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27/05/2014)

 

우선 내가 공책에 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계획상으로는 영어로 쓰려고 했으나,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전하기엔 내게 한글 만한 것도 없더라. (뭐.. 영어가 매우 부족해서...하하)

 

힘겹게 이고 지고 가져 온 아이패드와 키보드는 아마 다른 용도로 널리 쓰이리라 생각하며, 지극히도 아마추어적이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 즐거운 고행(?) 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이 여행기를 쓰면서 까미노의 여정을 기록하고 싶다. 사진은 되도록 줄이고 이 공책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고 싶다.

 

아무튼.. 간단한 바게트와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사실 크로와상인데 이름은 기억나질 않네) 기차를 탔다. 장장 5시간 동안 전날 편히 잠을 청하지 못한 잠을 몰아서 자고.. 그동안의 여정과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키워드로 간략하게 메모했다.

 

말이 메모이지 거의 2시간은 걸린 듯 하다.

 

안내방송은 곧 바욘에 도착한다고 하는데 십분이 지나도 역에 들어서질 않는다. 약간 불친절한 우리의 TGV는 ... 영어방송이 아닌 프랑스어 방송만 줄구장창..

 

몇가지 단어로 방송을 알아듣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배낭을 이고 나서려고 하니 이상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는 사람들. 음 뭔가 잘못되었나?

 

낌새가 이상해서 다시 자리에 앉아 머쓱해하니 기차가 늦는다는 제스쳐를 보여준다.

 

기차는 결국 36분씩이나 늦어 바욘에 도착했다.

바욘에 도착하자마자 티켓 오피스를 찾아 들어갔다. 티켓 오피스에서는 버스밖에 없어서 버스표를 끊어야 한단다. 티켓을 끊는데 갑자기 말을 거는 직원이 있었다. 엄청 친근해보이는 미국인인데... 처음엔 직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푸에토리코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넘어와 산 지 오래 되었다고 하는 것 같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말만 하고 있네..) 혼자 있고 싶은 제스쳐를 취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좀 외로워 보였나? 아무튼 그래 알았어 안뇽!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진상 우측 맨 위에 St jean pied de port 가 까미노의 시작점)

 

버스 가격은 9.5 유로. 직원은 펀칭 기계로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고보니 기계로 승차스탬프를 알아서 찍어 들어가는 것이다.

 

오후 2시 55분 버스를 예약했던지라 시간이 텅텅 비게 되었다. 바욘역 앞에 있는 다리를 돌아보고 배가 고파 역의 외곽으로 돌아들어갔다.

 

프랑스어만 표기되어 있는 알 수 없는 음식점에 들어서서 주인에게 여기서 가장 BEST가 뭐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Pour라는 이름이 들어간 어떤 메뉴를 선택했다.

 

곧 소스가 잔뜩 버무려진 맛난 치킨요리가 나왔다. 정말 너무 맛있어서 아직도 기억 날 정도.

거하게 먹고 나오는데 가게 테라스에 왠 미국인인가 싶은 애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아~ 미국애들이 까미노 왔나보구나 하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그 무리 중 한명을 마주쳤다.

 

그리곤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고.. 레스토랑을 나오려니까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을 발견했다. 아까 티켓오피스에서 직원인 줄 착각했던 그 미국인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너도 까미노 가는거였어? 라며..

"Would you like to join us? (우리랑 같이 다닐래?) " 라는 제안을 했다.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Why not? "

(안될거 없지!)

 

그렇게 급 친해진 친구들과 함게 강변으로 나가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서로 통성명을 했다.

 

그렇게 나는 첫번째 까미노 패밀리를 만나게 되었다.

독일에서 온 사비나,

키 엄청 큰 독일인 다니엘

그리고 미국에서 온 수다쟁이 친구 데이비드까지.

