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6/2014 (DAY 5) Puente de Reina -> Estella

 

 

까미노에서 마주치는 마을은 오아시스와 다름이 없다. 이런 마을에서 딱히 하는게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거다.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렇게 예쁜 마을들을 보는게 꽤나 쏠쏠하다는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을의 골목골목들은 순례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준다.

순례자들은 그늘도 없는 이런 길들을 계속 걸어나가야 한다. 그러기에 중간에 나오는 마을이 그렇게 고맙다.

마을에서는 아침일찍 나보다 먼저 떠난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함께 까페 콘 레체 한 잔 마시면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러기에 늘 지도를 보며 언제 마을이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마을에서 살짝 목을 축이고, 오늘의 목적지 에스테야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는데, 이곳에는 알베르게가 꽤 있다. 기봉이와 나는 이때쯤 따로 걷고 있었는데 서로 어떤 알베르게를 갈 지 미리 결정하지 않았던 탓에 엇갈려버렸다. 기봉이는 공식 알베르게로 갔고, 나는 도네이션(기부제) 알베르게를 가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약간 허름해보이는 알베르게. 익숙한 누군가가 빨래를 말리고 있었는데 나보다 일찍 출발한 론이었다. 론은 3일째 되던 날 Zubiri 에서 만났던 미국인. 당시에는 하도 말을 안해서 미국사람이 아니라 스페인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미국 사람이었다.

 

알베르게의 호스피텔로 (주인) 은 얼굴이 장난기가 정말 많아보이는 사람이었다. 정말 친절하고 영어는 못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스페인어로 우리를 신나게 했다. (이것도 능력이다)

 

 

(골목골목이 아름다운 에스테야)

(시에스타에 돌입해서 조용한 모습이다)

(에스테야를 양분하는 하천)

 

짐을 정리하고 나와 테이블에 앉아 잠시 쉬었다. 주전부리가 테이블에 있어 주섬주섬 먹는데 내 이름을 물어보는 가족 순례객들. 나는 먼저 내 이름을 말했다. "Roy 라고 불러~줘요" 라고 했는데 그건 영어 이름이 아니냐며 진짜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준영이에요!" 그 이름이 더 예쁘다며 준영! 준영!을 외치는 이들이 참 좋았다.

 

이들은 폴란드에서 온 셀주크, 에바, 그의 19살 난 딸이었다. 이들은 천천히 길을 걷고 있는 순례객이라고 했다. 내게 한국어를 알려달라며 "나는 폴란드에서 왔습니다 / 내 이름은 에바입니다" 정도의 고난이도 한국어를 내게 배워갔다.

 

시에스타 시간이라 굉장히 조용하다. 에스테야는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돌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점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도네이션 알베르게는 대부분이 무료다. 비스킷을 하나 집어먹으니 아까 그 유쾌한 호스피탈로가 와서 100유로를 달라고 농담을 던진다.

 

다들 하하호호 웃느라 정신없는 알베르게다. 오늘 있었던 몇가지 일을 까먹기 전에 일기로 남기고 밖으로 나온다. 햇빛이 너무 좋다. 마침 도착한 나, 그리고 영국의 앨리스, 달리아 이렇게 3명이서 햇빛을 벗삼아 책도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오후쯤이 되어 론과 함께 공식 알베르게 (Municipal)에 있을 다른 친구들을 찾아갔다. 마침 거기에는 기봉이도 마르타도 비올레타도 있었다. 다들 핀쵸스나 먹으러가자 싶어 마을 광장으로 나갔다.

 

역시 여정의 끝은 맥주가 아니겠는가?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핀쵸스 몇개를 집어들고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그러다가 저녁에 왠지 더 배고플 것 같아서 파스타를 해먹기로 했다.

 

"행님, 제가 마법의 스프를 가져왔습니다" 기봉이가 구미를 당기는 말을 한다.

"뭐? 마법의 스프가 뭐야?"

"라.면.스.프!"

 

기봉이는 라면스프를 대량 챙겨왔던것이다. 파스타와 계란을 스크램블해서 이 라면스프를 뿌려먹으면 기가 막히다는 것.

 

한국의 맛이 너무나 그리웠던 난.. 내가 묵는 알베르게에 돌아가 저녁에 곁들일만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 다시 기봉이가 묵는 알베르게로 향했다.

 

 

조용한 에스테야 골목골목을 지나 ...

사진에 있는 이 멋진 성당을 발견해 사진을 찍고 있는데, 3일차 우리가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굽다가 본 빨간머리 외국 여자를 만났다. 잠깐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다 대뜸 "Where are you from? (어느 국가 출신이야?)라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외국 여자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진짜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한국어로)

 

굉장히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는 그녀. 눈을 감고 들으면 한국 여고생으로 착각할 만큼 발음도 한국사람이었다. 이 빨간머리 여자의 이름은 프란체스카. 한국에서 3년간 워킹홀리데이로 살았다며 ..."다시 가고 싶다아~"라고 한다. 일단 더 깊은 얘기는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했다.

 

"밥 먹었어?"

"아니.."

일단ㅇ 프란체스카를 데리고 알베르게로 향했다.

(프란체스카를 만났던 운명적인(?) 장소)

 

기봉이가 요리를 할테니 간단하게 마실 캔맥주 몇개를 사러 수퍼마켓에 들렀다. 이 수퍼마켓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한국어를 몇개 알려주고 가란다. 수퍼마켓 주인은 한국어를 공부해오고 있다며 안녕하세요를 비롯한 인사말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감사합니다 또 봐요!"를 알려주고 왔다.

 

뭔가 오늘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네..

 

오늘의 메뉴는 신라면 스프 파스타! 기봉이가 즉석 공수해 온 신라면 스프에 야채와 계란을 곁들였다. 완전 특별레시피! 기봉이는 왠 친구를 데려왔냐며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유창한 한국어를 듣고

"헐~"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일 출신인 프란체스카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한국인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져 한국행을 선택했고, 홍대에 있는 바에서 일하면서 한국어를 익혔다고 했다. 고추장 불고기를 그리워하는 이 소녀는 카미노를 걷고 한국에 다시 놀러 갈 예정이라고.

 

프란체스카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날 알베르게에서 처음 봤던 스페인 순례자들도 합석해 스페인 문화도 공유하고 한국문화도 공유했다. 그중에는 바르셀로나 출신 친구도 있었는데, 영국에서 만난 내 베스트 프렌드도 그 지역 출신이라 대화에 쉽게 낄 수 있었다. 스페인이지만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까탈루냐 사람들.. 늘 대화할때마다 느낀다.

 

날이 저물고 있어 더 깊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날은 뭔가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던 만큼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그렇게 프란체스카도 까미노를 같이 걷는 우리의 패밀리가 되었다.

 

내일은 에스테야에서 토레스 델 리오라는 곳까지 간다. 날씨가 좋았으면... ^^

 

날짜

2021. 5. 23. 07:00

최근 게시글

최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