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이 떠돌았으면 비행기를 타고 2년이나 타국생활을 하러가는 중에도 그다지 떨리지가 않다.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2년이나 생활할 거면서 짐은 겨우 15kg, 진공청소기로 공기를 열심히 빨아들여 한껏 쪼그라든 옷가지들과 함께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정말 외국에서 지내보고 싶어 뉴욕에서 2달을 아파트 빌려 지낸기억이 스쳐지나가면서 그때 경험으로 그래도 꽤 잘 버틸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태국으로 향하고 있다.
내게 태국의 이미지는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인 밤문화, 음식 이런것들 보다도 '카오산 로드'가 가장 큰 이미지였다. 하도 많은 여행책들에서 카오산 로드를 다룬 통에 도대체 얼마나 잘 되어있으면 그렇게 지상낙원이고 체계적으로 투어 패키지 시스템이 되어있을까 내심 궁금했었다. 첫 숙소도 그래서 카오산 로드 근처에 있는 람부뜨리 로드의 한인 도미토리로 잡았다. 가격은 말도 안되는 가격인 6천원. 체류비를 많이 준비하지 못해서, 영국에서 살인적인 물가에 대비하려면 태국 여행중에는 씀씀이를 비교적 줄여야 했다.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과는 전혀 다른 꿉꿉한 날씨가 시작된다. 나름 교통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환승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스카이라인을 타고 내가 내린 곳은 파야타이라는 곳이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내려 택시를 타고 카오산로드로 이동한다고 한다. 미리 공부해 간 바에 의하면 '로드'는 여기말로 '쏘이' 그래서 택시를 타고 갈 때 정확히 일러줘야만 빙빙 돌아서 가지 않는다고 했다.
큼지막한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는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유독 쉽지가 않다. 다른나라 말이 들리는 지상철에서 빠져나와 엘레베이터도 없는 역사를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짐을 들고 나서니 아니나다를까 택시기사들이 달라붙어 흥정을 시작한다. 어디 갈꺼냐 하길래 물어나 보자 해서 '카오산 로드'간다고 했더니 '90바트'를 불렀다. 미안한데 너네 차 안타고 그냥 저기 가서 탈래 목도 마르고 말야라고 했더니 '80'을 부른다. 그냥 그 사람들과 가느니 커미션을 떼이는거 같아 그냥 길거리에서 오는 택시를 잡아탔다. 미터기를 틀어달라고 한 뒤에 카오산 로드에 도착한 해서 미터기 상 가격은 55바트 가량 나왔다. 생각보다 싼 가격에 오게 된 것이 그래도 참 다행이다. 택시 문을 열고 나가니 당황스러운,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그때 시간 저녁 10시, 빨리 숙소를 찾아야 했던 시각. 뭔가 오색찬란한 네온사인과 정리가 되지 않은 거리, 그리고 현지인도 간간히 보이지만 야한 복장의 외국인들과 한창 술판이 벌어져 있는 카오산로드. 그곳은 내가 생각했던 여행자에게 휴식을 주는 곳이라기 보다는 여행자에게 환락을 선사하는 동양의 라스베가스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분명 아이고 성인군자 납셨어 하겠지만 뭐 사람마다 여행지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뭔가 여행에 지쳐서 돌아오면 조용히 휴양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던거다. 그때 느낌은 그저 클럽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서 사실 적잖이 실망했다.
일단 늦은 시간이고 캐리어를 끌고 카오산로드를 헤메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인터넷 되지 않는 아이패드에 숙소 위치를 찍은 캡쳐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정말 거짓말안하고 1시간을 그렇게 계속 카오산로드를 휘저었다. 게다가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 추적추적 기분도 영 꿀꿀해지고 돌돌돌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데 힘이 부쳤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용기내어 많은 호텔에 들러 길을 잃었으니 인터넷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을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중 딱 한 호텔만이 10바트를 내면 인터넷을 15분 정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 하는 곳 밖에는 없었다. 당시 시간은 11시었다. 정말 짜증이 났다. 물론 아무 준비도 하고 오지 않은 내 잘못도 있지만 괜히 짜증이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 흥정은 입에 머금고 인터넷을 사용해서 구글지도를 켰다. 인터넷도 느리거니와 키보드는 온통 알 수 없는 언어라 정말이지 무용지물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대충 알아낸 정보가 있었으니 그 숙소는 람부뜨리 거리에 있고 한블럭을 건너가야 했는데 계속 카오산로드를 맴돌고 있었던 것.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왜 그랬나 싶다. 나는 너무 많은 매체를 통해 정말 모든 숙소가 카오산로드에 있는 줄 알았던거다. 대부분의 숙소는 전부 람부뜨리 거리에 있었다. 람부뜨리 거리를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냈다. 이제 다시 카오산 로드 초입에 계속 길을 헤매다 마주하던 KFC를 보지 않아도 됨에 안도를 했고 비교적 카오산로드보다 고즈넉한 람부뜨리에서 안도를 하고 앞으로는 이곳에서 놀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천천히 숙소를 찾아보던게 12시었다.
결론적으로 숙소는 12시 30분에 찾을 수 있었다. 정말 허름한 곳에 6000원 정도의 퀄리티, 그리고 비에 온통 젖은 캐리어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가니 직원이 졸고 있었다. 저기요 예약했는데요 했더니 태국인 직원이었다. 일단 따라오라며 도미토리로 들어갔다. 너무 미안해서 조용히 들어가려 하는데 도미토리에 반이상이 없다. 모두가 클러빙을 하러 나간 모양이다. 그래도 침대를 보니까 안도가 되었다.
이상하게 여행을 떠나면 항상 내겐 정상적이지 못한 에피소드가 따라다니는 것 같다. 신이시여...
그날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다. 시도때도 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
정말 내게 돈이 충분했다면 당장 옮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래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이 바뀔거야라고 생각하며 거의 되지 않는 와이파이를 직원에게 물어보고 아이패드를 이용해 내일은 짜뚜짝 시장이라는 곳과 시암니라밋 공연을 보기로 계획하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