 

우리는 그렇게 까미노 식구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생장으로 가는 길. 티켓오피스에서 봤을 때부터 친근함이 남 달랐던 데이빗은 한숨도 안쉬도 말을 한다. 뭐가 그리 할말이 많은지.. 미국의 주도를 하나하나 말해주며 어느 지역은 뭘 먹어야 좋고, 뭘 해야 좋은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신나게 자랑중이다.

 

 

버스를 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일본 분들도 많이 보이고, 한국 아주머니 한 분도 계신다. 분명 영어를 못하시는 것 같은데 참 대단하게도 의사소통을 어찌어찌 이어나가시며 버스까지 타셨다. 혼자 오신 분은 좀 드물었는데 의외였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우리는 바로 순례자 사무실로 향한다. 늦게 되면 숙소 잡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꿈에 그리던 크레덴시알을 받게 되는구나 !

이렇게 순례자 사무실은 늘 붐벼댄다.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한명한명 다 적극적으로 케어해준다. 어디서 왔는지 정보를 기입하는 것 부터 앞으로 여정에서 만나게 될 모든 숙소에 대한 정보가 담긴 프린트, 그리고 크레덴시알, 가방에 달고 다닐 증표인 조개까지 모두 챙겨주신다. 도네이션은 단돈 2유로만 내면 된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오늘 하루 묵을 숙소를 알아봐주신다. 숙소의 가격은 비싸야 15유로 정도.

 

 

(지금와서 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순례길에서 친해진 사람들이 이 사진안에 있다. ㅋㅋㅋㅋ 하도 많이 만나서 첫날 사진을 다시 보면 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싶으면 여지없이 친구들이었다)

가방에 조개껍질을 다니 제법 순례자 폼이 난다. 우리는 일단 모든 가방과 짐들을 알선해 준 호텔에다 풀어놓는다. 이미 숙소에는 짐을 풀고 이미 잘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당시 시간이 4시였는데 아마 다음날 일찍 출발하기 위함인 듯 싶다.

생장은 조용하고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사비나는 다음날 피레네를 올라야 하기 때문에 등산스틱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지팡이를 하나 구입한단다. 그런데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포기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우리는 하시모토 상을 만나게 되었다. 중처럼 머리를 반듯하게 민 일본 여자분은 처음 봤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하시모토상은 영어도 프랑스어도 불가능해서 부족한 나의 일본어로 대충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우리와 숙소도 같아서 이건 인연이다 싶었다.

슈퍼마켓은 6시전에 대부분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는 슈퍼마켓 끝나기전에 몇가지 과일과 와인 한병을 사기로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이비드가 한 병을 사고 우리는 몇가지 주전부리를 사기로 했다.

오늘은 2차까지 달리나보다. 아까는 생맥주도 한잔 마셔야 한다더니만.

와인병과 주전부리 이것저것을 치렁치렁 들고 다니면서도 맥주집을 찾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우습다. 순례를 하러 온 것인지.. 술을 마시러 온 것인지.. 분간이 안가서 서로 웃었다.

작은 마을은 그렇게 돌아다녀도 힘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마치 중세에 들어와있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까미노에 대한 기대가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마침 펍이 보여 맥주를 시킨다. 역시 유럽에서 마시는 생맥주는 맛이 기가막히다. 맥주를 마셔서 거하게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2차를 위해 망루로 향한다. 생장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망루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와인을 마시면 의미가 있을거라는.. 데이비드의 말씀.

 

뭔가 순례자가 아닌 것 같다 ㅎㅎㅎ

망루로 향하면서 보게 된 조개 표식. 이 표식만 따라가면 길 잃어버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무슨일이 벌어질지 도대체가 예상할 수가 없다.

 

 

다음에 계속.

다음에 올리는 여행기에 태그 해드립니다. :) 노잼 여행기지만 이번에도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혹시나 흥미롭다고 생각하신다면 리플 남겨주시면 다음에 계속 태그해드릴께요 ^^

날짜

2021. 5.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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