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6/2014 (Day 8) Logrono - Nejara

 

(이야기에 앞서.. 이번 주 토요일에 기업 최종면접을 보게되어 7일간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혹여나 기다리셨던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 걷는 길. 로그로뇨 시내가 정말 크다 보니까 길을 잃을수도 있겠다. 새벽 공기를 맡으며 노란 화살표가 알려주는 방향대로 가다가 길을 잃었다.

 

마침 음식점 오픈 준비를 하시는 아저씨가 계셔 "에- 엘 까미노 아끼? (요기요?) 돈데에스따? (어디에요?)" 말도 안되는 스페인으로 묻는다. 아저씨는 알아들으시곤 까미노 가는 길을 가르쳐주시며 "부엔 까미노"라며 인사를 해주신다.

 

이런 소소함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게 까미노다. 길을 쭉 따라가다 공장지대가 나오고 사람들이 조깅하는게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면 제대로 걷고 있다는 증거다. 초등학교 숲속 학습장처럼 보이는 녹지공원을 지나 로그로뇨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는 낚시터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여럿있어 그냥 나도 모르게 "올라~"를 외쳤더니 함께 인사를 해준다.

 

아침에는 대부분 일행과 함께 걸었는데.. 혼자 걷는 것은 꽤 간만이다. 오늘은 길을 걸으며 어제 EL이 이야기 해줬던 '기대하지 않는 여행'을 한번 더 곱씹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가치관을 믿고 행동한다는 것,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닐거다. 광대뼈가 새까맣게 탈 정도로 여행을 하고.. 또 그 안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

 

우리는 늘 인생에서 소소함을 배워간다. 나이가 들어가며 소소함을 더 많이 경험하고 나름대로 삶의 지혜도 쌓아나간다. 하지만 진짜 행복이 뭔지 알면서도.. 자신이 바라는 삶을 늘 숨기거나 억누르면서 산다.

 

어떻게 살면 좋을지 늘 알긴 아는데.. 주위 시선이나 소위 체면에 그런걸 억누르면서 산다. 지금의 나도 그런게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용기가 없다.

다시 한번 그녀를 길에서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계속 걷는다. 저 멀리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비올레타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던 것. 그녀는 멀리서 늘 그랬듯이 손을 흔들면서 반겨준다.

 

"로이! 대체 이놈의 로그로뇨는 언제 빠져나갈수 있는거야? 도시가 너무 크잖아"

 

 

조그마한 동산을 지나 포도밭사이를 걷는다. 저 멀리서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 세르지오가 머리위에 트레이드마크인 고프로를 달고 저 멀리서 걸어온다. "로이! 내가 듣기로는 이 작은 동네 이후로는 당분간 커피 마시기 힘들거야. 그 이후로는 계속 도로 옆을 걸어야 하거든"

 

아침에는 까페콘레체 꼭 한잔씩 먹어야하니까. 비올레타와 나는 초코크림빵을 하나씩 사서 먹고 약간 부족한 맛이 느껴지는 까페콘레체를 마신다.

 

동네 위치상..워낙 잘 팔리니까 설탕을 적게 넣은건가...

 

까페콘레체를 마시고 나서 끝이 보이지 않는 아스팔트 도로 옆을 걷는다. 조금씩 구름이 몰려오면서 꼭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어제 수제비를 대접해드렸던 안네마리 아줌마께서 안보이던 구름들이 보인다며 비가 올 수도 있겠다 했는데 그 정보가 제대로였구나.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뒤집어 쓴다. 마침 느릿느릿 거리는 우리 뒤로 기봉이가 금방 따라와 셋이 걷기 시작한다.

 

"여어~" 그리고 그 뒤로 다시 고프로를 달고 나타난 세르지오 아저씨, 어디서 산지 모르는 아몬드를 한줌 우리에게 주고 또 제 갈길을 가신다. 대체 고프로로 뭘 찍으시는건지 참 궁금하지만.. 워낙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시길 반복하시니..

 

세일러문의 턱시도 가면도 아니고...

