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5/2014 Day 3 (Pamplona)

 

성벽 안으로 들어오자 이제 대도시를 만났다는 감격에설까 다들 기념사진을 하나씩 찍기 시작한다. 팜플로냐는 바스크지방에서도 꽤 규모가 큰 도시다. 대부분의 순례자는 이 곳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적어도 이틀을 머물기도 한다. 적어도 80km는 걸었을테니 이제 쉬어가도 좋을 타이밍. 성문을 지나자마자 다른 순례자의 기념샷을 정성스럽게 찍어주었다.

사실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마음 같아서는 맘껏 사진을 찍고 싶은데, 카메라가 고장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묵을 숙소는 Maria y Jesus 라는 공식 알베르게로 100명 이상을 수용하는 큰 알베르게다. 시설도 정말 좋은걸로 유명한 이 곳. 나름 다른 순례자들보다 빨리 도착해서 그런가 자리는 널널했다. 짐을 재빨리 풀어놓고 인터넷 까페를 찾기 시작했다. 리셉션에 물어보니 인터넷 까페가 근처에 딱 하나 있는데 운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짐을 풀어놓고 좀 쉬었다. 알베르게에도 사실 자그마한 코인 컴퓨터가 있었는데 이 컴퓨터로도 복구 프로그램을 시도해보니 관리자 모드로 접근하라는 메세지만 뜬다. 인터넷 까페에 가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안될텐데....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팜플로냐 성당에 가고자 했다. 그곳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그렇게 멋지다고 극찬을 했다. 시간이 많다면 나도 가보고 싶고, 같이 놀러다니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다. 팜플로냐에 온 목적은 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복구하기 위함이니까.

(사진은 내가 당시 페이스북에 썼던 글)

 

 

시에스타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바로 인터넷 까페로 들어갔다.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지만 어찌저찌 손짓발짓으로 이야기는 통한다. 후불제니까 지정해 준 컴퓨터에 앉으면 된다고 한다. 컴퓨터에 앉아 의심반으로 복구프로그램을 가동해봤더니..

 

 

"심봤다!!!!! 관리자 모드 접속도 되고.. 복구 프로그램도 제대로 돌아간다!"

 

그렇게 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파일들이 모두 살아돌아오길 빌었다. 그리고 섣불리 전체삭제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도 되새겼다.

 

주위에 친한 여행작가님이 내 페북에 코멘트를 달아놓으셨다. "대도시에 가면 2박하면서 복구하면 되니 며칠만 참아! ^^"

 

그간의 사진들이 아쉽긴 하지만 이제 여정이 길어질수록 내려 놓는 연습이 될 것 같다.

 

2시간에 걸쳐 파일은 모두 복구할 수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가고 싶었던 팜플로냐 성당은 가보지 못했지만, 로제와인 페스티벌은 볼 수 있었다. 테이프를 끊는 오픈식부터 해서 축제분위기에 확 휩쓸렸다. 로제와인이 저렴하게 풀리고, 핀쵸스도 할인이 되는 이 축제기간에 휩쓸려 뭔가 카메라 복구를 축하받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재미난 이벤트를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뭐 바스크는 스페인이라는 말을 싫어할테지만!)

 

그렇게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누가 어깨를 낚아챈다 "어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다가 날 발견하고 같이 놀자고 잡아 끈 리짜였다.

 

"어디서 뭐하고 있었어??"

"아.. 메모리 카드! 복구 때문에 이곳 저곳 돌아다니느라... "

"그래서 다 복구했어?"

"응! 백프로!"

 

"축하해! 그럼 이제 놀자!"

나는 리짜의 손에 끌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탈리에서 온 마르타와 멕시코에서 온 비올레타였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지만 내 얘기 하나하나에 웃어주고 반응해줘서 첨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친구들과 이곳저곳 핀쵸스를 사냥하러 가는 핀쵸스 헌터가 되었다

(핀쵸스란 주전부리 정도로 간단한 스페인식 안주다)

 

(사진은 리짜와 브렌!)

 

 

하루 동안 먹은 핀쵸스와 와인때문에 간만에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걱정과 근심이 한 가득이었는데 그게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리짜와 브렌은 작년에 카미노에서 만났다고 했다. 카미노 이 후 한번 더 오자는 약속을 결국 지켜서 카미노에 다시 온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맛집도 제법 잘 찾아내었다. 덕분에 맛있고 퀄리티 높은 핀쵸스만 골라 먹을 수 있었다. 그날 먹은 와인과 핀쵸스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한 10유로치 먹은 것 같은데 절대 적은 양이 아니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도 사비나를 비롯한 원래 가족들은 잘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팜플로냐에서 우리는 상봉하지 못했다.

날짜

2021. 5.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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