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의 여행은 영주역부터 시작한다. 영주역은 워낙 내일러들에게 많이 알려져있는 역이다. 첫째는, 기차를 개조해서 숙소를 만들어놓았다는 점. 둘째는, 영주역장님이 내일러들을 위해서 무료로 가이드를 해주거나 가끔 옥수수 파티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부석사를 나서기전 영주역내를 둘러보면 차시간이 친절히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여 일정을 수립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석사를 먼저 갔다가 소수서원, 선비촌을 둘러보고 영주여행을 마치는데 부석사는 영주역에서 약 50분을 가야하고 부석사에서 다시 나와 소수서원, 선비촌으로 가려면 약 30분정도 버스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섹터를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1. 부석사 2. 소수서원+선비촌이다. 이렇게 묶어서 여행하면 훨씬 편하다. 다만 참고해야 할 사항은 영주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터미널까지는 철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영주역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영주터미널에 하차해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55번과 27번이 부석사가는 버스노선
이렇게 오락실 앞에서 1번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5정거장을 더 가서 허름하게 보이는 터미널이 있다면 제대로 온 것이 맞다. 이곳에서 다시 대합실로 들어서면 영주 부석사행 버스가 보이고 간혹 풍기역을 들렀다가 가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풍기역도 플랜에 추가하게 되는데, 인삼이 유명한 풍기는 풍기 5일장이 특히 유명하고 풍기역 앞에서 먹는 삼계탕, 그리고 초등학교 골목에 있는 정도넛츠가 특히 인기다. 이곳에 들를 일이 있다면 과감히 내려서 풍기를 들렀다가 부석사를 가는 것도 좋고 다시 영주역에 돌아오지 않고 풍기에서 기차를 타고 제천방향으로 넘어갈 경우 영주 - 부석사 - 소수서원+선비촌 - 풍기에서 내려 여정을 지속하면 되겠다.
나는 버스 55번을 타고 곧장 부석사로 출발하기로 했다. 요금은 4,650원. 부석사를 충분히 돌아보고 나서 시간에 맞춰 풍기를 돌아보거나 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 게다가 워낙 절의 경우에는 감상해야하는 보물들도 많고 특히 산 깊숙히 들어가면 보물이 또 있는 경우가 많아 적어도 한시간 이상은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주는 알다시피 사과가 굉장히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석사로 가는 길에는 사과 과수원이 많이보인다. 이 버스를 타고 가면 정말 시골로 들어가는 기분을 알 수 있는데 저 멀리서 할머니가 와도 천천히 차를 세워 기다려주고, 태우고 떠나는. 다시 말하면 도시에서 보기 힘든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일전에도 여수에서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여유를 갖고 삶을 대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운전기사 아저씨고 그렇고 버스를 타는 할머니도 그렇고 참 여유로워보이고 미소가 아름답더라.
부석사에 가면 이렇게 버스 시간을 붙여놓았다. 자신의 루트에 맞춰서 버스 시간을 미리 핸드폰으로 찍어놓은 후 다시 돌아갈 때 참고하면 되겠다. 나는 천천히 부석사를 돌아보는데 1시간 30분을 투자하기로 했다.
부석사 입구에서 천왕문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하지만 더 들어가서 전체를 조금이라도 더 훑어보려면 1시간 이상은 더 소요된다. 특히 사람들이 잘 가지않는 곳이 바로 조사당인데 이 터까지 올라가려면 약간의 등산이 필요해서인지 올라가려다가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가본 결과 딱 10분만 더 올라가면 정말 아름답고 피톤치드가 마구 나오는 그런 숲을 만날 수 있고 조사당도 정말 멋진 볼거리였다.
매표소에서 1,200원에 표를 끊고 사과를 파시는 아주머니들을 지나 은행나무 길을 계속 걷다가 가끔은 오른쪽에 펼쳐진 과수원을 보며 쉬어주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천왕문이 보인다. 천왕문부터 중앙을 훑어보고 무량수전을 갔다가 조사당까지 오르고, 측면을 통해 내려오는 루트를 짰다.
부석사 삼층석탑이 보이고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이 중앙으로 길게 나있다. 이곳에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는데, 대부분이 부석사를 흰 종이에 스케치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밖에 볼 수 없는 풍경때문일까. 그들에게 물었더니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미술학도인데, 워낙에 부석사의 평형감각이라던지 빼어난 곡선을 자랑해서인지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한국의 전통을 배울 수 있는 여행지를 골라 달라고 요청을 받으면 경주를 꼽거나 양반의 고장 안동을 꼽는것이 아닌 이 곳, 영주를 뽑는다.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해서 볼 것도 많고 즐길 것 먹을 것이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석사는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신라시대 676년에 의상대사가 지은 사찰이다. 당나라에서 유학중인 의상대사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서 이곳까지 날아왔는데 용은 이 곳에 숨어있던 도적떼 500명을 바위를 날려 물리쳤고 그 바위가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아 날아온 이래로 '부석(떠있는 돌)'이라고 각인되어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기둥높이의 3분의 1지점부터 굵고 위에서 아래로 가며 점차 가늘어지는 기둥을 말한다.
