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물었다. 오늘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지리산을 자주 다닌 나는 설악산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친구가 설악산을 자주 다녔기에, 그리고 자신만 믿고 오면 된다기에 따라나섰던 여행.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찍어준 루트는 바로 이랬다. 한계령부터 시작하여 서북능선을 따라 걷고 중청대피소를 찍고 내려오는 코스. 생각보다 할만하겠구나 싶었다. 에이 그래도 능선인데, 지리산 능선 같을꺼야.
찜질방에서 묵고 잠을 설쳐버린 난 눈꼽도 안떼고 사라진 친구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토굴에서 찜질중이신 친구를 끌어내어 이제 아침이니 물회를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물회집은 9시에 문을 여는 것으로 적혀있더라. 그래서 기왕 속초까지 왔으니 속초 해수욕장을 갔다가 걸어서 물회집으로 가면 되겠구나 싶어 아침 일찍 속초 해수욕장으로 떠난다.
이른아침의 청초호는 서서히 밝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약간 졸리지만 어느정도 힘이 나기 시작한다. 오늘 산을 탈꺼면 에너지를 보충해야지! 하긴, 지리산때도 마찬가지였다. 구례구로 가는 밤잠을 설치고 대피소 가서 그대로 뻗었었지. 역시 잠자리에 민감한 나는 여행자에 적합한 신체조건이 아닌걸까... 흑....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는 속초해수욕장. 분명 오늘이 개장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거의 없다. 아마 어그제까지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지 한산한걸까. 친구와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핫식스 음료와 커피를 사가지고 나왔다. 참 운이 좋게도 친구가 집어든 핫식스 음료는 1+1 행사중! 친절한 아주머니는 득템했다며 직접 찬 음료를 가져다 주셨다. 그 음료를 가지고 해송이 있는 그늘에 앉아 ....
난 잠을 잤다.
정말 너무 피곤했다. 이대로 가다간 한계령 가다가 뻗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에라이, 어차피 12시 안으로 한계령에 도착하면 된다면서! 하며 앉자마자 자던걸 친구는 신나서 날 찍어서 이렇게 남겨놨구나. 한 20분정도 눈을 붙이고 나니 제법 바람도 선선하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
다시 속초 중앙시장을 향해 걷는다.
이른시간에 속초는 바닷가여서 그런지, 활기가 넘친다. 청초호를 지나 아바이마을에 건조되는 오징어를 지나쳐 청초호를 건너면서 보는 속초의 모습은 이곳이 우리나라가 맞는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우리는 "우와~ 우와~" 하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청초호를 건너면 길이 끊겨있고 이렇게 갯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예정에 없던 갯배. 왠지 너무 재밌어 보인다. 친구와 나는 예정에 없던 것을 마주쳐서 그런지 몰라도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과 함께 선착장으로 갔다.
갯배 이용료는 단돈 200원. 재밌는 것은 갯배를 타고 넘어가려면 이렇게 승객 모두가 합심을 해야 이동할 수 있다. 갈퀴같은것을 밧줄에 걸고 동시에 잡아당기면 배는 서서히 이동하는 구조.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갯배를 움직인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갯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요런 통통배 하나가 우리의 아침을 즐겁게 할 수도 있구나하며 쓰다듬어 주고 싶다.
오늘의 아침식사는 봉포머구리집에서 물회를 시원하게 한사발 먹기로 했다. 말이 한사발이지 우리가 처음 손님이라 그런지 한웅큼 담아주신 친절한 사장님. 사실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는 친절하지 않다. 뭐다 말이 있지만? 글쎄? 우린 엄청난 친절을 받았는데 말이다. 하여간 믿을 것 하나 없다. 우린 맛있게 풍족하게 잘 먹고 나왔다. (http://monotraveler.com/207)
봉포머구리집은 속초 시청에 있어서 조금만 걸으면 시외버스터미널이 나온다. 한계령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타야하고 고속버스터미널은 오직 강남으로 가는 노선만 개설이 되어있다. 시외버스터미널은 걸어서 10분거리.
