 예상치 못한 사태로 인해 터미널엔 1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이미 떠오른다 분노의 찬 그의 얼굴이.
하지만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암 그럴거다. 내가 뭐 항상 그렇지............


터미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살기가 느껴졌다.
저 멀리서 파란 수원삼성 유니폼을 입고 나만 주시하는 한 남자의 시선.

"하하 미안해 인생이 다 그렇지" 라며 멋쩍게 웃으며 다가가면 한대 쳐맞을 것 같았고.........
"아우 정말 미안해" 하며 죽을 상으로 다가가도............... 한대 쳐맞을 것 같았고..........

그냥 늦었다고 인정하고 다른 계획을 제시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서울로 가는 편을 제시했다. 표를 취소한 금액보다 더 저렴하다고(미시령 구간이 개통되었기 때문에)
수원은 23300원인데 서울은 17000원이라며 꼬득여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고 갔다.

근데 이 광역버스,
수원을 몇군데 들려서 갈 줄 알았더니만 아주
수원을 훑고 간다.. 마을버스보다 더 촘촘히..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괜찮아. 우린 서울발 막차 탈꺼니까 하고 위안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긴장감에 쪽잠을 잘 순 없었다.
우린 동공에 힘을 뽝 주고 창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

다행이도 버스는 넉넉하게 우리를 양재로 이동시켜주었고, 넉넉하게 고속터미널로 들어설 수 있었다.
친구는 큰것이 급했기 때문에 화장실로 향하고 나는 사죄의 의미로 주먹밥과 음료수는 특별히 독고진 워터를 2병 샀다.
표는 생각보다 수월히 예매할 수 있었다.

차에 타보니 승객은 우리 포함 총 4명 밖에 없더라.


진짜 가는건가 싶었다. 차는 정말 좋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치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비지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되어 차를 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우리는 버스가 출발하는 내내 3G가 터지지 않아 불안한 인터넷 환경을 체험하며 당장 도착 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우리는 뜬눈으로 속초로 향했다. 

 
미시령구간의 개통으로 2시간 정도(정확히 2시간 15분)소요되는 여정이기 때문에 중간에 휴게소는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우리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가 홍천 근처 화양강 휴게소에서 10분간 휴식! 을 취하고 버스는 점점 고도를 높여갔다. 홍천을 지나 인제를 지나 쭉쭉 달리던 버스는 터널과 터널을 통과하여 어느새 미시령에 진입했다. 미시령에서 속초 시내를 바라보며 쭈욱 내려가는데 야경이 얼마나 멋지던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사진을 찍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직접 그 순간은 경험해 보길 바란다. 

 
속초에서 내리는 곳은 바로 이 고속버스 터미널, 절대 시외버스 터미널이 아니다. 청초호 아래 E-MART가 위치해있는 그 고속버스 터미널로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만 주로 운행하는 듯 했다. 알고보니 이곳은 예전에 남겼던 우리가족 강릉정복기에 출연했던 터미널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때와 똑같이 근처에 있는 찜질방에 묵기로 했다.

 
일찍 속초에 도착해서 중앙시장으로 달려가 닭강정에 맥주를 먹고 잠들자는 계획은 개뿔, 우리는 도착시간이 23시쯤에 다다르자 모든것을 포기하고(그러면서 또 전화는 해봤다. 설마 열려있을까봐 왜? 호프는 24시간 하잖아...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라면으로 한끼를 떼우고 우리가 라면을 먹는 행동을 불쌍히 여기며 소근대는 담배피는 연인의 닭살강정돋는 행동을 지나치며 찜질방(속초해수피아)로 향했다. 

근데, 가격이 예전엔 7천원 밖에 안했던거 같은데 어느새 만원으로 올라있다. 
만원을 낼 수 밖에 없었다. 고작 1년 새에 오르다니, 오늘이 전국 해수욕장 개장일이라서 그런거겠지 하며 애써 위안을 했다. 

내일 우리는 몇시에 일어나야 하는가, 찜질방이라 분명 푹 자기엔 글렀는데 말야. 일단 7시에 일어나서 바닷가를 거닐기로 하고 씻고 잠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찜질방이 <친구의 어머니 친구분>이란다 그랬으면 싸게 했었을수도... 넌 너희 어머니 친구분도 몰라뵈니? (그러는 나도 정작 우리 어머니 친구들을 다 알지 못한다)




 

날짜

2011. 8. 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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