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6/2014 (Day 7) Torres del rio -> Logrono

 

토레스에서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6월이 지나면서 날씨가 빠르게 더워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로그로뇨로 가는 여정. 로그로뇨는 팜플로냐와 맞먹을 정도로 큰 도시다.

 

이른 아침을 먹고 떠나는 길. 오늘 날씨는 정말이지 더할나위 없이 좋구나.

마치 반지를 찾으러 떠나는 프로도 같다.

 

오늘은 혼자서 걸어본다. 에밀리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는다. 저 멀리 들판은 아침 빛과 새벽 공기를 받아 아름답게 빛이 난다.

"진짜 이른 아침에 나가면 대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지"라고 말했던 비올레타의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태양빛이 뿌려내는 이 분위기가 좋다.

들판과 언덕, 고개를 넘고 넘다가 비올레타를 만났다. "비올레타 오늘 햇빛이 좋으니까 사진 좀 찍어줘!"

그렇게 찍은 사진. 누군가 이 사진을 보고 음유시인 내지.. 어디 밴드 소속 가수같다고.. 전혀 까미노 걷는 순례자 같지 않단다.. 가끔 보부상일때도 있고...(?)

작은 마을을 만났다. 따뜻한 카페 콘레체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복숭아 몇개와 바나나, 그리고 초콜렛을 산다. 커피보다는 과즙이 그리웠다보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로그로뇨는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유를 부려본다. 바나나를 하나 둘 까먹으면서

지나가는 순례객들에게 "Buen Camino (좋은 길!, 좋은 여행되세요와 비슷한 말)"로 인사를 하기도 하고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동료들을 만날때마다 복숭아를 쪼개준다. 여기서 산 복숭아는 스페인산일까? 꽤나 달고 맛있다.

아! 저기 또 일행들이 오고 있다! "나 여깄다아아아~!"

이 성당앞의 슈퍼마켓과 까페는 어째 만남의 광장인듯. 길이 하나다보니 다들 여기를 지나가는거구나.

에밀리, 론, 비올레타 이렇게 세명과 함께 다시 로그로뇨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면서 작디작은 이 마을의 골목골목을 찍어보기도 하고 오래된 성당이 보이면 벽에 손도 대본다.

빛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이렇게 좋구나~ 하면서도 이러한 빛을 가졌던 유럽이기에 회화가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겠군 하는 생각도 든다. 복 받은거지..

동네는 생각보다 미로처럼 얽혀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또 광활한 밀밭이 나오는데 그 들판에 두갈래 길이 있다. 이쪽으로 가도 닿을 수 있고, 저쪽으로 가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길 어디를 선택해도 결국은 목적지는 같다.

 

한 쪽 길이 길어보이지만 걸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선택은 결국 내 몫이다. 마음이 지쳐있으면 길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짧다고 느껴질 이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해본다.

길을 걷다보면 스페인의 개들은 햇살이 따가워 죄다 시에스타 중이다. 너도 시에스타 중이구나 하고 사진을 찍는데 '익숙해~'하는 표정으로 계속 잠을 잔다.

 

이 놈의 사진을 찍다가 예전 Puente de Reina 에서 만났던 오스트리아 청년을 만났다. 잠깐 다리를 다쳐서 하루가 좀 늦어지긴 했지만 지금은 잘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은 무려 40km 를 걷는다고 하는데.. 괜찮을까 싶으면서도.. 친구 부인의 유골을 뿌리러 왔다고 하는 이 친구의 신념은 아마 무슨 말을 해도 꺾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몸 조심히 길을 걸으라는 것 뿐... 부디 잘 도착했으면 좋겠다.

이 다리를 건너면 로그로뇨 시내로 들어가게 된다. 12시쯤 도착했으니 정말 일찍 도착한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다 슬로바키아의 렝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 렝카! 잘 지냈어?"

감격의 포옹을 하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로그로뇨를 지나 다음 마을까지 간다고 했다. 같이 묵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이야기도 많이 나누지 못했고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기에 레온까지 빠르게 걸어야 한다고 했다. 로그로뇨 시내에서 우린 페이스북을 교환하고 서로 사진을 찍었다.

서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꼭 메세지를 하기로! 건강해 렝카! 체코 프라하에서 일한다고 했으니, 나중에 갈 수 있게 되면 거기서도 또 만나자!

Municipal (공식 알베르게)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숙소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는 1시부터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플라스틱 의자에 늘어져 몸을 푼다. 나도 금새 나른해진다. 비올레타, 마르타, 론.. 다들 하나씩 도착하고 마침내 뒤쳐져있던 기봉이도 들어온다. 한 시간 가량을 대기하다보니 다른 순례자와도 이야기를 나눠본다. 마침 일본인 부부도 계셔서 "오 부부끼리 까미노라니 멋지네요!"라고 일본어로 말을 했다.

 

그랬더니..

 

버럭하시며.. 다들 부부라고 생각하는데 누나와 친동생이라고...원래 까미노를 참 걷고 싶었는데 아이들을 다 키우고나니 이제야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갑자기 죄송해진다..왠지 서로 너무 닮았다 싶었는데)

드디어 알베르게 접수가 시작된다. 트래킹화의 모래를 털어내고 침대를 보니 몸이 스르르 녹는거 같네.

날짜

2021. 5.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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