일단, 터미널 가기 전에 먹을 것을 좀 사둬야 해서 우리의 수분을 보충해 줄 방울토마토와, 작년 산행때 그렇게 부러워서 먹어야만 했던 고기와 소주를 충분히 샀다. 이것저것 샀는데도 하나로마트라 그런지 저렴하게 나왔다. 원래는 청초호에 있는 이마트까지 가려했건만 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중앙시장에 하나로마트가 있다는 걸 알았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발권을 하고보니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이미 버스 한대가 출발한 뒤였다. 이 버스들이 정확히는 최종 목적지가 한계령이 아니라 경유하다보니 그렇게 자주 있는 노선은 아닌 것 같다. 약 1시간을 간격으로 버스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양양으로 향해 가는 사이. 어디선가 익숙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맞다. 그래. 생각해보니 속초랑 양양은 가족여행으로 이미 한번 왔었던 곳으로 풍경이 익숙한게 당연했다. 그땐 양양 법수치 계곡을 간다고 이 길을 갔었는데 말이다. 한계령은 그 길은 아니고 전혀 다른 길로 이어져 있다. 굽이굽이 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귀가 멍멍해지며 점점 고도를 높여간다는게 느껴지는 한계령.
올라가면서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어떤 산이 또 나를 감동시켜줄지 설레기도 한 맘을 가지고 한계령으로 향한다.
우리 버스에는 우리와 같은 행색을 한 아저씨 2분이 열심히 디카로 사진을 찍고 계신다. 이분들도 분명, 오늘 중청대피소에서 만날 분들이다.
드디어 도착한 한계령 920m.
가물가물하지만 초등학교때 가족여행으로 설악산 가기위해 와봤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땐 자주 아파서 산을 가면 항상 아파서 산장에 맡겨지고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여행이 익숙해지고 즐기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간 듯 하다. 오늘은 초등학교 때 이루지 못한 정상의 꿈을 한 번 이뤄보고자 한다.
내가 몇 번 산을 오르면서 느꼈던 것은, 갈수록 산을 타는 젊은이들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어이 자네도 젊은이면서..!) 특히 여자 대학생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등산하는 우리를 보며 더 쉽게 인사를 건네고 더 쉽게 먹을 것을 주시는 듯 하다. 우리의 산행은 항상 걱정할 게 없다. 그런 매력 때문인지 몰라도 우린 계속 산행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친구 또한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쭉 친한 친구라 벌써 내년이면 10년 지기가 될 친구. 내 뭣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화를 내고 싸워본 적이 없는 맘이 잘 맞는 친구다. 모노트레블러임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랑 산을 다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둘 다 소비패턴도 비슷하다. 워낙 세무사 준비를 하는 친구니 계산은 이 친구가 빠릿빠릿하게 잘 한다.
아니. 근데 말야. 지리산과 다르게 여기는 왜 초입부터 이렇게 오르막이 가파른걸까. 처음에는 나무 데크로 되어있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초반부터 오르막이라는 친구말을 귓등으로 들었건만 서북 능선까지 가는 일은 그저 오르막, 아니면 다시 내리막의 연속이다. 게다가 더욱 충격인건, 중청까지 가는데 물이 한방울도 보이지 않는 다는 건 이 루트의 최대 단점이다.
서북능선을 가면서 정신을 바짝차려야 하는 고비가 온다. 우리 뒤에 뒤따라오던 아저씨들과 인사를하고 의욕적으로 앞서나갔건만, 귀신에 씌인듯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버렸다.
"어라???어라???얼랄라??? 아까 거기잖아 왜 여기로 다시왔지?"
허탈하게 돌뿌리에 걸터앉아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게다 마침내 아저씨들이 우리 있는곳에 짐을 풀으시며 아까 앞서나가드만 여직 여기있냐고 하신다.
"아저씨, 진짜 이상한 일인데요 분명 여길 지나갔는데 다시 이곳으로 왔네요?"
아저씨들이 주시는 오이와 주전부리를 좀 먹다보니 아마 두갈래 길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을 잘못들어 온 것 같다.
아, 짜증나!!
그래도 우리는 가야만 한다.
친구야 물 좀 없냐? (없어!)
그래, 우린 물 없이 가야만 한다.
그래도 서북능선이 보이는 높이까지 다다르니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더라. 멀리 악명높은 공룡능선도 보이고 처음으로 설악산 능선을 보니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다. 더 다행인건 우리가 비가 딱 그칠 동안 왔다는 사실. 그래서 그런지 촉촉한 풍경을 맘껏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 전화가 와 받아보니, 서울에는 아직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더라.
"괜찮아요! 여기는 날씨가 아주 좋거든요!"
어째, 이상하게도 6월부터 맑은 날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리나라도 우기가 꽤 길어지는 것 같다. 여행은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한다지만, 그것도 마음 먹기 나름인 것 같다. 비오는 날에도 내가 좋으면 맑은 것 처럼 여행 할 수 있다.
갑자기 온 여행, 감사하게도 날이 너무 좋아서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다.