항상, 절에가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전날에 비가 와서인지 살짝 촉촉했던 부석사는 아직도 기억에 선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천왕문을 지나 부석사 본당으로 올라가면서 석탑들을 하나하나 본다.
부석사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 되면 조용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와 바람에 나부끼는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혼자오는 관광객보다는 대단위 관광객이 둘러보고 나가는 일정이 계속되다보니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시끌벅적했다가 다시 조용해지곤 한다. 다시 조용해지는 시간이 찾아오면 또 혼자서 명상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산자락은 사진으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오히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부석도 아니고 무량수전도 아니고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아래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무언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그래서 나는 절을 찾는다.
사람이 하도 없고, 배흘림 기둥 아래서서 사진을 부탁하려고 했는데, 외국인밖에 보이지 않길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위의 사진처럼 찍어줬다. 보통이면 살짝 줌을 해서 찍어줬을텐데, 얼굴 소멸하겠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프레임과 외국인의 프레임은 다른 것 같다.
조용히 불공을 드리는 스님. 어떤 마음으로 앉아 계실까? 절을 찾을 때마다 매일 드는 생각이지만, 스님들은 항상 '바람으로 말하고' '바람으로 듣는' 것 같다. 항상 절을 찾으러 갈때면, 절을 앞에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뒤로 돌아가서 보기도 한다. 뒤에서 바라보는 절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절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할까.
조사당쪽으로 올라가면 인적이 더욱 드물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연속에 폭 빠져있는 암자는 정말 신비로운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분이 가득 차서 올라오는 공기는 시원하고, 피톤치드를 맘껏 느낄 수 있다.
조사당으로 가는 길 중턱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길이 갈라지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선비화가 있고 왼쪽으로 가면 조사당이다. 이 선비화는 수령 5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두산백과에서 찾아 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조선 광해군 때에 경상감사가 된 정조(鄭造)라는 이가 부석사에 와 선비화를 보고 ‘선인의 지팡이였던 나무로 내 지팡이를 만들겠다’라며 나무를 잘라 갔으나 다시 줄기가 뻗어 나와 전과 같이 잘 자랐고, 후에 정조는 역적으로 몰려 죽였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퇴계 이황은 이 나무를 보고 ‘부석사비선화(浮石寺飛仙花)’라고 하는 시(詩)를 남기기도 했다.
아기를 못 낳는 부인이 선비화의 잎을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내려와 나뭇잎을 마구 따 가는 바람에 나무가 많이 훼손되었다 한다. 높이 170cm, 뿌리부분 굵기 5cm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수령이 최소 500년에 이른다고 알려진 부석사의 선비화는 현재 철책으로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다.
[출처] 부석사 선비화 | 두산백과
드디어 조사당까지 올라왔다. 한 5분만 투자하면 올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의 등산을 겸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조사당 안은 찍을 수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서 향내를 맡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이거 아무래도 나는 부석사에 힐링하러 온 것 같다.
날이 맑지 않아서 조금 아쉽긴 해도 다음에 또 오기를 기약하며 내려왔다. 이곳에서 한 가이드님을 만났는데 가이드님이 말하시길 단풍일때가 정말 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이후에 한번 더 다녀오게 되었다) 부석사 여행을 마치고 부석사에서 소수서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20분남짓 움직였다.
참고 **부석사에서 소수서원까지는 1,850원, 소수서원에서 영주까지는 1,150원 들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들어가면 수령 몇백년은 되보이는 엄청난 소나무들이 지천이다. 소수서원은 선비들이 공부를 하던 곳으로 하나의 기숙사로 생각하면 되겠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최초의 주자학자로 알려진 문성공 안향 선생이 유배 시절 머물렀던 자리에 세워진 서원은 마을의 이름을 딴 백운동 서원으로 불리었다가, 퇴계 이황 선생이 명종에게 현판을 하사받아 지금의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건너간 안향이 우리 땅에 처음으로 알린 주자학은 국가 경영의 원리로 새롭게 해석되어 훗날 조선 건국의 기본사상이 되었다.