 

 

 

 

고속도로 옆을 걷다가 커다란 화물차가 월드컵 응원 구호소리를 경적으로 내주며 우리를 응원해준다. 우리도 손을 높이 흔들며 화답한다.

 

비가 오고 있지만 그렇게 힘든 길은 아니었다. 걷다가 좀 추워지면 까페콘레체를 마시고 계속 걸으면 됐으니까 말이다.

 

 

나헤라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나헤라도 생각보다 규모가 있었고 골목들이 많아 조금 복잡했다. 비올레타가 스페인어로 열심히 묻고 물어 찾아간 알베르게에는 론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여어~ 다시 만나서 반갑구만!"

 

우리가 갔던 알베르게는 도네이션 알베르게로 2명의 스페니시와 1명의 폴란드 사람 1명의 이탈리아 호스피탈로가 봉사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늘 얼굴만 마주쳐도 밝게 인사를 해줘서 참 기분이 좋다.

비올레타와 나, 기봉은 일단 방배정을 받고 배가 너무 고파 근처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또르띠야와 맥주 한잔을 시켜먹는다. 또르띠야는 역시 맛있었고. 맥주는 역시! "우노 세르베사 뽀르빠보르~ (맥주 한잔 주세요)" 이거는 아마 내가 제일 잘 구사하는 스페인어이지싶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에스타가 시작되니까.. 5시가 되기 전까지는 충분히 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일기를 쓰니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자! 어제는 한국식 저녁을 먹었으니 오늘은 비올레타가 만드는 멕시칸 디너 어떨까?"

내가 먼저 운을 띄웠다.

 

"알았어. 내가 멕시칸 파스타를 하기로 하지!"

비올레타와 나는 함께 장을 보기로 했는데 치즈를 엄청나게 많이 산다. 멕시칸 음식이면 무조건 매울거라고 생각했던게 고정관념이었던 것.

 

치즈가 많이 들어간 파스타. 얼핏 맥앤치즈같은데.. 좀 다른 스타일이다. 치즈가 들어간 파스타와 와인, 그리고 이에 더해 프란체스카가 치즈로 만든 라이스와 오믈렛을 가져왔는데 단짠단짠(달고 짜고)하니 괜찮았다.

그리고 옆에는 동네아저씨가 가곡을 불러주시니 무슨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만 같더라. 그 노래의 의미는 '순례자들은 로그로뇨를 지난다'를 함축하고 있다 했다.

 

 

오늘의 와인. 뭔지는 모르지만 참 맛있어서 찍은 라벨.

오늘은 꽤 대가족이 모였다. 프란체스카, 론, 마르타 그리고 기봉.

머리 위에 고프로를 달고다니는 세르지오 아저씨, 에밀리, 비올레타.

 

 

아직도 기억나는 그때의 만찬. 서로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느라 바쁘다. 벌써 1주일을 넘게 걸었다. 1주일을 걸었는데도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었는데..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 지 정말 기대가 된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옆자리에 처음보는 분이 계셔서 인사를 했다. 영어 하시는 걸 보니. 프랑스 아저씨 같았는데 뭔가 풍채가 수도원에서 오신 것 같은 묘한 풍채가 있더라. 크리스티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아저씨도 프랑스 남부에서 걷기 시작하셨다고. 앞으로 왠지 이 아저씨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음날 새벽, 또 다시 일어나 길을 걷는다. 어제 하루 정말 지극 정성으로 우리를 도와줬던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을 찍고 싶었다.

감사한 두분. 앞으로도 건강하고 무사하게 걸으라며 격려해주셨다.

 

"물집 난곳은 없어요 아직?"

"네 전 한국 군대에서도 많이 걷는데... 물집 난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감사해요!"

 

 

(다음에 계속)

 

https://www.youtube.com/watch?v=ErF9Ptw2KCw

참고 : 우리에게 멋진 노래를 선사하신 스페인 할아버지는 영상의 2분 50초에 나온다. 본 영상은 내가 까미노 33일을 모두 걸으면서 찍었던 영상들을 편집한 것이다.

날짜

2021. 5. 29. 07:00

최근 게시글

최근 댓글