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들이 오지 않는다. 다니엘, 데이비드, 사비나 다들 어디에 있는거니?

데이비드는 다리가 불편해서 걱정되고 사비나도 어깨가 좋지 않다고 했었는데...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나는 아직 짐을 풀지않고 입구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 20분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서 익숙한 사람이 다가온다. 키가 한 2미터는 될 것같은 .... 그렇다. 다니엘이었다.

 

"으와!! 다니엘 드디어 도착했구나? 다른 애들은?"

"아 진짜 길이 장난 아니네.. 중간에 부상당한 사람 정말 많아. 일단 사비나는 내 뒤에 오고 있는데 데이비드는 못봤어!"

 

일단 사비나도 오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본다. 한 10분정도 지나니 저멀리 절뚝이며 오는 사비나.

 

"하아.. 진자 힘들었어!"

사비나 너도 결국 해냈구나! 라는 말과 함께 일단 알베르게 체크인을 함께 진행했다. 데이비드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할텐데 말이다.

우리는 일찍왔기에 신식 알베르게를 배정받았다. 알베르게는 참 좋았는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바로 덮을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너무 준비없이 온 탓에 침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일단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우비도 말리고 옷도 말리기 시작한다. 화장실에 갔더니 줄이 정말 길었다. 갈아입을 옷가지를 둘둘말아 손에 들고 있는데, 앞사람이 대뜸 뒤를 돌아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한다.

 

"음? 한국에서 왔어. 너는?"

"오 난 이탈리아에서 왔는데?"

뭔가 인상 좋아보이는 이탈리아 친구. 내가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먼저 안부를 묻는게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우리는 통성명까지 하게 되었다. 이 친구의 이름은 파비오. 이탈리아 시칠리섬에서 왔다고 한다.

 

거기 가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멋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한껏 그 친구의 동네를 치켜세워줬다. 이렇게 화장실 앞(?)에서 친해진 파비오는 까미노 여정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그렇게 옷을 다 말리고 나니 기분이 확 좋아졌다. 다니엘과 함께 잠깐 쉬고 있다가, 공용 주방에 가서 내가 가져 온 홍차를 하나씩 우려주고.. 언제올지 모르는 데이비드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 1시간이 더 지났을까.. 거의 막바지로 데이비드가 다리를 절뚝이며 왔다.

"드디어 왔구나!!"

우리는 모두 신이나 포옹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늦은 시간에 도착해 신식 알베르게를 배정받지 못하고 구 알베르게를 배정받았다.

구 알베르게는 이렇게 생겼는데 뭔가 이쪽이 더 유서깊은 알베르게에다 더 좋아보이는건 왤까.. ㅎㅎ

아무튼 우리는 까미노를 마치면 꼭 먹게 된다는 '까페 콘 레체'를 마시러 바로 향했다. 알베르게에서 약 2분거리에 있는 이 바에는 까페 콘 레체를 팔고 있는데 사실 설탕 듬뿍 넣어 먹는 라떼라고 보면 된다. 몸을 녹이려고 먹는 이 까페 콘 레체는 여독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우노 까페 콘 레체 포르파보르~"

까페 콘 레체 하나 주세요~ 라는 뜻으로. 하루에 몇번이라도 외치기에 이제 완벽하게 외워버린 스페인어가 되었고,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스페인어다. 커피를 마시며 내일은 과연 계속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수다쟁이 데이비드가 없으면 살짝 심심하겠는데 싶었지만..

 

데이비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부디 내일 갑자기 다 나아서 함께 까미노 끝까지 갈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싶었다.

그날의 저녁식사는 잊을 수 없었다. 12유로를 내면 Menu del pelegrino (순례자 메뉴)를 먹을 수 있는데 코스요리로 구성이 되어있다. 약간 가격이 있지만 스프, 치즈가 들어간 파프리카, 와인, 고기 요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너무 진수성찬으로 나온다며 모두가 행복해했다.

우리는 간만에 먹는 만찬에 행복감을 충전했다. 나중에는 데이빗이 데려온 두명의 영국 순례자와 벨기에서 왔다는 달리아라는 순례자도 합석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오늘 하루를 다시 곱씹었다.

아아. 정말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고 말이다.

그날 저녁, 나는 침낭이 없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이렇게 쌀쌀할 줄이야.. 정말 어디서 침낭 하나 사야하는 것인가.... 휴 큰일이다.

날짜

2021. 5.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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