조선 중기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중국의 백록동 서원을 흠모하여 서원을 세우고 안향 선생을 배향하였다. 서원은 기존의 지방 관립 교육기관인 향교를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학문을 전수하는 지방사립대학이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유학자들이 대개 자신의 고향으로 낙향하여 건립한 서원은 후학을 교육하고 사당을 통하여 선학을 배향하는 지방의 사상 중심지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이 있기까지 그 영향력은 실로 막강한 것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처음 만들어진 서원이라 소수서원은 그 형식과 건물배치가 자유롭다. 앞으로 교육시설을 두고 뒤편으로 사당을 세우는 전학후묘의 배치는 이후 만들어진 서원건립의 형식이었고, 소수서원은 강학 장소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직방재, 학구재, 지락재 등이 자유롭게 자연경관에 따라 어우러진다. 그 규모 또한 큼직한 모습이 당시의 위세를 느끼게 하며 하천을 따라 취한대 등 아름다운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한적한 서원 내부를 둘러보고 안향 선생과 설립자인 주세붕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는 전시관도 둘러보자. 옛 사찰 터임을 알리는 입구의 당간지주도 이채롭다. 이곳은 제향영역과 강학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강학영역은 말그대로 공부를 하는 곳이고 제향영역은 제를 올리던 곳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 사실 이때부터 카메라가 말썽을 부려 빛이 많이 들어가있다. 양해 부탁바란다 **
소수서원을 지나서 바로 가로질러 1분거리에 소수서원 박물관과 선비촌을 볼 수 있다 . 선비촌은 영주시에 만든 테마파크다.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을 복원하고 생활상을 재현해놨다. 각 고택들은 관광객들이 한옥스테이까지 가능하게 만들어 두었으며 때때로 전통장터와 함께 전통문화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곳을 가서 인동장씨 종택을 가보았는데, 아무래도 내 핏줄이 있는 종택이라 그런지 느낌이 색달랐다. 비가 너무 많이 온데다가 카메라까지 말썽이어서 모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살펴보니 사진이 온데간데 없다. 이럴때마다 백업은 필수라는 생각이 무럭무럭든다.
선비촌에서 다시 영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시간은 부석사에서 출발하는 시간에 대충 20분을 더하면 그게 선비촌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서 제대로 힐링캠프를 하고 떠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부산에서 걸린 장염이 이곳에 오기 전날까지 계속되었다보니 심신이 상당히 지쳐있었는데 이제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영주역은 앞서 말했다시피 경상북도권 여행의 메카다. 워낙 영주역에서 관광지를 너무나 잘 정리해놓았고 내일러들을 위한 이벤트를 많이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주역의 명물인 '열차숙소'는 예약이 항상 꽉 차서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아침에 영주역에 도착하면 수건들고 머리를 감고 오는 내일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걸 볼때마다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더라.
이제 영주역에 맡겨놓은 짐을 찾고 제천으로 갔다가 집으로 간다. 일정은 대충 4시에 출발해서 제천에서 마무리로 '의림지'를 갔다가 조치원으로가서 집으로 가는 일정이다. 살짝 빡빡하지만 마지막 일정이기도 하고 뭔가 마무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굳이 조치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이유는 예전에 갔던 삼탄유원지를 지나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탄유원지는 내게 아주 특별한 곳이다.
왜냐면, 처음 내일로를 알게 된 곳이였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게 인터넷도 아니고 정말 사람들이 잘 가지않는 간이역에서 본 포스터에 끌려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굳이 코스에 집어넣었다.
열차가 오고, 난 또 당연하게 기차를 타고 또 당연하게 창밖을 보며 또 당연하게 명상에 잠긴다. 내가 혼자서 여행하는 이유는 바로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리에 기록하는 과정인 것 같다. 몇년이 지나고 그때 그 느낌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종이에 적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직도 느껴진다. 그 조그마한 열차의 진동과 사람들의 말 소리와 내가 그때 어떤 노래를 들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영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도중 만날 수 있는 '단양' 깎아지르는 그 절벽아래 흐르는 물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했던 내일로 여행을 조금씩 머리에 기록하고자 한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준영학생! 학과 조교입니다. 이번에 OOO수업을 꼭 들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신청 해주세요"
이 전화덕에 알았다.
아차, 수강신청을 깜빡하고 있었다.
신나게 여행하느라 오늘이 수강신청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 학년인데 이렇게 까먹고 있다니, 부랴부랴 열차까페로 달려가 포탈을 열고 수강신청을 신나게 한다. 인터넷이 좀 빠를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느려서 간신히 코드를 입력하고 수강신청을 한다. 다행이도 4학년 수업이 대부분이라 쉽게 수강신청을 성공시킬 수 있었지만, 조교님 아니었으면 완전히 까먹을 뻔 했다.