속초, 인제군, 양양군을 아우르는 설악산은, 악산으로 유명하다. 일명 '악'자가 들어가면 바위가 많고 가파른 산이며 등산하기에 약간 힘든 산인데 그 악명만큼 설악산은 지리산에 비해서 힘들게 느껴졌던 산이다. 한계령에서 대청봉(1708m)까지는 10Km. 우리가 1시 30분쯤에 출발해서 7시 30분쯤에 도착했으니 왠만한 어른 걸음으로는 6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이다. 제일 긴 루트는 남교리에서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23Km의 구간, 우리는 한계령에서 시작해서 귀때기 청봉이나 다른 계곡보다 오색약수를 옆에 끼고 산행을 한다.
확실히 한계령갈림길 까지만 해결되면 중청대피소까지 가는 것은 물과의 싸움이나 다름이 없다. 계속 걷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봉우리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시작하면, 자연 에어컨은 바로 여기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이번이 여름에 하는 두번째 산행인데 여름에 하는 산행은 하면 할 수록 성취감이 더 큰 것 같다.
가리봉에 왔을 때는 설악산의 맑은 풍경과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또 감탄한다. 먹구름이긴 하지만 빛을 머금은 구름이 너무 인상깊다. 무지 맑은 날에 왔으면 또 이런 풍경을 보지 못했을거라 생각하니 다시한번 잘 왔구나 혼자 뿌듯해했다.
게다가 더 감사했던건 이런 풍경을 보면서 식혜를 한잔해야지 하며 그곳에 계신 아저씨께서 1.5리터짜리 그것도 얼려진 식혜를 꺼내셨다. 2병이나 가져오셨다던데 그렇게 애지중지 가져오신 식혜를 2잔이나 먹게 되었다. 이런 풍경과 함께 걸터앉아 먹는 시원한 식혜는 그간 능선을 걸어오며 목이 말랐던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힘내서 중청까지 갈께요!
끝청에서 중청으로 다시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하면 마치 '중청대피소로 가는 문'처럼 일명 나무 천왕문이 버티고 있다. 왠지 이곳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중청대피소가 보일 듯 하다 .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중청대피소의 모습을 보니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힘이 다시 펄펄 나기 시작한다. 끝청서부터 얼마 되지 않은 거리이기도 하고 식혜의 힘을 빌어 여기까지. 게다가 시간도 그렇게 많이 지체하지 않고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무작정 챙겨 온 등산스틱도 굉장한 도움이 됬다. 때문인지 지리산과는 다르게 무릎에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고 등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중청대피소는 이미 많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신나게 깔깔대며 음식을 하는 모습이 활기차고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도 갈증을 싹 풀고 방 배정을 받고 취사에 돌입했다. 자리를 찾던 도중 올라올 때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아주머니께서 자리를 내주셔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김치찌게에 삼겹살!
작년 지리산을 갔었을 때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어 다음 산행때는 반드시 삼겹살을 먹자고 다짐했었는데,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사실, 가방 챙길때 부터 후라이팬 부터 챙겼다. 하하.
문제는 햇반에 있었다. 햇반을 끓는 물에 넣어서 조리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잘 익지를 않아서 그냥 김치찌게에 밥을 넣고 같이 김치 죽(?) 을 만들었고, 더 충격적인건 너무 바쁘게 나와서 둘 중 아무도 숟가락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다행이도 아주머니께서 숟가락을 빌려주셔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아주머니와 우리는 가볍게 우리가 가져온 백세주를 한잔 씩 했다.
여름인데도 산이라 그런지 살짝 쌀쌀하다. 아주머니는 우리나이 또래의 딸이 있는데 같이 산행하기도 하고 친구처럼 지낸다고, 거기에 ROTC 장교출신인 아저씨도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며 아저씨의 식물예찬도 듣고 속초바다에 둥둥 떠있는 오징어잡이배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삼겹살은. 정말.
잊지 못하게 끝내줬다. 캬!
산장에 들어와서 셀카. 아저씨들이 술이 만땅 취해서 우리의 잠을 깨우지 않았으면 했지만. 여지없이 깨고 말았다. 나도 다음부터 술을 만땅먹고 취해서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정도로 푹 잘테다......(는 농담..)
산장은 남녀혼숙이다. 지리산에는 따로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어쩌면 서로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회운각 대피소에서 공룡능선을 타보는 것을 권해주셨지만, 우리의 목표는 비선대 막걸리와 닭강정이 있었으므로 아주머니와는 대청봉만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 내일 4시 30분에 일어날 수 있을까?....
포스팅하며 느낀거지만,
산의 웅장함을 카메라에 담기엔 정말 어려운 듯 하다.
산의 웅장함을 카메라에 담기엔 정말 어려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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