아무튼 수강신청을 하고 다시 자리와 앉아 창밖을 다시 응시한다. 석회석이 많이 나오는 지대다보니 여기저기 시멘트 공장이 보이고 제법 높은 산도 보인다. 생각해보니 처음 내일로를 시작할때 제천-안동구간을 이용해서 그런지 익숙한 풍경이더라..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인 제천에 도착했다. 사실 마지막 여행지라고 하기도 미안한게 이곳은 사실 의림지만 방문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제천을 여행했다고 할 수 없다. 의림지는 우리나라 수리시설중 오래된 것으로 유명한데, 삼국사기, 고려사, 대동여지도에도 자세히 나타나는 곳이다. 이곳에는 영호정, 경호루등 정자, 누각이 많고 경관이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제천하면 국제음악제도 유명한데 이번에는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제천역에서 나와서 오른쪽에 버스정류장이 바로 있으니 버스를 타고 10분 이내로 제천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 번호는 31번이다.
사람들이 유원지를 찾아서 오기도 하고 신기하게 낚시를 하러 오기도 하나보다. 이곳을 한시간 잡고 천천히 돌아보면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내가 누구를 만났고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조금씩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리속에 저장한다.
오늘따라, 조치원으로 향하는 기차에 사람이 많다. 모두 제각기 만난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느라 바빠보인다.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혹여나 한 순간에 첫 여행지이자 보기를 그렇게도 갈망했던 삼탄이 금방 지나갈까봐서. 그래서 계속 창밖을 바라봤다. 다행이 날이 저물기 전 가까스로 삼탄유원지를 봤다. 내가 처음 내일로 여행을 알게 된 곳이고 처음 시작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나의 내일로 여행은 마무리가 된다.
기차 시간의 전광판을 찍거나 기차안의 풍경, 역의 팻말을 찍는 것은 뭔가 마침표를 찍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항상 여행을 시작할때 기차역을 찍고 끝날때 찍어 왔기 떄문이 아닐까. 나는 또 이번 여행에서 꽤 많은 것을 얻어간다. 보기 힘든 광경들도 직접 볼 수 있었고 마음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다시 더 달려나갈 추진력도 얻는 것 같다.
하긴, 계속 그렇게 여행을 해왔었다. 한 학기 정말 학업에만 몰두하고 치열하게 살면서 방학만 되면 집에 붙어있는 날이 거의 없다. 이렇게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혼자 그렇게 갔다와서 베시시 웃으며 또 한학기를 시작한다.
참 웃기지, 나는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고 어떨땐 막 사진을 올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글을 쓰는 만큼은 집중을 하면서 써 내려간다. 신기하게 어디에 적어놓지도 않았는데 그때 기억은 아주 생생하다. 또 그렇게 기나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감사할 뿐.
이런 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하는 한마디는 비슷하다. "내가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난 그말을 들을 때 제일 뿌듯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주절주절 대는데도 찰떡같이 의도를 파악해주시는 분들을 볼 대마다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형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사진을 막 보정하고 싶지도 않고 잘 찍어야 한다는 충동도 가지고 싶지 않다. 그냥 막 찍다가 "오! 요거 쓸만하겠는데" 하면 그냥 넣는 식이다. 그때 그 감정을 전달하는게 목적이니까. 가끔은 사진기를 넣어 두고 싶을 때도 있다. 아참! 때론 카메라가 눈에 넣는 렌즈처럼 나와서 눈을 깜빡이면 찍히는 그런게 나왔으면 참 좋겠다는 상상도 한다. 비오는데 사진찍는것은 정말 체력싸움이니까.
2012년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2011년에 한 여행을 이제와서 정리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니라 런던에서.
결국 이 여행이 나의 마지막 내일로 여행이 되었다. 신기하게 내일로를 처음 알게 된 곳에서 부터 내일로를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 2012년의 나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여행프로젝트도 하고 기적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물론 사건 사고도 많았다. 아무튼 그것들을 나중에 풀어내기로 하고, 이렇게 2011년 내일로를 마무리한다. 지금은 내일로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너무나 붐비는 바람에 여행이 살짝 힘들어졌다. 나는 감히 추천한다. 개강하기 7일 전에 여행을 하라고. 그러면 더 많은 생각을 안고가서 더 많은 생각을 풀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감히 주장한다. 사람은 더불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혼자서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기왕이면 후자를 위해 여행을 해보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과 섞여 있는 일상을 견뎌내고 있으니까.
여행은 당신을 춤추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